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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술을 마셔댄 孫世一ㆍ任在慶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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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술을 마셔댄 孫世一ㆍ任在慶과…

남재희 회고-文酒 40년 <37>

사회를 사는 지혜로 무엇보다 친구를 잘 사귀어야한다고들 말한다. 술친구가 그 가운데 으뜸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술 마시는 데 돈과 시간을 많이 낭비했지만 나도 술친구를 많이 두었다고 하겠다. 그러나 친구 사귀는 데 맹목이었다. 계산속이 전혀 없이 우연히 만나서, 또는 기분이 통해서 마셔댄 것이다.

나이가 든 지금 옛 어른들 말처럼 친구를 어느 정도 가려서 사귈 것을 그랬다 싶다. 술도 절도 있게 마시고…. 아무튼 가까웠던 술친구들 이야기.

김대중 정권하의 민주당 원내총무를 지냈고 「이승만과 김구」라는 좋은 책을 쓴 손세일(孫世一)형과 한겨레신문 창간부사장이었던 임재경(任在慶)형은 나와 함께 조선일보서 일한 적이 있다. 손형은 서울문리대 정치과 출신이고 임형은 같은 대학 영문과출신.

연령도 크게 차가 안 나고 또 생각들도 비슷비슷해서 술마시는 명콤비가 되었다. 굳이 탓하자면 손형은 오만한 자세이고, 임형은 가끔 짓궂은 것이라 할까. 형평에 맞게 나를 평한다면 무어라 할까, 성질 급하고 고집통이고….

손형은 「사상계」의 편집장을 지냈고 거기서 동료인 동아일보 사장 심강 고재욱(心崗 高在旭)씨의 따님과 결혼을 했다.

일본에서 TBS브리타니카에 오래 근무하기도 하여 일본통이라 할 만하다.

임형은 문리대의 문학패거리들과 어울린 문예청년으로 프랑스와 독일에 유학하기도 한 유럽통이자 사상가냄새를 짙게 풍기는 언론운동권이다.

셋이 어지간히 어울렸다. 그때 임형이 경제기획원 출입으로 촌지도 생겨 술값은 그가 많이 부담했다. 셋 중 처음 미국 국무부 초청을 받아 떠나는 손형을 환송한답시고 마지막에는 종로2가의 속칭「나이아가라」까지 가서 밤새도록 술을 마셔 손형의 여행에 타격을 준 적도 있다.

그중 압권은 24시간 이상 함께 술을 마신 일이다. 최근에 손형과 그때를 회고하다가 보니 술집을 간 순서를 놓고 서로 이견이 있었다. 30년도 넘었으니 어찌 순서까지 정확하겠는가.

토요일 오후 6시 반쯤 광화문 빈대떡집에서 시작하는 것이 순서였다. 처음에는 돈을 아낄 생각을 한다. 그러나 발동이 걸린다고 하는데 술이 얼큰해지면 용기가 생긴다. 다음이 명동에 있는 바의 거리로의 진출이다. 그때는 살롱이 아니고 바의 시대였다. 바에는 밀실이 없고 고정으로 앉는 호스티스도 없고 원래는 잠깐 2, 3차로 한잔하고 가는 곳이다.

명동 바에서 11시가 넘으면 통금이 있던 때라 그 다음 궁리를 하게 된다. 그리고 대개 가는 곳이 밤새 영업하는 회현동 유엔 센터. 그날도 그렇게 진행되었다. 다음 날이 일요일이니 마음놓고 마셔댔다. 새벽 4시 통금이 해제되면 취객들 가운데 많이는 청진동 해장국거리로 가서 해장국에 막걸리 한 대접을 하는 것이 코스.

거기서 끝났으면 가끔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예외가 생겨 버렸다. 손ㆍ임의 악당이 내집에 가자고 요구하고 나는 우둔하게도 응해 버렸다. 누상동 집에 도착한 것은 5시쯤 되었을까, 엄처의 박대 속에 양주 한 두잔씩 하고 쫓겨나듯 나왔다.

손형이 자기 집으로 가자하여 녹번동으로 갔다. 7시쯤일 것이다. 대단히 미안한 일이었다. 취해서 그런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손형의 부인이 우선 꿀물을 타내고 북어국, 콩나물국을 끓여내고 취객들에게 극진하다.

거기서 또 마셨다. 옷도 벗지 않은 채 눈을 붙이기도 하다가 또 깨어서 마셨다. 그사이 임형이 달아났다. 나는 손형과 점심을 먹고 떠들고 지내다가 저녁이 된 후 근처에 사는 채현국(蔡鉉國)형 집으로 가기로 했다.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 출신인 채형은 「가두의 철학자」라고 내가 별명으로 부르는데 당대의 기인이라 할 것이다. 옷도 막 입고 말도 막 하고 술도 막 마시고…. 집안에 돈이 있어서 그렇지, 없었으면 천상병(千祥炳)시인과 비슷해졌을 것이다. 그러면 실례가 될까. 채형의 선친은 사업가로 제2차대전이 끝날 때 상해에 있었는데 학병으로 갔던 우리 학도들이 배를 기다리느라고 상해서 우왕좌왕할 때 그들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해서 유명해졌다. 그 학병 가운데 이병주(李炳注) 소설가도 포함되어 있다.

아무튼 그 채형 집에 가니 임형이 자기집에 들렸다가 어느새 거기에 와서 술을 마시고 있는 게 아닌가. 셋은 또 합류하여 술을 10시쯤까지 마셔댔으니 구제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술하고 원수졌나.

그때 경험에서 하나 터득한 것은 술을 좋아하는 아버님 밑에서 지낸 딸과 술을 별로 안하는 아버님 밑에서 성장한 딸은 취객들 시중하는 데 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손형의 장인 심강 선생이 누구인가. 그 집안에서 술시중의 법도를 읽혔으니 손형의 부인은 거의 완벽했던 것이다. 요즘 그 일로 칭찬을 했더니 손형은 더 우쭐해지고 더 오만해졌지만 말이다. 나의 경우는 그렇지가 못했다 장인 어른이 술을 못 하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날 일을 나의 실수로만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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