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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사' 탓 돌리는 국토부, 무능 자인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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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기관사' 탓 돌리는 국토부, 무능 자인하나?

[기고] 철도 민영화 도입하면 사고 우려 더 커져

8월 31일 오전 7시 15분 경 대구역 승강장에서 출발한 무궁화호 열차가 바로 옆 선로를 지나는 KTX 고속열차와 접촉해 무궁화호 기관차와 KTX 객차 9량이 탈선했다. 또 이 사고 현장에 접근하던 부산행 하행선 KTX가 사고 열차와 부딪히는 2차 사고가 발생했다. 열차사고는 그 특성상 많은 인명 피해를 가져오는데 이번 사고는 몇 명의 경상자만 나온 게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대구역 철도 사고의 원인과 대책이 발표되겠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 관계를 볼 때 이번 사고는 철도 안전을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인식과 철학이 변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언론에서는 언제나 그렇듯이 안전 불감증에 따른 인재로 이번 사고를 규정하고 대처에 미흡했던 코레일에만 비난을 하고 있다. 만약 이번 사고가 진짜 인재라면 안전 의식을 고양하고 종사원에 대한 정신 교육을 강화하는 것만으로 사고는 충분히 예방될 수 있다. 대구역 사고는 시간이 지나면 잊힐 것이고 요란스럽게 제기됐던 사고 방지책도 흐지부지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항상 반복되어 왔던 일이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고 발생의 원인은 여객전무가 승객 탑승 완료 후 출발 신호를 확인했어야 하는데, 옆 신호기의 진행 신호를 오인한 채 출발을 지시한 것이다. 기관사도 신호기의 상태를 확인했는데 역시 옆의 신호기를 자신의 신호기로 착각했다. 일반적으로 여객전무가 신호 확인 실수로 잘못된 출발 요구를 하더라도 기관사는 출발 전 반드시 신호 상태를 확인해야 하는 규정에 따라야 한다. 특히 기관사들은 규정이 아니더라도 출발 신호를 반복해서 확인하는 게 몸에 베이도록 훈련받는다. 이번 사고 기관사도 출발 신호 확인 절차를 거쳤다. 문제는 여객전무와 기관사 모두 잘못된 신호를 자신들의 신호로 오인했다는 점이고 이것이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 열차 사고가 난 대구역 ⓒ연합뉴스

오인하기 좋게 가깝게 붙은 신호기, 무분별한 대체 근무는 위험

무궁화호와 새마을호가 정차하는 대구역 경부선 상행 선로는 승객을 태우기 위해 승강장 쪽으로 나있는 지선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본선으로 나가는 구조다. 일반열차가 대구역에 정차하는 동안 바로 옆 선로로 고속열차가 빈번하게 통과한다. 이렇게 일반열차가 고속열차를 먼저 보내는 것을 철도에서는 "대피"라고 부르는데, 열차를 대피할 때는 역의 관제실에서 대피하는 열차에 무선 통보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피 열차 기관사는 고속열차의 진행을 눈으로 확인한 후 신호기의 상태를 다시 확인해서 자신의 열차 선로에 지시하는 신호기가 진행 신호를 나타내야 운전 준비를 한다.

그러나 주말이나 휴일처럼 임시 열차가 투입되는 등 열차 운행 빈도가 높을 경우 원활하게 무선 교신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또한 열차 운행이 지체되면 승무원들은 정시 운행을 위해 노력하게 되는데, 이런 과정에서 신호기의 오인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

대구역의 승강장에는 신호기가 나란히 서있는데 철도 신호기 중에 각기 다른 선로의 신호를 지시하는 신호기가 대구역처럼 가깝게 붙어있는 곳은 드물다. 두 개의 신호기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것은 충분히 오인을 유도할 수 있는 구조다. 이런 이유 때문에 철도 운행을 담당하는 기관사나 여객전무 같은 승무원들은 승무 경험이 중요하다. 각 역의 신호 특성과 취약 요소에 대한 경험적 인식이 사고 예방에 기여하는 것을 무시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번 사고 열차에 승무한 여객전무는 자격은 갖고 있지만 오래 동안 승무 경험이 없는 직원으로서 초심자에 준하는 견습과 훈련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렇게 현직을 떠났던 사람이 대체 승무원으로 탑승했던 이유는 사측의 강제 순환 전보 방침에 맞서 노조 측이 휴일근무를 거부하면서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철도 현장에서의 무분별한 대체 근무가 얼마나 위험한지 이번 사고는 잘 보여 주고 있다.

