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노조는 이날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 등 정부 관련 부처와 교섭한 결과 "건설 현장 투명화의 단초가 되는 '건설 기능인에 대한 종합적인 육성 및 지원'을 법제화하고, 체불과 중대 재해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정부가 약속했다"고 밝혔다. 건설노조는 "건설 현장 3대악인 중대 재해, 체불, 불법이 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총파업은 하루 만에 끝났지만 남은 과제는 여전히 많다. 수천억 원대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체불 임금 문제와 매년 수백 명씩 죽어가는 산재 문제 등이 그것이다. 건설 노동자 2만여 명이 일손을 놓고 서울광장에 모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들어봤다. <편집자>
건설 노동자의 삶 ① 당신의 아파트는 피를 먹고 자란다 |
크레인 기사인 반재옥(49) 씨는 최근 4개월치 크레인 임대료(임금) 3200만 원을 체불당했다. 그는 서울 강북구 우이동과 동대문구 신설동을 잇는 서울 경전철 우이선 공사 현장에서 일했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야심차게 '민자 경전철' 사업을 추진했지만, 하청 업체가 부도나면서 지난해 11월 공사가 중단됐다.
반 씨는 "하청 업체가 부도나기 얼마 전부터 자꾸 차일피일 미루고 돈을 안 줬다"며 "원청 업체 사무실에 가서 '하청 업체가 돈을 안 주니 관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지만, 원청 업체는 우리 책임이 아니라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중학생 자녀 둘을 둔 그는 "(돈이 없어서) 아이 학원도 끊은 상태"라고 씁쓸히 덧붙였다.
반 씨는 임금(장비 임대료)을 현금이 아니라 3개월짜리 어음으로 받을 때가 많다고 했다. 지난해 10월에 일한 대가가 올해 1월에 현금이 되는 식이다. 그 사이에 하청 업체가 부도나면 어음은 휴지 조각이 된다. 현금을 받기로 해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미 일은 시작했는데, 하청 업체가 차일피일 결제를 미룰 때도 많아다고 했다.
"2개월 뒤에 돈을 준다고 해서 현장에 들어갔는데, 막상 일을 시작하고 나니 3개월 뒤에 돈이 나간다고 말을 바꿔요. 그래도 우리는 그만두고 나오면 일을 따기가 어려우니까 버티고 그냥 일하고 있는 거예요. 마음은 항상 불안하죠. (건설사가) 내일은 돈을 준다고 하면 '진짜 내일은 줄까? 안 줄까?' 그 생각만 하게 돼요. 집에서도 아내한테 전화가 와요. '내일은 진짜 돈 준대?'라고요."
ⓒ건설노조 제공 |
크레인 기사, 24년 만에 노조 가입한 이유는…
반 씨가 건설 현장에 처음 뛰어든 건 25년 전이다. 전문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장비 중 크레인이 으뜸이라고 해서 크레인 기사가 됐다. 처음에는 건설사에 고용돼 노동자로 일했다. 그러다 1997년 중고 크레인을 8000만 원에 사면서 '개인 사업자(특수고용직)'이 됐다. 2005년부터 건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일감은 줄고 돈에 쪼들렸지만, 그는 건설업계가 "잘나갔을 때"도 상대적 박탈감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원청 업체가 공사 대금을 주면 하청 업체는 그 현장의 장비 값(임금)에 안 써요. 여기서 받은 돈을 다른 공사비 메우는 데다 써요. 어떤 하청 사장들이 다른 데 투자하기도 하고요. 사장이 땅 사느라 돈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박탈감이 들죠. 자기네들은 공사 대금 받아놓고 빌딩 사고 땅 사고 골프 치러 다니니까. 이게 전부 임금 착취예요."
반 씨는 "일감이 불안정하고, 임금 나오는 날이 불안정하기는 건설 기계 기사들이 다 마찬가지"라면서도 "그나마 크레인은 대우가 좋아서 1차 하청과 직접 계약하지만, 덤프트럭 기사들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 때문에) 많이 뜯긴다"고 말했다.
24년간 노조에 가입하지 않았던 반재옥 씨는 지난해 8월 처음으로 건설노조 조합원이 됐다. 그는 "체불이 많다고 해서 혹시나 싶어 가입했는데, 가입하자마자 바로 체불이 생겼다"며 "가입하기를 잘했다"고 말했다. 그는 "체불이 발생하면 건설노조가 대리 교섭해서 받아주는데, 노조원이 아닌 사람은 힘이 없으니까 원청 업체가 우습게 본다"고 덧붙였다.
