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처럼 '노동'의 가치가 땅바닥에 떨어진 시대는 없는 듯하다. '노동은 신성'하다는 말은 옛말이 되었다. 과거 봉건시대 영주들은 자신에게 소중한 노동력인 농노를 보호하려 하였다. 하지만 이제 노동자는 핵심인력 일부를 제외하고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다. 지그문트 바우만(Zygmund Bauman, 2004)이 지적한 것처럼 '소비주의' 시대에서 '근로 윤리'는 기만에 불과한 것이 되었다. 언제고 잘릴 각오를 해야 하는 이들에게 성실성은 오히려 억울한 감정과 갈등만을 불러일으키는 불필요한 덕목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자본주의가 필요로 하는 인간상은 열심히 일하는 이들이 아니라 돈을 번 수단이 어찌되었든 과시적 소비를 통해 자신을 뽐내는 이들이다. 나머지는 그 유능한 몇몇 사람들 덕분에 감사하게도 배를 곪지 않을 수 있는 가련한 이들에 불과하다. 그들에게 민주주의의 권리는 몇 년에 한 번씩 선거가 있을 때만 잠깐 적용되는 이야기다. 그래서 한국에서 복지국가는 무엇보다 땅에 떨어진 노동의 가치와 인간성을 회복하는 목적을 가져야 한다.
제대로 된 복지국가에서는 적어도 땀 흘려 일을 하면 미래에 대한 불안 없이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현실은 일을 해도 미래는 불안하기 이를 데 없다. 기초생활보장 급여를 받아야 할 만큼 열악한 집안 환경으로 인해 자력으로 대학을 졸업한 뒤 전임으로 학원 강사 일을 하는 친구는 졸업 후 3년 동안 열심히 일했음에도 수중에 남는 게 없다고 하소연한다.
이런 상황은 중산층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임금을 비교적 많이 받아도 충분치 않다고 느낀다. 교육, 주거, 의료 등의 필수적 사회서비스를 구입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시장의 이원화로 인해 패자부활이 힘들어 자신과 자녀의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복지국가가 가장 발달한 스웨덴의 경우 교육, 주거, 의료 등의 사회서비스를 모든 이에게 충분히 제공하므로 비교적 낮은 수준의 임금으로도 높은 수준의 삶을 누릴 수 있다.
왜 보편적 복지국가인가?
빈곤의 예방 및 완화의 관점에서 보편적 복지국가가 필요한 이유는 그것이 빈곤을 효과적으로 예방·완화하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에게 집중적으로 자원을 투입하여 복지재정을 줄이고 빈곤을 완화한다는 식의 선별적 빈곤구제 전략은 거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선별적 빈곤구제 전략을 채택한 미국과 미국식의 복지국가 퇴보를 경험한 영국에서 빈곤율이 가장 높음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선별적 빈곤구제 전략이 가정하고 있는 빈곤층에 대한 전제가 틀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선별적 빈곤구제 전략이 미치는 정치적 효과가 '집중적으로 자원을 투입'한다는 생각과는 반대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첫째, 선별적 빈곤구제 전략은 빈곤층을 빈곤층이 아닌 인구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특수한 집단으로 상정하는 경향이 있다. 즉, 빈곤층을 비빈곤층 인구와는 애당초 다른 특징(선천적 능력, 행동적 특징, 가족구조 등)을 가진 정태적 집단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을 빈곤에서 구제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인도 등의 발전도상국과 미국과 같은 선진국을 통틀어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은 빈곤층이 결코 정태적 집단이 아니라는 것이다(Krishna, 2010). 빈곤으로의 추락과 탈피는 매우 흔한 현상이다. 빈곤위험이 일부 집단에서 높게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일부 집단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낮은 조세, 규제 완화, 작은 정부를 골자로 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1990년대 중반 3년 동안 OECD 국가들의 자료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조사는 조사 이전에는 빈곤하지 않았던 인구의 5%가 매년 빈곤층으로 추락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반대로 매년 빈곤인구의 50%는 빈곤 탈피를 경험하였다. 그리고 보다 포괄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복지국가가 매년의 빈곤인구뿐만 아니라 빈곤의 지속 역시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OECD, 2001).
결국 빈곤을 예방하는 기능이 있는 보편적 복지 정책이 발전하지 못했을 때 빈곤층만을 '선별적'으로 '집중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이야기는 단기적인 대증 요법이 되기 십상이다.
둘째, 선별적 빈곤구제 전략은 필연적으로 빈곤층에 대한 편견과 멸시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집중적' 지원의 본래 생각과는 반대로 빈곤의 예방과 완화에 투입되는 자원의 총량이 감소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1960년대 '빈곤과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에서 매우 뚜렷하게 나타나는 경향이다.
