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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NC전 '최규순의 야구교실'은 심판 보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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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NC전 '최규순의 야구교실'은 심판 보크일까

[배지헌의 그린라이트] 심판 불신 시대가 불붙인 논란

야구 경기에서 심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무엇일까. 규칙을 적용하는 판관과 경기의 진행을 원만하게 하는 조정자 사이에서 어느 쪽을 더 우선시해야 할까. 지난 주말 열린 프로야구 경기에서 심판의 역할에 대한 논쟁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발단은 18일 마산에서 열린 삼성과 NC의 경기. 8회초 1사 2, 3루에서 삼성 우동균 타석에 볼카운트 3-0이 되자 NC 벤치에서는 고의볼넷을 지시했다. 신인급인 NC 포수 이태원은 투수 찰리 쉬렉이 공을 던지기도 전에 포수 박스에서 멀리 벗어나 공을 받을 준비를 했다. 그러자 최규순 주심은 '타임'을 부른 뒤 포수에게 포수석으로 돌아갈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또다시 이태원이 포수박스에서 벗어났고, 이번에는 최 주심이 아예 포수의 등을 움켜쥐며(grab) 포수석 쪽으로 유도했다. 결국 우동균이 볼넷을 얻은 뒤, 최규순 주심은 이태원을 향해 '투수가 투구동작을 하기 전에 포수석을 벗어나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경기가 끝난 뒤 최규순 주심의 행동을 놓고 각종 SNS와 기사 댓글, 야구 커뮤니티에서는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경기 중에 야구교실을 개설했다' '최규순의 야구교실이다' '요즘 심판들은 야구교실도 운영하나?' 같은 비난부터 '심판이 신생팀인 NC를 노골적으로 도와준다'는 비판도 나왔다.

▲삼성-NC전의 '야구교실' 논란은 최규순 심판의 보크일까, NC 이태원 포수의 보크일까. 야구 관계자들은 "심판 판정에 대한 불신이 논란을 키웠다"고 말한다. ⓒ삼성 라이온즈 제공

논란의 갈래는 두 가지다. 우선 '포수 보크'와 관련된 부분. 야구규칙 8.05에는 '고의4구를 진행 중인 투수가 포수석 밖에 나가 있는 포수에게 투구하였을 경우' 보크라고 명시되어 있다. 투수가 아닌 포수의 보크가 되는 경우다. 미국야구의 규칙을 봐도 내용은 동일하다. 삼성 쪽에서 보기엔, 그대로 경기를 진행했다면 보크 선언으로 3루 주자 득점이 가능했다고 볼 수도 있는 부분이다. 심판이 개입해서 포수 보크를 막아줬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실제 심판원들의 견해는 어떨까. 프로야구 2000경기 출장 기록 보유자인 이규석 전 심판위원은 "포수 보크는 사실상 의미 없는 룰"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경기에서 지키는 선수도 별로 없다. 대부분 밖에 나가서 받는다. 지금까지 프로야구에서 고의4구 때 보크가 선언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미국의 상황도 비슷하다. 메이저리그 명 심판원으로 유명한 팀 맥클랜드는 MLB.com에 소개된 Q&A 코너를 통해 "실제로 포수 보크가 선언되는 걸 본 일이 없다. 규칙서에는 나와 있지만 사문화된 규칙이며, 게임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그냥 넘어가는 부분 중 하나"라고 쓴 바 있다.

본래 보크 규정은 수비하는 측이 공격 측을 기만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됐다. 주자 입장에서는 투수가 포수 쪽으로 공을 던지는지, 아니면 주자에게 견제를 하는지 여부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포수가 포구하는 영역을 규칙으로 제한해 놓은 이유다. 그런데 고의4구의 경우 투구하기 전에 미리 나가서 받는다고 해서 공격 측에 아무런 불이익이 되지 않는다. 규칙만 있을 뿐, 사실상 지키든 안 지키든 아무 의미가 없는 규칙인 셈이다.

