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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장애인은 보험도 가입 못 하나요?"

[복지국가SOCIETY] "건보 보장성 강화가 첫 번째 대안"

청각장애 2급인 특수교사 김 모(당시 33세)씨는 2009년 8월 A공제회의 종합보험에 가입하려 했으나 보험가입을 거부당했다. 청각장애 2급은 장해분류표 상 장해지급률 80% 이상에 해당돼 이미 보험사고가 발생했으므로, 상법 규정에 따라 보험계약이 무효가 된다는 것이 가입 거부의 이유였다. 그래서 그는 지난 5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보험계약 이전에 보험금 지급사유의 보험사고가 발생해 계약이 무효로 된다는 등의 이유로 청각장애가 있는 특수교사의 보험 가입을 거부한 것은 장애인을 차별하는 행위"라고 판단하고, A공제회에게 해당 보험청약 건에 대한 재심사와 보험심사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에 대한 장애인차별금지와 관련한 인권교육을 실시하라고 권고하였다.

이와 같은 사건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데, 더욱 심각한 것은 국가기관에서도 장애인의 보험 가입을 차별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9년 우정사업본부는 정신장애 3급 및 우울증 치료병력이 있는 경우, 사고발생률을 다른 계약자들과 동일하게 볼 수 없어 보험 가입을 거절하고 있다고 하였으나, 보험청약자의 장애와 보험사고 발생률에 대한 구체적인 계약심사조차 하지 않고 보험 가입을 거절하였다.

보험사의 장애인 가입 거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진정사건 피해자들이 가지고 있는 장애는 일반적으로 일상생활 및 사회활동에 상당한 제한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현재 치료 중이거나 추가적인 질병이 발생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상법 제732조(15세미만자, 심신상실자 또는 심신박약자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한 보험계약은 무효로 한다.)상 장애인의 경우 계약의 무효조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장애인 관련 보험은 보험 인수 기준 매뉴얼 상 '할증불가' 상품으로 설계되었다고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의 보험 가입권은 헌법 10조·11조·34조, 장애인복지법 8조, 장애인차별금지법 15조·17조에서 보장하고 있다.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받지 아니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동법 제34조 제5항은 '신체장애자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장애인복지법 제8조는 '누구든지 장애를 이유로 정치·경제·사회·문화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누구든지 장애를 이유로 정치·경제·사회·문화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장애인을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15조 제2항에서는 '재화·용역 등의 제공자는 장애인이 해당 재화·용역 등을 이용함으로써 이익을 얻을 기회를 박탈하여서는 아니 된다.', 동법 제17조에서는 '금융상품 및 서비스의 제공자는 금전대출, 신용카드 발급, 보험가입 등 각종 금융상품과 서비스의 제공에 있어서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인을 제한·배제·분리·거부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법률적·의학적으로 보험가입 거부에 대한 아무런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장애인들은 보험 가입을 거부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하의 글에서는 이와 관련해서 우리나라의 장애인 보험 가입 차별에 대한 몇 가지 현실적인 대책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 가장 좋은 방법으로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민간보험의 경우 영리목적으로 운영되므로 위험평가(risk assessment)를 통하여 피보험자를 선택(selection)한다.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더 많은 건강문제에 직면하게 되고, 이차적인 기능장애가 발생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이유로 500만 장애인들은 값비싼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려고 애쓰는 대신에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하자는 내용의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다.

