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총통부 주변에는 시위에 대비하여 삼엄한 경계가 펼쳐졌다. 총통부 주변에 기념식을 위해 걸려있는 대형 청천백일기가 세차게 내리는 비에 젖고 있었다. 마치 대만 정계의 앞날을 예견하는 듯했다. 그러나 일부 국민당 지지자들은 비가 내리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이야기했다. 전날 야당 민진당이 주도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계속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전날 대규모 시위는 총통선거 이후 마잉주 정부가 추진한 전기와 유류비 등 물가 인상으로 인해 국민들의 생활이 팍팍해졌다는 것이 근본 이유였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집권에 실패한 야당 민진당의 화풀이 성격도 어느 정도 가미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야당 민진당의 주장은 금년 1월 14일에 실시된 총통선거를 위하여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에 대해 마잉주 정부가 그 동안 국민을 속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마 총통이 대선에서 미국의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이미 미국 측에 약속했다는 것이다(대만에서는 우리와 달리 미국산 쇠고기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수입해왔는 바, 금번 문제는 미국산 쇠고기에 락토파민이라는 성장촉진제가 포함된 것이 세관 조사에서 판명됨에 따라 향후 세관 검사범위를 전 수입 쇠고기로 할지 일부만 할지가 문제의 핵심이다. 마잉주 정부는 국제기준대로 락토파민 허용치를 낮춰 수입을 허용하겠다는 것이고, 야당은 전량 세관에서 검사를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야당은 전기와 유류세 등 물가 인상도 일부러 선거 이후로 미뤄 국민들을 속였다고 공세를 폈다. 실제로 물가인상은 많은 국민들을 화나게 하고 있으며 일부 국민당 소속 입법의원들도 행정부를 공격하고 있다. 이로 인해 취임식 전날 주최 측 추산 15만 명이 시위에 참가하였고, 시위자들은 분노를 의미하는 대형 '노(怒)'자 위에 드러누워 강력한 항의를 표시했다. 여론조사 기관들은 마잉주 총통의 지지율이 역대 최저인 23%까지 하락했다고 밝혔다. 특히 친민진당 계열의 <자유시보>는 국민들의 국정만족도를 15~20%로 보도했는데, 마잉주 총통의 집권 2기가 험난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 마잉주 대만 총통 ⓒAP=연합뉴스 |
취임사를 통해 마잉주 총통의 집권 2기 설계를 살펴보자. 첫째, 양안정책과 관련해 눈에 띄는 제안은 없었는데 이는 중국에 새로운 정책을 제안하기에 국내적으로 어느 정도의 합의를 모으는 과정이 필요하고 자칫 야당의 전면 공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물론 지난 집권 1기 취임식에서는 '92컨센서스'(92共識:1992년 양안 간에 '중국은 하나이다. 하나의 중국이 어느 쪽을 지칭한지는 각자 편리에 따라 호칭한다' 는 '일중각표'(一中各表)를 합의한 바 있다)를 언급했지만, 이번에는 '양안 인민이 모두 중화민족이며, 염황(炎黃)의 자손'이라는 점을 주장해 양안이 같은 민족이고 같은 뿌리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표현은 사실상 대만의 '독립'을 주장하는 민진당으로부터 공격이 예상되지만, '통일'을 주장하는 국민당의 입지를 위해서 불가피하고 최소한의 표현이라고 본다. 다만 중국 측은 통일과 관련해 더 강력한 표현을 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는 아쉬움이 있고 역시 마 정부의 대 양안정책의 한계성을 보여주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향후 4년간 집권시기의 국가 비전을 제시했다. 이는 선거에서 제시했던 공약이기도 하다. 마 총통은 '황금 10년'의 국가 비전과 '평화롭고 공정하며 행복한 국가 건설'을 제시했으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 대만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5가지 지주'라는 세부 목표도 내놓았다. 그 내용은 대부분 다른 국가들이 추구하고 있는 내용과 비슷한 △경제성장의 원동력 강화 △일자리 창출 및 사회정의 실현 △저탄소 녹색에너지 환경구축, 문화력 제고 △인재육성 등을 제시했다.
다만 그 가운데 대만이 활로를 찾아야 할 내용으로 대만은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고 무역의 자유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일환으로 가오슝(高雄) 등에 '자유경제시범구역' 조성, 경제협력기본협정(ECFA) 후속 협상 마무리, 싱가포르와 뉴질랜드 등과의 경제협력협정 체결, 향후 8년 내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 등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셋째, 활로외교를 통한 국제 활동 공간의 확대를 강조했다. 대만 외교는 국제 사회에서 중국 요인으로 인한 제한을 받아왔다. 그러한 상황에서 안보외교의 핵심은 미국과의 관계 강화다. 미국으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대만안보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게 하고 미국으로부터 고성능 방위무기를 구입하는 것이다. 미국은 양안의 현상유지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대만이 지난 4년간 양안관계의 해빙을 통해 일부 국제기구에서는 중국의 양해 하에 다양한 형태로 참가하여 활로외교를 추진하겠다는 게 마 정부의 핵심적인 외교 전략이다. 따라서 2009년 옵서버 자격으로 세계보건총회에 재참석하였으며, 2010년에는 세계무역기구(WTO)의 '정부조달협정'에도 가입할 수 있었다. 향후 4년간 기후변화협약(UNFCCC), 민간항공기구(ICAO), 등을 포함한 국제기구 및 국제 활동에 참여를 확대할 것이며, NGO기구에서 양안이 상호 포용과 상호협력을 이루길 희망했다. 또한 국제 인도적인 차원의 지원을 강조하면서 작년 '3.11 일본 지진'에서 전 세계 지원액 가운데 최고액인 66억 대만달러(한화 약 2640억 원)를 지원한 점을 예로 들면서 향후 국제사회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을 강조했다.