야구에는 가끔 이렇게 흔적기관처럼 의미 없이 남아있는 규칙이 존재한다. 상황이 발생했을 당시 삼성 벤치에서 별다른 항의를 하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만약 정말로 3루 주자가 득점할 수도 있는 중차대한 상황이었다면, 아무리 온화한 성격의 류중일 감독이라도 달려 나와 거세게 항의했을 것이다.

결국 심판 개입 없이 경기가 진행됐더라도 실제로 '보크'가 선언되고 3루 주자가 득점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여기서 두 번째 논란이 생긴다. 그렇다면 왜 최규순 주심은 이태원의 등을 잡아끌고 움켜쥔 뒤 규칙에 대해 설명까지 해주었을까. 그냥 내버려두면 그만일 일이 아니었을까.

이에 대해 최규순 심판은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포수가 규칙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며 "원활한 경기 진행을 위해 타임을 부르고 설명해줬다"고 해명했다. 당시 NC 이태원은 누가 봐도 표가 날 정도로 포수석에서 심하게 멀리 벗어나 있었다. 대부분의 포수들은 관행적으로 포수석을 벗어나긴 해도, 규칙이 있다는 걸 알기에 어느 정도 선은 지킨다. 그런데 이태원의 경우 규칙을 아예 몰라서인지 아니면 해오던 습관인지, 눈에 확 띌 정도로 자리에서 멀리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신인으로서 기본과 규칙에 충실한 플레이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태원의 플레이에는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

최규순 심판은 "심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원활한 경기 운영"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대한 견해는 엇갈린다. 만약 심판의 역할을 '규칙을 적용해 판정을 내리는 일'로 제한한다면, 최규순 심판의 행동은 '심판 박스'를 벗어난 '보크'에 해당할 수도 있다. 반면 심판의 역할을 '경기의 운영자이자 조정자'로 넓게 본다면 이해할 만한 여지도 충분하다. 실제로 심판이 얼마나 경기를 능숙하게 이끌어 가느냐에 따라 경기 시간이 4시간을 훌쩍 넘기기도 하고, 3시간 이내에 끝나기도 한다. 아무런 논란의 여지가 없는 매끄러운 경기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몸에 맞는 볼이 난무하고 난투극이 일어날 수도 있다. 신인급 선수들이 '기본'과 프로다운 플레이를 하도록 길들이는 것을 심판의 역할 중 하나로 보기도 한다.

다만 포수의 등을 잡아끌면서까지 규칙을 가르쳐준 행동은 다소 과했다는 평이 많다. 실제 야구팬 사이에서도 사문화된 포수 보크 문제보다는 경기 중에 선수를 교육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부분을 문제 삼는 의견이 많다. 한 리틀야구 감독은 "유소년 야구 경기에서는 승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선에서 아이들에게 규정을 가르치면서 진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프로 경기가 아닌가"라며 "포수도 심판도 너무 나갔던 것 같다"고 했다. 이규석 전 심판위원은 "눈에 띄지 않게 한두 번 언질을 주는 정도로 그쳤어야 했다"고 했다. 다른 야구인은 "심정적으로 이해는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경기가 중계되고 과거보다 팬들의 보는 눈도 높아졌기에 이상하게 보일만한 일은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평했다.

오래된 야구 격언 중에 '야구 경기가 끝났을 때 그 경기의 심판이 누구였는지 몰라야 한다'는 말이 있다. 오심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기도 하지만, 경기의 원활한 진행을 강조하는 격언이기도 하다. 최규순 심판은 의도와 달리 졸지에 '야구교실' 운영자가 되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말았다. 야구 심판이 팬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게 원인일지도 모른다. 한 야구팬은 "야구교실 논란은 바로 다음 회에 최규순 주심이 배영섭의 몸에 맞는 볼을 '일부러 맞았다'고 판정하면서 더 불이 붙은 면도 있다"고 했다. 워낙 심판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다 보니, 관행적으로 인정되는 상황조차도 논란거리가 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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