둘째, 국가 차원의 민간보험사 장애인 가입에 대한 세부적인 기준 및 심사절차에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생명보험협회에서는 9개 인수불가 항목을 규정하고 있는 장애인공통계약심사기준(2000년 10월 제정)을 폐지하고 2005년 9월 1일 장애인보험계약인수 모범규준을 마련하였는데, 위 모범규준에서는 심신상실자, 심신박약자, 중증장애인 등의 경우에도 비장애인과 동일한 계약심사 과정을 거쳐 보험계약 인수여부를 결정하도록 함으로써 과거 9개 인수불가 항목에 해당할 경우에도 계약심사를 거쳐 사고발생 위험률에 따라 계약의 인수여부 등을 판단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사례에서 보듯이, 9개의 항목은 현실적으로 거부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이미 장애가 있는 보험대상자의 보험청약 건을 인수심사 하는 경우, 단지 장애등급이나 유형만을 살필 게 아니라 보험대상자의 장애 정도 및 상태, 장애 원인, 건강 상태 등 제반 조건을 구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며 "A공제회는 청각장애 2급을 근거로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 장애등급에 규정돼 있는 장애정도를 유추해 자체 기준에 따라 '절대사절'로 처리한 것은 인수심사 과정을 제대로 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현 시점에서 민간보험사에게 광대한 장애인의 위험평가 기준이나 심사절차 가이드라인 개발을 맡기기엔 역부족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보험 인수기준과 심사과정에 대한 국가 차원의 가이드라인의 개발이 필요하고, 이를 보험사들이 따르도록 관리감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아일랜드의 민간의료보험 회사들은 보험 가입 희망자들의 병력이나 건강상태, 기타 이유에 관계없이 보험 가입을 허용하고 있고, 미국의 경우 메디케어(노인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공적 의료보험)에 대한 보충적 민간의료보험 상품의 복잡성을 해결하고자 '상품 표준화'를 단행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러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장애인들이 합리적 판단에 근거하여 상품을 선택하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하다.

셋째, 앞서 제시한 법과 장애인보험계약인수 모범 규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근거 없이 차별이 발생하므로 민간보험사의 장애인 위험평가에 대한 국가적인 통계 제시가 필요하다. 보험회사는 검증된 통계자료 또는 과학적·의학적 자료 등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자료와 장애정도 등을 고려하여 보험인수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 이에 민간보험사가 장애인 위험평가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금융감독원, 보건복지부, 통계청,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협력하여 관련 통계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보험사의 위험평가의 대상은 과거병력, 현재 증상 등 신체적 위험 평가, 직업, 운전, 흡연 등 환경적 위험평가, 고의적, 악의적 보험 사고 발생에 대한 도덕적 위험 평가, 보험과다 가입, 사행성 등 재정적 위험 평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 신체적 위험평가는 보험대상자의 과거 건강진단 결과 또는 의사의 소견서 등을 참고하여 계약 심사를 하고 있는데, 위험평가자가 주관적으로 평가할 뿐 장애인이 실제로 사망률이 높은지 사고발생률이 높은지 아무런 근거가 없는 실정이다.

실례로, 우정사업본부는 우울증의 의료경험칙을 들어 정신장애인의 사고발생률이 높다고 주장하였으나, 이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라고 보기 어렵다. 또한, 시각장애인의 경우 사고의 위험이 높아 여행보험 가입 거부가 수차례 발생하였는데, 시각장애인들이 실제로 사고나 손상의 비율이 높은지에 대한 객관적 근거는 없다. 이처럼 보험가입 단계에서부터 보험청약자의 구체적 생활상태, 경제 및 사회활동 등을 파악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하여야 할 것인데, 위험 측정이 불가능하다는 자의적 판단만으로 보험 접근의 기회를 박탈한 사례가 많으므로 국가 차원에서 관련 통계의 제시가 필요하다.

넷째, 민간보험사가 장애인의 보험가입 거부로 주로 내세우는 상법 732조를 삭제하거나 수정할 필요가 있다. 상법 제732조는 심신상실자 또는 심신박약자가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의 피보험자가 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살해 위험성을 제거하여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나, 상법·민법 등에서는 보험계약을 악용한 보험가입자 측의 의도적인 보험사고 유발 가능성을 막기 위해 여러 방지 규정을 두고 있으며, '심신상실·심신박약'은 추상적 개념으로 현실에서는 보험자의 판단에 좌우되어 정신적 장애인들이 피보험자로서 가능한지 고려될 여지도 없이 보험에의 접근 자체가 원천적으로 봉쇄되고 있다.

