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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풀이 선거'가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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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풀이 선거'가 남긴 것

유시민의 시사카페 <19>

민주당의 참패는 몇 가지 점에서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6.13지방선거는 이것을 확인하는 절차에 불과했다.

첫째는 정당 지지도 격차다. 4월 대통령후보 국민경선 당시 한나라당을 겨우 따라잡았던 민주당 지지도는 ‘3홍비리’가 터지면서 다시 주저앉았다. 6.13 지방선거 직전 실시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은 30% 안팎의 지지를 받은 데 비해 민주당 지지도는 20%를 겨우 넘었다. 지지도가 10%나 뒤지면서 선거에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둘째는 후보들의 경쟁력 격차다. 민주당은 대구와 경북 등 여러 지역에서 아예 후보를 내지 못했고, 경기도와 부산 등에서는 전혀 준비되지 않은 후보를 급조해서 내보냈다. 후보감이 가장 많은 본거지 호남은 불공정 경선 시비로 난장판이 되었다. 이러고도 이긴다면 그게 이상할 것이다.

셋째는 중앙당의 정치 지도력 부족이다. 한화갑 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회와 당지도부는 국민경선이 끝난 후 두 달 동안 ‘먹고 놀았다.’ ‘김대중 없는 민주당’을 앞으로 어떻게 개혁해 나갈지 진지하게 토론하는 모습조차 보여주지 않았다. 원외 최고위원들은 8.8재보선에서 유리한 동네를 골라 출마할 준비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라 해도 이런 정당에 표를 주러 투표장으로 발걸음을 옮길 마음이 즐거울 리가 없다.

이번 선거가 민주당의 참패이기는 하지만 한나라당의 압승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한나라당은 48.8%의 유권자가 참여한 선거에서 약 50%의 정당지지표를 모았다. 전체 유권자의 25%가 투표장에 나와 한나라당에 한 표를 준 것이다. 여론조사의 정당 지지도에도 못 미친다. 민주당은 겨우 28.6%를 얻었다. 겨우 14%의 유권자가 투표장까지 나가 민주당을 찍는 수고를 기꺼이 감수한 것이다. 김대중이 이끌던 시절 민주당 지지자들이 다른 정당 지지자에 비해 훨씬 더 적극적이고 결속력이 강했던 점을 고려하면 정말로 형편없는 결과인 것이다.

6.13지방선거는 고상하게 말하면 ‘김대중 정권에 대한 심판’이요, 거칠게 말하면 대통령 아들 비리에 대한 대중적 분풀이였다. 한나라당은 ‘부패정권 심판’이라는 구호 하나만으로 처음부터 이기고 들어갔다. 노무현 후보의 ‘부패인물 청산론’이 먹혀들 여지는 없었다.

이회창 후보가 정말로 3김과 함께 청산해야 할 부패인물이라고 생각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그거야 12월 대선에 가서 하면 될 일인데, 그 때문에 부패정권을 심판할 절호의 기회를 외면할 수야 없는 일 아니겠는가. 아무리 한나라당이 싫다고 해도,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정나미 떨어진 민주당에 표를 주러 나설 마음이 생기겠는가.

모든 선거가 그러하듯이 이번 선거도 거스를 수 없는 민심의 흐름을 분출시켰다. 국민들은 민주당과 자민련에 요구했다. 스스로 존재의 의미를 찾아 보라. 그럴 수 없으면 사라져라. 한나라당에 말했다.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앞으로 지켜보겠다. 민주노동당에게 말을 걸었다. 좀 미심쩍지만 기회를 주겠다. 적지만 국고보조금도 받아서 잘 좀 해 봐라.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이야 분위기가 좋은 만큼 알아서 할 것으로 보고 더 말하지 않겠다. 대전을 빼앗기고 ‘정당득표율 4등’에 그친 자민련은 달리 갈 길이 없어 보인다. 현역의원들이야 기득권을 보장받는 데 어려움이 없을 터, 한나라당하고 합치는 게 자연스럽다. 총재가 충청도 출신이라는 거 하나 말고는 정책과 노선 차이도 별로 없지 않은가.

문제가 심각한 건 민주당이다. 민주당은 DJ가 떠나기 전 민주당 그대로다. 최고위원들의 면면도 그렇고, 국회의원과 지구당 위원장, 핵심당원들의 지역적 연고도 그렇다. 당의 노선과 정책도 DJ가 JP와 손잡고 일하면서 터를 잡아둔 상태 그대로다. 권노갑씨가 감옥에 가고 옛 주류들이 뒤로 물러서기는 했지만 무언가 당을 바꾸어 보려는 사람들은 여전히 소수파에 불과하다. 변한 것이라고는 대통령후보의 캐릭터 하나뿐인 것이다.

민주당이 달라지려면 노선투쟁과 당권투쟁을 겪어야 한다. 아무 소란과 진통도 없이 ‘DJ당’을 벗어나는 길은 없다. 아무리 시끄러워도 ‘김대중’이라는 인격의 그림자를 지워내야 한다. 지도자가 바뀌고 상황이 달라져도 끊임없는 자기개혁으로 적응력을 확보할 수 있는 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민주당 내부의 낡은 ‘기득권’을 무너뜨려야 한다.

이걸 하지 못한다면? 못해도 괜찮다. 앞으로 5년 동안 소수파 야당으로 찬밥을 먹을 각오만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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