현재 미국에서 '복지'(welfare)라는 단어는 마약에 중독된 흑인과 무책임하게 아이만 낳는 한모가구 등 일부 빈곤층만 수급 받는 '공공부조'와 같은 개념으로 매우 수치스러운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이는 미국인의 심성이 특별히 악해서가 아니라 납세자와 수혜자가 명백하게 분리되는 시스템 하에서 납세자의 복지제도에 대한 지지도가 매우 낮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Skocpol, 1990).
아무리 선별적 빈곤구제 전략이라고 해도 그것은 임의적이고 일시적인 자선과는 성격이 다르다. 즉, 누군가의 지속적인 세금부담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는 매년 7조 원이 넘는 예산이 조세에서 충당되고 있다. 그런데 보편적 복지제도가 발달하지 않은 조건에서 납세자는 자신에게 닥칠 미래의 위험에 대비하여 사보험에 가입하거나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하려 할 것이다. 이들은 조금이라도 세금부담을 줄여 개인적으로 각종 위험에 대처하길 바란다.
그런데 적지 않은 세금부담을 짊어지는 중산층 납세자들은 공공부조와 같은 '선별적' 복지제도를 통해 이득 볼 게 없다. 따라서 선별적 복지제도에 대한 지지가 낮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아무래도 전체 인구에 비해 선별적 복지제도의 수혜자들 가운데 한부모, 소수인종, 장기실업자들의 일부 집단이 과대 대표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선별적 복지'에 대한 인식도 악화될 수밖에 없다.
선별적인 복지제도를 강조하는 국가의 복지 총량(사회보험, 공공부조, 복지서비스 등에 투여되는 자원의 총량)은 보편적인 복지제도가 발달한 국가의 복지 총량에 크게 못 미치기 때문에 오히려 빈곤층이 향유할 수 있는 자원도 적어지는 '재분배의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Korpi and Palme, 1998).
빈곤을 예방·완화하기 위한 역동적 복지국가의 과제
현재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15% 수준으로 OECD 국가 가운데 최상위 권에 속한다.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하는 '절대적 빈곤율'도 약간의 등락에도 불구하고 1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거칠게 추산하면 약 500만 명이 절대빈곤, 약 750만 명이 상대빈곤 상태에 처해 있다. 그리고 상식과는 달리 소득이 아니라 자산을 기준으로 측정한 빈곤율은 더 높게 나타난다(남상호, 2007, 2011).
빈곤의 예방과 완화가 복지국가의 일차적 과제라 한다면, 이는 방치해서는 안 될 문제이다. 그렇다면 빈곤을 예방·완화하는 데 있어 역동적 복지국가가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이 글에서는 주로 세대별 빈곤 위험의 전이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현재 빈곤이 가장 심각한 집단은 노인이다. 외환위기 이후 실업이 늘어나고 고용상황이 악화되면서 자녀의 용돈에 의지하던 노인세대의 빈곤율이 급상승했다. 외환위기 극복 이후에도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노동시장의 열악한 상황은 개선되지 못 하고 공적 지원의 확대는 사적 이전의 감소에 상응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현재의 근로연령세대 역시 상당수는 노인세대가 되어 빈곤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저임금 불안정 노동에 종사하는 상당수의 근로연령세대 인구가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또, 120개월의 기여기간을 충족해도 납부액이 적어 충분한 지원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즉, 앞으로도 빈곤율 상승을 압박하는 요인은 근로연령세대의 빈곤위험과 노인세대의 빈곤위험이 악순환하는 데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급속한 노령화와 연금재정의 팽창 때문에 사후적 소득보장만으로 대처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효과적으로 빈곤을 예방·완화하기 위해서는 사회보험의 내실화와 함께 빈곤을 예방하는 사전적인 정책의 강화가 필요하다. 그 구체적인 방향으로 나는 여성의 고용률 제고,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강화, 사회적 기업의 활성화를 제시하고자 한다.
일-가정 양립 정책을 통해 여성의 고용율을 높여야
첫째,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는 지금도 근로연령세대 가구의 빈곤을 완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여성고용률은 OECD 국가 평균 수준에도 미치지 못 하고 있다(<표 2> 참조). 25~54세 여성의 고용률이 특히 낮은 것은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어려운 열악한 환경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여성이 충분히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현재 가구의 소득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또한 여성의 노후준비를 어렵게 만들어 노인빈곤의 가능성을 높인다. 현재 베이비부머(1955~1963년 생) 여성 374만 1천 명 가운데 10년 이상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한 이는 불과 49만 명(12.8%)에 불과하다. 그리고 1~9년 납부자가 176만 5천 명(47.2%), 그리고 납부 이력이 전혀 없는 인구가 149만 6천명(40%)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베이비부머 남성의 54.3%, 34.8%, 10.9%와 대조적이다(국민연금공단, 2011).