넷째, 국방문제와 관련해서 외부 위협에 대한 강력한 저지를 천명했다. 방어무기 구매를 계속할 것과 모병제를 실시해 전자전에 대비한 소수정예의 국방력을 구축할 것을 강조했다. 중화민국의 주권과 대만안보를 수호하고 역내 평화에 기여하겠다는 점도 강조했다. 주권 국가로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은 제일의 과제다. 대만의 안전과 안보를 중시하면서도 주권적 평등을 등한시할 수 없다. 따라서 이미 미국과 183억 달러의 무기 구매에 동의했다는 점을 밝히면서도 이는 모두 방어적 무기임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향후 마총통의 집권 2기 대만의 상황은 어떻게 될 것인가? 첫째, 이번 취임식 연설을 통해 그동안 국민당이 갖고 있는 양안 관계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없다는 점을 다시 확인했다. 다시 말해서 양안관계의 기본 인식은 상호 주권을 인정하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상호통치권을 부인하지도 않는다는 원칙이 근간이라는 점이다. 즉, 92컨센서스, 일중각표를 기초로 평화적으로 발전한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이다. 또한 지난 20년간 양안관계에 대해 '하나의 중화민국, 두 개의 지역'으로 규정한 중화민국 헌법은 전임 3명의 총통을 거치면서 조금도 변화가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것이 가장 이성적이고 실무적인 양안관계의 지위라는 점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문제는 금년 가을로 예정된 중국의 권력교체의 향배에 따라 대만정부에 대한 요구 수준의 여부와 대만 내 야당들이 이른바 '일국양구(一國兩區)' 발언이 계속 문제가 될 공산이 크다. 야당의 주장은 '일국양구'로 가면 중화민국의 총통이 아니라 '대만구장'에 불과하다고 강력하게 비난을 가하고 있다. 따라서 이를 어떻게 슬기롭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점이 관건이 될 것이다.
둘째, 민진당을 필두로 한 야당의 공세에 어떻게 대처하면서 국민의 통합을 어떻게 유지해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리덩훼이(李登輝) 전 총통은 이번 취임식을 전후해 노구를 이끌고 비난의 수위를 계속 높이고 있다. 그의 이러한 비난은 정략적인 측면이 강하다. 특히 최근 대만의 주간지인 <차이쉰>과의 대담에서 리덩훼이는 마 총통이 "마치 황제가 된 것 같다. 그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래 사람들도 움직이지 않고 경제부, 재정부마저도 책임지지 않고 모두가 전혀 책임지지 않으려 한다"고 마 정부의 무능을 질타했다.
민주정치에서 비판은 정당하다. 더욱이 대만에서 다양한 족군과 지역, 계파 간의 갈등은 일상화되어 있다. 따라서 비판의 내용도 그 스펙트럼이 매우 넓고 복잡하다. 이는 대만이 조그만 섬나라에 불과하지만 지나칠 정도로 다양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만 언론이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언론이라고 평가 받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마 총통이 이와 같은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여하히 통치력을 보여주는가 하는 점이 향후 집권 2기 통치의 핵심이 될 것이다. 마총통은 현안문제에 있어 보다 적극적으로 정부의 입장을 밝히고 여론을 수렴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이번 집권 2기에서는 지난 시기 지나친 몸조심보다는 보다 과감하게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과단성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사회적 갈등도 해소하고 양안관계도 보다 안정될 것이다.
셋째,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할 것인가가 향후 마잉주 집권 2기 최대과제가 될 것이다. 대만은 민주화와 경제발전이라는 두 가지 성공을 중심으로 세계로부터 주목을 받아왔다. 그만큼 경제 분야에 대해서 대만의 성취는 눈부시다. 그러나 세계 경제의 위기가 반복되고 가장 큰 경쟁상대인 한국이 미국 및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함에 따라 초조해진 대만은 대륙과의 경제교류와 협력을 통해 대만 경제의 활로를 마련했다.
대만은 2010년 6월 중국과 경제협력기본협정(ECFA)를 체결하였고, 향후 1-2년 내에 후속 협정을 매듭지을 전망이다. 작년도에 양안 간 인적 교류는 700만 명을 돌파했으며, 1주일에 580여 회의 비행기가 운항되고 있다. 현재 4만 여 개의 대만기업들이 중국본토에 투자하고 있으며, 100만 명의 대만 기업인들이 대륙에서 활동하고 있다. 올해 안에 대륙인들의 대만 방문은 200만 명에 육박할 가능성이 있다. 양안 간 평화와 경제협력 강화가 마잉주 집권 1기 최대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마정부는 집권 2기에서도 중국대륙과의 경제 협력 이외에도 한국을 포함한 주요 교역 대상국들과의 FTA 체결에 큰 목표를 두고 있다.
종합해 볼 때 마잉주 총통 집권 2기의 정국 운영은 중국대륙에 대한 정책 및 민생해법을 살피고 크게 분열되어 있는 국내여론을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가 최대 과제가 될 것이다. 중국과는 경제 교류와 인적 교류를 계속 확대해나가겠지만 경제의존도가 지나치게 심화되지 않도록 속도를 잘 조절해 나가고자 할 것이다. 한편 대다수 국민들이 중국대륙과의 급격한 정치대화에는 부정적인 만큼 중국으로부터의 정치대화 압력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잘 대응할지도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치솟는 물가를 안정시키고 어려운 수출 환경 속에서 수출성장세를 계속 유지시켜나가는 것이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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