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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돌파구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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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돌파구 될 수도"

<전문가 진단 1>'북 핵개발 시인', 그 의미와 대응방향

부시행정부 최초의 북미대화가 동북아 국제질서에 엄청난 충격파를 몰아오고 있다. 지난 3-5일 제임스 켈리 미 대북특사가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지 열이틀이 지난 10월 17일 미국 정부는 '북한이 핵개발 재개를 시인했다'고 공식발표했으며 지난 20일에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의 입을 빌어 제네바 합의의 사실상 파기를 선언했다.

지난 7월 이후 남북간, 북일간 등에 형성돼 온 해빙 기류가 켈리 대북특사의 방북 이후 한순간에 긴장과 혼란으로 뒤집어진 셈이다. 반면 북한은 아직까지 미국측 발표에 대해 일체의 공식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과연 북한 핵개발 재개는 사실인가. 사실이라면 의도는 무엇인가. 미국의 일방적 제네바합의 파기 선언은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 것인가.

프레시안은 최근 사태진전의 의미와 앞으로의 전개방향을 짚어보기 위해 관련전문가들과 긴급 좌담 및 인터뷰를 가졌다. 북한전문가인 서동만 교수(상지대)와 미국전문가 김민웅 목사(미국 길벗교회)의 좌담과 함께 국방연구원 서주석 책임연구위원(국방현안팀장)과의 전화인터뷰 내용을 별도로 싣는다. 이 좌담 및 인터뷰는 지난 19일 오후에 이루어진 것이다. 편집자


프레시안: 지난 17일 미국 정부는 북한이 우라늄농축 방법을 이용한 핵개발 재개를 시인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 발표로 인해 한반도 주변정세는 크게 요동치고 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잘못됐다는 비난도 크게 고조됐다. 9월 이후 급진전될 듯하던 북일관계 역시 주춤하고 있으며 중국도 북한의 핵개발 재개에 대해서 상당히 싸늘한 반응이라고 한다.

한편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핵개발 시인이 대이라크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는 언론보도도 나오고 있다. 북한의 핵개발 재개라는 소식이 지난 7월 이후 동북아에 형성된 해빙무드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 것만은 사실인 듯하다.

한마디로 위기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다. 위기라는 말에는 '위험'과 '기회'가 병존한다. 대응 여하에 따라 파국을 부를 수도 있고 사태반전의 계기도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현재 북한의 핵개발 재개는 미국 정부의 입을 빌어서 나온 것이다. 이를 근거로 해서 여러 가지 추측들이 나오고 있는데 어디까지가 우리가 인정할 수 있는, 확실한 사실인지가 먼저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가 어디까지를 현실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견해를 밝혀달라.

<사진1> 두 사람 있는 사진

***"부시행정부, 제네바합의 깨고 싶어했다"**

김민웅: 우선 (북한이) 핵개발 계획을 시인했다는 미국측 발표 내용이 불명확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언론보도를 접하며 받은 인상은 북한측이 제네바 합의에서 금지된 핵개발을 현재진행형으로 재개했다는 것이 중요한 이슈로 다뤄진다.

북한의 입장이 아직 나오고 있지 않지만 켈리 특사의 입을 통해 공개된 메시지는 명확하다. 첫째 제네바 합의를 북한이 선도적으로 파기했다는 것, 둘째는 부시 행정부가 그동안 인식해 왔던 대로 북한은 위험한 국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 미국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자세는 일단 외교적 압박이라는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점이다.

한마디로 북한측이 요구해왔던 적대관계 철회를 거부하고 북한의 행동반경을 더욱 죄어나가겠다는 것이 미국의 정책적 결론임을 말해주고 있는 셈이다.

미국은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깼다고 전제하면서 제네바 합의 파기를 선언했지만, 미국 부시정권 진영내부에서는 그간 계속해서 제네바 합의의 틀을 파기함으로써 미국의 대북 정책의 기본 틀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어왔다.

이 점에 관해서는 나중에 좀더 상세하게 언급하겠는데, 북쪽 입장에서 보면 그동안 제네바 합의를 이행하지 않은 것은 미국측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이) 핵개발 계획을 시인했다면 제네바 합의의 파기의 책임이 북한에 돌아가게 되는데 과연 무엇 때문에 제네바합의 파기의 책임을 무릎쓰면서까지 핵개발을 시인했는지 의구심이 든다.

만일 시인했다 하더라도 그 시인의 내용이 갖는 정확한 의미를 추론해 본다면 이런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북쪽 입장에서 그동안 절박하게 요구한 것은 미국이 북한을 적대적 정책으로 코너에 몰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제네바 합의를 통해서 북한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고 그것을 고리로 북미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변화시키려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왔다.

