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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에 보내는 충고

<긴급제언-남재희의 체험적 정치개혁론> <4> 진보정치

좁은 의미의 정치차원에서는 독일모델을 생각해볼 수 있다. 권력구조 문제에서 내각책임제는 독일모델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가 좀더 발전한 다음에 생각하기로 하자. 먼 앞날에는 우리도 내각책임제 국가가 될 것으로 내다본다. 다만 그동안 현행제도로 헌정관행을 권력분산 방향으로 쌓아가자는 것이다.

독일모델에서 중요한 것은 국회의원의 선출방식이다. 지금까지 국회의원의 비례대표 배분방식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한정위헌 결정이 내려져 앞으론 후보와 정당에의 1인 2표 방식의 투표를 통해 정당득표수로 비례대표 의석을 나누게 될 전망이다. 이미 시ㆍ도의회 차원의 선거에서는 그렇게 시행하고 있다.

언론에 보도된 바에 의하면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보수적인 의원들이 그렇게 하여 진보정당에 기회를 주느니 차라리 국회의 비례대표제를 없애버리자는 주장을 하였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1인 2표로 하고 정당명부식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을 선출한다는 것은 지금의 대세이다. 그때 비례대표의 비중을 과감하게 독일처럼 국회의석의 절반으로 하였으면 한다. "비례는 대표의 원리요, 다수는 결정의 원리"라는 격언이 있다. 결정을 할 때 의지할 최종수단은 다수결이다. 그게 민주주의다.

그러나 대표를 선출할 때는 비례대표로 하는 것이 성원의 의견을 골고루 균형있게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의견이 너무 세분화되고 잡다한 세력들의 대립으로 혼란을 유발할까봐 진입장벽을 두고 있는데, 예를 들어 득표에 있어 유효투표자의 3-5%를 못 얻었거나 지역당선 의원수가 3명을 넘지 않을 때는 비례대표 배분에서 제외한다는 규정과 같은 것은 납득할 수 있다고 본다. 비례대표가 될 경우 계급적ㆍ이념적 또는 지역적인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종교적인) 여러 세력들이 국회에 반영되어 연립의 정치를 펼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지역구 문제에서는 최근에 다른 의견이 제기되었다. 노무현 후보측에서 말한 중ㆍ대선거구제도이다. 물론 모든 제도에는 장단점이 있는 것이어서 중ㆍ대선거구제도도 논의할 수 있겠으나 결론을 말하면 1인 2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로 하고 전체 의석수 가운데 그 배당몫을 지금보다 늘리는 방향이라면, 중ㆍ대선거구제는 의의를 많이 상실한다는 것이다. 독일모델도 그러하지만 비례대표를 확대한다면 유권자들이 지역대표를 직접 뽑았다는 분명한 느낌을 주게 하는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격화파양(隔靴爬癢)이라고 신을 신고 발바닥 긁기라는 말이 있다. 국회의원을 정당명부에 따른 비례대표로 반쯤 뽑고, 나머지 반은 중ㆍ대선거구제를 통해 뽑는다면, 유권자들은 격화파양의 느낌을 가져 마음이 썩 후련하지 않을 것이다. 썩 후련한 1선거구 1인 당선의 소선거구제가 민심의 측면에도 맞을 것이다.

만약에 독일모델을 채택한다면 우리나라도 진보정당이 국회에 본격 진출하게 되고 비교적 알찬 수의 의석을 갖게 될 것이다. 독일의 녹색당은 금년 선거에서 정당투표 8.6%를 얻어 비례대표 55석을 배분받고 지역구 의석 1석을 합쳐 56석이 되었다.

민주노동당은 지난번 지방선거에서 8.1%를 얻었는데 그 수준을 유지한다면 상당한 의석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독일 연방하원은 5백98명이 정원인데 지난번 총선에서는, 지역구 당선자 수가 정당비례대표로 배정된 의석수보다 더 많을 경우 지역구 당선자 수는 그대로 인정된다는 계산상의 이유로 6백3석이 되었다.

지난번 지방선거가 있은 후 민주노동당의 기관지 <진보정치>의 부탁을 받고 다음과 같은 기고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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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보기에 민주노동당은 그런 대로 열심히 잘하고 있다. 나의 관찰 창구는 '진보정치'가 되겠는데 대견스럽게만 여겨진다.

