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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쿠데타: 베네수엘라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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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쿠데타: 베네수엘라의 경우

한국은 과연?

'2일 천하'로 끝나버린 베네수엘라의 반(反) 차베스 쿠데타에 베네수엘라의 주요 언론들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큰 파문을 던지고 있다. 남미의 인터넷매체를 비롯, 미국과 유럽의 진보적 언론매체들은 쿠데타 당일에는 매 10분마다 반차베스 시위에의 참여를 독려했던 베네수엘라 언론들이 차베스 복귀 운동이 본격화된 14일 이후에는 아예 뉴스를 보도하지 않아 국민들을 눈 뜬 장님으로 만들었다며 이같은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특히 베네수엘라의 한 언론학자는 대부분의 베네수라 언론들이 사실왜곡과 자체적인 보도통제 등을 통해 사태의 실상을 국민들에 제대로 알리지 않음으로써 차베스 제거 음모에 적극 기여했다고 비판하면서 이번 사태를 미디어에 의한 쿠데타, 즉 미디어 쿠데타라고 지적했다.

***베네수엘라 사태의 본질은 미디어 쿠데타**

남미의 인터넷신문 걸리닷컴(the Gully.com)은 지난 19일 '베네수엘라 언론: 자유인가 방종인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베네수엘라의 언론권력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우고 차베스 대통령을 축출하려는 실패한 쿠데타를 지원했으며 우익 독재정권을 세우려 했다는 증거는 지난 며칠 동안 해외에서 조금씩 발견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이같은 사실은 미 세인트피터스버그타임스의 데이비드 아담스와 필 건슨 기자의 정직한 리포트를 통해 보도됐다고 밝혔다.

실제로 쿠데타 공모자들은 지난해 베네수엘라의 양대 신문중 하나인 엘 나시오날(El Nacioanl)의 발행인 미구엘 엔리크 오테로의 집이나 다른 매체 오너들의 집에서 수차례 모임을 가졌다. 이 모임에는 베네수엘라 전국 주요뉴스 채널인 CNN 계열사 글로보비전(Globovision)의 사장 알베르토 라벨, 다른 메이저 방송사인 RCTV의 마르셀 그라니어, 베네수엘라 최대 부호이자 부시 대통령의 낚시 친구인 구스타보 시스네로스 등이 참석했다.

***친미적 재벌, 언론 등이 공모**

구스타보 시스네로스 그룹은 전국 주요방송사중 하나인 베네비전(Venevision)을 소유하고 있으며 지방 프랜차이즈 방송사인 카라콜(Caracol) 텔레비전과 미국-스페인어 네트워크방송사인 유니비전(Univision)의 대주주다.

부시 행정부와 끈이 닿고 있는 지방 유지들과 제휴관계에 있는 베네수엘라의 언론권력은 거의 모두가 차베스의 인기정책, 선동적인 권위주의 스타일, 피델 카스트로와의 친분, 비판에 대한 편협함 등을 혐오한다. 반대로 차베스는 이들의 복귀를 싫어한다.

언론재벌 구스타보 시스네로스와 베네수엘라의 메이저신문 엘 우니베르살의 사주인 앤드류스 마타는 차베스 복귀를 요구하는 시위대가 카라카스의 시내거리로 나섰던 지난 14일 쿠데타 정부가 임시대통령으로 선포했던 상공회의소장 페드로 카르모나를 만났다. 카르모나는 하루 전 그를 대통령으로 세웠던 군부의 엄호를 받으며 언론재벌인 시스네로스 등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들은 카르모나의 부탁을 들어줬다. 이후 방송뉴스는 완전 중단됐다. 대신 TV들은 만화와 미국 영화 '프리티 우먼' 등을 방영했다. 또 일요판을 발행하던 엘 우니베르살과 엘 나시오날 두 신문 모두 일요일인 15일 이례적으로 신문을 발행하지 않았다. CNN 계열사인 글로보비전의 사주 라벨 또한 즉각 아틀란타의 본사에 도움을 요청했고 CNN은 뉴스 보도통제에 합류했다. 고의적으로 차베스 복귀 시위를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쿠데타 직후 발생한 친 차베스 시위는 보도 외면**