따라서 미국이 합의를 제대로 지키지 않고 그 결과 제네바 합의가 파산될 경우, 그래서 미국이 북한에 대한 공격적 정책을 확대 심화하려고 들 경우에는 북한 나름의 최종적 자위책으로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할 수 있다는 경고 차원에서 나온 이야기일 수 있다.

시인의 내용을 좀 더 좁혀보자면 제네바 합의가 파산될 경우를 대비해서 북한도 나름대로 대비책을 가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미국 측에 강하게 전달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마치 북한이 "현재 진행형"으로 핵 개발 프로그램을 "재개"했다는 형식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핵 동결을 규정하고 있는 제네바 합의를 깨고 플루토늄 추출을 개시하고 이로써 핵무기 개발을 실질적으로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좀 들지 않는다. 만일 그랬다면 그것은 현재의 조건에서 자살행위에 가까운 도발이 되는데 그 동안의 동북아 정세 변화의 문맥상 아귀가 잘 맞지 않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따라서 미국 정부와 언론 보도가 북한의 핵 개발 재개를 현재 진행형으로 규정해 버린 것은 좀 더 검토해봐야 한다. 켈리 특사가 방북 했을 때 북한의 첫 반응은 북한에 대한 미국의 태도가 상당히 고압적이었고 오만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적대적인 정책이 전혀 변화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다.

이를 전제로 하자면, 그와 같은 적대정책이 변화하지 않을 경우, 북한 나름의 대응책이 있다는 경고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이를 고리로 사태의 극단적 전개를 서로 막자는 협상논리를 제시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켈리 특사의 보고를 토대로 미국 부시정권은 앞뒤를 거두절미하고 그 부분만 집중적으로 조명, 확대해 문제를 더 크게 벌린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미국의 대북 정책이 그간 보여왔던 흐름을 보면, 특사파견을 통한 대화시도에는 북한과의 관계정상화보다는 압박정책의 조건을 추가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왔다는 점에서 그러한 전략적 의도가 있지 않았던가 하는 분석을 하게 된다.

결국 북한의 메시지는 '우리를 코너에 몰지 마라. 그러면 우리는 극단적인 자위조치를 계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태로 가는 것은 북한과 미국과의 관계는 물론 한반도 주변, 동북아 전체에 안정을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켈리 특사가 북한으로 가기 전까지 동북아 상황은 현재와 같이 마치 파국으로 가는 흐름이 아니었다. 이런 흐름을 거꾸로 돌리는 선택을 북한이 할 이유가 없다. 북한으로서는 미국과의 대결상태가 극단화되는 것을 가급적 피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보다 진실에 가까운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 아닌가 한다. 즉, 북한의 국가개혁 프로그램 가동을 위해 최근 움직여온 방식, 그래서 동북아 전체의 질서 재편의 맥락이 미국의 통제를 벗어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판단하고 이에 제동을 걸면서 북한을 옥죄려는 전략을 부시정권이 집행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이번 사건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또 한가지 분명히 돼야 할 부분은 미국이 북한이 핵 개발을 시인했다고 말한 자체가 하나의 현실이 되고 있다. 즉 북한의 시인 여부에 대한 진상이 밝혀지는 것과는 별도로, 미국이 북한이 핵 개발을 시인했다고 발언한 점 자체가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전방위적 분석이 요구된다.

***"북한의 공식반응 지켜봐야"**

서동만 : 한국정부의 성명이 있었지만 공식적인 확인은 미 국무부 성명만 있다. (확실한 것은) 그 두가지 밖에 없다. 그런데 소스가 어딘지도 모르는 엄청난 언론보도가 국내외적으로 난무한다. 북한의 핵개발을 기정사실로 몰고 가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따라서 무엇보다 사실확인이 중요하다. 당사자인 북한이 확인하지 않는 상황에서 기정사실화되는 현실을 우선 경계해야 한다.

문제는 미국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증거를 제시했는가이다. 증거에 대해서는 아직 미국이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밝혀지지 않은 것이다. 언론에서는 구체적으로 원심분리기 구입이라는 얘기도 나오지만 그것은 공식적으로 언급되지 않은 내용이다.

(핵개발) 장소가 특정화돼야 하고 북한의 기술단계는 어떤 상황이냐는 게 중요하다. 뉴욕타임스에서는 무기화 이전 단계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고 아사히신문에서는 원심분리기를 구입했을 뿐이지 농축과정을 진행한 것은 아니라고 보도했다.

