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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 휘청여도 달러 가치 오르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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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 휘청여도 달러 가치 오르는 이유는?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또 다시 형성된 달러 거품이 꺼진다면?

"미국 경제가 패닉 상태에 빠지면, 그동안 기축통화 역할을 해왔던 달러화 가치가 하락하게 된다."

그럴 법한 말이다. 한 나라의 경제가 휘청거리는데 그 나라 통화를 안전하다고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런데 현실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진다. 8월 5일, S&P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하자 미국 증권시장이 폭락하며 패닉 상태에 빠지기 시작했는데, 달러화 가치는 오히려 올라가고 있으니 말이다. 이를 두고 거의 모든 경제전문가들은 이렇게 해석한다.

"미국 증권시장 폭락으로 세계 경제가 불확실성에 빠지면서,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이라 여기는 달러로 몰려들어 달러화 가치가 치솟고 있다."

그럼 도대체 무슨 얘기가 옳은 것일까? 맨 앞에 제시된 말도 똑같은 경제전문가들이 쏟아낸 말이었는데 말이다.

안전자산 달러로 몰려드는 현상?

'인사이드 경제'를 처음 연재할 때부터 목표는 한 가지였다. 경제전문가라는 이들이 참으로 복잡하게 꼬아놓은 경제 이야기, 특히 세계경제 이야기를 나 같은 비전문가가 한 번 파헤쳐 보겠노라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도 평범한 사람들이 경제 얘기를 알기 쉽게 풀어내야만 한다고.

주식투자 한 번 해본 적 없는 필자 입장에서는 우선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이라 여기는 달러로 몰려든다"는 말조차 해석하기 난망하다. 수많은 투자자들이 달러를 사재기라도 한단 말일까? 게다가 미국 경제가 곤두박질치면서 가치가 하락될 것이 분명한 달러를?

그럼 여기서 비전문가인 필자만의 새로운 해석법을 도입해보겠다. "투기꾼들, 특히 미국에 기반하고 있는 투기꾼들이 각국 주식시장에서 주식을 대량으로 팔아치워 달러화로 바꾼다. 그러다보니 단기적으로 달러에 대한 수요가 늘어 달러화 가치가 상승하게 된다."


S&P가 미국 신용등급을 강등함에 따라 전세계 주식시장이 요동치던 지난 8월 한 달 간, 한국의 코스피지수와 환율이 어떻게 변동했는가를 살펴보면 이해하기 쉽다. 위 그래프 중 왼쪽은 코스피지수 변화추이를 나타낸 것이고, 오른쪽은 원-달러 환율의 변화 추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8월 1일부터 9일까지 코스피지수는 무려 15% 이상 곤두박질쳤는데, 원-달러 환율은 정반대로 이 기간 동안 수직으로 상승했다. 8월 13일부터 17일까지 코스피지수가 반등했는데, 마찬가지로 원-달러 환율은 이 기간 동안 수직으로 떨어짐을 알 수 있다. 8월 23일 코스피가 깜짝 반등할 때에도 원-달러 환율은 밑으로 떨어졌다. 다시 말해 코스피 지수와 원-달러 환율은 정반대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한국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대량의 주식을 팔아치워 달러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갑자기 달러 수요가 급증하게 되고, 원화에 대한 달러화 가치가 치솟게 된다.

한국 주식시장은 전세계 투기꾼들의 ATM(현금인출기)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주식·금융시장이 워낙 잘 개방되어 있어 투기꾼들이 주식을 달러로 바꾸기 손쉬운 곳으로 꼽힌다. 이런 현상은 한국처럼 전세계 투기꾼들이 약탈하기 쉽다고 여기는 국가들에서 모두 공통적으로 나타나며 달러화 가치를 상승시키게 된다. 이게 바로 "안전자산이라 여기는 달러로 몰려드는 현상"이다.

둘 다 맞는 말?


위 그림은 지난 3년간 달러 인덱스(주요 6개국 화폐 대비 달러화 가치)의 변화 추이를 나타낸 것이다.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 파산 사태로 미국 주식시장이 폭락했을 때에도 상황은 비슷했음을 알 수 있다. 리먼 사태부터 2009년 3월까지 달러화 가치가 급속도로 치솟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2009년 4월부터 그해 연말까지 달러화 가치는 지속적으로 하락한다. 아니, 필자의 입장에서 정확히 표현해 보자면, 달러화는 본래의 가치를 되찾아가게 된다. 각국 주식시장에서 큰 손(투기꾼)들이 발을 빼며 달러화로 바꾸는 동안, 달러화는 실제 가치보다 훨씬 높은 가치로 평가된다. 달리 말하면 '달러화 거품'이 만들어졌던 것인데, 얼마 지나지 않아 거품이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맨 앞에 제시했던 두 가지 상반된 명제는 '모두 옳다'고 말할 수 있다. 미국 경제가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되면 당연히 달러화 가치는 하락한다. 그러나 패닉과 동시에 투기꾼들이 주식을 팔아 달러화로 바꾸려 하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달러화 가치의 이상 상승 현상, 다시 말해 거품이 형성된다.

2008년 9월에 이어, 세계 경제는 지금 다시 한번 달러화 거품 형성의 단계를 거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주식시장이 몇 차례 더 요동치며 폭락을 거듭하는 동안 달러화 거품이 유지되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달러화 가치는 제자리를 찾아가기 위해 수직으로 하락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달러화가 제값을 찾아가는 과정이 가져오는 파장 또한 만만치 않다.