대부분 반차베스 세력으로 케이블과 위성방송을 볼 수 있었던 상위 20%에 속하는 중산층 이상의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집안에서도 쿠데타가 실패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가난한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기 위해 거리로 나가야 했다. 이들중 일부는 TV방송국과 신문사를 공격하기도 했는데 만일 이들이 보다 빨리 쿠데타가 실패로 끝난 사실을 알았다면 15일 일찍 이뤄진 차베스 대통령의 권좌복귀를 앞당겼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첫 번째 미디어 쿠데타는 시작한 지 48시간 만에 대중의 분노로 무산됐다. 또 섣불리 '민의에 의한 정권교체'라며 쿠데타를 환영했던 미국은 처음으로 중남미 정부들의 비판에 의해 목소리를 낮출 것과 더 이상 차베스를 괴롭히지 말 것을 강요당했다.

걸리닷컴이 인용한 세인트피터스버그타임스 18일자는 '실패한 쿠데타로 기소된 언론'이라는 기사에서 베네수엘라에서 쿠데타가 발생했던 지난 13일 매체 실력자들이 대통령궁에 모였던 사실을 보도하며 이들이 다음날 실패로 끝난 쿠데타 세력의 마지막 희망이었다고 밝혔다.

***미 세인트피터스버그타임스, "실패한 쿠데타로 기소된 언론"**

베네수엘라 센트랄대학 언론학 교수인 안토니오 알메이다는 "이번 사태는 완전한 보도통제가 이뤄졌던 미디어쿠데타"라고 규정하며 "언론은 수용자에게 정보를 전달하지 않았으며 사실을 은폐했다"고 말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권좌복귀 직후 미디어쿠데타의 본질을 꿰뚫어보았다. 그는 "언론매체는 엄청난 권력을 갖고 있다. 그들은 거짓말 공장처럼 굴어서는 안된다"며 쿠데타 기간중 언론의 행태에 대해 "심리적 테러리즘"이라고 비판했다.

이름을 거명하지 않은 채 무지한 상태로 쿠데타에 참여한 언론들도 있음을 지적한 차베스 대통령은 "그러나 그들 중에는 순진하지도 않고 또 직접 가담한 자들도 있다"며 정보를 조작하고 쿠데타 세력의 힘을 왜곡 보도한 언론들을 고소했다.

***언론 사주들, 쿠데타 개입 혐의 부인**

물론 언론사주들은 그들이 쿠데타에 공모했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최대 TV방송중 하나인 베네비전의 오너 구스타보 시스네로스는 자신이 소유한 방송사와 한 인터뷰에서 쿠데타 공모혐의에 대해 "그건 상상"이라며 "우리는 공모하지 않았고 공모를 원하지 않았으며 어떻게 공모하는지도 모른다"고 부인했다.

베네비전 사장인 빅토르 페리스는 쿠데타 이후 뉴스가 중단됐던 이유에 대해 "거리에 나온 난폭한 군중들이 기자들을 위협했다. 우리는 그들의 안전을 생각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시위대가 방송국 본부로 가는 통로를 가로막아 이미지를 송출할 수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차베스 복귀 과정에서 나타난 방송사들의 전면적 보도통제는 쿠데타가 발생했던 전날 한명의 사진기자를 포함해 적어도 15명의 사람들이 죽고 수백명이 부상당하는 장면을 그대로 보여주며 시위를 촉발시켰던 방송과는 분명히 대비된다.

알메이다 교수는 "쿠데타가 발생한 날 방송들은 기자들의 생명을 돌보지 않았으며 그들을 영웅이 되도록 내버려뒀다"며 "상황이 바뀌자 방송들은 갑자기 기자들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고 결정했다"고 앞뒤가 다른 보도태도에 대해 일침했다.

