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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기타의 부활…"직딩 '기타맨'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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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통기타의 부활…"직딩 '기타맨' 나간다!"

[현장] 멋져요! 우리 회사의 스타

11일 저녁 7시. 영등포구의 K 음악학원 연습실에서 임진영(가명, 회사원) 씨가 통기타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바로 앞에서는 최근 KBS <TOP 밴드> 출연으로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른 록 밴드 브로큰 발렌타인의 김안수(기타) '선생님'이 매서운(?) 눈초리로 임 씨의 손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자…, E마이너스 다음에 C죠? 우리 <이등병의 편지> 할 때 반 마디씩 계속 리듬 유지하는 것 배웠죠?"
"네…."
"여기 코드는 D-A-D-G에요. 앞에서 우리 G코드 연습이 잘 됐죠?"
"…."
"하하…. 연습 안 해오셨죠?"
"네…."
"자, 다시 첫 소절 갈게요. 코드 체인지에 익숙지 않으시니 반 마디씩 가죠. 소심해지면 안 돼요. 자신 있게!"
"저…. 10분만 연습하고 하면 안 될까요?"


악기를 만져본 적 없는 이에게는 암호와 같은 단어들로 두 사람은 YB의 <사랑 Two>를 얘기했다. 임 씨가 한숨을 들이쉰 후 넥(코드를 쥐는 기타부위)을 잡았다. 코드가 바뀔 때마다 갈 길을 잃은 임 씨의 손가락이 스트링(줄) 위에서 떨렸다. 기타 초보가 피할 수 없는 첫 번째 난관이 손가락에 생기는 물집이고, 둘째가 검지 전체를 사용해야 하는 F코드다. 손모양이 나빠지면 어쩌려고 이런 힘든 일을, 왜 고된 직장생활 도중에 '사서' 하나.

"아…. 재밌어요. 삶의 활력이랄까? 여자 가수들이 기타를 들고 노래 부르는 모습이 너무 멋있더라고요. 아직 코드체인지(곡의 진행에 따라 그에 맞게 코드를 바꾸는 방법)가 잘 안 돼서 답답하긴 한데, 다니는 보람 느껴요. 나중에 저도 한번 무대에 서보고 싶어요."


▲김안수(브로큰 발렌타인) 강사는 주중에는 이 학원 수강생들을 가르치고 주말에는 클럽 공연에 나선다. 직장인들의 열정은 저녁, 퇴근 후 불타오른다. ⓒ프레시안(최형락)

직딩들의 기타 사랑

기타가 다시 조명 받고 있다. 방송의 힘이 크다. '세시봉' 열풍이 통기타 붐으로 이어졌다. 평범한 일상을 살던 사람들이 <일밤>의 인기코너 '나는 가수다'를 보고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TOP 밴드>로 잃었던 밴드음악의 열정을 다시금 불태운다.

K 학원의 강좌와 강사가 갈수록 늘어나는 이유다. 기타와 베이스, 드럼, 보컬, 색소폰, 피아노, 우쿨렐레, 젬베 강좌가 개설된 이 학원은 이번 달부터 미디(MIDI)/랩 강좌도 새로 만들었다. 악기연주를 배운 후 집에서 혼자 음악작업을 하려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미디는 작곡, 편곡에 사용하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등의 전자음악 네트워크다.

기타를 가르치는 변세민 강사(그룹 비사이드 기타)는 변화를 실감한다.

"수강생이 늘어나는데, TV의 영향이 있어요. 요새는 인문계 중학교에도 기타 특별활동반이 생겼다고 하더라고요. 그 동안 용기를 못 내시던 분들도 공연이나 방송을 보시곤 마음속에 있는 걸 끄집어내시더라고요."

특히나 직장인들의 적극적인 행보가 두드러진다. K학원은 직장인들을 위해 밤 10시까지 수업을 진행한다. 야근이 잦은 직장인들은 밤 9시나 돼야 학원문을 노크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이날 7시부터 9시 사이에, 이곳을 찾은 이 중 실용음악학원 진학지망생과 중학생 둘, 그리고 자작곡을 만들기 위해 찾으신 어르신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수강생이 모두 직장인이었다.

남녀 구분도 없다. 변세민 강사가 일대일로 가르치는 학생은 총 스무 명. 이 중 아홉 명이 여성이다. 김안수 강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16명의 학생 중 여자가 6명이다.

얼핏 보면 적은 숫자이지만 그렇지 않다. K 학원에 따르면 불과 4~5년 전만 해도 기타를 배우러 온 여성의 숫자는 손에 꼽을 정도였단다. 지난해부터 부쩍 여성 직장인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학원 측은 강조했다. 이 학원이 한 인터넷 카페와 연계해 실시하는 주말 단체레슨의 경우, 수강생의 3분의 2가 여성이다.