미국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의 상관관계

아래 그림은 2008년부터 최근까지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의 추이를 나타내는 그래프다. 이를 살펴보면 유로화의 변화 추이는 달러화와 정반대로 움직였음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2008년 9월부터 달러화 거품이 만들어지는 동안 유로화 가치는 떨어졌고, 2009년 4월부터 달러화가 제자리를 찾아가며 떨어질 때 반대로 유로화 가치는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유럽 경제는 한국에 비해 내수가 탄탄한 편이지만, 독일을 비롯한 주요 경제강국들은 여전히 수출 비중이 높은 편이다. 그런데 달러 가치가 하락하고 유로화 가치가 올라갈수록 유럽 기업들의 대미 수출경쟁력은 떨어지게 된다.

결국 자국 기업들의 수출경쟁력과 내수 시장 활성화를 위해 유럽 각국 정부들은 엄청난 규모의 재정적자를 감수하며 경기부양책을 써야만 했다. 그러다 결국 쌓이는 재정적자를 감당하지 못해 그리스가 디폴트 위기에 빠지며 유럽 재정위기 사태가 2009년 말에 터져 나오게 된다.

위 그래프를 보면 재정위기가 터져 나오던 2009년 12월 시점까지 유로화 가치가 수직으로 상승했음을 알 수 있다. 앞서 달러 인덱스 그래프를 보면 2009년 12월까지 달러화 가치는 유로화와 정반대로 수직 하락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달러화 거품이 빠지는 과정은, 미국으로의 수출에 의존하는 나라들의 위기를 가속화한다. 그런데 이번 위기는 2008년과 달리 유럽 재정위기가 더욱 심화되는 과정에서 터져 나왔다. 따라서 향후 달러 거품이 빠지기 시작하면 유럽 재정위기는 더 심각한 상태로 터져 나올 것이 분명하다.

또다시 거론되는 '양적 완화'

달러 거품이 빠지는 과정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2009년 4월부터 12월까지 달러화 가치가 하락하며 제값을 찾아갔다고는 하지만, 미국 정부는 이른바 '양적 완화' 정책을 구사하며 달러 가치 하락에 가속도를 붙였기 때문이다.

'양적 완화'란 간단히 말하면 미국 재무성에서 엄청난 규모로 달러를 찍어서 시중에 공급하는 것을 뜻한다. 기술적으로는 조금 복잡한데, 찍어낸 달러는 곧장 시중에 공급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 국채를 매입하는데 쓰인다. 이렇게 되면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국채 매입금이 쌓이게 되고, 이 자금을 수요 진작 등 경기부양을 위해 사용하면서 시중에 달러가 풀리게 된다.

한 번에 수천억 달러씩 풀리게 되니 자연스럽게 달러화 가치는 더욱 빠르게 하락한다. 미국 정부는 2009년 한 해 동안 1차 양적 완화를 진행했고, 2010년 8월부터 올해 6월까지 2차 양적 완화를 진행했다. 양적 완화가 진행되는 동안 어김없이 달러화는 하강 행진을 지속했다.

그런데 오바마 행정부는 조만간 '3차 양적 완화'에 나설 것이 확실시된다. 경기부양책을 발표할 예정이라는데, 경기부양에 쓸 자금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 7월 말, 오바마 행정부와 의회는 재정적자 감축을 위해 재정지출을 줄이기로 합의한 바 있다. 따라서 결국 달러화를 대량으로 찍어서 시중에 공급하는 방식 외에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3차 양적 완화가 시작되면 달러화 거품이 빠지기 시작할 것이고, 이 과정에 속도가 붙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유럽을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다시 한번 먹고 사는 문제를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2008년에 불어닥쳤던 위기 때 어떠했는가를 참조해보면, 앞으로 이 위기가 어떠한 방향과 형태로 전개될 것인지를 조금이나마 예측할 수 있다.

이를테면 2008년 9월부터 2009년 상반기까지, 미국 정부가 위기 때마다 경기부양책을 내놓으면 주식시장이 반짝 반등했다가 하루 이틀 만에 다시 폭락하는 일들이 반복된 바 있다. 이는 정부가 경기부양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발표가 나오면 개미 투자자들이 주식시장으로 몰려들 것을 예상한 투기꾼들이, 경기부양책 발표 직전까지 투기자금을 주식시장에 밀어넣어 주식시장 거품을 키워놓았다가, 경기부양책이 발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팔아치우는 '초단기투매'를 통해 이윤을 뽑아내기 때문이다.

오바마가 경기부양책을 발표한다고 하자 지난 이틀 동안 전세계 주식시장이 환호를 내질렀다. 그런데 그 환호성이 과연 1주일 이상 지속될 수 있을까? 대형 투기꾼들이 경기부양책이 발표된 직후 대규모로 주식을 팔아치울 때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다.

어려워보이는 세계 경제 이야기들이지만 실제 본질적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경제전문가들의 평론 속에는 주식시장, 환율, 금값, 기름값 얘기들뿐이지만, 본래 경제란 것이 "인간이 먹고 사는 문제"에 다름 아니다. 지금의 위기는 다수의 사람들이 먹고 살지 못하도록 만드는 시스템이 불러온 것이며, 주가와 환율은 위기가 불려온 결과를 나타내줄 뿐이다.

이를테면 아무리 국가 재정을 쏟아 경기부양책을 써도 소비 진작은 기대할 수 없다. 상품을 소비할 노동자들의 호주머니가 빈털터리이기 때문이다. 2008년 위기가 해소된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올해 다시 터져 나온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소비가 위축되면 또다시 자본을 위해 재정이 투입되고, 그 돈으로 자본은 정리해고·임금삭감으로 노동자들을 더 가난하게 만들어 소비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인사이드 경제'는 앞으로 그 먹고 사는 문제와 세계 경제위기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파헤칠 것이다.

▲'3차 양적 완화'가 임박했다. 달러가 시중에 풀리면, 달러화 가치 하락은 필연이다. 이는 미국에 수출하는 기업에 위협이 된다. ⓒ로이터=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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