그런데 여성은 남성보다 평균 7년이나 더 살고, 부부 연령차가 보통 3~4년이므로 평균 10년을 혼자서 살아가야 한다. 계속해서 이와 같은 여성의 '낮은 고용률-낮은 국민연금 가입률'이 지속된다면 노인 가구, 특히 그 중에서도 홀몸여성노인의 빈곤위험이 매우 높게 지속되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따라서 더 많은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참여하고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무상보육과 같은 일-가정 양립 정책들이 꾸준히 추진되어야 한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 중요한 이유
둘째,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란 실업에 처한 이들이 괜찮은 일자리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교육, 훈련, 취업알선 및 구직급여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OECD, 2011). 그런데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가운데 지난 1년 동안 교육·훈련을 경험한 이의 비율은 18.9%에 지나지 않았고, 평균 교육훈련 시간은 5.3 시간에 불과했다(김유선, 2011:96).
고용의 불안정과 저임금을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은 교육·훈련이 필요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제공되는 교육·훈련은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시 말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자기 계발조차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남겨져 있는 것이다. 영세 자영업자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영세 자영업자 가운데 사업 정리 후 취업 의사가 있다고 응답한 조사 대상자 가운데 34.2%가 취업에 필요한 기술과 능력이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그런데 전체 조사 대상자 가운데 66.8%가 정부의 교육 지원 정책이 존재하는지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중소기업청, 2010).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평생교육의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근로연령세대에 머무는 동안 다양한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경험하는 것은 노후의 창업 또는 유급노동 참여에도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기업의 활성화를 통한 빈곤의 예방과 완화
셋째, 사회적 기업의 활성화는 근로능력이 미약한 근로연령 인구와 재고용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중·고령 인구에게 보다 안정적인 일자리와 소득원을 제공하는 방편이 될 수 있다. 2009년 현재 사회적 기업에 취업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월 평균 임금은 각각 132만 원과 93만 원이다(이정봉, 2010). 이는 전체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의 월 평균 임금 255만원, 120만원에 비해서는 상당히 낮지만, 1인 기준의 국민연금이나 국민기초생활보장의 평균 급여에 비해서는 높은 수준이다.
사회적 기업은 일자리의 제공뿐만 아니라 사회서비스의 제공,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에도 기여할 수 있다. 그리고 사회적 기업은 업무처리 능력의 향상, 대인관계의 향상 등 능력 향상에도 도움을 줄 수 있으므로 사후적 소득보장정책에 비해 큰 장점을 가진다. 또한 사회적 기업은 총사업비의 약 65%를 자체 매출액으로, 약 28%를 정부 지원금으로 충당(2008년 기준)하므로 전적으로 정부의 조세에 의지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비해 재정 부담이 덜하고 납세자와의 형평성의 측면에서도 장점을 가진다.
따라서 사회적 기업에 대한 지원을 단지 한시적인 일자리 제공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정부의 사회적 기업 관련 예산은 2009년 1,885억 원에서 2010년 1,487억 원으로 줄어들었다가 2011년 1,615억 원, 2012년 1,760억 원으로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또, 현재 정부의 사회적 기업 정책은 지나치게 자립에 방점을 두고 있다.
그러다보니, 정부의 재정 지원을 줄이는 데 목적을 두고 추진되어 사전적·예방적 빈곤정책으로서의 목적은 제대로 고려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신규창업 사업체의 절반이 3년 이내에 문을 닫고, 3분의 2가 5년 이내에 문을 닫는다는 점을 감안하여 사회적 기업이 본연의 역할을 다 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물론, 이상의 대안들은 소득보장에 치중한 것이다. 주거·의료·교육 등 필수적 사회서비스를 적절히 향유하는 데 드는 비용이 지나치게 높으면 사전적·사후적 소득보장을 아무리 충실히 한다고 해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는 힘들 것이다. 이는 다시 보편적 복지정책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 모든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예산의 확보가 필요할 것이다.
즉, 빈곤의 예방과 완화를 위해서는 혜택을 받는 대상자를 줄여 예산을 절감하는 게 아니라 상대적 예산 조정과 감세의 원상복구, 사회적 합의를 통한 점진적 증세를 통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인구가 삶의 과정에 닥치게 될 사회적 위험을 성공적으로 잘 극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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