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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의 내일? 모레보다는 낫다!"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위기를 떠넘기며 버티는 세계 경제

내일의 수요를 오늘에 당겨쓰며, 오늘의 위기를 내일로 미룬다.

이제 1주일이 지나면 2012년이 밝는다. 저마다 2012년 '용의 해'에는 부디 밝은 전망이 깃들기를 소망하며 2011년 마지막 주를 보내고 있으리라. 필자 역시 오늘보다 내일이, 올해보다 내년이 더 나아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인사이드 경제> 독자들이 내일은, 그리고 내년에는 활짝 웃을 수 있기를! <기고자>


경제와 관련한 소식들, 특히 주식시장·환율시장은 매일매일 복잡하다. 어느 날엔 유럽 재정위기가 심해질 것이라며 전세계 주식시장이 폭락했다가, 어느 날엔 재정위기 해결책이 나올 것 같다며 반대로 폭등한다. 미국의 경제 지표가 호전되었다며 폭등했다가, 그래도 실업률이 진정되지 않고 있다며 폭락한다.

여기에 한반도에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이라는 변수까지 더해졌다. 사망 사실이 보도된 직후 코스피 지수가 급락했다가, 북한 사회의 격변은 없어 보인다며 다시 진정된 상태이다. 앞으로 김정은 후계 체제가 예상보다 안정적일 것이라거나, 혹은 반대로 불안해 보인다는 예측이 나올 때마다 주식시장은 요동칠 것임에 틀림없다. 예전에 <인사이드 경제>에서 한번 다뤘던 것처럼, 한국 주식시장의 폭등·폭락에 따라 원-달러 환율은 주가와 정반대로 폭락·폭등을 거듭할 것이다. (☞ 관련기사 : 미국 경제 휘청여도 달러 가치 오르는 이유는?)

과연 내일, 내년에는 경제 상황이 어떻게 될까? 미래에 대한 예측 또는 전망을 해본다는 것이, 지금 같은 시대에 과연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어디서 폭발할지 모르는 예측불허의 위기

아무리 '예측불허' '불확실성'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어느 누구나 동의하는 것이 있다. 바로 지금이 '위기'라는 사실이다. 세계의 자본가들이 가장 즐겨본다는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의 헤드라인에서 지난 3년 동안 '위기(Crisis)'라는 단어가 빠져본 적이 거의 없을 정도이니 말이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를 공황으로 몰아넣을 것 같더니, 조금 지나서 진정되어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유럽 정부들의 국가부도 위기가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이것도 유로화를 사용하는 잘 사는 나라 정부들이 나서서 해결하는 것처럼 보이더니, 이번에는 중동과 아프리카 대륙에서 반독재 민주화 혁명이 들끓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지난 8월에 다시 미국에서 재정위기와 주식시장 폭락이 시작되었고, 유럽은 지난 2년 동안 재정위기를 놓고 장기간 씨름을 벌여왔지만 위기는 오히려 더 깊게, 넓게 퍼지고 있다. <인사이드 경제>에서 예측했던 것처럼, 러시아에서 푸틴의 장기집권 시도가 민주화 시위를 불러오기 시작했다. 전세계 어디에서 위기가 터져나올지 정말 예측불허의 위기라 할 수 있다.

▲ 지난 8월 뉴욕 증시의 다우존스 지수가 사상 9번째의 대폭락을 기록했다. ⓒAP=연합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되었고 2009년에는 유럽을 강타했으며 이제는 전세계를 휘젓고 다니는 이 위기에 대해 많은 경제평론가들과 경제 기사들은 매일같이 이렇게 떠들고 있다. "위기의 본질이 무엇인지, 이유가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지만, 위기 극복을 위해 마땅히 사용할 정책수단이 없다."

지난 3년 동안 '위기'에 대해 이렇게 떠들었지만, 그 사이 폭삭 망한 나라가 생긴 것은 아니라는 점 또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마땅히 사용할 정책수단이 없다'는 말은 좀 과장이 아닐까? 어찌되었건 이런 저런 정책수단을 강구해 왔으니 지난 3년 동안 그럭저럭 버텨온 것 아니겠는가.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갖고 있는 정책수단

사실이다. 아예 쓸 정책수단이 없다면 몇몇 나라 경제는 이미 절단나 있어야 한다. 거시적으로 보았을 때 위기를 근본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전략적 수단이 있는가 하는 문제는 남아 있지만, 단기적으로만 보면 몇 가지 정책수단을 사용하며 급한 불을 꺼왔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한 미국과 유럽 국가들에서 위기가 가장 크게 터져나오긴 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들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이 가난한 나라들에 비해 사용 가능한 정책수단을 더 갖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이를테면 최근 언론에 등장했던 두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지난 10월, 각 언론사에 이런 기사들이 뜨기 시작했다. "일본이 대지진 이전 소비의 80% 수준을 회복했다." 아니,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미국과 유럽보다 더 높은 일본이 도대체 무슨 용 빼는 재주가 있어서 소비 수준을 저렇게 회복할 수 있는 것일까? 게다가 대지진이 벌어지고 환율 급등으로 인해 수출 경쟁력마저 엄청난 타격을 입은 일본이 말이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조선일보>가 재미있는 통계자료 하나를 제시한 바 있다. 요약하자면 일본의 소비수준이 유지되고 있는 비결 중 하나는 "기업의 해외이익과 해외 증권투자 수익을 합친 소득수지"에 있다는 것이다.


