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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과이 탄핵 사태, 브라질을 주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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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과이 탄핵 사태, 브라질을 주목하라

[월러스틴의 '논평'] 석연찮은 '사실상 쿠데타'

파라과이의 쿠데타: 누가 무엇을 얻었나?
(A Coup in Paraguay: Who Won What?)


2012년 6월 22일 파라과이 상원은 헌법상의 탄핵권을 발동해 대통령 해임을 결정했다. "대통령이 그의 직무와 관련해 초라한 성과를 올렸다"는 그 이유였다. (해임된) 대통령 페르난도 루고는 3년여 전에 당선됐으며 그의 임기는 내년 4월에 만료된다. 파라과이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연임할 수 없다.

파라과이 상원이 탄핵 사유로 꼽은 "초라한 성과"란 (탄핵 닷새 전인) 6월 17일 발생한 가난한 농업노동자와 경찰의 충돌사태를 말한다. 토지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점거 농성을 벌이던 농업노동자와 이들을 해산시키려 했던 경찰과의 충돌로 농민과 경찰 등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파라과이 상원은 6월 21일 루고 대통령에게 2시간의 변론 시간을 주는 것으로 탄핵절차를 시작했다(루고 대통령은 상원의 탄핵이 터무니없는 조치라며 변론을 거부했다). 그리고 다음날 표결을 통해 루고 대통령의 해임을 결정한 것이다.

부통령 페데리코 프랑코는 루고 대통령과는 다른 정당 소속이다. 하지만 2008년 대선에서 그는 60여년간 권력을 장악해온 콜로라도당에 승리하기 위해 루고의 러닝메이트로 나섰다. 부통령에 취임한 이후 프랑코는 루고 대통령의 정책들을 일관되게 반대해 왔다. 파라과이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이 궐위됐을 경우 부통령이 자동적으로 그 직을 승계하게 돼있다. 이번 쿠데타로 프랑코 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이다.

루고는 이번 탄핵이 쿠데타라고 주장한다. 기술적으로 불법(illegal)은 아니지만 결단코 '정당하지 않다'(illegitimate)는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의 거의 모든 정부가 이 분석에 동의했고, 그의 축출을 비난했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파라과이와의 관계를 끊었다. 무엇이 이번 쿠데타를 초래한 것일까? 이번 사태를 주도한 사람들은 무엇을 얻으려 했던 것일까? 이들을 지원한 세력은 누구일까? 이번 사태는 파라과이와 라틴아메리카, 나아가 세계에 어떤 실질적 결과를 낳을 것인가?

▲ 페르난도 루고 전 파라과이 대통령. ⓒ로이터=뉴시스

파라과이는 오랫동안 아메리카대륙 최악의 독재국가였다. 국가는 콜로라도당으로 뭉친 극소수 지주계급에 의해, 그리고 이들만을 위해 운영돼 왔으며, 대부분 토착 인디오인 농민계층은 비참한 상태로 살아왔다. 1989년 콜로라도당 독재자인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가 사망하면서 정치적 억압이 상당 부분 완화됐다. 주요 야당인 (프랑코 부통령이 소속된)자유당은 도시엘리트를 대변했으나 농민들에 대해서는 (콜로라도당과 마찬가지로) 거의 아무런 유대감을 갖지 않았다. 2008년 대선은 사상 최초로 상대적으로 개방된 상태에서 치러졌다.

산페드로 주교 페르난도 루고가 정치무대에 등장한 것은 바로 이러한 시점에서였다. 오랫동안 '빈민을 위한 주교'로 알려져 왔던 루고는 해방신학과 연계돼 있었으며 파라과이의 다른 주교들, 그리고 바티칸 교황청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는 보다 공정한 토지분배를 정책으로 내세우며 대통령에 도전했다. 파라과이 헌법은 물론 교황청도 성직자의 정치 진출을 허용하지 않았으므로 루고는 주교직을 사임하고 '환속'을 요청했다. 바티칸이 그의 환속을 거부했으나 그는 대선 출마를 강행했고,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야 바티칸은 그의 환속을 승인했다.

3자 대결로 치러진 대선에서 루고는 최다 득표를 했으나 과반수 득표에는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콜로라도당이 선거 결과에 승복하면서 그는 파라과이 역사상 최초의 좌파 출신 대통령이 됐다(1936년 좌파 출신이 당선된 적이 있으나 그는 1년이 안 돼 축출당했다). 루고의 당선은 21세기 첫 10년간 아메리카대륙을 휩쓸었던 좌파 정당 승리 물결의 일부였다. 파라과이에겐 희망의 상징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과반수 득표에 실패했고, 게다가 그의 당은 의회, 특히 상원에서는 거의 아무런 세력기반이 없었다. 그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약속했던 정책들 중 거의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토지개혁은 시작조차 못했다. 이른바 마약퇴치프로그램에서 미군의 역할을 중단시키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마저도 지키지 못했다. 파라과이 미군기지 폐쇄를 위해서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이처럼 한심한 업적을 고려했을 때, 그의 반대파들은 어찌하여 임기가 9개월밖에 남지 않은 그를 제거하기 위해 탄핵이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던 것일까?