기술단계와 더불어 언제 시작했느냐는 시점도 중요하다. 특히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에서 적대적 인식이 나타나기 이전이냐 이후냐의 문제다. 미국 국무부 성명에서는 켈리 특사 방북시 북한측이 제네바 합의가 무효화됐다고 간주한다는 발언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크게 얘기하면 사실문제에서는 핵 프로그램을 인정했다는 것인데, 그 의도만 있었다는 것인지, 진행됐다면 어느정도 진행됐는지가 확인돼야 한다. 그래야 제네바 기본합의 파기와 관련시켜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의 공식적인 반응이 중요하고 빨리 나와야 한다. 미국이 비공개 회담의 결과를 먼저 문제제기 했기 때문에 북측도 그럴 수 있다. 북한이 있는 그대로 밝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국에서 국무부 성명이 나오기까지의 경위도 문제가 된다. 상당히 준비해서 발표했다기보다는 내부의 복잡한 문제가 얽히면서 성명을 부랴부랴 내놨다는 느낌이다. 미국이 성명을 발표한 경위도 상당히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본다.

프레시안: CNN의 최초 보도를 보면 '미국 관리가 북한에 대해서 제네바 합의는 무효화됐다고 말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나 미 국무부 발표에 따르면 북한이 그 같이 말했다고 나온다. 이런 부분에서 역시 문제는 누가 먼저 제네바 합의를 깼느냐가 관건이라고 본다. 또한 "북 핵개발 재개 시인'은 굉장히 중요한 사안인데도 미국이 열이틀동안이나 지나서야 발표한 이유와 의도는 무엇인지가 중요하다. 배경이나 의미에 대해서 말해달라.

<사진 2> 김민웅 목사

***"제네바 합의의 외교적 효율성을 보다 중요하게 생각한 측은 북한"**

김민웅: 제네바 합의 파기에 대한 이야기는 클린턴 정부가 대북 접촉을 하는 과정에서도 당시 대선 후보였던 부시 진영에서 계속 나왔다. 헤리티지 재단 등 부시진영의 싱크탱크가 내부적으로 제기했던 것은 미국이 제네바 합의의 틀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현 제네바 합의가 북한의 독자적 핵에너지 개발포기의 대가에 대한 보상의 논리로 그 핵심이 구성되어 있는 것에 대한 대안, 즉 북한에 대한 보다 엄격하고 강력한 새로운 통제의 틀을 짜야 한다는 것, 그것이 부시정권의 중요한 대북 전략 기조로 세워졌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이 제네바 합의를 아무런 명분과 구실도 없는 상태에서 앞장서서 파기하는 것은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파기의 전략과 전술의 문제가 남아있을 뿐이지 제네바 합의를 깨야 한다는 일정한 합의는 부시정부 내부에 이미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돌아보면, 제네바 합의가 이뤄졌던 당시, 미국 내부에서는 북한 붕괴론이 전제가 돼 있었다. 지금 이런 저런 합의를 해 줘도 북한이 이 합의가 실천을 완료할 시점에 이르기까지 살아날 여력이 없으니까 이 합의는 미국의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니라고 강경파들을 설득을 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져서 제네바 합의가 이뤄졌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미국의 예상과는 달리 적어도 지금까지는 북한이 생존에 성공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부시진영의 싱크탱크 쪽에서는 제네바 합의라는 것이 무장 국가에게 여력을 준 것이다라는 볼멘 소리가 나왔다. 그러면서 자연사(自然死)가 되지 않는다면, 압박을 해서라도 붕괴의 조건을 추가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적대정책의 강화의 방향으로 논리가 정리된 셈이다. 이러한 미국 내부의 정책논의가 제네바 합의 파기의 보다 근원적인 배경을 이루고 있다. 제네바 합의의 틀에 대한 기본적인 불만을 가져왔던 부시정권으로서는 따라서 어떤 구실을 잡고라도 내년 2003년, 제네바 합의 불이행과 관련한 북한의 문제제기를 선도적으로 제압하면서 대북정책의 새로운 주도권을 내세우려 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북한은 제네바 합의의 준수를 미국에 끈질기게 요구해왔고, 핵심사안인 핵 동결과 관련해서 국제원자력기구에서도 얼마 전 북한이 합의를 충실하게 준수하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확인해 준 바 있다. 중유공급을 제때에 해주지 않거나 착공시기를 지연시켜온 것 등 제네바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것은 도리어 미국이었다는 점은 미국 언론들도 지적했던 내용이었다. 미국이 제네바 합의를 이행하지 못한 것은 의회 내의 강경파들의 반대가 거세었기 때문이었다.

