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세의 특징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대통령 임기 말 상황의 실종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 5년 단임제 실시 이후 지금까지 대통령의 임기 말 상황은 언제나 비슷한 양상을 보여 왔다. 임기 4년차부터 권력형 비리가 터져 나왔고, 대통령의 아들이나 친인척들이 연이어 검찰에 불려가는 장면들이 신문지상을 장식해왔다. 그에 따라 대통령의 지지율 역시 곤두박질쳤다. 더 중요한 것은 당시의 현직 대통령과 당시의 여당 대통령 후보가 동일시되면서 여당의 대통령 후보 역시 지지율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이와 다르다. 현재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말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상황이 거의 전개되고 있지 않은 상태다. 오히려 박근혜 전 대표라는 집권여당의 대선 후보가 최고의 지지율을 보이면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그가 새로운 국가 비전을 제시하거나 특별히 국민과 활발한 정치적 소통을 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몇 년째 변치 않는 1위를 달리고 있다. 이는 한마디로 과거의 그것들과는 전혀 다른 '임기 말 상황'이다.
도대체 상황이 이렇게 전개된 이유가 무엇일까? 이명박 정부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소극적인 복지정책으로 인한 국정의 총체적 실패로 이미 민심을 잃었고, 이로 인해 2010년 지방선거와 지난 4.11총선 때도 정권심판론이 비등하였다. 또, 이명박 정부가 깨끗하기 때문에 별다른 권력형 비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과 집권여당을 존폐의 위기로 몰고 갈 뭔가 큰 사건들이 터질 것 같은 조짐들이 여러 차례 있었다. 하지만 그 때마다 더 강력한 폭탄들이 터져 나와 정치적 레임덕의 확장을 막았다.
여기서 더 강력한 폭탄의 대표적 사례는 통합진보당 파문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언론의 주목을 받는 어떤 사건이라도 보통 3일 이상은 잘 가지 않는다. 그래서 1주일 이상 신문의 주요 지면을 장식한 사건에 대해서 우리는 매우 큰 이슈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통합진보당 사건은 거의 한달 이상의 이슈 생명력을 보여주었고, 이런 차원에서 보면 통합진보당 사건은 거의 '역사적 사건'에 버금가는 대형 사건이었다. 바꿔 말해, 이는 현직 대통령의 권력형 비리로 뒤덮였어야 할 임기 말의 신문지면이 통합진보당 사건으로 모두 채워졌다는 점을 의미한다.
정치란 결국 신문지면 위의 정치적 이슈로 표현되는 역동적인 과정이다. 아무리 대단한 사건이라도 기사화되지 않으면 대중의 의식 속에 공유될 수 없고, 따라서 정치의 소재가 되지 못한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생산되는 뉴스의 총량은 대충 정해져 있다. 따라서 어떤 이슈가 뉴스 분량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면 다른 이슈의 부피는 그만큼 작아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다 이긴 것으로 예견되었던 지난 4.11총선에서 승리를 박근혜 전 대표에게 헌납하고, 그 직후에 터져 나온 '통합진보당 사건'이 한 달 이상 뉴스의 핵심이슈를 장악하면서 현직 대통령의 임기 말 상황이 정치구도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문제는 이 상황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근혜 측은 국회의 원 구성 협상을 빨리 끝낼 이유가 전혀 없다. 되도록 통합진보당 이슈를 계속 살려나가고 싶어 할 것이 분명하다. 원 구성이 마무리되고 통합진보당 이슈가 정리되면 박근혜 전 대표는 곧바로 이명박의 임기 말 권력형 비리 노출 상황에 그대로 엮여 들어갈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 사건은 보수 진영의 표를 집결시켜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이 이슈가 확대되고 지속되면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층이 흩어질 가능성이 점점 줄어드는 효과도 있다.
통합진보당 이슈는 앞으로 더 증폭될 계기가 남아있다. 통합진보당의 당내 지도부 선거가 남아있고, 이석기 의원과 김재연 의원의 국회 제명을 둘러싼 논란 과정이 남아있다. 만약 7월까지 국회의 원 구성 협상을 질질 끌 경우, 8월에는 올림픽의 열기로 정치이슈가 아예 실종되고, 9월에는 각 당의 예비후보 선출로 대중의 시선이 분산될 것이다. 그러면 박근혜 측에서는 10월에 가서 이석기 의원과 김재연 의원에 대한 제명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해서 대통령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오면,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말 상황은 완전히 사라지고, 1위 후보인 박근혜 전 대표를 검증할 정치적 시간은 거의 존재할 수 없게 된다. 과거에 우리가 반복적으로 경험해왔던 역대 대통령들의 임기 말 상황이라면, 국회를 통해 현직 대통령과 여당의 대통령 후보를 검증하는 목소리가 계속 터져 나와야 정상인데, 이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는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되도록 현 정부와 되도록 선을 긋고 싶어 하는 박근혜 전 대표의 'MB차별화 전략'과 되도록 박근혜 전 대표를 실패한 이명박 대통령의 아류로 몰고 가려는 야당 측의 '연결 전략'이 서로 충돌하는 구도가 기본이 되어야 했다. 이렇게 해서 박근혜 전 대표는 끊임없이 쫓기는 선거를 치러야 할 운명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정국은 박근혜 전 대표의 지연 전략에 철저히 발목을 잡히고 있다.
국회의 원 구성을 못하는 바람에 정치의 중심은 여의도가 아니라 대방동의 통합진보당 당사에 머물러있다. 따라서 민주통합당 입장에서는 원 구성 협상을 빨리 처리하고 통합진보당 이슈도 재빠르게 '해소'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이러한 전략적 판단이 전혀 없는 것 같다. 물론 '복지국가'를 하나의 종합적인 국가발전모델로 바라보기 보다는 실제로는 얄팍한 대선 전략의 장식품 정도로 여기고 있는 민주통합당에게 많은 기대를 걸긴 힘들겠지만, 시간이 없다는 사실 정도는 깨달아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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