철도 안전 시스템 확보하려던 전 사장, 철도 민영화 반대하고 쫓겨나

철도 안전을 교육하는 사람들은 세계 공통으로 남의 말을 믿지 말고 부정적인 마인드를 가질 것을 피교육생들에게 요구한다. 아무리 옆에서 이상이 없다고 해도 본인의 눈으로 진짜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기 전까지는 믿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배운다. 철도에선 "잘 될 거야", "괜찮겠지"라는 긍정적 마인드의 인간형은 굉장히 위험한 셈이다. 철도 기관사 근무 수칙에도 의심이 날 경우에는 가장 안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되어있다. 철도에서 가장 안전한 방법은 일반적으로 일단 운행을 중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의심하는 자세로 오류를 보정하더라도 인간이 항상적인 각성으로 올바른 판단과 조치만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인간의 주의력 유지 능력은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으며, 당연히 이를 보완할 여러 가지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특히 인간은 인지 특성상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더욱 강화하는 방식으로 인식회로가 구성된다고 한다.

일본의 내부 사고 사례를 보면 기관사가 자신이 올바르게 판단했다고 확신할 경우 잘못된 운행을 인지하지 못한다고 한다. 도쿄의 한 역에서 이번 대구역 사례처럼 정당한 선로 신호가 아님에도 기관사는 자신의 신호로 착각하고 열차를 출발시켰다. 기관사는 선로에서 보내오는 자동 정지 신호를 운전실 모니터가 수신하자 자신은 분명히 정당한 신호를 보고 출발했음으로 자동 정지 장치가 고장인 것으로 간주하고 반복적으로 자동 정지 장치를 수동으로 리셋시키면서 달렸다. 다행히 사고로 연결되진 않았지만 많은 선로전환기를 훼손시켜 이를 복구하는 동안 상당 시간 열차 운행을 중단해야 했다.

이번 대구 사고 역시 여객전무의 오인으로 시작됐지만, 오류를 보정할 2차 당사자인 기관사가 자신이 정당한 신호를 받았다고 인식하면 되돌릴 수 없다. 문제는 이런 잘못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대구역같이 오인하기 딱 좋은 신호기 위치는 위험 요인을 항시적으로 갖고 있다. 이에 지난해 코레일은 열차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각 분야의 외부 전문가를 영입해 휴먼 에러 연구위원회를 출범시켰다. 6개월 이상 노사가 공동으로 지원하고 산업계와 심리학계, 의학박사들까지 참여하여 현장답사와 수십 차례에 이르는 회의를 진행하는 등 강도 높은 활동을 벌였다. 열차 안전 확보를 위한 인적, 시스템적 개선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고 상당히 고무적인 성과를 이루어내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 성과가 현장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휴먼 에러 연구위원회를 적극 장려했던 전임 사장이 국토부가 추진하는 철도 민영화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사직당한 이후에는 안전 시스템 확보를 위한 노력도 그 동력을 잃고 있다.

신호기 조치, 1인 승무 등 안전 문제 말하면 "예산 부족" 타령

철도 사고 예방을 위한 휴먼 에러 연구위원회의 최종 보고서에 따르면, 기관사를 대상으로 선로에 설치된 신호기 위치 때문에 순간적으로 착각이나 혼란을 경험했는지 여부를 조사한 결과, 일반열차 기관사의 경험 비율이 88%로 가장 높았고, 전동열차(80%), 고속열차(72%) 순으로 분석됐다. 이런 현장 분석 결과는 오인 가능성이 높은 신호기에 대한 대대적인 조치가 필요함을 말해준다.

보고서는 또 "신호기는 가능한 일관되게 위치하여 기관사의 순간적 무의식적 주시 및 직관에 의해 혼란을 유발하지 않아야 하나, 이에 대한 고려가 전반적으로 미흡함"이라고 제시했다. 전문 연구진의 이런 연구 결과는 대구역 같은 사고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상존하는 위험가운데 하나임을 말해준다.

이런 문제를 지적하면 제일 먼저 나오는 말이 예산 부족이다. 필요한 것은 알겠으나 이미 계획된 사용처가 있는 상황에서 장기적 고려 대상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고 한다. '장기적 고려 대상'이란 말은 종종 수용하지 못하는 것을 에둘러 표현하는 방식으로 쓰인다.

