곰곰이 생각해보면 납득이 안 가는 풍경이 지난 대선 때 하나 있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서로 간 차별성을 강조해 오던 후보들이 유독 과학기술 정책에 와서는 똑같은 말들을 되뇌었던 것이다. 그리고 대선 2차 합동 토론회에서는 과학기술에 관련된 질문에 대해 두루뭉술한 답변으로 일관하거나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 여기서 그 때 후보들이 내세웠던 ▲과학기술자에 대한 지원 확대 ▲과학기술인력 양성 ▲연구개발비의 투자확대 같은 구체적 공약사항들이 잘못되었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한 목소리로 ‘과학기술 중심 사회’를 지향한다고 하는 예비 지도자들이 정작 왜 그 모든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고민이 없어 보였던 역설적인 상황을 짚어보자는 것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지난 7일 발표한 ‘10대 국정과제’에는 “과학기술 중심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 중요한 정책 의제로 포함되어 있었다. 그 안에는 대선 때 각 후보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했던 내용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궁금증은 그것이 다른 정책 의제들과 어떤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지 모호하다는 것이다.
인수위원회의 ‘10대 국정과제’에는 ▲참여복지와 삶의 질 향상 ▲국민통합과 양성평등사회의 구현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 ▲부패 없는 사회, 봉사하는 행정 등 우리가 진정 행복해지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시급히 추구해야 할 중요한 가치들이 정책 의제로 설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새 정권의 과학기술 정책은 이런 중요한 가치들을 추구하는 과정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인수위원회의 과학기술 정책에서 그런 고민은 누락되어 있다. 기존에 널리 통용되었던 IT, BT, NT와 같은 특정 기술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것이 과학기술계의 입맛에 맞게 수사(修辭)로 포장되어 있을 뿐이다.
이런 사정은 국가 운영에 대한 전망을 제시할 때, 과학기술이 그저 경제 성장을 위한 도구로만 취급되고 있는 현실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우리는 여전히 ‘저돌적 근대화 과정’에서 개개인의 사고를 지배해 왔던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경제 성장을 이룩해야 한다”라는 도그마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기술 정책의 방향은 이런 한 가지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복지, 산업, 경제 정책이 정치적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르게 만들어질 수 있듯이 과학기술 정책 역시 다른 방향과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 정권의 과학기술 정책은 단순한 투자 확대와 경쟁력 제고만을 외치기에 앞서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우선 전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어떤 과학기술 정책이 필요할지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삶의 터전인 환경을 보전하고 산업 구조를 친환경적으로 개편하기 위해서 과학기술 연구개발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 과학기술이 환경 파괴나 사회, 윤리 문제를 초래하거나 잠재적 위험을 내포하고 있을 경우 어떻게 규제하고 발전을 조절할 것인가? 고령화 사회에서 증가하는 건강, 보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지난 경제 위기 이후 갑작스럽게 지금 이곳의 고민이 되어버린 실업문제를 해결하는 데 과학기술이 해야 할 긍정적 역할을 찾아내는 것도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일이다. 산업재해, 직업병 등 노동자의 일상을 위협하는 작업장의 노동 조건을 개선하고 ‘노동의 인간화’를 앞당기기 위해서 과학기술이 해야 할 역할을 찾는 것도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국민통합을 지향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하는 것 역시 과학기술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이번 대선에서 기존 매체들을 대신해 큰 위력을 발휘했던 인터넷을 살펴보자. 여전히 국민 상당수는 인터넷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컴퓨터와 같은 정보화 기기를 다루는 데 어려움을 겪는 고령 인구들이 어떻게 인터넷을 사용한 여론 형성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 시각, 청각 장애인들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정보화 인프라를 구축하는 방법은 없을까? 양성 평등사회를 구현하는 데 기존의 과학기술이 가진 문제점은 무엇이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과학기술은 어떻게 활용되어야 하는가? 과학기술 연구 인력에서 여성들이나 장애인들이 소외되고 있는 것을 극복하는 것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문제이다.