사실 루고 대통령의 제거는 그의 축출을 원했던 세력에게 부정적 결과를 초래했다. 파라과이 상원이 지난 수년간 거부해왔던 한 가지 사안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파라과이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볼리비아와 함께 남미공동시장 메르코수르의 회원국이다. 그동안 베네수엘라가 가입을 요청해왔다. 베네수엘라가 가입하려면 파라과이를 포함한 5개 회원국 모두의 의회 비준을 받아야 한다. 나머지 4개 나라는 이미 오래 전에 베네수엘라의 가입에 찬성한 반면 파라과이 상원만이 끝끝내 반대해왔다. 그런데 이번 쿠데타를 계기로 메르코수르는 파라과이의 회원 자격을 정지하는 한편, 베네수엘라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쿠데타로 파라과이에서 누가 무엇을 얻은 것일까? 정부정책의 측면에서 보자면 쿠데타 전과 후에 아무런 실질적 차이가 없다. 현지의 지역엘리트들이 자신들의 힘을 과시한 것일 수는 있겠다. 파라과이 내 좌익세력은 물론 다른 나라들, 특히 볼리비아의 좌파세력에게 겁을 주기 위해서. 파라과이의 주교들과 바티칸은 해방신학의 옹호자(비록 미약하지만)에게 복수를 한 셈이다.

미국은 어떨까? 미국은 이미 파라과이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다 갖고 있다. 물론 프랑코가 대통령이 됐으니 기존의 양국 관계가 계속될 것이라는 확실한 보증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쿠데타 이후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발표한 성명은 일말의 비판도 없었다. 게다가 미국은 미주국가기구(OAS)가 이번 쿠데타에 대해 비판하려는 것을 막았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파라과이와 미국 간의 군사관계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새로운 논란과 압력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가 미국에게 진정 득이 되는지는 분명치 않다.

이번 사태를 분석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남미에서의 지정학적 헤게모니를 둘러싼 미국과 브라질간의 소규모 전투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번 사태에 대한 브라질의 최초 대응들, 즉 메르코수르는 물론이고 이보다 더 큰 지역공동체인 남미국가연합(UNASUR)에서 파라과이의 권리를 정지시킨 것은 미국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브라질의 입장에도 애매함이 있다. 파라과이 농민들의 저항 대상인 플랜테이션의 상당수가 브라질 및 우루과이 지주들(Brasiguayos) 소유이며, 따라서 브라질은 파라과이와의 모든 경제적 관계가 단절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게다가 파라과이는 브라질 수력발전의 주요 원천이기도 하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확실히 핵심 변수는 브라질이다. 현재로서는 남미에서 미국의 지위 강화로 해석될 수 있는 사안에 브라질이 드러내놓고 치명타를 날릴 처지는 못 된다. 그러나 '신흥' 강국으로서 - 브라질을 맹주로 하는 강력한 남미블록의 형성을 추구하는 - 브라질의 정치적 이익과 경제적 이익은 같은 남미에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현재 파라과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브라질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해야 할 것이다.

* <월러스틴의 '논평'>은 세계체제론의 석학 이매뉴얼 월러스틴 예일대 석좌교수가 매달 1일과 15일 발표하는 국제문제 칼럼을 전문번역한 것입니다. <프레시안>은 세계적인 학자들의 글을 배급하는 <에이전스글로벌>과 협약을 맺고 월러스틴 교수의 칼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7월 15일 논평 원문보기)

* 저작권 관련 알림: 이 글의 저작권은 이매뉴얼 월러스틴에게 있으며, 배포권은 <에이전스 글로벌>에 있습니다. 번역과 비영리사이트 게재 등에 필요한 권리와 승인을 받으려면 rights@agenceglobal.com으로 연락하십시오. 승인을 받으면 다운로드하거나 전자 문서로 전달하거나 이메일로 보낼 수 있습니다. 단 글을 수정해서는 안 되며 저작권 표시를 해야 합니다. 저자의 연락처는 immanuel.wallerstein@yale.edu입니다. 월러스틴은 매월 2회 발행되는 논평을 통해 당대의 국제 문제를 단기적인 시각이 아닌 장기적인 관점에서 조망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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