요컨대, 제네바 합의의 외교적 효율성을 보다 중요하게 생각한 측은 북한이었고 제네바 합의의 정책적 가치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겠다고 결론 내린 쪽은 미국 부시정권이었다. 제네바 합의를 이제는 거추장스러운 옷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미국으로서는 그 옷을 벗기 위한 계기와 시점을 고려해왔던 것이다.

한편 북한의 핵 개발 시인은 북한과 미국간에 일괄타결 카드가 아닌가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데, 그보다 더 큰 카드는 이미 공개적으로 나온 바 있다. 즉,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적대정책을 철회하고 체제를 위협하는 정책을 중단하기만 한다면 최소한의 자위조치를 빼놓고는 모두 양보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이 클린턴 정부 당시 제안되었고, 이것이 북한의 조명록 특사와 클린턴 대통령간의 만남, 우호관계 프로그램 가동 약속 등으로 발전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파격성을 부시정권은 인정해 주지 않은 것이다.

켈리특사가 갔을 때 매우 오만하고 고압적이었다는 반응이 북한에서 나온 것은 미국의 대화의 내용 자체가 북한에게 상당히 도발적이었다는 추측을 하게 한다. 미국으로서는 특사파견을 통해, 제네바 합의의 파기를 실현시키기 위한 북한의 강경 대응을 유도하는 데 주된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다.

사실 북한과 미국간의 이번 대화가 성사된 과정이나 흐름에는 세계 도처에서 대화를 요구하는 외교적 압박이 있었다. 미국은 북한과 우호관계 진척을 위한 대화의 의지가 뚜렷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화를 통한 외교적 관계 해결을 밀고 나가기보다는 더 이상의 대화가 진행되기 힘든 내용이 추가되고 강화되는 경향이 있었다.

북한은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 압박의 상대라는 점을 입증하려는 전략이 추구되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이번 켈리 특사의 북 핵개발 시인 발언은 절정을 이루는 결정타의 의미를 지녔다고 보겠다.

***"켈리 특사 방북은 동북아 해빙무드에 제동 걸기 위한 것"**

켈리 특사가 파견될 당시의 동북아 정세에 어떤 흐름이 있었는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중동에서는 대이라크 전쟁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전략이 한쪽에서 진행됐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동북아에서는 끊어졌던 생활권들을 복구하기 위한 작업이 상당히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 과정의 중심에는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있었다. 러시아와 일본의 협력을 이끌어 내면서 미국이 주도할 수 있는 공간이 공백상태가 된 조건 아래, 그 속도나 범위가 미국으로서는 적지 않게 위협적이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런 식으로 간다면 자신이 이러한 정세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사라지거나 기득권조차 찾을 길이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따라서 특사 파견의 내면적인 목적은 이런 상황 전체에 제동을 걸만한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었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제네바 합의 파기의 책임을 북한에게 넘기기 위한 고리를 찾는 전략과 함께 부시정권의 대북 압박정책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전략을 추진함으로써 이러한 동북아 정세의 흐름에 제동을 거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겠다.

사실, 이라크 문제와 관련해 사찰 문제가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조만간 미국은 북한과 제네바 합의를 파기한 다음, 보다 강력한 사찰로 들어가려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화된 사찰을 고리로 해서 북한의 일방적인 무장해제를 겨냥하는 군사적인 압박을 강화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사찰이라는 족쇄로 북한을 압박하고, 북일관계도 일정한 제동을 걸고, 중국과 러시아도 압박하면서 동북아 정세를 자신의 군사적 관리하에 두려는 미국의 목적이 숨겨져 있다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이번 북 핵 시인 발언이란 북측이 내놓은 일괄타결 카드가 아니라, 그와는 거꾸로 미국이 자신의 동북아 정세 주도권 강화를 위해 내놓은 카드가 된다. 북핵 시인 발언을 빠른 속도로 기정사실화 함으로써 동북아 전체의 패권적 주도권을 다시 한번 다잡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다고 보여진다.

<사진 3> 서동만 교수

***"북한, 켈리와의 회담에서 '과감한 제의' 했을 가능성 있어"**

서동만: 두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우선 북한 반응이 어떻게 나오느냐인데 첫째는 북한이 핵개발 계획 사실을 부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인과 새로운 의혹이 등장하면서 대치 상황이 이어지고 지리한 협상이 다시 시작될 수 있다. 금창리 의혹과 유사하지만 금창리 경우는 제네바 합의의 틀 안에서의 문제였다면 이번은 제네바 합의를 깼다는 식의 의혹 제기다. 북한이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북한이 정말 시인할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북한이 남북관계, 북일관계에 대처하는 전후 맥락을 볼 때 북미관계를 대립으로 가져가려는 의도로는 보이지는 않는다. 그 얘기는 북한이 북미회담 내에서 상당히 대담한 제안을 했던 것이 아니냐는 추론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미국이 검토하는 데 시간이 걸렸던 것은 (북한이) 시인했다는 자체에 대한 의미를 해석함과 동시에 거꾸로 해결방식의 대담함에 대한 고민도 있었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다.

