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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다저스 해볼만한 모험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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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다저스 해볼만한 모험 걸었다

[배지헌의 그린라이트] 다저스의 절실함에 기대하는 이유

2573만7373달러 33센트. 류현진과의 우선협상권을 따내기 위해 LA 다저스가 제시한 금액이다. 다저스는 행운의 숫자 3과 7이 복잡하게 뒤섞인 거액의 포스팅비를 통해, 박찬호 시대 이후 오래간만에 '국민 메이저리그팀'이 될 채비를 마쳤다.

포스팅 결과가 발표되기 전까지, 다저스가 그와 같은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는 징조나 힌트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돌고 도는 이야기 속에는 텍사스나 시카고 컵스, 디트로이트, 또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이름만이 환청처럼 들려올 뿐이었다. 역대 포스팅 순위 4위에 해당되는 금액 또한 예상의 범주를 훌쩍 뛰어넘었다. 이전까지 한국 선수의 최고기록은 2002년 임창용의 65만 달러였다. 류현진이 한국 무대를 평정한 투수라는 점을 감안해도, 65만 달러와 2500만 달러의 차이는 진공관 컴퓨터와 태블릿 PC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멀게 느껴진다.

일본의 경우를 놓고 말하자면, 다르빗슈 유와 마쓰자카 다이스케 이전에도 수많은 성공과 실패 사례가 존재했다. 1964년 무라카미 마사노리를 시작으로 작년 이와쿠마 히사시까지 총 41명의 일본야구 출신 투수가 메이저리그 무대에 도전한 바 있다. 그래서 다르빗슈가 텍사스 유니폼을 입기 전에도 사람들은 과거의 사례와 일본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을 놓고 빅리그에서 어떤 성적을 낼지 어느 정도는 예측할 수 있었다.

반면, 류현진의 경우에는 모든 것이 안갯속에 가려 있다. 이전까지 한국프로야구에서 빅리그 직행에 성공한 사례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류현진의 활약 여부는 곧바로 미국야구가 한국프로야구의 수준을 측정하는 잣대가 될 공산이 크다. 류현진이 천웨인이 될지, 이가와 케이가 될지 예측할 만한 비교 대상이나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불확실성은 –비록 류현진의 기량에 대한 확신이 있다 하더라도- 거액을 투자하는 구단 입장에서 보면 굉장한 모험이다.

▲메이저리그 LA 다저스행을 앞둔 류현진 선수가 14일 오후 인천공항에서 출국에 앞서 손들어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다저스는 왜 이런 모험을 하는 것일까?

다저스는 최근 세 시즌 동안 가을야구를 경험하지 못했으며, 월드시리즈 무대를 경험한 것은 우승을 차지한 1988년이 마지막이다. 올 시즌에는 시즌 중반 이후 애드리안 곤잘레스, 조시 베켓, 핸리 라미레즈 등 거물급 선수를 대거 영입하며 우승 도전에 나섰지만 포스트시즌 진출에는 실패했다. 다저스가 주춤하는 사이에 '숙적' 자이언츠는 최근 3년간 두 차례나(2010, 2012) 월드시리즈 우승을 달성하며 크게 앞서나가고 있다. 여기에 인근의 LA 에인절스가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면서, 서부지역 최고 인기 팀의 지위는 더욱 위태로워졌다. 다저스 입장에선 성적과 인기의 두 마리 토끼를 되찾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야 할 처지다.

이에 다저스는 올 겨울에도 트레이드와 FA 영입을 통한 대대적인 전력보강을 계속할 전망이다. 자금력은 넘쳐난다. 구단주가 '사기꾼' 매코트에서 마크 월터의 투자자 그룹으로 바뀌었고, 2억 달러 규모의 새로운 중계권 계약도 앞두고 있다. 한때 급감했던 관중 입장 수입도 올해 다시 상승세로 돌아서면서 투자에 더욱 여유를 갖게 됐다. 이미 다저스는 보스턴과의 트레이드로 데려온 선수들의 잔여연봉(2억6000만 달러)을 거의 대부분 떠안았으며, 이로 인해 2013년 선수단 연봉총액은 양키스를 훌쩍 뛰어넘는 메이저 전체 1위가 확실시된다. 또한 구단 사상 최초로 사치세(1억8900만 달러 이상)를 물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올 시즌 다저스의 실패는 마운드보다는 팀 wOBA(weighted On Base Average, 타자가 한 번 타석에 들어설 때 팀의 득점 기대값 상승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 전체 26위로 뒤쳐진 부진한 타선이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이에 다저스는 케빈 유킬리스 영입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고 투수진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저스 선발투수진은 기록상으로는 메이저리그 최정상급(평균자책 3위)처럼 보이지만, 월드시리즈 우승에 도전할 만큼의 깊이를 갖추지는 못했다.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는 시즌 막판 부상으로 수술까지 고려했고, 채드 빌링슬리 역시 팔꿈치 쪽에 폭탄을 단 채로 버티고 있다. 크리스 카푸아노는 후반기에 크게 무너졌고(전반기 평균자책 2.91/후반기 4.76), 조시 베켓은 심각한 부진에 시달렸다. 테드 릴리는 적지 않은 나이에 부상으로 시즌 후반에나 복귀가 예상된다.