이번 정당지지율에서 자유민주연합을 앞지르고 제3위로 오른 데 대하여 모두들 축하를 보내고 있지만 그런 가운데도 민주노동당의 한계를 말하는 의견도 들린다. 민주노동당에 애정을 가졌지만 피상적으로밖에 알 수 없는 위치에 있는 나로서는 우선 민주노동당이 뿌리내리는 데 성공했다고 말하고 싶다. 창당 당시 대중정당적 방향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계급정당적 방향을 내세운 세력간에 대립이 있었고 전자의 주장을 한 일부는 이탈해나간 것으로 안다.

대중정당적 방향이 종당에는 맞는 것일지 몰라도 처음부터 그렇게 나가면 자칫 명망가 정당처럼 되고 뿌리도 내리지 못한 채 부유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비유가 될지 몰라도 지난날의 민중당의 재판 같은 것 말이다.

그런 점에서 계급정당적 색깔을 갖고 출발하여 정체성을 확립하고 뿌리를 확고히 내리게 된 것은 잘한 일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정당의 발전에는 단계와 시기가 있는 법이다. 앞으로의 어느 단계, 어느 시기에서는 대중정당으로의 탈바꿈도 불가피할 것이다. 조직기술상 어떨지 몰라도 이중의 구조를 갖는 것을 연구해보았으면 한다. 마치 영국의 하원과 같은 권한을 갖는 기간조직과 그 위에 영국의 상원과 같은 명예를 갖는 명망가들의 집합 말이다.

노선에 있어서는 북한과 명확하고 단호한 선을 긋는 일을 강조해두고 싶다. 첫째로, 민주노동당은 북의 침투ㆍ공작대상이며, 남의 극우기관의 침투ㆍ공작대상일 수 있다. 진상은 앞으로의 역사가 밝혀내야 하겠지만, 북의 공작에 말려들어 민중당이 진보당의 불우한 전철을 밟을 뻔하지 않았는가.

진보당 당시 조직의 핵심간부로 있던 전세룡(全世龍)씨는 당시 당사에는 죽산(조봉암)계, 동암(서상일)계, 정보계의 3파가 출입하고 있으며 정보계에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기관원들이 포함되었었다고 회상하고 있다.(정태영 등이 1999년 발행한 <죽산 조봉암 전집> 제6권 참조)

둘째, 북한을 적대시할 시대는 지났지만 북한의 공산-김일성-김정일주의가 실패한 모델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남한의 모델이 불완전하지만 그래도 개혁해나갈 모델이라는 확신 말이다. 북한과의 문제에 있어서 이런 태도를 분명히 하지 않을 경우 앞으로 민주노동당의 영향력이 커져감에 따라 무슨 계략에 말려들고 무슨 소용돌이에 빠져들지 모를 일이다.

마지막으로 세계화ㆍ신자유주의에 대한 문제이다. 이것은 전지구적으로 고민하고 투쟁하고 있는 과제로 모범답안은 없다. 나는 난타당할 각오로 말한다. 앤서니 기든스가 제시한 '제3의 길'이나 조셉 스티글리츠의 국제경제론은 가볍게 버리지 말고 깊이 음미해 보아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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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이 국회에서 당당한 원내교섭단체가 되는 것은 글로벌 스탠더드(국제표준)에 맞다. 같은 이치로 민주노동당은 유럽 진보정당과 같은 국제표준을 연구해야 한다고 본다.

진보정당의 진출은 우리 정치에서의 현상돌파라고 본다. 보수정당 일색이던 정치가 정상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자층을 중심으로 한 소외세력들은 그동안 정치적 발언권을 확보하지 못했다. 그들이 자신들을 대변하는 정당을 갖게 된다면 국민의 정치적 통합에 도움이 될 것이다.

진보정당이 새로운 정책을 제시하니까 정책적 논의도 더욱 활발해지고 깊이를 더하게 될 것이다. 외국의 경우를 보면 보수정당들이 진보정당의 정책들을 채택하여 그들의 정책으로 삼아 정치를 발전시키는 일이 허다하다. 물론 진보정당이 보수정당의 정책을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영국의 블레어 노동당 정권은 대처 보수당 전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많이 받아들였다). 감시자로서의 진보정당의 역할도 중요하다. 정경유착의 부패고리를 끊어 정치를 정화하는 데 큰 기여를 하리라 본다.