미디어쿠데타와 관련해 베네수엘라 기자들은 언론사 간부들이 그들의 보도를 중단시켰다고 말하고 있다. 한 기자는 "무엇이 발생했는지에 대한 내밀한 탐사보도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베네수엘라의 프로페셔널 저널리즘은 막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영 가디언, "신문에 난 보도를 믿지 말라"**

한편 영국 신문 가디언(Guardian)은 지난 18일 "베네수엘라에 대해 신문에 난 보도를 믿지 말라'는 기사에서 언론들이 베네수엘라 사태에 대해 있지도 않은 의사환경(가상현실)을 그것도 아주 왜곡해 보도했다고 비판했다.

'최고의 민주주의는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책의 저자인 그렉 팰리스트(Palast)씨는 이 기사에서 "자주성을 잃은 서구 언론의 보도와는 반대로 차베스는 인기있는 정치인이었으며, 대통령직에서 사임한 적도 없다"고 썼다.

팰리스트는 미국의 뉴욕타임스부터 영국의 인디펜던트, 가디언에 이르기까지 차베스에 대한 쿠데타를 보도하며 똑같이 '독재적인' '인기없는' '사임' 등의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같은 단어들은 자신이 목격한 바와는 전혀 다른 것들이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러 가공된 단어인 '사임'의 경우 그는 차베스가 사임했다는 관련증언이나 믿을 만한 목격자의 말을 들어본 적도 없다는 것이다.

팰리스트씨는 또 '사임'은 차베스의 스타일이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쿠데타가 발생한 다음날인 13일 사임과 관련해 주영 베네수엘라 대사관에 답변을 요구하자 차베스와 전화통화한 한 각료가 차베스는 유혈사태를 피하기 위해 도피했던 것이며 "나는 여전히 대통령"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팰리스트씨는 베네수엘라 사태를 30년전 미국 CIA의 지원을 받은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가 쿠데타로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을 축출시켰던 사건과 비교하며 시대가 변했는데 미국과 유럽의 언론 보도는 당시와 비슷한 '사임' 등의 현학적 표현을 사용하며 사태를 왜곡하고 선동했다고 지적했다.

오늘날의 세계는 미디어가 지배한다. 언론권력은 지금까지 신문·방송 등의 매체를 이용해 정보를 조작하거나 여론을 왜곡시켜 정치권력이나 자본권력과의 유대를 강화해왔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미디어는 이제 쿠데타까지도 동원해 정치권력의 생사를 좌지우지하려는 21세기 최대의 권력집단이 됐다.

이와 관련해 걸리닷컴은 미국에서 이번 베네수엘라 쿠데타와 동일한 사태가 발생했을 경우를 픽션으로 구성, 민주주의와 언론자유를 그토록 신성시한다는 미국이 이번 베네수엘라 사태에 대해 보여준 이중적 태도를 비판했다. 다음은 걸리닷컴 기사의 주요 내용이다.

***"미국에서 미디어쿠데타가 발생한다면"**

한번 상상해보자.

미국의 유력 언론사인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워싱턴포스트 NBC ABC CBS CNN 사주들이 뉴욕타임스의 발행인 아서 옥스 설츠버거(Sulzburger) 2세의 자택에 모였다. 이 자리에는 미 합참의장(the Joints Chiefs of Staff)과 뜻을 같이하는 최고위급 장교들이 함께 참석했는데 이들은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된 허풍스러운 인기주의 정치인 존 도(Doe) 대통령을 축출하려는 음모를 꾸미기 위해 모인 것이다.

쿠데타 계획은 섬뜩할 정도로 매우 간단하다. 먼저 대규모 시위군중을 조직해 미국의 부가 집중된 재벌기업들의 본산지인 연방정부의 수도 워싱턴 DC로 행진한다. 이 시위행진은 까다로운 규제정책을 펴는 무분별한 존 도 대통령에게 반대하는 재벌기업들의 용기있는 투쟁에 대한 지지를 표현하려는 것이다.

