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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론게이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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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론게이트 <1>

엔론 파산, 워싱턴정가에 폭풍

지난 해 연말,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2002년은 ‘전쟁의 해’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올해는 부시 대통령에게 ‘엔론게이트’의 한 해가 될 공산이 매우 커졌다. 지난 3일 미 상원 행정위원회가 엔론 파산에 대한 상원 전체 차원의 조사를 발표하면서 워싱턴정가의 기류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발표가 있은 직후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들의 모임인 공화당상원위원회는 지난 해 11월말 엔론측으로부터 헌금받은 5만 달러짜리 수표 2장을 반송했다고 밝혔다. 또 공화당 주지사협의회의 한 대변인도 비슷한 시기 엔론측이 헌금한 6만 달러짜리 수표를 되돌려 보냈다고 밝혔다.

한편 최근 부시 대통령에 의해 공화당 전국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된 마르크 라시코트 전 몬타나 주지사는 더 이상 엔론을 위한 로비스트 역할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엔론과의 연을 끊어버리려는 공화당 정치인들의 움직임이 본격화된 것이다.

부시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에서 가장 정치적 빽이 든든한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던 엔론이 이제는 워싱턴의 고아가 돼버린 셈이다. 현재 10개 이상의 상.하 양원 위원회를 비롯, 법무부와 노동부, 증권감독위원회(SEC) 등 정부 기관들이 엔론 파산에 얽힌 부정행위를 파헤치기 위한 조사 활동을 벌이고 있다.

워싱턴의 정치분석가들은 ‘엔론게이트’가 대형 정치스캔들이 될 모든 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우선 엔론 파산은 미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 파산이다. 한때 1천억 달러로 평가됐던 미국 7위의 대기업이 하루 아침에 빈털터리가 됐다. 게다가 기업은 망했지만 경영진들은 엄청난 부를 챙겼다.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2년간 엔론 경영진이 주식과 스톡옵션을 팔아 챙긴 돈은 무려 10억 달러나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회사가 망하기 직전인 지난 해 11월에도 이 회사의 고위 간부 6백여명은 무려 1억 달러의 보너스를 챙겼다.

반면 엔론 파산으로 미 국내에서만 4천5백명의 종업원이 일자리를 잃었다. 더욱 통탄스러운 사실은 회사가 종업원 보유 주식의 판매를 금지함으로써 이들은 노후 연금을 위해 그동안 저축해왔던 돈들을 앉은 자리에서 허공에 날려 보냈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엔론이 조지 부시 대통령의 정치 역정에서 가장 중요한 후원세력이었다는 점이다. 텍사스에 본부를 둔 엔론은 부시가 텍사스 주지사를 거쳐 대통령이 될 때까지 가장 많은 정치헌금을 한 기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 대통령은 엔론의 회장 케네스 레이를 케니 보이라는 애칭으로 부를 정도로 매우 가까운 사이다.

한 시민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엔론은 지난 1990년 이후 선거자금으로 5백80만 달러를 기부했으며 이중 4분의 3은 공화당에 돌아갔다. 엔론보다 정치헌금을 많이 한 기업은 미국 최대의 방위산업체인 록히드 마틴과 역시 미국 최대의 택배업체 UPS뿐이다. 현 미 상원의원 1백명중 71명이 엔론의 돈을 받았고 하원 4백35명 중에서는 절반 가까이가 받았다고 한다.

이처럼 엄청난 정치헌금으로 엔론은 자신의 주요 사업영역인 에너지 분야의 규제 완화를
어렵지 않게 이뤄냈다. 케네스 레이 엔론 회장은 부시 대통령 취임 직후 역시 에너지기업 회장 출신인 딕 체니 부통령과 독대, 미국의 에너지정책 방향에 관해 논의했다고 한다. 부시 취임 직후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 위원장의 돌연한 경질도 레이의 입김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현 부시 행정부에는 엔론 출신 인사가 5명이나 포진하고 있다.

대형 정치스캔들을 예고하는 또다른 요소는 이번 조사를 진두지휘할 상원의원들의 면면이다. 상원 차원의 조사를 선언한 상원 행정위원회의 조셉 리버만(코네티컷주) 의원은 민주당 소속으로 지난 2000년 대선에서 앨 고어의 러닝메이트로 뛰었던 인물이다. 2000년 대선의 결과에 대한 의혹은 차치하고라도 리버만 의원은 2004년 대선을 겨냥하고 있다. 그는 조사 시작을 발표하면서 “오직 진실만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지만 당파적 이해가 끼어들지 않을 것이란 보장은 없다.

더욱이 올해는 중간선거가 있는 해이다. 현재 상원을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은 하원에서도 6석만 더 획득하면 다수당이 될 수 있다. 당연히 정치공세가 강화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조사 실무를 지휘할 조사소위의 칼 레빈 의원(미시간주)은 지난 90년대 중반 잇단 금융사고에 대한 상원 청문회에서 미 은행들을 궁지로 몰아넣었던 칼 같은 인물이다. 이번 조사가 결코 만만하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엔론측은 이번 조사에 대비해 시간당 5백달러의 수임료를 받는 워싱턴의 초일류 변호사 로베트 베네트를 수석 변호사로 영입했다. 베네트는 폴라 존스 성희롱 사건에서 모니카 르윈스키 사건, 그리고 이에 따른 의회 탄핵에 이르기까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위해 일했던 변호사이다. ‘엔론게이트’가 대형 정치스캔들이 될 것임을 알리는 또다른 징조이다.

엔론이 파산 신청을 낸 것은 지난 해 12월 2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국 언론은 파산 사실만 보도했을 뿐, 그 배경이나 흑막에 대해서는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네이션 등 일부 진보적 매체들만이 그 진상을 파헤치라고 외쳤다.

한 칼럼니스트는 피해 규모로 보아 부시의 엔론게이트는 클린턴의 화이트워터 스캔들의 1천배는 되지만 주류 언론이 기울이는 관심은 1천분의 1도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화이트워터 부동산 스캔들에 얽힌 자금 규모가 6천5백만 달러에 불과한 반면 엔론게이트의 규모는 1천억 달러에 육박한다는 사실에 빗댄 것이다.

실제로 클린턴 스캔들 당시에는 백악관에서 잠잔 사람들의 명단까지 파헤쳤던 미 언론들은 이번 엔론게이트에 대해 지난 연말까지 거의 아무런 보도를 하지 않았다. 부시 대통령에 대해 이번 사건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이 처음 나온 것은 지난 해 12월 28일이었다.

물론 아프간전쟁이 아직도 진행되고 있고 부시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90%가 넘는 상황에서 이런 질문이 나오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어쨌거나 민주당 주도의 의회 조사가 시작되면서 이 사건은 올해 미 정가에 태풍을 몰아올 수도 있게 됐다.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엔론게이트에 대한 미 국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테러전쟁을 더욱 확대할 우려도 없지 않다.

그런데 도대체 엔론이 어떤 기업이길래 이런 엄청난 정치적 파장을 몰고 오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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