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동부 지진 때 핵연료 용기 '덜컹' 아찔한 상황

미국에서 처음 벌어진 일…원전 불안감 확산

지난달 23일 미국 동부에서 발생한 규모 5.8~5.9의 지진으로 이 지역 원전에 있는 사용후 핵연료 저장 용기가 움직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방사선이나 방사성 물질의 유출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미국에서 사용후 핵연료 저장용기가 지진에 의해 움직인 건 처음이어서 불안감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지진의 진앙지인 버지니아주 지역 언론 <리치몬드 타임스-디스패치>는 1일자(현지시간) 이번 지진으로 가동을 멈췄던 버지니아주 노스 애너 원전의 사용후 핵연료 저장 용기 27개 중 25개가 움직였다고 보도했다.

노스 애너 원전을 운영하는 도미니언 버지니아 전력은 핵연료 저장 용기가 지진으로 인해 최대 11.5cm 가량 움직였지만 손상이 가거나 방사선이 누출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노스 애너 원전의 사용후 핵연료는 46cm 두께의 강철 용기 안에 보관되며 이 용기는 다시 91cm 두께의 콘크리트 구조물로 덮여 있다. 원전에는 이러한 구조물이 두 개 있는데 지상에 고정된 상태는 아니다. 무게가 115톤이 이르는 구조물이 미국 동부에서 관측 이래 최대 규모의 지진에 흔들린 것이다.

애너 원전은 지진 발생 당시 안전장치가 작동해 자동으로 가동을 멈췄고 충격으로 외벽에 금이 간 것으로 나타났다. 원전이 외부 충격에 의해 자동으로 멈춰선 것은 미국에서 처음 벌어진 일이며, 사용후 핵연료 보관 용기가 움직인 것도 최초라고 미국 원자력위원회(NRC)는 밝혔다.

▲ 지난달 23일 미국 동부 지진으로 가동을 멈춰선 미 버지니아주 노스 애너 원전의 사용후 핵연료 보관 용기를 감싼 콘크리트 구조물. ⓒAP=연합뉴스

미 정부와 전력사 측은 이번 지진으로 원전이 위험에 처한 게 아니라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도미니언 버지니아 전력은 안전 장치나 사용후 핵연료를 냉각하는 시스템에 손상이 가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 당국은 지난달 30일부터 지진으로 인한 원전 상황을 조사하고 있으며 현재까지는 안전한 상태지만 사용후 핵연료 보관 용기가 움직인 건 초유의 사태인 만큼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어내겠다고 밝혔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미국의 원전도 안전하지 않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자연재해가 벌어질 때마다 미국인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지난 6월 홍수가 난 미국 네브래스카주 북부 미주리강 인근의 포트 칼훈 원전 안으로 강물이 밀려들어왔다. 비슷한 시기 뉴멕시코 주에서는 산불이 나 미국 국립핵연구소인 로스 알라모스 연구소가 폐쇄되는 일도 있었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 원전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음에도 미국 당국이 원전의 안전기준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도 비판을 받고 있다. 미국 의원들은 정부와 원전업계가 안전 기준을 후쿠시마 사태 이전과 같이 유지하고 있다며 안전 시스템의 전면 재점검을 촉구한 상태다.

일례로 지나달 28일 <LA타임스>는 지어진지 30년 된 노스 애너 원전이 규모 5.9~6.1의 지진을 견딜 수 있게 설계되었다고 지적했다. 이번 지진이 규모 5.8~5.9의 강도를 보인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아슬아슬하게 사고를 비켜간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한 서부 지역과는 달리 '지진 안전지대'로 여겨졌던 동부 지역에서 지진이 발생했고, 2000년대 들어 지진의 강도도 점점 커져온 것으로 알려지면서 현재 상황이 안전하다고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앞으로 지진이나 허리케인 등 자연재해의 강도가 더욱 거세질 것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