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현지시간) 총선이 치러진 그리스는 1974년 이후 약 30년 간 연정을 구성해 정권을 잡아왔던 신민당과 사회당의 독주 체제가 붕괴될 위기에 처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개표 92.2% 상황에서 신민당은 득표 19.2%로 전체 의석 중 109석을, 사회당(PASOK)은 13.4%로 41석을 확보해 과반을 넘지 못하고 있다. 두 정당이 기록한 득표율은 지난 2009년보다 각각 14.3%p, 30.5%p 하락한 수치다.
반면 야당인 진보좌파연합(SYRIZA, 시리자)는 16.59%를 득표해 51석을 확보, 원내 제2당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시리자는 가혹한 긴축정책을 전제로 승인된 유럽연합(EU) 구제금융 조건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시리자 대표는 선거 결과에 대해 "유럽에 평화 혁명이 시작됐다는 변화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며 "(긴축을 주도한)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긴축의 정치가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다는 걸 알아야 한다"라고 선언했다.
▲ 6일(현지시간) 밤 그리스 총선에서 야당 진보좌파연합(시리자)이 원내 제2당으로 부상하자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시리자의 젊은 대표 알렉시스 치프라스(38), 가운데). ⓒAP=연합뉴스 |
이번 선거는 지난달 그리스 아테네의 한 전직 약사가 정부의 연금 축소에 항의해 '공개 자살'을 감행하는 등 그리스 유권자들의 긴축정책에 대한 분노가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구제금융을 받아 그리스를 유로존에 머물게 하겠다고 밝힌 신민당의 안토니스 사마라스 대표는 선거 윤곽이 가려지자 "유로존에 체류하면서도 구제금융 조건을 수정하겠다"고 밝히면서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총선이 종료되면 제1당인 신민당은 3일 이내에 연정을 구성해야 한다. 사회당 외의 정당을 끌어오지 못하면 시리자가 구성 권한을 부여받는다. 시리자가 정부 구성에 실패하면 사회당까지 순서가 돌아가지만 전문가들은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연정이 깨진 상황에서 6월경 2차 총선 투표가 치러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세 정당 이외에 우파정당인 그리스 독립당이 10.54%로 33석, 공산당이 8.41%로 26석, 극우정당 황금새벽당이 6.92%로 21석, 민주좌파(DIMAR)가 6.07%로 19석을 차지한 상태다.
독일·영국도 '긴축 반대' 역풍 맞아
6일 프랑스 대선에서 패배한 니콜라 사르코지 현 대통령과 함께 유럽의 긴축정책을 밀어붙였던 메르켈 총리도 선거에서 쓴맛을 봤다. 6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州)에서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메르켈 총리가 속한 기독교민주당(CDU)은 30.9%(22석)을 얻어 1위를 차지했지만 연정 파트너인 자유민주당(FDP)이 8.3%로 6석만을 건져 연정 유지가 어려워졌다.
반면 이번 선거에서 기민당과 같이 22석을 확보한 제1야당 사회민주당(SPD)은 10석을 얻은 녹색당과 연정 방침을 밝혔다. 사실상 메르켈의 패배라는 평가다. 여기에 '메르코지'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유럽 각국에 긴축정책을 요구하는데 있어 찰떡궁합이었던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이날 재선에 실패하고 반긴축론자인 사회당의 프랑수와 올랑드 후보가 새 대통령이 된 것도 메르켈 총리에게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최근 더블딥(이중 경기침체 현상)이 확인된 영국에서도 정부의 긴축정책을 비판하는 유권자들이 힘을 뭉쳤다. 지난 3일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야당인 노동당은 지방의회 181곳에서 823석을 새로 얻은 반면,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속한 보수당은 405개 의석을, 연정 파트너인 자유민주당은 336개 의석을 잃었다. 독일과 영국 모두 현 정부에 대한 유권자들의 차가운 인식이 드러나면서 각각 2013년, 2015년 치를 총선 전망이 암울해지고 있다.
<로이터>는 7일까지 실시되는 이탈리아의 지방선거 역시 지난해 말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후임으로 등장한 마리오 몬티 총리에 대한 첫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통신은 이번 이탈리아 지방선거 역시 유럽 전역에 걸친 긴축정책에 대한 저항을 강조하는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측하면서 정치인들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지를 얻지 못하는 몬티 총리의 긴축정책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6일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부 씀씀이를 줄여야 한다는 '긴축 독트린'이 유럽 지도자들과 금융시장의 지지를 얻었지만, 정치인들은 각국 선거가 치러진 6일 밤 선거 결과를 보면서 그 합의가 산산조각 났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긴축정책과 대규모 구제금융이 이뤄졌음에도 경기와 실업률이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새로운 접근 방식을 요구하는 유권자들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현 정부를 향한 유권자들의 불신이 유럽 주요 국가에서 진보 진영의 약진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긴축 반대=진보 지지' 공식이 확립된 것은 아니다. 6일 총선과 대선 1차 투표가 한꺼번에 실시된 세르비아에서는 긴축정책을 비판해온 민족주의 우파 성향의 진보당이 여당인 친유럽 성향의 민주당에 약간 앞서고 있는 상태다. 지난달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반이민과 반세계화를 주창한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당수가 18%의 지지를 얻어 돌풍을 일으킨 것처럼 현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는 세력이 반사이익을 얻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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