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을 탄압하고 이들의 언로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겁을 주는 것'이라는 사실은 특별히 간교한 자들이 아니라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통합진보당 당원들의 명단과 인적사항을 손에 넣은 검찰이 이번 당내 부정선거 관련 사실의 확인 이외의 목적으로 이들 정보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는 말하지만, 당사자들은 불안하지 않을 수 없고,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하던지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파업에 참여한 언론인에 대하여 사측에서 해고를 비롯한 중징계를 내리거나 검찰이 구속을 시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뉴스들을 자주 접하면서 살다보니, 어느 새인가 겁을 먹고 위축되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나꼼수>의 "쫄지마, XX"를 듣는 순간, 이리저리 재면서 조심 또 조심해서 살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는 깨달음, 그리고 '나만 쫄았던 게 아닌가 봐'라는 위로를 얻었던 것은 아닌지.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의 유종일 교수에 대한 중징계 논란은 유사한 성격의 기관에서 연구자로 살고 있는 나에게는 특별히 더 신경이 쓰이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 동안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날선 비판을 해 온 유종일 교수가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이 되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하다보니 이러저러한 절차상의 하자를 들어 본때를 보이겠다는 케이스가 된 것 같다.
유종일 교수의 정치 참여가 어느 정도였는지, 같은 KDI 조직에 있었던 이주호 현 교과부 장관의 5년 전 행보와 비교해서 형평성에 어긋난 것은 아닌지 하는 점은 이 글의 핵심이 아니다. 유종일 교수 징계 요청의 직접적 사유 중의 하나가 '대외활동에 대한 사전승인'을 받지 않고 신문기고나 방송출연을 했다는 데 있다는 신문기사가 유난히 나의 눈길을 끈다. 나는 지금까지 누구라도 대학 교수가 총장의 허락을 받고 신문기고를 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대외활동 사전승인! 지난 4년간, 아니 그 이전부터 정부출연 연구기관에 속한 연구자로서의 정체성, 나아가 지식인 일반의 사회참여에 대해 고민해 온 '나 자신'의 힘든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이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에서 시행하고 있는 대외활동 사전승인제도는 원칙적으로 모든 강연과 회의 참석, 언론기고와 방송출연의 경우 사전에 기관장의 승인을 받으라는 규정이다.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을 구분하는 것이 학문하는 자의 기본자세라는 것은 사회학도로서 첫걸음을 내디딜 때부터 배워왔다. 연구를 함에 있어서 가치중립적으로 접근하려는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데 백번 동의한다. 그러나 이것이 도무지 가치판단은 하지 말라든가, 혹은 가치판단에 근거한 실천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자명하다. 대학교수나 연구기관 연구자들이 정부의 위원회 활동이나 언론활동을 하면 평가에서 가산점을 받도록 되어있다는 사실이 이 점을 보여준다.
대학교수는 사회참여에 대한 평가 가점은 있지만 대외활동 사전승인을 받는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연구자는 대외활동에 대한 평가 가점이 있으면서 동시에 모든 대외활동에 대해 사전승인을 받으라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인가?
당연히 사회참여의 내용과 성격을 보고 기관장이 골라서 내보내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직접 골라서 승인을 하지 않더라도, 연구자는 스스로 사전 검열을 할 것이고, 스스로 위축될 것이다. 이번처럼 징계사건이라도 터지면 '나서서 일 만들 것 없다. 그냥 조용히 지내자.' 라고 생각하게 되는 사람은 더 많아지리라. 한마디로 말해서 "쫄게 되는 것"이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에서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소리가 나오면 안 된다'는 처참한 인식 수준은 일부 고위공무원들을 비롯해서 곳곳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나의 생각으로는 "정부출연" 연구기관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이자 정책과 관련된 중요한 정보들이 집결되는 곳이므로, 연구자가 양심에 따라 반대의견을 내지 못한다면 오히려 국민 앞에 죄를 짓는 일이다. 알면서도 침묵한 것은 의도적으로 거짓말한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속한 한국노동연구원에는 원장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고되었다가 부당해고 소송으로 다시 복직한 동료도 있고, '기간제 법' 때문에 '백만 해고 대란'이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가 기관 전체가 지금까지도 곤욕을 치르고 있다. 다른 연구기관에서 왜 타산지석을 삼지 않았겠는가?
지금은 국회의원 당선자가 된 나의 동료인 은수미 박사에게는 언론활동을 하지 말라는 지시가 떨어졌었다. "이제 신문에 칼럼 그만 쓰셔야겠어요"라고 말하면서 펑펑 울던 4년 전 기억이 새롭다. 세상이 달라지고 있고, 나도 달라졌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더 달라져야 한다. 이제 더 이상 쫄지 말자. 그리고 언론과 싱크탱크를 나팔수로만 이용하려는 '나쁜 구도'를 바꿀 방도를 함께 고민해보자. 유종일 교수에 대한 중징계 추진 소식을 접하면서 이 글을 읽는 독자들께 우리가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자는 부탁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 유종일 교수. ⓒ프레시안(김하영)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