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1차 도청 의혹 제기가 있었던 지난달 28일 밤의 일이다. 정치권의 한 소식통은 "도청자료가 폭로됐으니 이인제 의원이 금명간 민주당을 탈당해 한나라당에 합류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는 "이의원은 이미 이회창 후보와 깊숙한 이야기가 오간 상태며, 한나라당 합류후 그는 중부권 지역을 대표하는 맹주로 대우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인제, '예고된 탈당'**
그로부터 사흘 뒤인 1일 그의 예고대로 이인제 의원은 "이번 불법도청 파동을 지켜보며 여론조작을 일삼는 부패한 패권추구세력의 국정농단을 더이상 방관해선 안된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민주당을 탈당했다.
이 의원은 이날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불법도청과 여론조작은 특정지역 패권세력의 집권연장 술책에서 나온 것임을 확신한다"며 "김대중 정권이 벌인 정치공작과 불법도청의 전모를 국민앞에 밝히고 사죄할 것을 엄중히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지난 4월 전당대회 이후 민주당은 특정 세력이 당을 좌지우지하는 위험한 패권주의의 온상으로 전락했으며 특정이념에 맞지 않는 사람은 모두 적대시하는 이념적 패권세력의 독무대가 됐다"며 "이번 대선에서 부패한 세력과 급진 과격세력의 집권연장 기도를 막아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또다시 시련을 맞게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노무현후보를 겨냥, "지금 민주당 후보와 그를 둘러싼 세력은 급진세력"이라고 비난하고 "지난 경선때 대통령의 영향력이 동원돼 마치 주가를 조작하듯 광풍이 불게 했고 이번 단일화과정에서도 정치적 흥행으로 만들어 국민을 또 흥분시켜 놓았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대선전에 특정후보를 지지할 생각이냐'는 질문에 "필요하다면 많은 분들과 상의해 그런 선택도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 대한 지지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동시에 JP(김종필 자민련총재)와 회동 여부에 대해선 "이제 만나뵙게 될 것"이라며 "그분이 명예롭게 정치를 마감할 수 있도록 돕고 싶은 게 내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해 자민련과의 연대 가능성도 시사했다.
***이인제, 이회창의 TK 견제마?**
이인제 의원의 탈당은 이처럼 '조직적으로' 단행됐다. 외형상 그의 탈당은 한나라당이 폭로한 1차 도청자료에서 지난 3월 민주당 경선이 불공정하게 치러졌음을 시사하는 대목이 곳곳에 포함돼 있는 데 따른 '명분있는 탈당'인양 비친다.
하지만 그의 탈당을 예고했던 정계 소식통이 전하는 전후 상황은 그렇게 단순치 않다. 상당히 고도의 정치적 계산과 사전 정지작업이 있었다는 얘기다.
이 소식통은 이인제 탈당의 전후 배경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지난달 25일의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로 민주당내에서 이인제의원이 설 땅이 사라졌다. 그동안 이의원이 마지막 희망으로 걸었던 대목은 중부권의 기득권이었다. 그러나 중부권에서 압도적으로 지지도가 높은 정몽준 대표가 노무현 후보와 손을 잡음으로써 이인제 의원의 존재가치는 급속히 희미해져갔다. 이런 때 이회창후보측이 강력한 연대 제의를 해온 것이다.
이회창 후보측은 우선 이의원에게 이번 대선에서의 지원사격을 부탁했다. 그동안 이 지역의 자민련, 민주당 의원들을 대거 영입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충청권에서 이후보측이 상당히 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직 이 지역에 기반이 있는 이인제의원의 지원사격은 이후보쪽에 더없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후보측은 이같은 지원에 대한 반대급부로 대선승리후 확실한 몫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부권 지역의 맹주자리를 약속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약속의 이면에는 이회창후보가 집권후 TK(대구.경북)세력의 일방독주를 견제하겠다는 의도도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부권에 이인제를 자리잡게 함으로써 TK의 견제마로 활용하겠다는 의도인 셈이다.
선택의 폭이 좁은 이인제의원은 결국 이같은 제안을 받아들여 탈당을 단행했고, 금명간 한나라당에 정식입당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JP와의 연대 가능성도 거론하나 이는 연막전술로 해석된다."
과연 이인제의원이 탈당후 이같은 구상대로 행보를 계속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경선과정에 형성된 '네가티브 이미지'가 워낙 강한 데다가 한나라당을 택할 경우 그의 정치적 소신마저 밑둥채 의심받을 처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인제의 마지막 도박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가, 한국정치의 수준을 재는 한 바로미터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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