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전 6시부로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한 전국언론노동조합 연합뉴스지부(위원장 공병설)는 이날 오후 2시 서울 수하동 본사 앞 한빛마당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갖고, 사측과의 본격적인 투쟁을 시작했다. 노조 집행부는 조합원 504명 전원에게 총파업 지침을 내렸고, 이날 출정식에는 전국 각지에서 250여 명의 조합원이 참석했다.
노조 "국민 신뢰 찾을 때까지 싸울 것"
출정식에 참여한 조합원들은 "연합뉴스 바로 서야 한국 언론 바로 선다"는 구호를 외치며 박정찬 사장의 연임 저지와 노동조건 개선, 편집권 독립을 요구했다. 연합뉴스 대주주인 뉴스통신진흥회는 지난달 29일 이사회에서 박 사장을 최종 사장 후보자로 선출해, 사실상 연임이 확정됐다.
공병설 노조위원장은 "우리는 모든 것을 잃었기에 이 자리에 모였다. 박 사장의 재임 3년 동안 공정보도, 국민신뢰, 사내 민주주의, 합리적 인사, 근무여건 등 모든 걸 잃었다"며 "연합뉴스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이 자리에 모였다"고 강조했다.
공 위원장은 "가장 많은 기사를 쓰고 가장 늦게까지 (취재현장에) 남았다 다시 눈 비비고 나오면서도 우리가 버틸 수 있었던 건 대한민국 모든 기자들이 우리 기사를 참고한다는 자존심이었다"며 "우리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날까지 싸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홍제성 조직부장은 "박 사장 임기 3년 간 우리는 정권편향 보도에 앞장서 '연합 찌라시'라는 오명까지 썼다"며 "역사적인 이번 파업이 연합뉴스를 바로세우는 첫 단추가 될 지는 조합원 여러분의 단합에 달렸다"고 조합원들을 독려했다.
가장 최근에 입사한 공채 32기 이정현 조합원은 "노조특보가 소개한 우리의 불공정보도 사례에 제가 쓴 기사도 포함됐다. 스스로 먼저 반성하겠다"며 "그러나 왜 선배들이 바로잡아주지 않으셨는지 묻고 싶다. 박 사장이 왜 안 나가고 버티는지도 묻고 싶다"고 말했다.
16기 경수현 조합원은 "선배로서 부끄러웠다. 반성한다"며 "<연합뉴스>도 공정보도 할 수 있다. 떳떳하게 기사 쓰고 살 수 있다"며 파업 승리를 다짐했다. 양정우 멕시코 특파원은 음성 자료를 통해 파업 의지를 다졌다.
출정식을 가진 조합원들은 곧바로 사장실 항의방문 후 오후 5시경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리는 KBS, MBC, YTN과의 공동집회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파업이 중요한 이유
▲15일 오후 서울 중구 연합뉴스 사옥 앞 한빛공원에서 열린 '박정찬 사장 연임 NO! 공정보도 쟁취'를 위한 파업 출정식에서 연합뉴스 노조 조합원들이 파업 출정식을 가졌다. ⓒ뉴시스 |
<연합뉴스>가 한국 언론 지형에 미치는 영향력을 가늠케 하는 부분이다. 상당수 언론사가 연합뉴스의 기사와 사진기사를 구입해서 쓴다. <연합뉴스>가 취사선택하는 '사실'에 따라 다른 언론사의 보도 태도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파업 중인 국민일보·씨티에스 지부의 한 조합원은 "지금 남아있는 기자들은 <연합뉴스>를 베껴 써서 신문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노조의 이번 파업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다. 출정식 연대발언에 나선 이강택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한 사람의 언론인으로서 (연합뉴스 노조의 파업이) 기쁘다"며 "여러분을 보면서 '이제야 우리나라 언론의 근간이 변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분 안에서 리영희, 송건호 선생 같은 언론인이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현석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장은 "언론항쟁의 종결자이자 모든 언론사 사측을 긴장시키는 연합뉴스가 파업에 나섰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연합뉴스 노조와 사측의 갈등은 지난해 말 보도전문채널 <뉴스Y> 개국과정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연합뉴스> 기자들이 속속 <뉴스Y>로 파견 차출되는 등 노동 여건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그간 쌓여온 조합원들의 불만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결국 지난해 1월 입사한 32기 기자들부터 18년차 기자들까지 나흘간 240명의 기자들이 줄줄이 성명을 내 노동조건 악화와 보도 공정성 상실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당시 <뉴스Y> 보도국은 <연합뉴스> 파견기자를 포함해 40여 명에 불과했다.
이 상황에서 김석진 TV본부장의 출마예정설이 나오며 사측과 노조의 갈등이 커졌다. 김 본부장은 새누리당의 인천 남동을 선거구 공천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바른언론', 지켜야 할 보루"
박 사장 재임 기간 <연합뉴스>가 보도공정성을 상실했다는 자성도 제기됐다. 노조는 파업특보에서 대표적인 사례를 하나 소개했다. 지난 2009년 1월, <연합뉴스>는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김정은이 내정됐다는 단독기사를 썼으나, 이를 쓴 최선영 기자는 장기간의 휴직과정을 거쳐 현재 북한DB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노조는 "박 사장은 2009년 취임 후 북한부와 회식자리에서 '바깥에서 우리 북한부 기사에 대해 불편해 한다. 조절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며 그 후 2010년 봄 인사에서 사측은 최 기자를 한 마디 상의 없이 북한DB부장으로 발령냈다"고 설명했다.
노조는 "권력 앞에 굴종하는 박정찬 체제의 진면목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며 "(권력 앞에) 울타리가 되지 못하는 경영진을 바꿔야 하는 과업이 우리에게 돌아온 셈"이라고 강조했다. 현 정권 하에서 <연합뉴스>의 청와대 보도, 4대강 보도, 한미 FTA 보도 등이 균형을 잃었다는 지적은 숱하게 제기된 바 있다.
결국 보도 공정성 상실과 노동조건 악화로 인해 노조 파업이 일어나게 된 셈이다.
공 지부장은 "보신각에서 가진 촛불집회 때 한 후배가 '연합뉴스에 입사했지, 연합 찌라시에 입사한 것 아니다'고 말했다"며 "<연합뉴스>가 연합통신 시절부터 공정보도만을 한 건 아니지만, 이 정도로 심각하진 않았다"고 자성했다.
노조는 파업투쟁 선언문에서 "그 동안 우리는 자신의 이름을 차마 담을 수 없는 기사를 한 자 한 자 써내야 했고, 한 없이 무너져내리는 연합의 위상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며 "바른언론 빠른통신은 구호가 아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마지막 가치고 보루"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노조는 자사의 보도균형 상실을 사과하는 동영상을 올리는 등 대국민 사과와 더불어 방송3사, 국민일보 노조, 부산일보 노조 등 파업에 나선 다른 언론사와 함께 투쟁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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