"작년 체불 임금, 확인된 것만 264억…불법 다단계 하청 구조 때문"
건설 기계 노동자의 임금 체불은 심각한 수준이다. 2012년 한 해 동안 건설노조 조합원이 체불당한 임금 액수는 264억7000만 원에 달한다. 그마저 건설노조가 지난 2월 조합원 1만5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체불 사례 220건을 추린 결과다. 건설노조는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까지 고려하면 전체 체불액이 69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전체 체불 현장의 80%가 4대강을 비롯한 국책 사업 현장이라는 점이다. 건설노조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농어촌공사, 수자원공사, 서울국토관리청, 철도시설공단, 지자체 등이 발주한 '공공 공사' 현장에서 버젓이 임금 체불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정부 기관조차 위법 사항을 관리 감독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체불 유형도 다양하다. 우선 하청 업체가 부도를 내거나, 공사가 끝나도 돈이 없다고 버티는 경우가 있다. 중간업자가 사업비를 '먹고 튈' 때도 있다. 원·하청 간의 분쟁이 일어나서 체불이 생기기도 한다. 건설노조는 "건설 현장의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당사자는 도급 구조 맨 밑의 노동자"라고 지적했다.
▲ 27일 건설노조 조합원 2만여 명이 무기한 총파업을 선언하고 서울광장에 모였다. ⓒ연합뉴스 |
원청 업체가 하청 업체와 계약하면, 하청 업체는 건설할 총괄 업자를 선정한다. 총괄 업자는 건설 기계를 보유한 회사와 계약하고, 건설 기계 회사는 다시 차를 배차할 사람과 계약한다. 배차하는 사람은 다시 건설 노동자를 재고용한다. 많게는 6단계까지 내려가는 다단계 구조에서 '먹튀'가 발생하기 쉽다는 것이다.
27일 반 씨는 크레인을 멈추고 건설노조 총파업에 참여했다. 그는 "공사를 시작할 때 원청 업체나 발주처가 직접 기사들에게 임금을 주라고 요구하기 위해 나간다"며 "중간에 떼일 우려가 많은 하청 업체 말고 원청 업체가 직접 장비 임대료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금·임대료 지급 확인제 법제화해야"
건설 체불 문제의 대책으로 국토교통부는 지난 16일 '건설산업 불공정 거래 관행 개선 방안'을 내놓고, '하도급 대금(장비 임대료) 지급 보증 제도'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지급 보증 제도란, 원도급 업체나 하도급 업체가 건설 기계 노동자와 계약을 체결하면 보증 기관이 임금을 보증하는 제도다.
이에 대해 최동주 건설노조 교육선전실장은 "지급 보증 제도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동의하지만, 체불 금액을 100% 보증할 수 없는 구조"라며 "보증 기관도 이윤을 남겨야 하기에 수급자에게 불리한 계약 조건이 제시될 확률이 크다"고 말했다. 최 실장은 특히 "체불 금액이 200만 원 이하이거나 4개월 이상 체불되면 보증에서 제외되는 문제점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설노조는 근본 대책으로 '장비 임대료(임금) 지급 확인 제도' 법제화를 요구했다. '지급 확인 제도'란 발주처나 원청 업체가 임금이 지급됐는지 의무적으로 확인하고, 임금이 지급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15일 이내에 시정하는 제도다. 국토부는 지난해 7월부터 이 제도를 시행해왔으나, 처벌 조항이 없어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건설노조는 "체불은 대부분 영세 하도급 업체에서 발생한다"며 "발주처나 원청이 체불을 관리 감독하고 제대로 지급됐는지 확인하면, 실질적인 체불 문제가 해결된다"고 주장했다. 건설노조는 "현재 지급 보증 제도 운영을 준비하는 건설공제조합 내에서조차 장비 임대료 지급 확인 제도가 법제화돼 함께 운영되지 않는다면 보증제도 제대로 안착하지 않는다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고 지적했다.
최 실장은 "지급 확인 제도는 체불의 근본적인 대책이지만, 위반했을 때 처벌 규정이 없고 법제화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라며 "원청이나 발주처로서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 실효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최 실장은 "지급 확인 제도에 강력한 처벌 조항을 넣어서 법제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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