미 국무부 성명을 보면 이것을 사실상 제네바 합의의 파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며 미국이 꼬리를 빼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을 볼 때 북한이 상당히 대담한 제안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 않다면, 이라크 외에 또다른 양면전선을 북한에 만들기 어렵다는 사정이 미국에 있다고 하더라도,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선언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합의를 깼다는 것 못지않게 대화로 해결한다는 점을 미국은 굉장히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결국 시인과 대담한 해결방식 제안이라는 북한의 상반성이 있듯이 미국의 반응도 똑같이 양면성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국무부 성명 자체는 그 부분에서 부족한 성명이다. 북한이 시인했다는 자체만 얘기하고 있는 것이지, 북한이 제안했을지 모르는 해결방식이 무엇인가는 밝히지 않고 있다. 북한은 시인의 내용과 함께 그것이 무엇인지도 빨리 밝히는 것이 사태해결을 위해 시급하게 중요하다.

한편 제네바 기본합의를 깼느냐 아니냐의 문제도 중요하다. 그것은 한국정부의 이태식 차관보의 성명과 미 국무부의 성명과의 차이다. 한국 성명에서는 깼다는 얘기도 없고 그것을 기정사실화 하지도 않았다. 문맥만으로만 본다면 제네바 합의를 유지해 나가야 한다는 당위적인 얘기만 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시인한 내용이 제네바 합의를 깼다고 시인했느냐가 확인되지 않았다. 만약 북한이 우리는 시인한 적 없다고 했을 때 해석의 문제가 생긴다. 이것도 중요한 포인트이기 때문에 확인돼야 할 부분이고 북한이 빨리 이에 대한 공식대응을 해야 한다고 본다. 밝혀지지 않은 사실이 기정사실화되는 경향을 막기 위해서라도 북한의 공식적인 대응이 중요하다.

김민웅: 이제 북한이 명확한 빠른 시일 내에 밝혀줘야 하는데, 부인했을 경우도 문제이고 시인했을 경우도 문제이기는 마찬가지다. 부인하면 한 대로 미국은 북한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 압박을 강화할 것이고, 시인을 수용하면 거 봐라 하면서 역시 자신들의 대북 압박정책을 그대로 밀고 나가려 할 것이다.

이와는 별도로 미국이 일단 외교적으로, 대화로 풀겠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중동과 이중전선을 감당하기 힘든 상태이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또 하나는 이번에 분명히 확인된 것은 미국이 북한을 불량국가나 악의 축이라는 옷을 벗겨 줄 의사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이번 북핵 문제의 핵심에 도사리고 있는 미국의 의지이다. 매우 중요하게 주목해야 할 바이다.

만약, 미국이 특사 파견이후 그 보고를 "여러 가지 우려되는 현안이 있었지만, 북한이 문제를 풀기 위해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라고 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이 증거를 제시하고 이에 대해 북한이 시인을 했지만 북한의 해결 자세가 상당한 대화의 여지가 있고 전향적이었다, 라고 미국이 발표했다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그러나 그런 얘기는 전혀 없었다.

결국 켈리 특사의 발표내용 중에 중요한 것은 제네바 합의의 선도적 파기의 책임은 북한에 있다는 점을 전제로 문제에 접근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향후 상당기간은 중동문제에 대한 부담 속에서, 미국이 북미관계에 시간을 버는 전략을 택한다면 북미관계의 전개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2003년도 핵위기가 발생할 것이라는 관측은 그 동안 충분히 예상하고 제기된 문제가 아닌가. 따라서 이라크전이 진전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동북아 움직임에 대한 속도조절이 분명히 있을 것이고 이를 위해 북한에 대한 강력한 압박조치가 후속적으로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프레시안 : 크리스찬 사이언스 모니터가 서울에 있는 고위 외교관의 말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북한은 못 믿을 나라'이기 때문에 강경대응해야 한다는 논리가 한편에 있는가 하면 똑같은 논리를 뒤집어서 '그러니까 대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고 했다.

최근까지 동북아의 큰 흐름을 보면 동북아 전체가 해빙무드로 갔는데 미국 특사가 가면서 상황이 뒤집어졌다. 좋게나가다가 역전되는 분수령이 됐다. 따라서 동북아지역 국가들의 움직임과 미국의 의도 중 어떤 것이 더 크게 작용할 것이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상황에서 남북관계, 북미관계, 북일관계 등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간략하게 전망해 달라.