5년차 공무원인 권모 씨(31)는 "음악에 큰 관심이 없는 동료들도 우쿨렐레(4현으로 이뤄진 작은 타악기)나 통기타를 얘기할 정도"라며 "초보 수준이긴 하지만, 기타를 칠 때마다 일상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화섭 씨는 작업복을 입고 부리나케 학원으로 달려왔다. 예사롭지 않은 폼(!)의 그는 사내 밴드를 만들고 임원진에게도 홍보를 위한 전자우편을 썼던 열정으로 동료들의 영웅이 됐다. ⓒ프레시안(최형락)

과감한 우리의 직딩 스타

배움에 때가 없듯, 직업도 체면도 중요하지 않다. 경기도 소재 한 중학교 교사인 이모 씨(31)는 지난 5월 방과 후 수업에 통기타교실이 생기면서 기타를 시작했다. 자신의 반 학생에게 "선생님 그것도 못 쳐요?"라고 비웃음을 사도 그저 재미있을 따름이다. 자신감이 붙은 그는 큰 맘 먹고 기타를 샀고, 다음 달부터는 동네 문화센터나 기타학원에 등록할 예정이다.

"전부터 악기 하나 다루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었는데, 십센치나 한희정 같은 홍대 인디밴드들 좋아하면서 자연스럽게 기타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피아노는 커서 집에 들여놓기 어려운데, 기타는 어디서든 연주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많은 직장인들이 초기의 열정을 끝까지 안고 가지 못한다. 이 교사의 경우도 그렇다. 처음에는 동료교사 3명과 같이 수업을 들었으나, 이제 동료교사들은 강의를 듣지 않는다. 김안수 강사는 "'일단 기초는 닦았다'고 할 수 있는 수준에 가려면 석 달은 가르쳐야 하는데, 대부분이 두 달 정도 지나면 그만둔다"며 "야근이다, 회식이다 해서 어쩔 수 없이 빠지다보면 취미생활을 안고 가기 힘든 듯하다"고 말했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결국 표현이다. 음악은 중요한 자기표현 수단이다. 밴드를 조직하고, 이 밴드로 자기활동에 나서는 이들이 적지 않다. 동인천의 회사에서 퇴근 후, 밤 8시가 넘어서야 학원 연습실로 들어온 이화섭(29, 두산인프라코어) 씨는 사내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인이다. 드럼을 치는 후배와 의기투합해 사내밴드 '디스타'를 만든 그는, 내친김에 <아시아경제>가 주최하는 직장인밴드 콘테스트에도 나아가 인기상을 차지한 실력파(?) 뮤지션이다.

본래 기타를 치던 이 씨는 '베이스기타를 가진 유일한 멤버'라는 이유로 기타 대신 베이스를 잡았다. 그가 학원에서 재즈 베이시스트 김인식 씨에게 베이스의 기초를 다시 배우는 이유다.

"신입사원 연수에 가서도 공연하고, 직장인 밴드 콘테스트에도 나가고. 삶의 최고 활력소죠. 매주 퇴근길에 이곳에 들러서 연습해요. 혹 압니까? 십년 후에는 최고의 베이시스트가 될 지요?"

▲이혜미 교사의 데뷔앨범 [왜너는다른](왼쪽)과 최형배 씨의 일인 프로젝트 살의 2집 [술과 꽃등심의 나날](오른쪽). ⓒ프레시안

실제로 과감히 앨범 제작에 나선 '직딩'도 있다. 직장인 최형배 씨는 이미 일인 프로젝트 밴드 살(SAL)로 정규앨범 두 장을 발표한 음악인이다. 초등학교 교사 이혜미 씨는 오랫동안 익힌 연주 실력과 쌓아온 노랫말을 모아 지난달 정규 데뷔앨범 [왜너는다른]을 발표했다. 그는 짬이 날 때마다 유성기업 파업현장에서 기타를 잡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집회에 나가 노래를 부른다.

"그냥, 하고 싶어서 했어요. 재미있겠다 싶어서. 노래를 만든 후 실력이 모자라 기타를 또 배우고, 그러다 음악관계자와 얘기가 돼서 자비로 앨범을 만들었어요. 일과 취미가 따로 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교육자로서 가진 고민을 노래로 알릴 수 있는 거니까. 일과 노래가 공존하는 거죠."

당신, 혹 바쁜 일상에 치여 소싯적 '롹 밴드' 결성의 로망을 잊고 살았나? <TOP 밴드>에 나온 치과의사 그룹을 보고 키득키득 웃으면서도 마음 한켠에선 불같은 열망이 피어올랐나? 가족밴드의 눈물겨운 사연에 감동했나?

지금도 늦지 않았다. 독학도, 학원도, 개인레슨도 좋다. '일단 시작해보라'는 게 '직딩 기타교습생'들의 조언이다. 시작이 반인 셈. 닐 테넌트(펫 숍 보이스)는 <스매시 히츠>의 기자였고, 에디 베더(펄 잼)는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었다. 혹 아나? 지금 드럼스틱을 잡은 당신이 5년 후에는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앨범' 상에는 OOO 입니다!"라는 감탄사의 주인공이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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