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1일 오전 조선중앙TV와 조선중앙방송 등 방송을 통해 육성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점진적 경제정책 변화를 예고
정치 분야의 담론들은 기존의 전통적인 논리들을 강조하고 있다. 김일성-김정일 주의라고 명명하는 유훈통치를 다시 강조했다. 선군논리, 그리고 군사강국을 재확인 했다. 경제 분야도 자립적 민족경제의 강조나 인민 생활 향상, 그리고 이른바 광명성 3호 발사를 자랑하면서 과학기술 분야를 강조한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주목할 만한 표현은 '경제 관리의 개선과 완성'을 추구하면서, '창조된 경험들을 일반화'하겠다는 것이다. 작년 1년 동안 북한의 경제정책 변화에 관한 다양한 추측들이 제기되었다. 대표적으로는 이른바 '6.28' 조치다. 농업분야에서 인센티브 확대와 기업의 자율권 확대가 핵심 내용이다. 그러나 언론보도에 따르면, 북한을 방문한 중국이나 일본 총련계 인사들은 '6.28' 조치라고 부를 수 있는 정책결정은 없다고 한다. 그것은 우리 언론이 만들어낸 확인되지 않은 추측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다만 북한은 2000년대 중반이후 경제관리 개선 조치의 연장선상에서 꾸준한 정책 변화를 지속하고 있다고 전한다. 일종의 시범 지역에서의 경제관리 개선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고 한다. 신년사는 이제 성공한 경험을 일반화 하겠다는 것이다. 어쩌면 6.28 조치라고 불렀던 제도적인 수준의 정책 변화를 올해에 단행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정책 변화의 대표적인 성과는 농업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작년 북한의 농업분야 성과는 주목할 만하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세계식량계획(WFP)의 현장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한 2012년 식량 작황은 놀랄 만큼 성장했다. 북한이 정곡기준으로 490만톤을 생산했다는 것이다. 북한의 식량 수요를 정곡기준 총 543만톤으로 추정할 때, 부족분은 50만 7천톤에 불과하다. 자체 수입 목표인 30만톤을 제외하면 실질 부족분은 20만 7천톤이다. 참고로 북한의 곡물 수입 필요량은 1990년대 중반이후 100만톤을 상회했고, 2000년/2001년 양곡연도의 경우는 200만톤 이상으로 치솟은 적도 있었다. 작년의 식량 생산은 전해에 비해 10%이상 늘었고, 1994년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작년 북한의 식량 생산 증가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상대적으로 기후조건이 양호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북한 자체적으로 생산한 인산비료와 칼륨비료 등이 4배 이상 증가하는 등 생산조건도 향상되었다. 수매가격이 인상되어 그만큼 수매량이 늘어난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구체적인 정보의 부족으로 정확하게 분석하기 어렵지만, 생산성 향상을 가져온 정책의 변화도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물론 올해 북한이 경제정책 변화를 시도한다고 하더라도, 외부의 과도한 기대 수준과는 괴리를 보일 것이다. 북한 경제는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질적 전환 방식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단계적으로 조금씩 변화할 것이다. 정치체제의 한계도 있고, 대외환경의 불안정성도 작용할 것이며, 자원의 배분 방식을 획기적으로 전환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외부 관측자들의 과도한 기대감과 북한의 느린 변화 속도사이의 격차는 때로는 6.28 조치와 같은 존재하지 않은 오보를 생산하고, 실망감에 기반한 과장된 비판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남북관계 개선을 기대한다고 볼 수 있을까?
대외정책 분야에서는 아무래도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 표시를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신년사는 '남북 사이의 대결상태 해소'를 제시했고, 남북공동선언의 존중과 이행을 강조했다. 최근 몇 년의 대남정책과 비교해보면, 절제된 표현과 긍정적 미래를 강조했다. 당연히 새 정부와의 새로운 관계 설정을 기대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미래지향적 관계 재정립은 6.15 선언과 10.4 합의 이행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앞으로 출범할 박근혜 정부가 염두에 두어야 할 대목이다. 사실 남북관계는 어느 일방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이다. 북한의 대남 정책만큼이나, 우리의 대북정책이 중요하다. 이명박 정부 5년 내내 대립과 불신을 지속해 왔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첫 단추를 어떻게 끼느냐? 그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북한의 신년사는 나쁠 게 없다.
다른 한편으로 이번 신년사에서 북미 관계나 핵문제에 관한 언급이 생략된 것도 주목할 만 하다. 작년 한해 한반도를 둘러싼 거의 모든 나라들에서 선거가 있었다. 동북아 질서가 어떻게 재배열 될 것인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북한이 신년사에서 각국 별로 구체적인 대외정책을 거론하지 않고, 생략한 이유다.
동북아 정세에서 예측 가능한 변화도 있다. 러시아에서는 푸틴이 귀환하면서 동북아 외교에 좀 더 적극적일 것이고, 대만에서는 마잉주 정권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양안관계 발전이 지속할 것이며, 중국의 시진핑 체제는 외교정책에서 영향력을 조금씩 확장해 나갈 것이다. 우려되는 변수도 있다. 일본에서 자민당 정권의 재집권과 아베 내각의 출범이다. 전반적인 일본의 우경화와 더불어, 중일 양국의 영토분쟁이 동북아의 불안을 증폭시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오바마 2기의 동북아 외교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존 케리가 국무장관으로 지명된 것은 주목할 만 하다. 재선 대통령의 외교정책에 관한 관심과 함께, 케리 국무장관의 성향을 고려할 때, 북한문제에 관한 미국의 개입은 과거보다 활발해 질 것이다. 미국은 6자회담과 같은 다자적 접근보다는 양자적 접근을 선호할 가능성이 있다. 북핵문제는 과거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워졌다. 북핵 피로감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만큼 아주 오래된 현안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목격하는 현실은 둔감해질수록 북한의 핵 능력은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인공위성 발사를 통해 장거리 미사일의 사거리를 연장하면서, 운반수단 분야의 협상도 미국이 외면하기 어려운 현실이 되었다.
2013년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북한은 이번 신년사처럼 자신의 길을 갈 것이다. 수령제 정치체제를 유지하면서, 점진적인 경제정책 변화를 시도하고, 군사력을 유지하면서 주변국의 외교 정책 변화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동북아 정세는 요동치고, 남북관계에서 풀어야 할 숙제는 산적해 있으며, 북핵문제는 산 넘어 산이다. 더 우려되는 점은 남남갈등이다. 우리안의 38선은 이미 구조화되었다. 통합은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정세변화에 대한 정확한 예측, 유능한 협상능력, 그리고 이념을 넘어서는 과감한 통합의 정치를 선택하지 않는다면, 2013년 한국 외교가 헤쳐가야 할 길은 매우 험난할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