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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한대화ㆍ김시진…'감독대행'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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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한대화ㆍ김시진…'감독대행' 잔혹사

[배지헌의 그린라이트] 한화와 넥센의 선택, 옳았을까?

정부조직법 제12조에는 대통령의 유고시 권한대행 서열이 나온다. 최우선 순위는 국무회의 부의장인 국무총리다. 총리마저 자리에 없을 때는 재정경제부 장관-교육인적자원부 장관-과학기술부 장관이 순서대로 직무를 대행한다. 그래서 2004년 3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탄핵됐을 때, 두 달 동안 직무를 대행한 것은 고건 당시 총리였다. 고 총리 외에도 허정, 박정희, 최규하 등이 공화국 수립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낸 대표적인 이름이다.

야구에도 권한대행이 있다. 시즌 중 갑작스럽게 사령탑이 물러나면, 구단에서는 코칭스태프 중 한 명에게 감독대행을 맡겨 남은 시즌을 마무리한다. 서열에 대한 관계법령은 따로 없다. 대개 자리를 이어받는 것은 1군에서 시즌을 함께 해 온 수석코치다. 수석코치까지 같이 물러난 경우에는 2군 감독이 자리를 대신할 때도 있다.

국가적 비상사태를 수습해야 하는 대통령 대행과 마찬가지로, 감독대행도 직무를 수행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감독대행은 팀 성적과 분위기가 최악인 상태에서 자리에 앉게 된다. 올해만 끝나면 물러날 사람이라는 인식 탓에 선수단을 장악하기도 쉽지 않다. 무난한 수습이 최우선인 자리의 특성상 자기 색깔을 마음껏 보여줄 수도 없다. 전 감독에 대한 예우도 생각해야 한다. 이래저래 고달픈,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자리다.

▲넥센 히어로즈와 한화 이글스를 맡았던 김시진, 한대화 감독이 물러났다. 넥센은 김성갑 수석코치를, 한화는 한용덕 수석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임명했다. 사진은 지난해 경기를 앞두고 대화하고 있는 넥센 김시진(왼쪽) 전 감독과 한화 한대화 전 감독. ⓒ연합뉴스

프로야구 최초로 감독대행을 지낸 이는 1982년 삼미 이선덕 코치. 박현식 원년 감독이 초반 13경기에서 3승 10패 부진 끝에 퇴진한 뒤 4월 27일부터 자리를 대신했다. 그러나 감독교체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대행 체제로 운영된 나머지 시즌 삼미는 67경기 12승 55패로 1할7푼9리의 처참한 성적을 올렸고, 삼미의 시즌 최종 승률 .188는 앞으로도 영원히 깨지지 않을 프로야구 최저 승률 기록으로 남아 있다. 시즌 뒤 삼미는 김진영 감독을 새 사령탑에 선임했지만, 이듬해 6월 김 감독이 심판폭행으로 구속되며 무려 세 명의 감독대행이 남은 시즌을 대신 메워야 했다. 삼미-청보-태평양으로 이어진 프랜차이즈는 총 8명의 감독대행을 탄생시켜 MBC-LG와 함께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성적이 좋으려야 좋을 수가 없다.

이선덕 대행 임명 이틀 뒤에는 해태에서 두 번째 감독대행이 탄생했다. 김동엽 초대 감독이 코치진과 불화 끝에 일선에서 물러났고, 1982년 4월 29일부터 조창수 코치가 남은 시즌을 마무리했다.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조창수 대행은 67경기에서 33승 34패로 5할 가까운 승률을 올렸다. 조창수 코치는 나중에 삼성에서도 또 한 번 감독대행을 지냈다. 백인천 감독이 건강 문제로 들락날락한 1997년, 시즌 중반과 막바지에 대행으로 도합 22승 17패를 기록했다. 팀은 1993년 이후 4년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준플레이오프에서 쌍방울을 꺾은 뒤 플레이오프에서도 LG를 상대로 2승 3패로 선전했다. 두 차례의 감독대행 임무를 무난하게 수행한 것이다.

그러나 조 대행에겐 '하늘만이 점지해 준다'는 감독직의 운은 따르지 않았다. 1982년이 끝난 뒤 해태는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김응룡을 감독에 선임했다. 1997년에도 시즌 뒤 삼성은 서정환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앉혔다. 김응룡 감독은 부임 첫해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며 통산 9차례 우승의 위업을 달성했지만, 서정환 감독의 삼성은 임창용, 김기태, 김현욱을 줄줄이 영입하고서도 우승에는 실패했다. 만약 조창수 대행에게 계속 기회가 주어졌다면,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전임 감독보다 좋은 성적을 거둔 최근의 사례는 2011년 두산 김광수 감독대행(현 고양 원더스 코치)이다. 수석코치였던 김 대행은 팀이 23승 2무 32패로 6위로 떨어진 상태에서 지휘봉을 잡았다. 이런저런 사건으로 어수선한 팀 분위기를 잘 수습한 끝에 남은 76경기 38승 38패로 승률 5할을 기록했다. 역대 감독대행 중 두 번째로 긴 기간 동안 (1위 2001년 김성근 98경기) '대행' 꼬리표를 달고 고군분투했지만, 정작 감독직은 김진욱 투수코치에게 돌아갔다.

