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3일 북한의 천인공노할 연평도 포격이 있었다. 1953년 정전 이후 처음으로 대한민국 영토에 대한 직접 공격이며 민간인까지 살상한, 있어서는 안 되는 전쟁행위가 벌어진 것이다. 지난 3월 천안함 사태의 아픔이 애매하게 처리되면서 상처를 치유하기도 전에 발생한 이번 북한의 공격으로 한국 국민들은 한반도의 분단 현실을 재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국제사회도 북한의 무모함에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면서 강력하게 북한의 행위를 규탄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대북 포용정책의 포기가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을 부르고 있다는 일부의 주장을 두고 첨예한 대립이 계속되고 있고, 국제적으로는 북한의 유일한 후견국인 중국의 책임 있는 역할을 주문하면서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북한은 철저하게 계획된 듯 연평도 포격 이후 별다른 후속 공격징후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미국의 7함대 항공모함이 참가한 한미 연합군사 훈련의 막강한 군사력에 당황하고 있다. 자국의 안보이익을 해친다면서 미 군사력의 서해 진입을 반대하던 중국도 공격 주체가 너무 뚜렷한 이번 사건을 앞에 두고는 어쩔 도리 없이 미국이 자랑하는 현존하는 최고의 막강 첨단 군사력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이어 한미연합훈련의 6배에 달하는 규모로 일본과 합동훈련을 실시하였다. 미국의 말대로 북한을 자제시키고, 중국의 책임 있는 역할을 끌어내기 위한 훈련으로는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다음에는 한국 경기도 일대를 포격하겠다는 불바다 발언을 계속하고 있으나 현재까지 북한의 '전쟁 비즈니스'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남북 간 적절한 긴장상태를 야기해 3대 세습의 분위기를 구축하면서 남한 사회의 국론 분열과 미국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이번 도발을 자행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북한의 실체에 대한 남한 사회의 경각심만 제고되었고 국제사회에서도 역시 '망나니 북한' 이미지만 더욱 각인됐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 역시 제일 고민스러운 나라는 중국일 것이다. 중국외교의 실무 사령탑인 중국의 따이빙궈(戴秉國) 국무위원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 이후의 사후 처리를 위해 11월 26-7일 양일간 우리나라를 급거 방문하고 돌아갔다. 여전히 전략적으로 북한 끌어안기를 계속하고 있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충분한 의견 교환을 통해 실질적이고 책임 있는 대북 역할을 기대하고 있던 국제사회와 우리에게 중국이 꺼낸 카드는 실망스럽게도 6자회담 카드였다.
중국은 27일 외교부 '중대 발표'를 통해 '6자 회담 수석대표 회담'을 매우 새로운 제안처럼 제의하였다. 물론 6자회담 수석대표 회담을 제의하면서 이것이 6자회담의 재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토를 달았지만 한국은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없다. 그동안의 6자회담이라는 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한국이 맞닥뜨린 것은 다자간 합의를 무시하고 핵 개발을 지속하고 있는 북한이며, 무모한 군사적 도발을 계속하는 북한이기 때문이다.
6자회담이란 북한의 핵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 한국·북한·미국·중국·러시아·일본 등 6개국이 참가하는 다자회담이다. 미국의 적대 정책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하는 유일한 수단이 핵보유라는 명분하에 북한은 핵개발에 몰두하였고 1994년 북한과 미국은 제네바합의를 통해 북한은 핵 개발을 중단하고 핵 사찰을 받는 대신, 미국은 북한의 체제 보장과 경수로 발전소 건설을 조건으로 북핵 문제를 합의하였었다.
그러나 2002년 10월 북한의 새로운 핵 개발 의혹이 제기되자 북미 간에는 '선 핵 포기, 후 지원'문제를 둘러싸고 대립이 지속되었다. 6자회담은 북미간의 협상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게 되자 중국의 중재로 북한과 미국 외에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참여하는 다자간 회담으로 태동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은 두 차례에 걸친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2005년 핵 폐기를 명문화한 6자간 9.19 합의를 정면으로 무시하였다. 특히 얼마 전에는 미국의 핵 전문가에게 그동안 존재 자체를 부인하던 우라늄 핵 농축시설까지 공개하더니 조선중앙 방송을 통해 이를 공식화해 국제사회에도 도전장을 던졌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중국은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을 제안하면서 6자회담을 통해 북한 문제를 풀어보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다. 사실 6자회담은 핵 문제 뿐 아니라 북한 문제 전반에 관한 종합적인 다자회담 성격도 띠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지금은 6자회담을 할 때가 아니라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오히려 29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태에 대한 단호한 대응의지와 국민 단합을 촉구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북한이 스스로 변화하여 핵을 포기하는 것은 기대하기 힘들다면서 대북 강경책 지속을 천명하였다.
중국으로서는 일단 대화의 장을 열어보려는 시도를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당사국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그럼에도 중국이 6자회담 카드를 꺼낸 것은 복합적 함의가 있다.
우선, 중국은 무모한 도발을 일삼는 북한을 앞에 두고 적절하게 북한을 제어할 수 있는 뾰쪽한 방법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국제사회는 중국의 영향력을 강조하고 있지만 자신들의 영향력 한계를 강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이 기댈 수 있는 것은 자국이 의장국인 6자회담의 재가동이 당위성 면에서나 현실적으로도 거의 유일한 선택일 수 밖에 없으며, 국제 사회의 압박에 일단 꺼낼 수 있는 카드로도 유용하기 때문이다.
둘째, 대책 없이 북한편만 들다가 미국의 군사력이 서해로 들어오는 자신들이 가장 원하지 않는 결과를 보게 되었고, 나아가 일본을 재무장시키는 빌미를 줄 수 있는 등 동북아의 안보지형을 위태롭게 하고 있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현 상황을 대화 국면으로 전환시켜보려는 것이다. 한국, 미국, 일본이 부정적 반응을 보이면 이는 중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미일의 비협조로 북한 문제 해결의 유일한 첩경인 6자 회담 가동이 어려워졌다는 책임 떠넘기기 의도도 있다.
셋째, 한국과 미국에 주는 메시지도 담고 있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지속적 도발이 결국 한국과 미국의 대북 무시 전략과 소위 전략적인 지연 전술이 북한을 자극하고 있기 때문에 한·미의 대북 정책 전환도 촉구하는 메시지도 담고 있다. 결국 중국 혼자서 절대 북핵문제 해결을 책임지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다. 이점에서 6자회담의 재개에는 동의하지만 북한의 행위를 강력 비판한 러시아의 입장은 부담스러울 것이다.
중국이 6자회담의 재개를 통해 북한 문제뿐 아니라 한반도 평화, 나아가서 동북아의 안정도 도모하려는 전략을 갖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무런 성과도 없는 기존의 6자회담 틀 그대로 북한과 마주앉는 것을 한국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중국이 진정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원한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또 늘 그렇듯 '관련국들의 냉정과 자제'만을 강조하면서 기존의 방식을 고집하는 전략은 근본적으로 재고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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