국가균형 발전을 위해서도 과학기술 정책은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과학기술 투자를 지역별로 ‘골고루’ 늘리기만 하면 국가균형 발전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역 주민의 직접적인 이해관계, 지역의 환경, 문화를 염두에 둔 과학기술 과제가 무엇인지를 선정하고 그것이 그 지역의 지속가능한 개발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고, 궁극적으로 자치를 북돋울 수 있을지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해당 지역 소재 대학이나 연구소의 과학기술자들이 주민들과 머리를 맞대어 연구 과제를 선정하고 그 결과물이 지방 정부나 지역에 기반을 둔 기업들을 통해 확산되는 상황을 한번 가정해 보면 어떨까?
또 ‘국민 참여의 시대’를 열겠다는 새 정권의 과학기술 정책은,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들의 참여를 적극 보장해야 한다. 중요한 과학기술 정책 결정 과정에 시민들과 현장 과학기술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시민 단체와 과학기술자들은 오랫동안 주장해 왔다. 영국에서는 아예 ‘기술수요예측 사업(Technology Foresight Program)’을 통해 시민들이 자기 분야에서 예상되는 과학기술 수요와 문제점을 제기하도록 하고 그것을 연구개발 과정에 접목시키기도 한다. 지역 과학기술 정책에 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될 때 긍정적 효과를 거둘 가능성이 커지는 것에 대해서는 앞에서 언급했던 대로다.
위에서 거칠게 살펴 본 ‘다른’ 과학기술 정책은 이미 다른 나라들에서 부분적으로나마 시행하고 있는 것들이다. 예컨대 2001년 유럽연합의 ‘유럽집행위원회’가 승인한 ‘과학과 사회’ 실행계획을 보자. 이 계획은 유럽 시민들이 바라고 있는 평화, 고용, 안전, 지구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과학기술이 조화를 이루도록 “과학과 사회 사이의 관계를 밀접하게 하기 위한 새로운 노력”이다.
계획에는 앞에서 열거했던 많은 질문과 요구들에 대한 답변이 녹아들어 있다. 다양한 참여제도를 통한 시민사회의 참여, 과학기술에서의 성 평등, 기술수요예측 사업, 과학 및 신기술의 윤리적 차원 고려, 과학기술의 불확실성에 대한 사전예방원칙의 확립, 시민성과 전문성의 결합 등등. 유럽연합은 장기적으로 추진될 이 계획을 구체적인 실천 프로그램을 통해 이미 작년부터 시행하고 있고, 2004년에는 지난 2년간의 추진 결과를 평가할 예정이라고 한다. OECD 회원국 중 연구개발 투자 규모면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우리나라에게 이런 유럽연합의 새로운 시도는 여전히 배부른 소리일 뿐일까?
이젠 50줄에 접어든 한 지식인이 70년대 미국에서 유학 중 겪은 에피소드는 이런 ‘한국적’ 상황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교수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인간이 곧 비를 오거나 오지 않게 통제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수업을 듣던 열두 명 남짓한 학생 중에 그럴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그 지식인과 타이에서 온 학생 두 명뿐이었다. 그는 그 때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냉소적인 웃음을 띠고 있는 백인 학생들을 이상스럽게 바라보았고, 그들은 우리를 귀엽다는 듯 바라보았다.” 만약 누군가 “지금 행복해지기 위해 과학기술에서 추구해야 할 중요한 가치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우리는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여담 한 마디: 지난 20일 대통령 직 인수위원회는 ‘과학기술 중심 사회 구축’을 숫제 ‘과학기술 혁신과 신 성장’으로 바꾸기로 했다고 한다.
※ ‘Citisci Group’은 모두 5인(강양구, 김명진, 김병수, 김병윤, 안성우)으로, 자연과학ㆍ공학과 인문ㆍ사회과학, 학계ㆍ연구소와 시민운동, 제도권과 비제도권, 학생ㆍ직장인과 룸펜ㆍ백수 사이의 경계를 어지럽게 넘나들고 있는 인간들의 종잡을 수 없는 집단이다. 이들은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주류적 관점에 피곤함을 느끼고 이를 갈아치울 수 있는 이론과 실천을 모색중이라는 점에서(만)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들에게 연락하기 위해서는 citisci@jinbo.net 으로 메일을 보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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