또한, 이는 그 보호 취지를 감안할지라도 결국 정신적 장애인의 생명보험 활용을 통한 사후 가정안정이나 미래설계 기회마저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상법 제732조가 원래의 입법취지와 달리 장애인 개개인의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획일적으로 보험에의 접근 기회 자체를 박탈함으로써 그 목적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수단의 적정성이나 피해의 최소화에 비추어 볼 때 헌법 제11조 평등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장애인차별금지법 제15조(재화·용역 등의 제공에 있어 차별금지), 제17조(금융상품 및 서비스제공에 있어서의 차별금지)와 충돌되므로 국가인권위원회가 2005년 8월 22일 법무부에 이미 권고한 바와 같이 삭제할 필요가 있다.

만약, 여러 가지 이유로 상법 732조의 삭제가 어렵다면 '심신상실·심신박약'의 개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민간보험사나 우정사업본부에 예에서 보듯이 정신장애의 경우 '심신상실·심신박약'에 해당하므로 계약의 무효조건이라고 하는데, '심실상실·심신박약'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 자를 의미하는 지는 그 자체가 완결적 개념이 아니며, 법 판단자의 해석에 따라 구체적인 판단의 적용이 이루어지는 개념이다. 따라서 심신상실·심신박약 자체가 정신장애와 반드시 동일시되는 것이 아니므로 이에 대한 수정이 필요하다.

정신장애에 대한 치료법이 발전하지 않았을 당시에는 정신장애와 '심신상실 또는 심신박약'이 사실상 동일시되었다고 볼 여지가 있으나 정신장애에 대한 약물, 상담, 작업 등 여러 가지 치료법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현재의 조건에서 모든 정신장애인이 '심신상실이나 심신박약'의 상태에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에 심신상실과 심신박약에 대한 의학적·법률적 재해석이 필요하며, 사회적 합의를 통해 재 정의할 시점이 되었다.

예를 들어, 2010년 '기능저하 정신질환자' 개념을 도입하는 '정신보건법' 개정안이 심의·의결되었는데, 이 개정안은 기존 정신질환자 개념을 세분화하여, 중증 정신질환으로 상당기간 특정업무 및 활동을 수행할 수 없다고 인정되는 '기능저하 정신질환자'와 그 밖의 정신질환자인 '일반 정신질환자'로 구분하였다. 기능저하 정신질환자가 아닌 일반 정신질환자는 일반적인 면허·자격 취득 과정에서 불이익이 받지 않게 되는 것처럼, 일시적인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등을 겪는 일반 정신질환자는 보험에서 제한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장애인을 위한 보험 상품 개발이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례를 살펴보면, 장애인에 대한 할증 상품이 없으므로 위험평가도 하지 않은 채 가입 거부를 통보한 사례가 여러 번 발생하였는데, 이는 장애인 차별금지법 17조에 위배된다. 이와는 반대로 외국에서는 장애인의 보험가입에 대해 배제나 거부가 아니라 위험평가를 통해 할증 상품을 개발하여 가입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예를 들어, 호주에서는 암 환자인 경우 보험 가입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암 보장 내용만 제외하고 나머지 계약내용을 포함하여 진행하도록 민간보험 상품이 분화되어 있다. 덧붙여 우리나라에서도 금융감독원에서 정한 보험업법 등 관련 법규 및 생명보험 상품 통일 공시기준에 따르면, 할증불가 상품임을 명시한 회사 지침이나 자료는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할증불가 상품임을 고지한 사실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프레시안(자료 사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장애인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보험계약 체결 등을 업무로 하는 민간보험 또한 차별금지 영역에 해당하며,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민간보험은 각종 위험에 대비하는 사적 안전장치이므로 보험회사는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를 이유로 보험 가입에서 차별해서는 안 될 것이다.

끝으로, 구체적인 보험 가이드라인을 개발·보급하고 잘 따르는 기관의 경우에는 인센티브를 주는 등 정부의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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