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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외정책 변화는 미국 대중들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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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외정책 변화는 미국 대중들로부터

[월러스틴의 '논평'] 미국은 '슈퍼파워'가 아니다

미국의 대외정책과 미국의 여론
(U.S. Foreign Policy and American Public Opinion)


미국 대선이 다가오면서 미 정부의 대외정책이 조심스럽게 선거 이슈의 하나가 되고 있다. 지난 반 세기동안 미국의 대외정책에는 장기적으로 확고한 일관성이 있었다는 건 비밀이 아니다. 미국 내부에서 (대외정책에 대한) 가장 첨예한 불화가 빚어졌던 건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이 돼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함으로써 미국의 세계 지배를 재현하려는 마초적이고, 계획적으로 일방적인 시도를 했을 때였다.

부시와 네오콘들은 미 정부가 우호적이지 않다고 간주한 각국 정권을 교체하는 데 미국의 군사력을 사용함으로써 전 세계 사람들이 겁을 먹길 바랐다. 이러한 네오콘들의 정책 목표가 실패했다는 건 오늘날 명확해진 것으로 보인다. 모두가 겁을 먹는 대신, (네오콘들의) 정책은 서서히 쇠퇴하던 미국의 힘이 급격히 쇠퇴하게 만들었다. 2008년 오바마는 이러한 정책에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했고, 2012년 그는 자신이 약속을 지켜 네오콘들이 초래한 피해를 되돌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정말 피해를 되돌렸나?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글쎄다. 하지만 필자의 의도는 미국의 대외정책이 얼마나 성공적인지 아닌지를 논의하는 게 아니다. 그것보다는 미국인들이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다루고 싶다.

▲ 말레이시아 인근에 있는 미 항모 조지워싱턴호에 있는 전투기들. ⓒAP=연합뉴스

현재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을 보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불확실성과 투명성의 결여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부시의 중동에 대한 군사 개입이 실수였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처음으로 다수를 차지했다. 이들은 미국이 (자국인들의) 생명과 돈을 바쳐 얻은 결과가 부정적이었다는 걸 알게 된 것 같다.

응답자들은 이라크 정부가 미국보다는 이란에 감정적으로, 그리고 정책적으로 가까워졌다고 여긴다. 이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 동조하는 많은 이들이 군대에 잠입해 함께 일하는 미군을 향해 총을 쏘는 등 아프간 정부가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놓였다는 점을 안다. 이들은 미군이 2014년까지 약속한 대로 (아프간에서) 철수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들은 미군이 철수한다고 해서 (아프간에) 안정적인 정부가 들어서고, 그 정부가 미국에 우호적일 것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양당) 부통령 후보가 벌인 논쟁에서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가 미군이 이란으로 파병될 일은 없을 것이라고 힘주어 주장했다는 점은 중요하다. 그리고 공화당의 폴 라이언 부통령 후보는 공화당의 누구도 파병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두 후보 모두 자신의 입장에 대해 진실을 얘기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다만 두 후보 모두 자신들이 지상군을 해외에 보낸다고 말하면 유권자의 표를 깎아먹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은 안다.

그러면 어쩌라는 말인가? 바로 이게 문제다. 미국의 개입이 실수였다고 말하는 똑같은 사람들이 미국 군사력의 범위를 유지하거나, 혹은 확장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아직까지 받아들일 준비가 결코 되어 있지 않다. 미 의회는 계속해서 미 국방부가 요구하는 것보다 더 많은 예산을 책정하고 있다. 부분적으로 이는 군대와 연계된 일자리를 유지하고 싶은 의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미국은 유일한 슈퍼파워라는 신화가 여전히 사실상 모든 이들의 마음에 매우 강력하게 남아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고립주의가 서서히 진행될 가능성이 있을까? 어느 정도는 확실하다. 게다가 극좌, 극우 진영의 유권자들은 다른 세계에 대한 미국의 군사 개입을 줄여나갈 필요성과 타당성을 보다 강하게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장으로서는 그들의 주장이 아직 강력하지는 않다고 본다.

그보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미국인들이 특정 동맹관계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점진적이고 조용하게(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중요하게) 바뀌는 것이다. 유럽 외면 현상은 매우 오랜 시간 동안 진행되어 왔다. 유럽은 지난 70년 간 군사·경제적으로 미국이 그들에게 준 모든 도움에 왠지 '감사할 줄을 모르는' 존재로 여겨진다. 많은 미국 시민들에게 유럽은 미국의 정책을 지지하기를 매우 꺼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군은 현재 독일 등에서 철수하고 있다.

