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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치장한 '정치 축구', 중국 축구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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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치장한 '정치 축구', 중국 축구의 그림자

[올댓풋볼] 중국 축구의 미래가 어둡다고 보는 이유

인구 13억 명으로 세계 1위. 국내총생산(GDP) 7조9000억 달러로 세계 2위. 세계 최강국 미국을 위협하는 유일한 존재인 중국은 이제 자동차, 컴퓨터에 이어 스마트폰까지 생산하고 있다. 스포츠에서도 중국은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참가국 중 가장 많은 금메달을 획득했고 지난해 런던올림픽에서는 두 번째로 많은 금메달을 획득했다. 아시아 선수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육상과 수영 단거리, 농구와 같은 종목에서도 세계 정상에 도전할 수 있는 국가가 중국이다.

그런 중국이 거의 유일하게 세계 정상과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스포츠가 있다. 바로 축구다. 중국의 현재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109위다. 아시아에서도 13위다. 이라크(94위), 북한(102위)보다도 낮다.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것은 2002년 한일월드컵이 유일하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 이어 현재 최종 예선이 진행 중인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선 아시아 3차 예선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런 결과물을 납득할 수 없는 건 중국 내에서 축구 인기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축구는 중국에서 국기(國技) 수준이다. 세계선수권이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쓸어오는 탁구도 축구의 인기 앞에서는 고개를 들지 못한다. FIFA, 그리고 유럽의 명문 클럽이 가장 공을 들이는 축구 시장이 중국이기도 하다.

중국 축구의 화려함은 날이 갈수록 요란해지고 있다. 중국 축구 대표팀 감독은 과거 레알 마드리드와 스페인 대표팀을 이끌었던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다. 지난해에는 디디에 드로그바, 니콜라 아넬카(이상 전 상하이 선화), 프레데릭 카누테(베이징 궈안), 루카스 바리오스(광저우 에버그란데) 같은 세계적인 선수들이 중국 무대를 밟았다. 급기야 프로팀인 광저우 에버그란데가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이탈리아의 우승을 견인한 명장 마르첼로 리피를 데려와 대륙을 흥분시켰다. 광저우는 박지성 영입 의사도 꾸준히 보여왔다. 현재 중국 축구에 투자되는 돈은 유럽의 웬만한 리그에 버금간다.

중국 축구의 발전과 팽창은 바로 옆에 있는 한국 축구의 가장 큰 위협이다. 국가대표뿐만 아니라 프로 축구 클럽 대항전인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양국 클럽은 수차례 맞붙는다. 중국 축구의 자금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팀인 광저우의 경우 1년에 쓰는 돈이 800억 원 수준으로 K리그 상위권 팀의 3~4배에 달한다. 지난 시즌 광저우는 챔피언스리그에서 전북을 5대 1로 꺾으며 모든 이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그것도 전북의 홈인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치러진 경기였다. 당시 원정 취재를 온 중국 기자들은 경기 후 인터뷰를 위해 기자실로 들어오는 이장수 전 감독(2012년 5월 계약 해지, 이후 마르첼로 리피 감독 취임)을 향해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이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 한 경기로 중국 축구가 한국 축구를 넘어섰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미래에는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결과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공한증(恐韓症)에 시달렸던 중국 축구는 클럽 축구를 중심으로 지난해부터 한국 축구에 강하게 도전해 오고 있다. 이번 시즌에도 한국의 K리그 클래식과 중국의 슈퍼리그는 챔피언스리그에서 네 차례나 맞붙었다. 그런데 올해는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투자되는 금액에 비교해 중국 클럽이 결코 한국의 클럽을 압도하지 못하고 있다. FC서울은 장수 센텐을 5대 1로 대파했다. 지난해에 이어 다시 만난 전북과 광저우의 맞대결은 1대 1 무승부로 끝났다. 포항과 베이징 궈안, 수원과 구이저우 런허는 0대 0 무승부를 기록했다. 돈으로 선수는 사도 우승은 살 수 없다는 속설이 맞는 것일까? 그 이면에는 자금력은 풍부하지만 자가발전기를 돌릴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 중국 축구의 속 빈 사정이 숨어 있다.