대구역 사고에서 특별히 부각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 사고가 난 기관차는 신형 전기기관차 기종으로 기관사 혼자 운전하는 1인 승무시스템이다. 이 1인 승무 체제는 기관사의 열차 뒷 방향 감시 의무가 없고 운전석에서 뒤를 확인 할 수 있는 백미러도 없으며 출발 요청을 여객전무의 무전기에만 의존하는 시스템이다. 만약 이 기관차가 2인 승무 체제인 디젤기관차였으면 기관사의 잘못된 판단을 부기관사가 보정해 줄 수도 있었고 운전석에 장착된 백미러로 기관사는 고속열차의 접근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도 있었다. 현재 비용 절감 등 여러 가지 이유로 1인 승무 체제가 확대되는 추세인데, 1인 승무제 확산에 따른 안전 취약 요소를 보완할 수 있는 대안도 적극 모색해야 한다.

'기관사 탓' 돌리는 국토부, 불완전한 시스템 자인한 꼴

대구역 사고가 나고 여러 가지 원인 분석이 있었는데, 국토부나 코레일은 정밀 분석 결과를 봐야 한다고 전제하면서도 신호 체계나 열차 운행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여객전무와 기관사의 인적 오류가 사고의 원인이라고 밝혔다. 바로 여기에 이번 사고를 대하는 당국의 철도 안전 철학이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제대로 된 철도 안전 시스템은 여객전무나 기관사가 잘못해도 사고로 연결되지 않거나 사고가 나더라도 더 큰 사고로 전이되지 않도록 갖춰져야 한다. 더 나아가 나쁜 의도를 가지고 사고를 유발시키려고 해도 방어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게 이상적이다. 시스템은 정상인데 사람이 실수해서 사고가 났다는 것이야말로 불완전한 시스템이란 것을 자인하는 것일 뿐이다.

이번 대구역 사고의 경우 정지 신호임에도 무궁화호 열차가 본선으로 나아가 운행 중인 KTX 열차와 접촉했는데, 철도 시스템 중에 이런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장치는 이미 있다. 신호 오인에 따라 열차가 운행되더라도 본선으로 진입시키지 않고 그대로 나란히 연장된 선로로 열차를 유도해 충돌을 방지하는 안전 측선이란 개념의 선로이다. 철도 건설법에 따른 철도 건설 규칙 제22조에도 2개 이상의 열차가 동시에 출발하거나 진입하는 정거장 내에는 안전 측선을 설치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구역은 여러 특성상 이런 안전 측선을 설치하기 힘들고, 다른 신호 보안 장치가 있어서 안전 측선이 없어도 괜찮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번 사고로 안전 측선을 설치할 필요성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열차들이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평면 교차를 하는 선로의 경우 충돌을 예방하기 위한 2중 3중의 안전장치 확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철도 안전 시스템은 크로스 체킹이 기본이다. 시스템의 오류를 인간이 대응해 보완하고 인적 오류는 시스템이 방어해 주어서 안전을 보장하는 방식이 총체적 시스템으로 확보되어야 한다.

철도 경쟁 체제 도입? 사고 나면 문제 더 커진다

우려스러운 점은 이번 사고를 빌미로 국토부에서 수서발 KTX 경쟁 체제 도입 등 일련의 민영화 과정을 가속화하는 명분으로 삼아 네거티브 전략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국토부는 사고뭉치 무능력 코레일이 독점하는 철도를 개혁하자며 경쟁 체제 도입의 정당성을 역설해 왔다. 특히 코레일밖에 선택할 수 없는 국민들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쟁사를 선택할 권리를 주자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번 사고에서 밝혀졌듯이 아무리 많은 회사를 설립해서 경쟁을 시켜도 연동된 네트워크라는 특성을 갖는 철도는 한 지점의 문제가 전체의 문제로 비화된다. 사고가 나면 설령 다른 철도 회사가 생긴다 해도 운행이 불가능하기는 마찬가지다. 더구나 한 노선에 서로 다른 회사가 달리면 심각한 소통의 부재를 낳고, 설령 사고가 난다고 해도 상호 책임 떠넘기기나 협력의 부재로 더 많은 문제들을 양산한다.

사고 이후 국토부는 각계의 전문가를 동원해서 사고 원인을 찾고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추석 대수송 기간을 앞두고 전국의 주요 역에 대한 안전 점검을 통해 안전 위해 요소를 없애는 노력도 하기로 했다. 이런 조치가 생색내기식 1회성 사후약방문 조치가 아니길 간절히 바란다. 효율성의 논리에 밀려 부차적 대상이 되었던 철도 안전에 대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제고해 보고 새로운 안전 문화가 정착된다면 이번 사고는 쓴 보약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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