일본이 무역흑자 대국이라는 것은 옛말이다. 엔화가치 상승과 생산기지의 해외 이전으로 무역흑자는 줄어드는 추세다. 하지만 국내로 들어온 기업의 해외이익과 해외 증권투자 수익을 합친 소득수지는 늘고 있다. 2005년 이후 일본의 소득 흑자액은 무역 흑자액을 웃도는 상황. 일본 경제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는 일본 경제의 정확한 좌표를 알려면 소득수지가 반영된 GNP(Gross National Product·국민총생산)를 다시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09년 일본의 명목GDP는 474조엔, 명목GNP는 12조 엔이 더 많은 486조 엔이었다. (조선일보 9월 10일자)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기며 일본 국내 제조업 비중은 줄어들지만 그 이윤을 국내로 송금하고 있다는 것이고, 해외 주식시장에 투자한 금액을 회수하여 국내로 들여오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해외에서 일본 투자자들이 투자액을 엔화로 환전하는 일이 잦아질 것이고, 따라서 엔화 수요가 늘어 환율도 급등한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여하튼 일본 정부와 자본가들에게는 해외에 투자한 것을 회수하는 방식의 '정책수단' 하나가 남아 있다는 말이 된다. 이러한 정책수단이 가난한 나라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 한 가지 사례는 유럽이다. 한국의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미국과 유럽 주식시장이 폭락하고 재정위기가 닥쳐온 지난 8월부터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강하기 때문에 당분간 걱정할 일은 없다"고 줄기차게 강조해 왔다. 그런데 그때마다 잊지 않고 경제 기사들이 덧붙이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한국 주식시장도 유럽계 자금이 일시에 빠져나갈 경우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사실관계를 따져보면 금방 드러난다. 세계경제위기 2라운드가 시작된 올해 8월 이후, 한국 주식시장에서 빠져나간 유럽계 자금의 규모만 7조 원에 이른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채권시장에서도 유럽 자금은 유입보다 유출이 많은 편이고, 국내 은행이 유럽계 은행으로부터 빌린 대출금도 상환 연장이 안 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뒤집어서 말하자면, 유럽 은행들에게는 아직도 한국 금융시장에서 빼갈 돈을 남겨두고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유럽 은행들은 이렇게 해외 주식시장을 비롯한 금융시장에 맡겨놓은 돈을 찾는 방식의 '정책수단'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이 갖고 있는 이러저러한 정책수단은 기껏해야 3개월, 6개월짜리 단기처방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 외곽의 국가들이 갖고 있는 것에 비하면 훨씬 많은 수단을 강구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위에서 든 사례들 중 유럽이 갖고 있는 정책수단이 발휘될 경우, 한국 금융시장은 곧바로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인사이드 경제>가 갖고 있는 가설 중 하나, 즉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자신의 위기를 가난한 나라들로 전가시키는 방식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위기의 진원지는 미국과 유럽 등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지만, 이들이 밑으로 위기를 전가시키는 시스템으로 인해 도대체 어디서 화약고가 터져나올지 알 수 없는 시스템이 되어버렸다. 한국 경제의 미래도 점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내일의 수요를 오늘에 당겨쓰며, 오늘의 위기를 내일로 미룬다

선진국들이 가진 정책수단도 쓸 수 없고, 석유를 비롯한 자원을 팔아 근근이 버티는 나라도 아닌 곳의 경우, 지난 3년간 위기가 닥쳐올 때마다 의지했던 방법은 막대한 국가 재정을 투입해서 생산과 소비의 수준을 유지시키는 '경기부양책'이었다. 사실 이런 경기부양책에 천문학적인 국가 재정이 들어가다보니 얼마 가지 않아 재정위기를 낳는 주요인이 되기도 했지만 말이다.