***"북한 자신이 공개적으로 설명하고 국제사회 설득하는 것이 중요"**

김민웅 : 이번 사건의 본질적인 구조를 보면 역시 동북아 전체 질서 재편의 핵심은 북한과 미국의 대립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그런 대립과 적대관계가 정상화로 전환되기가 얼마나 힘든가가 밝혀진 셈인데, 이번 북한의 시인과 관련해 유엔의 북한 대표부 관계자의 말이 보도됐다. 거기에는 중요한 단어가 하나 있다. '원칙적 입장'이라는 말이다. 원칙적 입장이라는 것이 북한의 대외관계에서 갖는 의미는 명확하다.

그것은 (미국과의)적대관계 청산, 체제 보장이고 이를 토대로 향후 모든 정상적 관계를 수립해 나간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를 인정하지 않고 적대정책으로 체제의 생존을 위협할 경우 체제수호를 위한 모든 방법을 동원할 것이라는 메시지가 그 안에 담겨 있다.

이와 관련해 클린턴 정부와 조명록 특사와의 관계에서 주목해야 할 내용 중의 하나가 있다. 그 이전까지 북미관계의 패턴은 제기되는 사안 하나 하나마다 검토, 확인 끝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 북한과 미국 양측은 이런 방식을 벗어나, 서로 관계를 개선하자는 의지를 전제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쪽으로 전환했다.

다시 말하자면 사안마다 검토해서 신뢰가 구축되면 그 다음 손잡고 악수하자는 것이 아니라 따지고 검토해야 할 사안은 꽤 있지만 일단 관계를 정상화하고 국교수립으로 간다는 것을 우선적인 전제로 삼자는 것이었다. 그러면 서로 총들고 상대와 대결할 이유가 사라지니까 자연히 군사문제 해결은 상당한 진척을 보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이 북한이 일관되게 추진하는 적대정책 철회을 기반으로 한 정상화 논리라고 할 수 있다.

클린턴 정부 말기에는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등을 통해 이 같은 북한의 입장이 확인됐다. 사안별 협상도 중요하지만 북한의 입장에서는 의지의 문제를 중요하게 취급한다. 일단 의지가 강렬하면, 문제해결은 쉽다고 보는 것이다.

그와 같은 각도에서 보았을 때, 이번 특사파견에서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 철회의 의지가 있었겠는가 하는 부분은 부정적으로 다가온다. 따라서 북한과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현재 상태에서는 상당히 난감하게 느껴진다. 미국이 북한에 접근하는 방식은 기본적으로 무장해제론이다.핵문제에서 재래식 시스템까지 포함하는 무장해제론이다.

독자적인 주권국가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까지 밀고 나가겠다는 얘기다. 미국이 바라는 북한의 변화는 무장 해제를 전제로 한 이른바 개혁과 개방을 통해 미국 자본이 들어갈 통로를 열어주는 것이다. 북한의 모든 군사적 프로그램의 가동 중단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미국의 군사력과 자본의 통제하에 북한이 들어오라는 것이다. 그 결과는 북한에게 경제발전이라는 식의 논리인데, 북한이 굴복하지 않을 수 없는 절박한 상태에 놓이지 않는 한 이는 불가능할 것이고 따라서 미국 부시정권은 북한을 그런 지점에까지 몰아 부치겠다는 내심을 가지고 있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북미관계) 전망에 대한 얘기를 하자면 향후 당분간은 상당히 쉽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입장을 갖게 된다. 이를 낙관적으로 돌리기 위한 우리 내부의 역량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도 정세를 일단 비관적으로 보는 이유다.

이번 켈리 특사의 발표 이후 대부분의 언론 보도들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의 파산으로 밀고 나가려는 움직임이 명백히 보였다. 냉전질서를 강화하려는 세력의 목소리가 더욱 커진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이번 사건으로 결정적인 도움을 받는 것이 누군가를 생각해 봤을 때, 전후질서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중대한 장애에 직면했다고 보겠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미국이, 북한 문제는 시간적으로 뒤로 남겨두고 옥죄이기 위한 카드를 내놓은 것이고 더 큰 맥락으로 따지면, 미국은 "악의 축" 국가로 규정한 이라크와 함께 북한에 대한 네가티브 캠페인을 통해 대북 적대정책의 기조를 한층 더 강화한 셈이다.