유권자들은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경우에도 사표 가능성을 생각하여 당선 가능한 다른 후보에 표를 던지는 심리를 가지고 있다. 이 사표 기피심리가 진보정당 성장에 큰 장애물이다. 진보정당에 던지는 표가 후보의 당락에 관계없이 당당한 의사표시로서 정치적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설득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민주노동당은 지금 모진 바람을 맞고 있다. 이른바 '노풍(盧風)'이 그것이다. 노풍이 불기 시작한 초기에는 마치 폭풍처럼 몰아쳤다. 지지계층들에게 '노풍(盧風)'이냐, '노풍(勞風)'이냐는 난처한 고민을 안겼다. 지금은 시간도 지나 폭풍이 미풍이 되었지만 바람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개혁과 통합을 위한 노동연대'의 주장은 간단히 말하여 노무현 후보가 다른 후보에 비해 개혁적이고 당선 가능성이 있으므로 노동세력은 당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권영길 후보를 밀지 말고 노후보 지지에 합류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노 후보측과 권 후보측이 '대선을 향한 개혁연대'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부시 공화당 후보와 고어 민주당 후보의 대결에서 랠프 네이더(Ralph Nader) 녹색당 후보만 출마하지 않았더라면 그 표가 고어한테 갈 것이므로 고어가 승리할 수 있었을 것이 아니냐는 설명이 설득력을 높이기도 한다.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사람에게 노 후보를 지지하라는 것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대선 경쟁을 거처야만 다가올 국회의원선거에서 독일의 녹색당 정도의 성장이라도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주장대로라면 앞으로 진보정당은 존립할 수 없다는 극단적 이야기도 될 수 있을 것이다.

'대선을 향한 개혁연대'가 무슨 뜻인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만약에 정책협약 등을 통한 당 대 당의 협력이라면 구체적 제안을 기다려 민주노동당이 이해득실을 따질 일이다. 선례가 있는 일이다. 다만 1992년의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진보 재야세력과 정책연합을 한 결과 감표가 되었다고 후회했다는 뒷이야기가 있는 것을 보면 민주당측이 민노당에 당 대 당 정책협약을 제의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민주당 '노풍'측의 논자는 "영국의 노동당이 자유당과 선거연합을 함으로써 정치적 토대를 마련하고 결국은 자유당을 눌러버렸다"며 '두꺼비가 독사에 잡아먹힘으로써 새끼를 낳는 격'이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대전제가 다르다는 것을 잊은 것이 아닌가 한다. 영국이나 독일의 선거연합은 내각책임제하의 의원선거 이야기이지 대통령중심제에서의 대통령선거와는 다른 것이다.

몇년 전에 진보적인 학자로 이름이 있는 조희연(曺喜昖) 교수는 한국정치의 큰 문제점으로 네 가지를 들었다. 첫째로 지역주의의 고착화. 군부세력의 지배전략이 작용했고 1987년 김영삼ㆍ김대중 양씨가 분열한 때문도 있다. 둘째로 부패의 폐쇄회로가 된 제도정치. 정치자금ㆍ뇌물 등에 여당만이 아니고 야당도 끼여들어 정경유착이 구조화되었다. 셋째로 제도정치의 이념적 폐쇄성. 사회갈등을 억압하여 이념적ㆍ정책적 스펙트럼이 제한되고 우경화하였으며, 그리하여 정치와 시민사회 사이의 괴리가 생기고 노동계급을 대변하는 정당이 없게 되었다. 넷째로 정당운영의 비민주성. 보수중심으로 운영되고, 공천이 비민주적이며, 당 재정도 불투명하다. 독재타도를 외치며 투쟁한 정당도 일사불란이 체질화되어 여당이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면서 조교수는 진보정당의 진출, 재벌해체와 기업의 투명화, 시민운동의 활성화 등을 제안한 것으로 기억한다. 대체로 동감이다.

지역주의를 '지방색' '지역대립' '지역감정' 등 여러가지로 표현하는데, 이 집요하고도 비극적인 난제는 이제 한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한다. 김대중 정권의 탄생으로 소위 말하는 '한풀이'는 되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많은 사람들은 씁쓸한 마음으로 대립한 일을 되씹고 있다.

영남의 안티 김대중 정서는 그냥 한때 갖는 오기일 뿐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제부터 이 문제는 슬슬 달래서 가라앉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긁어 부스럼'이라는 속담이 있는데 자꾸 거론하다 보면 삭아가는 불을 되살리는 격이 될 것이다.

미국에서 교수와 상원의원을 지낸 패트릭 모이니핸(Patrick Moinihan)이 '관대한 묵살(benign neglect)'이라는 명구를 만들어 그후로 자주 인용되었는데 그런 자세와 상통한다. 다만 집권자들은 인사나 예산 배정에서 공정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산술적 평등이 아니고, 또한 섣불리 지역쿼터 운운하는 것도 합리적이 아니다). NGO 등도 감시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오늘날의 국민은 수준이 높고, 정보화시대에 살고 있어 불공정한 처사를 즉각 알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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