워낙 선발진 전원에 물음표가 가득해서, 이들 모두가 내년 시즌 내내 건강하게 마운드를 지켜준다는 보장을 하기 어렵다. 보통 페넌트레이스를 치르다 보면 선발투수 1~2명은 부상이나 부진으로 이탈하게 마련이다. 당연히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 커쇼 하나를 제외하면, 나머지 선발투수들이 다른 상위권 팀들을 압도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어떤 식으로든 선발투수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실정이다.

결국 류현진 영입전에서 다저스가 거둔 승리는 이렇게 봐야 할 것이다: 우승을 목표로 하는 다저스는 선발투수를 비롯한 전력보강이 절실했고, 이를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돈을 쏟아부을 수 있는 자금력과 적극성을 모두 갖췄다. 아마 다저스는 좋은 선수를 데려올 수만 있다면 한국이 아니라 그린란드나 51구역이라도 기꺼이 찾아가 경쟁자들보다 높은 금액을 내놓았을 거다. 보스턴이 마쓰자카를, 텍사스가 다르빗슈를 영입할 때 그랬듯이, 포스팅 경쟁에서는 이렇게 절실하면서도 과감한 팀들이 승리를 거두곤 한다.

2500만 달러가 넘는 거대 규모의 포스팅 금액을 감안하면, 내년에 MBC 스포츠플러스가 25회 이상 류현진의 선발등판 경기를 중계방송하는 건 기정사실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각자 이런저런 문제점이 있긴 하지만, LA의 기존 선발 5인은 뛰어난 커리어를 지닌 10승이 보장된 투수들이다. 이들 중에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되거나, 부상을 당하는 선수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들과 경쟁을 펼쳐 선발 자리를 따내야 한다. 놀랍게도 다저스는 류현진 베팅 이후에도 계속해서 선발투수를 찾고 있으며, 거기에는 잭 그레인키와 구로다 히로키, 아니발 산체스 등 놀라운 이름들이 포함되어 있다.

류현진과의 계약을 윈터미팅 이후로 미룬다는 다저스 측의 언급도 의미심장하다. 여기서 선발투수 추가영입이나 기존 선발진의 트레이드 등을 최대한 시도해 본 뒤에, 그에 맞춰 류현진의 계약조건이 정해질 가능성이 높다. 다저스는 앞으로 몇 년은 얼마든지 돈을 뿌려댈 준비가 되어 있는 팀이다. 만일 다저스가 더 좋은 선발진의 대안을 찾아낸다면, '선발' 류현진에 대한 절실함은 포스팅 이전 같지 않을 수도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순조롭게 안착하려면 가급적 많은 연봉을 받으면서 '메이저리그 선발투수'를 보장받는 조건으로 계약하는 편이 유리하다. 이미 류현진의 에이전트 보라스는 '류현진의 선발기용 여부'가 계약의 중요한 요건이 될 것임을 시사했다. 물론 포스팅액이 워낙 크고 선수 본인의 미국진출 열망이 강하기에 계약이 불발되는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협상 테이블에서 구단 측이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되는 건, 류현진과 보라스에겐 그리 유쾌한 시나리오는 아닐 것이다.

어쨌든 중요한 건 류현진 본인이다. 유리한 계약을 맺고 선발진에 안착하는데 일단 성공하면, 다저스 유니폼은 류현진에게 다양한 형태의 축복을 가져다줄 것이다. 따뜻한 날씨와 투수친화적인 구장, 교민들의 응원, 높은 인기와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 같은 것들. 그리고 류현진이 주어진 기회에서 자신의 가치를 확실하게 입증해 보이면, 그 뒤부터는 모든 일이 행복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것이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류현진은 노모 히데오-다르빗슈와 같은 나이인 27세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하게 된다. 역사상 아시아권 투수 중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할 때 만 26세 이하였던 투수는 단 5명에 불과했다. 류현진은 젊은 나이 외에도 기본적으로 좋은 투구 메커니즘과 변화구를 던지는 감각, 동양인 투수로는 수준급의 체격조건과 쇠기둥처럼 단단한 멘탈을 지녔다.

흔히 프로야구 스카우트들은 "아마추어에서 야구를 잘하는 선수가 아니라, 프로에 가서 잘할 수 있는 선수를 뽑는다"고 말한다. 류현진을 주시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 역시 한국 프로야구에서 류현진의 모습이 아닌, 미국에서 빅리그 타자들을 상대로 한 류현진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며 보고서를 작성했을 것이다. 프로야구에서 지금껏 류현진은 좀처럼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기 힘든 환경에서 야구를 해왔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일본 진출 이전의 선동열과도 같은 정체된 상태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 강력한 타자와 투수들을 상대로, 치열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을 펼친다면 그 과정에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은 결과를 낼 수도 있다. 어쩌면 미국에서의 도전은, 지금껏 봉인되어 있던 류현진의 잠재력을 몇 단계 위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다저스가 조금만 인내심을 갖고 충분한 시간을 준다면, 류현진은 자신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 투수임을 증명할 것이며 갈수록 더 발전할 것이다. 류현진과 다저스, 양쪽 다 충분히 해볼 만한 모험을 걸었다.

www.futuresba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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