부시정권 이후 제네바 합의의 존속 여부와 관련해서 부시정권 내부의 논란 가운데 중요한 것은 제네바 합의가 달래기의 소산이라는 논란이었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북한 퍼주기라는 것이다. 김정일 정권에게 뇌물까지 줘가면서 이룩한 달래기 수준의 방식이었다는 비판이었는데, 따라서 북한이 어떤 협상용 카드를 써서 얻어낼 것을 얻어내고 줄 것을 주는 방식의 협상은 현재의 조건에서는 통하기 어렵다. 실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전격적으로 차이가 나는 접근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하겠다.

아무튼, 현재로서는 북한 자신이 이 문제와 관련해서 공개적으로 설명하고 국제사회를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 문제에 관한 중국과 러시아, 일본의 입장이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다. 켈리특사가 방북한 시점은 동북아 생활권이 연결되는 질서가 잡혀가는 시점이었다는 점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생존력을 방어하려는 의지가 얼마나 있겠는가도 관건이 되기 때문이다.

***"일본 역할에 주목**

서동만: 현재 미국은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고 했지만 해결 방안이 없다. 지난 12일간 미국 나름대로 상당히 검토하는 과정에서 해결방안을 찾지 못한 것이 이런 형태로 나온 것으로 보여진다. 정책의 부재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니셔티브를 향후 누가 가지는가의 문제가 남는다.

현재 상황은 93년 핵위기와는 차이가 있다. 그 당시에는 미국과 북한의 양자관계였으나 지금은 남북간의 관계가 열려있다. 어느때보다 우호관계에 있고 북일관계도 새롭게 열렸다. 특히 핵문제와 관련된 국제합의를 일본에게까지 약속을 했다.

북미 핵 합의를 북일관계로 확대하고 있다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일본에게도 북한과의 합의에 따른 의무가 생겼다는 말이다. 일본이 어떤 자세를 보이는가가 중요하다. 납치 사건으로 역풍에 말려서 애를 먹고 있지만 일본이 이 부분에서 일정정도 역할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은 어쨌든 93년보다는 유리한 상황으로 볼 수 있는 조건이다.

북한이 어떤 식의 해결방안을 제시할 지는 모르겠지만 포괄적 타결로 나간다 하더라도 일본이 이니셔티브를 취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본은 91~92년도 수교를 추진했을 때는 핵위기로 파기됐다. 그러나 일본이 이번에는 채널을 유지할 것으로 본다. 한반도 문제에서 채널을 유지하면서 일정한 역할을 해야하겠다는 생각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일본과의 대화는 유지될 것으로 본다.

하지만 북한이 일본에게 이번 사태의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이 과정에서 일본의 역할을 인정한다면 일본은 보다더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한국 입장에서도 차기정권에서는 어찌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김대중 정권에서는 대북 기조를 이어 갈 것으로 본다. 현 상황이 위기인 것만은 틀림없지만 한국이 이니셔티브를 쥐는 기회이기도 하다. 93년도 핵위기 상황에서 카터가 방북해 남북 정상회담을 이끌어내지 않았나. 그런 측면에서 남북간의 이니셔티브를 가지고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문제는 김대중 정부가 국내의 선거정국과 맞물린 상황에서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에 달렸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과의 양자관계가 편하다고 판단할 수 있으나 사찰 문제에 있어서는 미-일-중-러의 국제적 사찰도 가능한 상황이라고 본다.

프레시안: 마무리에 앞서 중국의 태도에 관해 얘기가 있어야 할 것 같다.

김민웅 : 중국은 기본적으로 한반도 정세의 안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미국이 문제삼고 있는 북한의 군사적 프로그램 가동에 압박을 가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중국이 북한을 자신의 주도권 아래에 두기 위해 어떤 방식을 택할 것이냐의 문제가 걸려있다. 그것은 양날의 칼이다.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북한에 압박을 가한 것이 잘못하면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중국으로서는 상당히 신중하게 대응을 할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미국의 압박정책에 대한 완강하지는 않더라도 다소간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북한에게는 그 나름대로 조심스러운 압박을 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북한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확산을 차단하고, 이와 함께 북한이 국제문제를 풀 때는 어쩔 수 없이 중국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는 고단수의 방법을 사용하려 할 것이다.

서동만: 최근의 한반도 화해기류에는 일본과 러시아의 영향이 컸다. 그 속에서 양빈 구속은 중국이 브레이크를 거는 측면이 있었다. 북미관계 긴장이 이런식으로 고조될 경우에는 북한의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중국이 긴장 격화를 원하지는 않지만 그런 부분을 활용할 여지가 있다는 점은 우리로서는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2차 남북정상회담이 돌파구 될 수도"**

프레시안: 최근 동북아 국제질서에서 과거와 달라진 부분은 고이즈미 총리가 미국과의 협의 없이 방북했다는 점과 중국이 양빈을 구속하면서 나타난 일본과 중국의 변화다. 즉 미국에 대한 일본의 외교 의존과 중국과 북한간의 전통적 우호관계라는 기존 패턴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 대 외세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 같은 양상은 한반도 주변에 외세가 더 많아지고 어려워지는 상황일 수도 있다. 이로 인한 영향이 많을 것으로 안다. 한반도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면 어떤 식이어야 하는지, 국내정치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 것인지 등에 대해 말해달라.

