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를 방불케 하는 금융위기 재발 우려가 짙어지면서 부동산 시장도 크게 휘청거리는 모습이다.
주가가 폭락하는 등 금융시장에 '빨간불'이 켜지자 그동안 대출을 끼고 무리하게 비싼 아파트에 투자한 집주인들이 더는 견디지 못하고 가격을 대폭 낮춘 급매물을 시장에 쏟아내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금융시장의 위기가 부동산으로 옮아붙어 올해 안으로는 회복이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개포 주공 10억원선 붕괴…강남권 아파트 저가 매물 급증 = 25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7월 말 반등 기미를 보이던 서울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시세가 지난달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하락으로 주춤하더니 추석 연휴 이후 본격적인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다.
특히 지난주 유럽발 재정위기로 1년 2개월 만에 코스피 1,700선이 무너지면서 부동산 거래시장이 더욱 얼어붙을 조짐을 보인다.
'미니 신도시'급 재건축으로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은 서울 강남 개포 주공아파트는 2009년 최고가격과 비교하면 최고 40%까지 가격이 내려간 것으로 나타났다.
이 지역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한때 13억8천만원을 찍었던 개포 주공 1단지 56㎡는 지난달 10억1천500만원으로 떨어졌다가 지난주 9억6천만원까지 하락했다.
A공인 관계자는 "작년 봄까지만 해도 13억원에 거래되던 아파트인데 10억원 선이 무너질 줄 누가 알았겠느냐"며 "아파트 시세가 거의 저점에 다다랐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1층 밑에 지하가 있더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어디까지 내려갈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가격이 확 내려간 만큼 거래는 잘 되는 편이다. 미국 신용등급 하락으로 거래가 뚝 끊어졌던 이 아파트는 추석 이후부터 저가 매물이 급증하면서 10건 이상 매매계약이 체결됐다.
이 관계자는 "추석 연휴에 가족들끼리 상의해 싼값에라도 팔아치우는 게 낫다고 결정한 모양인지 매도 압력이 강해지고 있다"며 "자금이 모자라 작은 평수로 갈아타려고 파는 사람도 있고 대출이 많은데도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희망으로 버티다가 결국 포기한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가격대가 높은 다른 강남권 단지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역시 재건축을 추진 중인 잠실 주공5단지도 추석 이후 가격을 낮춘 급매물이 많이 늘어나면서 2주 만에 벌써 15건 이상이나 거래됐다.
하지만 거래가격은 상반기보다 1억원 이상 내려갔다. 지난 5월 11억8천만원에 팔렸던 잠실 5단지 110㎡는 최근 10억4천500만원까지, 12억3천만원에 거래됐던 116㎡는 10억8천만원까지 각각 하락했다.
잠실 P공인 관계자는 "추석 이후 투자 수요자들을 위주로 급매물이 늘어났다"며 "코스피 1,700이 무너지니까 매도인들이 호가를 500만원씩 더 낮추겠다는 연락을 해오고 있다"고 전했다.
그밖에 집값이 비싼 서초구와 강동구, 양천구 목동 등지에서도 대출을 끼고 아파트를 산 투자자들이 금융시장의 불안으로 최근 들어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집을 내놓고 있다고 것이 각 지역 중개업소들의 전언이다.
투자 수요의 비중이 높아 주택시장의 '바로미터'로 여겨지는 재건축 아파트 시세는 부동산114 집계 결과 지난주 전국 0.17%, 서울 0.23% 각각 하락해 어두운 시장 분위기를 반영했다.
◇4분기 시장 전망도 '암울'…전문가들 "연내 회복 어려울 듯" = 최근 금융위기는 가뜩이나 장기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도권 부동산 시장에 더욱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국민은행 박합수 부동산팀장은 "연말에는 사정이 나아질 기대가 있었는데 증시 폭락이 찬물을 끼얹었다"며 "투자 분위기가 급속히 가라앉아 관망세로 돌아선 데다 전세난 때문에 매매로 돌아서던 실수요자도 앞으로 움직임을 보류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상가 등의 임대수익형 부동산에 관심을 보이는 투자자들이 여전히 많기는 하지만 금융시장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자금을 운용하기가 쉽지 않아 망설이고 있다는 전언이다.
4분기 부동산 시장 회복이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은 최근 부동산이 금융과 한 몸으로 움직이는 동조화 경향이 강하다는 데서 비롯된다.
유엔알컨설팅 박상언 사장은 "예전에는 증시와 부동산이 반대로 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부동산이 금융시장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며 "금융과 부동산의 동조화로 매수 타이밍을 뒤로 미루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부동산1번지 박원갑 연구소장도 "부동산 시장은 유입되는 유동성의 크기와 비례해 움직이는데 금융이 문을 닫아버린 이상 당분간 성장할 수 없다"며 "지금은 투자수요가 없고 실수요만 미미하게 나오는데 가격이 더 내려야 투자수요가 붙으면서 시장이 회복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동산 매매시장의 선행 지표라고 할 수 있는 경매 낙찰가율이 하반기 더 주춤한 점도 '연내 회복 불가론'을 뒷받침한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수도권 아파트의 낙찰가율은 6월까지 꾸준히 80%를 넘다 7월 79.13%, 8월 79.41%로 두 달 연속 70%대에 그쳤다. 서울만 따지면 7월 79.79%, 8월 78.73%로 하락세가 더 가파르다.
박 사장은 "최근 10년 동안 대체로 80% 이상을 유지한 수도권 아파트 낙찰가율이 80% 이하에서 맴도는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라며 "적어도 3개월 이상 낙찰가율이 수직 상승해야 바닥을 쳤다고 단언할 수 있어 올해 안으로 주택시세의 바닥을 논하는 것은 이르다"고 설명했다.
다만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지속되더라도 현재 상황으로는 가격 급락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박 팀장은 "기준금리 동결로 대출이자 부담이 크지 않아 전반적으로 급매물을 빨리 팔아치우려는 움직임이 크지는 않다"며 "대기 수요의 80%가 강남을 선호하기 때문에 싼 매물이 나와도 바로바로 거래가 되면서 다시 오를 가능성이 있고 오히려 서울 외곽이나 수도권에서 급매물이 많이 나올 수 있다"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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