소비 수준을 유지시키기 위한 대표적인 방식으로 '폐차보조금'과 같은 제도가 거의 모든 나라에서 도입되었다. 이를테면 오래된 중형차를 신차로 바꿀 경우, 또는 전기차나 하이브리드차 등 친환경차를 구입할 경우 세금을 감면해 주거나 보조금을 주는 방식으로 차량 가격을 할인해주는 것이다. 2008년 위기로 미국의 빅3 중 GM과 크라이슬러가 파산보호신청을 하는 등 자동차산업의 위기가 닥쳐왔을 때, 극적으로 신차 판매량을 늘려주면서 자동차산업을 구원했던 방법이었다.

그런데 이 방식은 조만간 새로운 문제를 낳게 되는데, 바로 "내일의 수요를 오늘에 당겨쓰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내년이나 내후년에 차를 바꿀 사람들에게 올해 차를 바꾸면 훨씬 싸게 구입할 수 있다는 방식으로 신차 판매량을 늘려놓은 것이다. 즉, 폐차보조금 제도가 종료되고 1~2년이 지나면 오히려 신차 판매량이 줄어들게 되는 효과를 낳는 것이다. 내일의 수요를 오늘에 당겨썼으니까!

사실 세계경제체제는 2008년 이후 계속해서 오늘의 위기를 내일로 넘기는 방식으로 필사적으로 움직여왔다. 당장 오늘만 넘기면 된다는 방식으로 말이다. 건설과 조선업의 거품이 터지기 일보직전에 처하자, 억지로 건설과 조선업 수요를 창출해서 위기를 모면해왔다. 주식 거품이 터지려 하자 각종 연기금을 동원하여 주식시장 방어에 나섰다. 한국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이 빠져나가면서 코스피 지수가 하락할 때마다, 하루에 수백억~수천억 원에 이르는 연기금이 주식시장에 투입되었던 것이다. 연기금이 고갈되건 말건, 그거야 몇 년 뒤에 걱정하면 될 일이니 일단 경기부양에 털어넣고 만 것이다.

이러한 위기는 정치적 위기와도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이를테면 집권당의 입장에서는 다음 선거까지만 어떻게든 경제위기가 터지지 않도록, 오늘의 위기를 내일로 지연시키는 방법을 써온 것이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가재정이 고갈되건 말건 경기부양책을 쏟아내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거품이 터지려 하면 또다시 국가재정을 투입하고 …. 이러한 악순환의 뒷감당은 돈 없고 빽 없는 노동자와 시민들이 져야 했다. 재정긴축 한답시고 공공부문 노동자들 일자리와 임금이 삭감되었고, 경기부양으로 풀린 돈 때문에 물가폭등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세계 경제의 내일? 모레보다는 낫다!

어느 술집에서 한 남자가 술잔 하나를 앞에 두고 줄담배를 뻐끔뻐끔 피워대자, 보다 못한 옆사람이 이렇게 충고한다. "신사 양반, 그 담배가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당신을 서서히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아오?" 그러자 그 남자가 빙긋 웃으며 답하기를 "걱정 마세요. 빨리 죽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어느 스포츠신문에서 본 콩트인데, 어쩌면 지금의 세계 경제위기를 잘 비유하고 있기도 하다. 경제는 서서히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는데, 처방전은 '오늘 수렁에 빠지지만은 않도록' 하는 것에 맞춰져 있다. 폐차보조금으로 2009~2011년에 신차 판매량이 극적으로 늘어나 자동차산업이 잠깐 반짝하기는 했지만, 내년 전망은 결코 밝지 않다.

물론 한국 완성차업체의 올해 판매량만 보면 아직 그러한 조짐이 보이고 있진 않지만, 이미 상당수 전문가들이 내년 자동차업종의 위기를 점치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8월 유럽과 미국의 재정위기가 터져나올 때만 해도, 조선업·건설업의 위기가 점쳐졌을 뿐, 당분간 자동차산업은 괜찮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 지 불과 3~4개월 만의 일이다.

현대기아차의 경우 올해 판매량은 지난해보다 늘었지만, 내년의 경우 출시할 신차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왜 그럴까? 그동안 자동차 판매량을 유지하기 위해 신차를 앞다투어 출시한 탓이다. 이 역시 내일의 수요를 오늘에 당겨쓴 것과 마찬가지이다.

여기에다 내년은 웬만한 나라들에서 모두 선거가 펼쳐진다.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 일본,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등 …. 집권당들이 차기 선거 때까지만 위기가 터져나오지 않도록 관리해왔기 때문에, 선거가 지난 뒤에는 경제 지표가 순식간에 뒤집힐 가능성이 곳곳에 존재한다. 따라서 2012년 세계 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인사이드 경제>는 이렇게 답하는 수밖에 없다.

"정부와 자본이 위기를 내일로, 내년으로 지연시켰기 때문에 세계 경제는 올해보다 더 나빠질 수밖에 없지. 하지만 희망을 가져. 그래도 2013년보다는 나을 거야. 2014년보다는 훨씬 나을 거고. 지금의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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