김민웅: 대응에서 앞서 지적해야 할 것은 동북아 정세의 변화에 대한 전체적 인식의 틀이 우리 사회에 부족하고, 특히 언론도 역량상 문제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정치세력도 이 같은 문제에 접근하면서 전체적인 그림을 보여주면서 국민적인 합의를 끌어내는 역량이 빈곤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응에 있어 곤혹스러운 것은 그런 점이다. 외세의 움직임을 꿰뚫어보면서 대응할 수 있는 내부 역량이 있는가에서 다소간 회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국에 처한 한반도 상황을 풀 수 있는 열쇠가 하나 있다면 무엇보다 6.15 선언 이후 이행되고 있지 않는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이다. 현 정권의 임기까지에는 현재 시간이 없긴 하지만, 두 정상의 만남을 통해 동북아 전체의 생활권 복구를 지향하는 내용을 담은 평화선언과 그를 위한 가시적인 군축의 이행이 전개될 필요가 있다.

또한 핵 프로그램과 관련해서는 이라크가 이번에 했던 것처럼 미국의 제기에 의해 압박 받는 형식이 아니라, 북한이 보상논리를 동원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사찰을 수용해서 핵 프로그램에 대한 의혹을 씻는 내용을 담은 평화선언이 어떻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물론 이 사찰에는 북한의 주권에 속하는 군사력은 제외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평화선언을 보증하기 위해 중국이나 일본, 러시아, 미국 등 동북아 집단안정보장체제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동북아 전체의 새로운 안보질서, 새로운 공동체적 연대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이를 우리가 선도적으로, 주도적으로 풀어내는 노력을 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의지의 천명과 구상의 공개, 추진은 역풍을 해결할 수 있는 장치로서의 의미가 있다. 현재 여러 가지 정치적 곤경으로 인해 김대중 정부가 그러한 정책을 추 진할 수 있는 동력을 상당히 상실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노력을 해본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언론이 보다 적극적으로, 평화 지향적인 입장에서 문제를 풀 수 있는 방안과 이번 북핵 시인문제 같은 민감한 현안에 대해 사실을 좀더 구체적이고 근거 있게 검토하려는 노력을 해나가는 것이 대단히 필요하다. 향후 대선과 관련해서는 각 대선 후보들이 이러한 동북아 정세의 평화적 발전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적극적으로 제시할 수 있도록 압박해야 한다.

평화선언과 관련해 추가하고 싶은 것은, 남과 북의 체제가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보다 큰 맥락의 보호막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동북아 전체의 집단안전보장체제와 더불어 최근 진행되고 있는 동북아시아 생활권의 새로운 재편 구상과 상호협력, 내지는 공동발전 구상 등이 보다 확고하고 구체적으로 전개될 절실한 상황에 우리는 놓여있다.

강대국의 전쟁논리가 통용되는 패권체제의 종식을 전제로 한 평화의 문제는 오늘날 우리에게 절박하기 짝이 없는 민족 생존의 문제이자, 동북아시아 전체 그리고 인류의 생명력 있는 발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그로써, 우리는 새로운 방식의 삶의 틀을 인류사회에 제출하는 책임과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서동만: 남북이 이니셔티브를 쥘 수 있는 기회로 전환하기 위해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이번 기회에 실현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생각이다. 한반도 평화선언과 함께 이번 핵문제를 풀 수 있는 구체적인 해법을 남북이 함께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남북 정상회담이야말로 사태를 타개할 수 있는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제1차 남북 정상회담이 새로운 북미 핵 위기로 끝나서는 남북의 민족적 자부심에 큰 손상이 된다. 제2차 정상회담으로 해결의 발판을 마련해야 제1차 회담의 의미도 살리리 수 있다.

그리고 가능하면 미-일-중-러의 협력을 얻어낼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담은 평화선언을 해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국내적으로는 김대중 정부가 약체화돼 있는 게 사실이지만 거꾸로 보면 지금까지 추진해 온 대북정책을 마무리지어야 하는 측면도 있다. 대북정책 자체가 자칫하면 실패로 갈 수도 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남북관계를 정상궤도에 올려서 다음 정권에 물려줘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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