물론 유럽이라는 말은 큰 범주에 속한다. 평범한 미국인이 (과거 소련의 위성국가였던) 동유럽에 대해 다른 시각을 보일까? 아니면 미국이 '특수 관계'를 가져야만 하는 영국에 대해서는? '특수 관계'는 미국보다는 영국의 주문(mantra)이다. 미국은 영국이 시키는 대로 할 때 보상을 주고, 그렇지 않을 때는 주지 않는다. 그리고 평범한 미국인은 이러한 지정학적 약속에 대해 거의 인지하지 않는 것 같다.

동유럽은 다르다. 동유럽 국가들은 (미국과 유럽) 양쪽으로부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자는 실제 압력을 받는다. 미국 정부는 동유럽 국가들이 서유럽 국가들에 반해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을 보이도록 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짜는데 관심이 있다. 여기에는 이들 국가 출신 이민자들의 후손으로부터 관계를 확장하는 압력도 나왔었다. 그러나 동유럽 국가들는 미국의 군사적 지원이 줄어들고 있고, 그럼으로써 (미국에 대한) 신뢰가 떨어짐을 느끼기 시작했다. 동유럽 국가들은 또 독일을 위시한 서유럽 국가들과의 경제적 관계가 보다 중요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불법 이민자로 인한 멕시코에 대한 반감은 미국의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이론상으로 밀접한 멕시코와의 경제적 관계를 약화시키고 있다. 나머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는 독립적인 지정학적 입지가 커지면서 미 정부에게는 불만의 원천이, 미국 대중에게는 조바심을 내는 원인이 됐다.

아시아를 보면 비록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정부 차원에서는 막으려고 노력했지만 소위 중국 때리기가 계속 인기를 얻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영국에서는 환영하는 투자를 미국에서는 일부 제한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중동이 있다. 현재 초점은 이란에 맞춰져 있다. 라틴 아메리카와 마찬가지로 미 정부는 선택지가 제한되어 있다는 점 때문에 불만스러워 보인다. 이스라엘은 미국에 더 많은 행동을 더 취하라고 계속해서 압력을 넣고 있다. 아무도 '더 많은'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것은 적어도 1967년 이후 미국 대외정책의 핵심이었다. 그러한 정책에 감히 도전하는 이들은 소수였다. 하지만 그 '소수'는 이스라엘 정치권이 미군의 이익 차원에서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미군 측 인사들의 공개적인 지지를 점점 더 받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가 앞으로 10~20년 동안 수그러들지 않고 지속될까? 이스라엘은 미국이 마지막까지 지켜주는 나라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수그러질 게 거의 확실하다.

아마도 2020년이면, 확실하게는 2030년까지 미국의 대외정책은 자신이 유일한 슈퍼파워가 아니라 소수의 강대국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수용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러한 세계관의 변화는 자국의 국경 밖에서 벌어지는 문제보다는 자기 자신의 경제적 안녕을 좀 더 우려하고 있는 평범한 미국인들의 진화한 관점에 의해 추동될 것이다. '아메리칸 드림'에 이끌리는 비(非) 미국인들이 점점 더 줄어듦에 따라 미국 내부는 변하고 있다.


* <월러스틴의 '논평'>은 세계체제론의 석학 이매뉴얼 월러스틴 예일대 석좌교수가 매달 1일과 15일 발표하는 국제문제 칼럼을 전문번역한 것입니다. <프레시안>은 세계적인 학자들의 글을 배급하는 <에이전스글로벌>과 협약을 맺고 월러스틴 교수의 칼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0월 15일 논평 원문보기)

* 저작권 관련 알림: 이 글의 저작권은 이매뉴얼 월러스틴에게 있으며, 배포권은 <에이전스 글로벌>에 있습니다. 번역과 비영리사이트 게재 등에 필요한 권리와 승인을 받으려면 rights@agenceglobal.com으로 연락하십시오. 승인을 받으면 다운로드하거나 전자 문서로 전달하거나 이메일로 보낼 수 있습니다. 단 글을 수정해서는 안 되며 저작권 표시를 해야 합니다. 저자의 연락처는 immanuel.wallerstein@yale.edu입니다. 월러스틴은 매월 2회 발행되는 논평을 통해 당대의 국제 문제를 단기적인 시각이 아닌 장기적인 관점에서 조망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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