중국 슈퍼리그는 1994년 개막과 함께 승강제 시스템을 도입했다. 올해 승강제가 도입된 K리그보다 20년 가까이 앞섰다. 그러나 1부 리그를 떠받쳐야 할 하부 리그의 구조가 취약하다. 이것이 중국 축구가 빠른 제도 도입에도 불구하고 10년 넘게 정체가 지속된 이유다. 또한 유소년 축구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다. 대단한 이름값의 외국인 선수가 오고 있지만 그들을 보유하는 데는 제한이 있다. 결국 자국 선수들의 수준도 중요한데, 이 부분에서 치명적 결점이 있다. 여전히 대다수의 프로팀은 단기적 시각으로 외국인 선수와 감독 영입에만 돈을 쏟아 붓고 있다. 장기적 효과는 미미해 보인다. 그 방증이 중국 대표팀의 형편없는 성적이다. "좋은 외국인 선수가 오는 것으로 리그 수준이 올라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게 중국에서 가장 성공한 외국인 감독으로 꼽히는 이장수 전 광저우 감독의 지적이다.

무엇보다 중국 축구의 발전을 회의적으로 보는 이유는 저런 투자의 목적이 지극히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광저우, 베이징, 산둥, 텐진, 항저우 등 소위 중국 슈퍼리그의 빅클럽이라 불리는 팀은 돈의 액수를 상관하지 않는다. 광저우는 최근 있었던 AFC 챔피언스리그 전북전을 앞두고 열린 미디어데이에 무단 불참했고 그 벌금으로 1000달러를 내야 했다. 그러자 1만 달러를 내고는 나머지 돈은 AFC 직원들의 회식비로 쓰라는 무례한 태도를 보였다. 이 정도로 돈에 대한 자신이 있다. 정치적인 문제만 풀면 저절로 굴러들어오는 것이 돈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자본주의를 도입했지만 여전히 공산당 일당 독재 국가다. 개방된 사회주의 체제다. 건물의 소유권은 인정하지만 토지는 국가에서 불하를 받아야 한다. 결국 정치인들의 비위를 얼마나 잘 맞추느냐에 따라 기업인은 천문학적인 돈을 벌 수 있다. 국가 최고 지도자인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에 오른 시진핑은 축구를 매우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외 순방 중에도 축구장을 찾아 시축하는 인물이다. 시진핑이 정권의 중심에 가면서 중국 축구계에 대한 기업의 투자가 거대해진 것이 우연이 아니다.

반대로 이런 일도 있다. 중국의 또 다른 빅클럽인 다롄 스더는 지난해 말 사실상 공중분해됐다. 핵심 선수들은 떠나고 팀은 하위권 팀인 다롄 아얼빈과 합병됐다. 다롄 스더의 후견인은 지난해 중국은 물론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사건의 주인공인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서기였다. 보시라이는 다롄시 서기, 그리고 랴오닝성 성주를 거치며 정치적 입지를 다졌던 인물로, 다롄 스더를 지원해왔다. 그가 추락하자마자 다롄 스더도 급격히 몰락한 것이다. 이처럼 중국에서 축구는 그 스스로 목적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매력적인 사업 도구이자 정치적 선물이다. 그런 관점에서 팀을 운영하다 보니 미래가 아닌 현재에만 투자가 집중된다. 아무리 유명한 감독이라도 성적이 조금만 좋지 않으면 바로 내친다. 중국 축구계에는 '어떤 감독이든 3연패를 하면 옷을 벗어야 한다'는 속설이 있다.

성장은 단계적으로 진행되기 마련이다. 엄청난 돈으로 치장해 번쩍거리는 중국 축구의 미래가 어둡다고 보는 이유는, 중국이 이 계단을 한 번에 뛰어넘으려 하기 때문이다. 성적은 빠른 시간에 좋아질 수 있다. 하지만 축구에서 진정한 성장은 저변을 쌓고 팬을 모으고 유망주를 키워 팀을 순환시키는 시스템에 달려 있다. 중국 축구는 이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돈만 뿌려대고 있다. 만일 시진핑이 실각한 뒤 다음 총서기가 축구가 아닌 농구를 좋아하면 어떻게 될까?

▲중국 축구가 급격한 성장세를 보인 건 확실하다. 그러나 아시아 축구의 용으로 승천하기에는 제약이 너무 많다. 지난 12일 오후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3 AFC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조별 리그 F조 2차전 전북 현대 모터스와 광저우 에버그란데 FC의 경기에서 전북 이동국과 광저우 장린핑이 코너킥을 기다리며 몸싸움을 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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