이때 갑자기 시위대는 방향을 전환해 백악관을 향한다. 쿠데타 음모에 참여한 군 내부의 공모자들이 시위대에게'백악관 경비가 허술한 상태'라고 말해준다. 백악관에 도착한 이들은 도 대통령의 사임을 촉구하거나 혹은 다른 무엇인가를 요구한다.

시위대는 전 인구의 소득 상위 20% 내에 속하는 가장 부유한 계층에서 모집하는데 이 가운데는 고액연봉자들만으로 구성된 미국의 산별노조 AFL-CIO 대표인 지미 호파(Hoffa)의 지지자들도 참여하게 된다.

하지만 호파는 도 대통령이 축출되는 결정적인 순간에 소외된다. 호파는 도 대통령을 축출시키려는 쿠데타는 알고 있었지만 설츠버거의 응접실에서 계획된 쿠데타 속의 또 다른 음모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음모란 의회 해산, 헌정 중단, 모든 대법원 판사 해임, 전 정부관리 축출을 의미한다. 이들은 존 도두 대통령 행정부뿐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뜻에 맞지 않는 연방과 주 정부 조직의 모든 것들을 해체하려는 것이다.

시위행진이 계획된 전날 쿠데타 공모자들의 통제하에 있는 네트워크 TV와 수백개의 라디오방송국들은 시위를 알리는 광고를 매 10분마다 내보낸다. 언론들은 시위행진에 대해 생중계를 곁들이며 아주 자세하게 보도한다. 이렇게 '시민사회에 의한 민주적인 시위'를 통해 쿠데타는 이뤄진다.

이 쿠데타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성난 20%의 부유층 시위대가 도 대통령의 내각 각료들을 체포하며 린치를 가하는 장면을 생중계로 보여주는 것이다. 전 국민은 또 포천(Fortune)지 선정 400대 기업협회의 회장이기도 한 설츠버거 타임스 발행인 앞잡이들의 행동을 보고 듣는다. 이들은 설츠버거를 임시 대통령으로 선포하고 서명 하나로 미국의 헌법구조를 파괴한다. 방송은 설츠버거가 백만장자들과 4성 장군들의 우뢰와 같은 환호를 받는 장면을 보여준다.

물론 이 모든 일들은 나머지 가난하고 압도적으로 두 대통령을 지지했던 80%의 미국인들에게는 나쁜 생각이다. 이들 또한 거리를 점령한다. 쿠데타 세력이 동요하기 시작할 때 전국 네트워크 TV들은 자발적으로 반쿠데타 시위를 보도하는 뉴스에 대해 완전 보도통제를 실시한다.

도 대통령의 권좌복귀를 요구하는 가난한 미국인 시위대가 백악관으로 몰려가 마침내 수감됐던 두 대통령 복귀를 성취했을 때 네트워크 TV들은 영화 '프리티우먼'과 만화영화를 계속 재방송한다. 아니면 도 대통령의 축출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주거나 국민들에게 집에서 머물라고 충고한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사건들은 최근 베네수엘라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이다. 미국의 네트워크 방송사들조차 베네수엘라 사태에 대해서는 정보유통의 수도꼭지를 잠갔다.

***'밤의 대통령'으로 군림하는 한국 언론권력의 선택은**

베네수엘라 사태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쿠데타를 촉발시킨 미디어쿠데타가 지난해 언론사 세무조사로 권력과 언론이 갈등관계에 놓인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가능성은 없을까.

베네수엘라 역시 차베스 정부와 언론간의 갈등이 첨예화된 상태에서 쿠데타가 발생했다. 더욱이 조선, 동아, 중앙 등 이른바 메이저신문들은 국민들의 변화 욕구를 타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노무현 후보에 대해 색깔론, 자질론 등을 앞세워 적대적 태도를 감추지 않고 있다.

이제 정치권력 이상의 권력을 갖고 있는 한국의 언론권력도 혹시 미디어쿠데타를 꿈꾸지는 않을까. 베네수엘라를 통해 배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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