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숨진 테러범의 시신을 모욕하는 사진이 미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올해에만 탈레반 시신 방뇨, 코란 소각, 민간인 대량 학살이라는 대형 악재가 터진 상황에서 또 한 번 미군의 만행이 부각되면서 미 정부의 아프간 철군 계획이 더욱 꼬일 전망이다.
<LA타임스>는 18일(현지시간) 1면 초판에 미 공수부대 병사가 사망한 테러범의 사체 앞에서 잘려진 손을 어깨에 올려놓은 채 찍은 사진을 게재했다. 이 사진은 82공수여단 4대대 소속 병사가 신문에 제공한 18장의 사진 중 하나로, 신문은 이날 인터넷판 기사에서 자살폭탄 공격으로 사망한 테러범의 남아있는 다리를 밧줄로 묶어 들고 포즈를 취한 사진을 추가로 공개했다.
▲ 18일(현지시간) 아프간 주둔 미군의 테러범 시신 모욕 사진을 공개한 <LA타임스> 인터넷 판 기사. |
신문은 이 사진들이 2010년 아프간 자불주(州)에서 촬영됐으며, 공개하지 않은 사진 중에는 미군 2명이 잘려진 손의 중지를 편 채 찍은 사진도 있다고 밝혔다. 자불주는 아프간 남부의 극빈 지역으로 탈레반의 영향력이 강한 곳이다.
올해 초 탈레반 시신 방뇨 사건 등으로 '학습효과'가 생긴 미 국방부는 사진이 공개되자 즉각 성명을 내고 파문이 확산되는 것을 경계했다. 리언 패네타 국방장관은 이메일을 통해 배포한 성명에서 "이들 사진은 현재 아프간에서 복무하는 대부분 미군 병사들의 프로 정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신문사측이 사진을 공개하지 말아 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은데 실망했다"며 <LA타임스>에 불만을 표했다. 국방부는 신문에 사진에 대한 조사가 이뤄질때까지 공개를 늦춰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LA타임스>의 편집자 다반 마하라지는 "심사숙고를 한 후 우리는 이 사진 일부를 공개하는 것이 독자들에게 아프간 주둔 미군이 수행하는 임무의 모든 면을 치우치지 않고 전달해야 한다는 우리의 의무를 충족시킬 것이라고 결정했다"며 "이 사진들은 미군을 위험에 빠트리게 하는 '군 규율의 위반'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신문은 제보자인 미군 역시 같은 우려에서 사진을 넘겨줬다고 덧붙였다.
결국 패네타 국방장관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NATO) 외교·국방장관 회의를 마친 후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태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그는 "사진에 나타난 행동에 대해 강력하게 규탄하며 강력한 조사를 지시했다"면서도 "젊은이들은 전쟁에서 멍청한 결정을 내리곤 한다. 이런 행동에 대해 변명하진 않겠지만, 이번 사건 때문에 아프간의 미군 병사들에게 더 큰 피해가 가지 않길 바란다"고 밝혔다.
조지 리틀 국방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이와 관련한 전면적인 조사가 이미 진행 중이며, 조사 결과에 따라 제재가 이뤄질 수 있다"면서 "이런 비도덕적인 행동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군(軍)의 관련 규정에 따라 처벌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존 앨런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도 "사진에 나타난 병사들의 행동은 아프간 주둔 다국적군(ISAF)이나 미군의 정책을 대변하지 않는다"면서도 미군이 아프간 당국의 조사에 최대한 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리얀 크로커 아프간 주재 미국대사는 "미 대사관은 사진에 나타난 미군들의 행위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2014년까지 아프간에서 철군한다는 계획을 짜고 있는 백악관도 파문 진화에 고심하고 있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문제의 사진에 있는 행동은 비난받을 일"이라고 밝히면서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 사건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LA타임스>는 아프간에는 인터넷이 잘 보급되지 않아 이 사진으로 인한 즉각적인 소요사태는 보고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아프간 현지 방송도 이 사진에 대한 보도를 하지 않았으며 탈레반도 현재까지 이와 관련한 성명을 내지 않았다. 하지만 아프간 칸다하르의 한 상인은 이 사진을 보고 신문에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모든 것이 미군의 '무례함'(disrespect)에서 나오는 문제"라고 분노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아프간보다는 미국 내 여론에 더 많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미 코락 소각 사건 등으로 미군에 대한 여론이 최악인 아프간보다는 미국 전쟁 역사에서 최장기전인 아프간전에 파병된 미군의 정신건강 등에 대한 의문이 많은 미국인들을 분노하게 만들 것이란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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