이들과 달리 감독대행에서 정식 감독으로 승격하는 사례도 있다. 올해를 제외하고 역대 감독대행을 지낸 인사는 총 37명. 이 중 14명이 대행 딱지를 떼고 감독석에 앉는데 성공했다. 최초의 대행 출신 감독은 강병철 롯데 감독. 강 감독은 1983년에 박영길 감독이 22승 1무 27패의 성적을 남기고 사퇴하자 7월 26일부터 팀을 맡아 시즌을 마무리했다(21승 29패). 그리고 이듬해 정식 감독으로 취임, 부임 첫해 한국시리즈 우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이후 강 감독은 1986년까지 롯데 감독을 지냈고, 1991년 다시 롯데 지휘봉을 잡고 이듬해 또 한번 한국시리즈를 재패했다. 롯데가 30년동안 이룬 두 차례의 우승은 모두 강병철 감독의 작품이다. 역대 감독대행 최고의 성공사례인 셈이다.

운명이란 알 수 없는 것. 이후 한화 사령탑에 오른 강병철 감독은 1998년 29승 2무 33패의 저조한 성적으로 시즌 도중 경질됐다. 한화가 사령탑을 시즌 중에 교체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뒤를 이어받은 이는 이희수 감독대행. 이 대행은 26승 3무 33패로 전임 감독보다 성적은 저조했지만 이듬해인 1999년 정식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리고 그해 매직리그 2위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한 뒤, 두산과 롯데를 차례로 물리치고 팀에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안겼다. 또 하나의 감독대행 성공사례가 탄생한 것이다.

그 외에도 강태정(1986년), 윤동균(1991년), 천보성(1996년), 김명성(1998년), 김성근(2001년), 백인천(2002년), 유남호(2004년), 서정환(2005년) 등이 대행에서 감독으로 승격한 대표적인 사례. 하지만 대부분은 감독이 된 이후 운이 따르지 않았다. 1987년 정식으로 취임한 강태정 감독은 1988년 첫 15경기에서 1승 14패를 거둔 뒤 자리에서 물러났다. 윤동균 감독은 1994년 시즌 말미 선수단 항명 사태로 아쉽게 퇴진했다. 김명성 감독은 1999년 준우승을 이뤄냈지만 2001년 시즌 도중 유명을 달리했다. 김성근 감독은 2002년 전력이 약한 팀을 끌어올려 준우승까지 해내고도 자리에서 물러났다. 백인천 감독은 재임기간 41승 3무 119패로 최악의 성적표를 남긴 채 사퇴했다. 유남호 감독은 김성한 전 감독의 자리를, 서정환 감독은 유남호 감독의 자리를 물려받았지만 이후 중도사퇴의 아픔을 맛봐야 했다.

▲18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2 팔도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넥센 히어로즈의 경기에서 넥센 팬들이 '히어로즈팬은 김시진 감독님을 원합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응원을 하고 있다. ⓒ뉴시스

성공한 감독대행, 또는 감독대행 출신 감독이 좀처럼 보기 드문 이유는 무엇일까. 한 야구인은 "감독대행의 불안정한 지위"에 대해 지적했다. 감독은 팀 운영의 전권을 쥐고 '보스' 역할을 해야 하는 자리다. 감독을 하려면 때로는 선수와 코치에게 달갑지 않은 지시를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감독의 일을 하지만 지위는 감독이 아닌 애매한 위치의 대행은 이런 힘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선수와 코치들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면,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구단이나 주위에서 차기 감독을 놓고 이런저런 소문이 흘러나오면 대행의 자리는 더욱 가시방석이 된다. 이따금 감독직에 대한 욕심에 무리한 선수 기용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럴 경우 자신이 정식 감독이 된 뒤에 고스란히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해법은 없을까. 어쩌면 감독대행이라는 자리 자체가 문제일지 모른다. 감독대행을 경험한 한 야구인은 "시즌이 얼마 남지 않은 경우라면 어쩔 수 없지만, 시즌이 많이 남은 상황에서도 대행 체제를 가져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견해를 밝혔다. 그보다는 차라리 메이저리그처럼 일찌감치 정식 감독을 선임해서 팀을 수습하고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편이 낫다는 얘기다. 선수들 입장에서는 내년에도 봐야 할 감독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감독 역시도 내년 시즌을 생각하면 투수혹사나 부상선수 기용을 자제하게 마련이다. 또 선수를 파악하고 마무리훈련과 동계훈련 등을 구상하는데 드는 시간도 단축할 수 있다. 일단 대행을 시킨 뒤 남은 시즌 동안 하는 거 봐서 기회를 준다는 식으로는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가장 근본적으로는, 구단이 감독에게 약속한 계약기간을 지켜야 한다. 그래야 숱한 감독사퇴와 감독대행의 잔혹사를 끊을 수 있다.

올해도 프로야구에서는 두 명의 감독이 시즌 도중 타의에 의해 옷을 벗었다. 하나같이 강한 전력과는 거리가 먼 팀을 맡았지만, 구단에서는 제대로 된 전력도 갖춰주지 않고서 '성적부진'의 책임을 감독에게만 물었다. 그 자리를 한용덕(한화), 김성갑(넥센) 코치가 물려받았다. 한용덕 대행은 부임 이후 깜짝 놀랄 선전을 거듭하며 9승 6패를 기록 중이다. 김성갑 대행 역시 18일 데뷔전을 1-0의 짜릿한 승리로 장식했다. 한화와 넥센 모두 차기 감독은 내부승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동기부여는 확실한 상황이다. 과연 시즌이 끝난 뒤, 두 감독대행의 운명은 어떻게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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