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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 대한민국 국민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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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 대한민국 국민 맞아?”

새 칼럼 - 유시민의 시사카페 <1>

<연재를 시작하며>

방송을 떠나 시사평론가로 돌아온 후 쓰는 첫 칼럼입니다. 가슴이 두근두근합니다.
칼럼 게재를 허락해 준 프레시안 가족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동아일보 독자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죄송합니다. 백분토론으로 가기 전에 쓴 마지막 칼럼에서, 활자매체로 돌아오면 제일 먼저 동아일보 독자들께 인사를 여쭙기로 약속했는데, 그 동안 백분토론을 진행하면서 '여러가지 일'이 있었고, 또 동아일보의 금년도 지면 운용방침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부득이,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번거로우시더라도 저의 칼럼을 보고 싶으시면 프레시안을 즐겨찾기에 추가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언제까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유시민의 시사칼럼은 오로지 프레시안에서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필자

미국 대통령 부시의 취미가 전쟁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프간 전쟁의 여진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북한을 ‘악의 축’이라 비난함으로써 한반도에 긴장을 몰고 온 것을 보면 평화에 특별한 애착을 가진 지도자가 아닌 건 분명하다.

일국의 대통령이 다른 주권국가를 험악하게 비난하거나 무력 사용 가능성을 내비칠 때는 남들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 도대체 부시는 왜 9.11 테러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북한을 향해 포문을 연 것일까?

북한의 핵 개발이나 미사일 기술 수출에 관한 미 중앙정보국(CIA)의 보고서가 새로운 증거를 제시한 건 아니다.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테러를 준비한다는 징후도 없다. 휴전선의 재래식 무기는 옛날 옛적부터 거기 있던 것으로,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협할 수는 있지만 태평양 너머 미국 본토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북한은 지금 인민들을 먹여 살릴 능력도 없어서 외국의 식량원조에 의지하는 형편이다.

요 몇 년간 한반도 정세는 예전에 없이 평화롭다. 적어도 부시의 대통령 당선 이전까지는 확실히 그랬다. 재작년에는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렸고 올브라이트 국무장관도 김정일과 만났다. 수십 개의 남한 기업이 북한과 합작하고 있으며 금강산 관광선도 여전히 동해안 군사분계선을 넘나들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웬만한 사건이 터져도 사재기 따위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멀리 워싱턴에 있는 부시가, 도대체 미국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어떤 위협을 느끼기에, 이 시점에서 갑자기 언성을 높이고 나섰을까. ‘열혈 친미주의자의 심정으로’ 생각해 봐도 답이 없다.

좋다. 미국 대통령과 행정부가 언제는 건전한 상식을 가진 한국인의 평가를 고려했던가. 현실을 인정하자. 엔론 스캔들에서 빠져 나오려는 정치적 계산이든, 가을 중간선거를 의식한 애국심 고취 캠페인이 목적이든, 그도 저도 아니면 햇볕정책에 시비를 걸어 F15 전투기를 팔아먹으려는 장삿속 때문이든, 부시로서는 ‘북한 때리기’를 할 만한 이유가 있다고 치자. 문제는 우리의 대응이다.

‘선군정치’를 통해 ‘강성대국’을 추구하는 부시의 정책이 미국의 국익을 위한 것이라면, 협력과 경제적 상호의존성을 심화시켜 북한을 점진적 개방으로 이끄는 햇볕정책은 대한민국과 우리 민족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오는 19일 부시의 서울 방문을 기다리면서 속을 끓이고 있다. 기분대로 하자면야 왜 할말이 없으랴만 세계 최강 동맹국의 호전적 대통령을 자극해서 좋을 일이 없는 터라 입을 다물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론과 야당은 눈치 살피지 않고 미국의 대북정책에 시비를 걸 수 있으며 또 걸어야 한다. 그런데 주요 언론사와 야당은 미 CIA 보고서를 진리처럼 받든다. 부시의 북한 때리기를 주어진 환경으로 고분고분 받아들인다. 자기 집에 불이 날 판인데도 마치 남의 집 불구경하는 사람처럼 뒷짐을 지고서, 119 소방대의 위기극복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느니 어쩌니 한가한 논평을 한다.

“그동안 낙관적인 ‘햇볕’ 일변도로만 생각해 온 정부로서는 ‘악천후’ 상황의 대비책이 부족할지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현 정부의 대북정책과 외교역량이 총체적으로 시험받고 있는 순간이다.”(조선일보 사설, ‘DJ 햇볕 시험대에')

“우리 정부가 ‘미국의 진의는 그런 게 아니고 일반적인 현상을 말했을 뿐’이라고 애써 변명하거나 뜻을 흐리게 하면 더욱 어색하게 보일 뿐이다. 한미 공조를 굳건히 유지하기 위해서도 부시 행정부가 취하고 있는 대북정책의 방향과 핵심을 정확히 읽을 필요가 있다.” (동아일보 사설, '남이 퍼줄 때 북은 핵개발')

도대체 뭘 어떻게 하자는 말인가. 세무조사에 대한 원한이 아무리 깊기로서니 이런 위기상황에서까지 정부를 때리고 조롱해야 속이 시원한가.

부시의 북한 위협 과장에 넌지시 이의를 제기했던 정세현 통일부 장관의 심야토론 발언을 두고 한나라당 남경필 대변인은 “과연 대한민국의 장관인지 의심스럽다”고 비난했다.

나는 부시의 대북정책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거나 적극적으로 추종하는 일부 언론인과 야당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당신들, 대한민국 국민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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