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적자(무역수지 적자와 재정수지 적자)가 더 심화돼, 더블딥(회복기를 보이던 경기가 다시 침체에 빠지는 현상)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는 양상이다. 미국 경제의 후퇴는 최근 일어난 어떤 경제위기보다 심각한 후폭풍을 낳는다.
신용평가기관 우려는 여전
그간 금융시장 최대 변수로 작용한 미국의 디폴트 우려가 사라졌음에도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2일 미국 상무부는 지난 6월 소비지출이 전월대비 0.2% 줄어들었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 2009년 9월 이후 처음으로 감소세를 보인 것이며, 전문가들의 예상치(0.1% 증가)를 뒤집은 수치다.
2000년대 초반 IT버블 이후 유일하게 미국 경제를 지탱해 온 소비가 다시 퇴보에 들어간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 공급관리협회(ISM)의 지난달 제조업 지수는 2009년 7월 이후 가장 낮은 50.9에 머물렀다.
또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3%에 머물러, 예상치였던 1.8%에 크게 미달했다. 1분기 성장률도 1.9%에서 0.4%로 대폭 조정됐다.
사실상 더블딥을 예고하는 신호가 뚜렷해지는 양상이다.
이 때문에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디폴트 위험이 사라졌음에도, 연달아 신용등급 강등 경고를 시장에 전하고 있다. 무디스는 "미국 정부의 조치가 최고 등급인 Aaa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장기적인 적자 감축을 향한 첫 발걸음"이라면서도 재정적자 감축이 필요하다며 전망치는 추후 강등이 가능한 "부정적 관찰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피치 역시 미 국채에 최고 등급인 AAA를 유지하면서도 신용 전망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지난 수십년 간 결코 흔들리는 일이 없으리라 여겨져 온 '미국 국채=세계 최고 안전자산' 공식에 생긴 균열은 여전히 유효함을 뜻한다.
불 세계로 번져
미국 경제에 대한 우려는 세계로 다시 확산되고 있다. 극적인 그리스 추가구제 합의로 수그러들 것으로 기대된 유로존 재정위기는 이 지역 3위와 4위 경제대국인 스페인과 이탈리아 국채 금리 폭등으로 다시 확산되는 분위기다. 한 곳을 막아도 다른 곳이 또 뚫리는 형국이다.
이날(2일) 스페인 국채 10년물 스프레드는 하루 만에 0.146%포인트 오른 6.326%였고, 이탈리아 국채 스프레드 역시 6%대로 올라섰다. 스프레드란 가중 금리로, 국가 신용도가 낮을수록 국채 스프레드는 오른다. 돈을 떼일 위험에 대한 우려가 가중금리로 수치화되는 셈이다.
이에 따라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행정부는 일제히 관련 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 중이나, 양국의 자금 조달 부담이 커진만큼 그리스 구제 계획 역시 흐트러질 수 있다.
상대적으로 재정이 건전한 한국도 미국에서 튄 불똥에 맞았다. 3일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55.01포인트(2.59%) 하락해 2066.26으로 장을 마감했다. 2거래일 동안 하락폭이 106.05포인트에 달한다. 이날(3일) 하락폭은 아시아에서 가장 크다.
특히 자동차 등 수출주가 타격을 받았다. 세계경제 침체 우려에 따라 한국 경제를 이끈 수출주 실적에도 타격이 오리라는 우려가 반영됐다.
시가총액 상위 20개 종목 중 S-oil과 롯데쇼핑을 제외한 전종목이 하락했다. 특히 현대중공업은 하루 동안에만 6%가 넘게 하락했고 현대모비스와 기아차, LG화학 등이 큰 폭의 하락세를 보였다. 이날 코스피에서 상승한 종목은 145개인 반면 하락 종목은 719개에 달했다.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9.6원 오른 1060.4원에 거래를 마쳤다. 미국 경제 우려가 오히려 안전자산인 달러화 강세로 이어져 원화 약세를 이끌었다.
아시아 증시가 일제히 하락했다. 아시아 국가 대부분이 미국 경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영향이 컸다.
니케이지수가 2.11%, 홍콩 항생지수가 2.33%, 대만 가권지수가 1.49% 하락했다. 다만 중국 상하이 증시는 상대적으로 하락폭이 적었다(0.15%).
증시 하락으로 인해 채권가격은 오름세를 보였다. 국고채 3년물이 전날에 이어 3일에도 강세를 보이며 금리가 3.8% 초반대까지 떨어졌다.
▲미국발 경기 둔화 우려로 3일 코스피가 불과 이틀만에 106포인트 넘게 급락해 전날보다 55.01포인트(2.59%) 내린 2066.26에 장을 마감했다. 3일 오후 서울 충무로 외환은행 외벽에 있는 전광판에 코스피지수가 표시된느 가운데, 한 남성이 앞을 지나고 있다. ⓒ연합 |
"미국 믿을 수 있나…"
미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미국 정부의 위기 대응 능력에 대한 신뢰도 점차 추락하는 양상이다.
<워싱턴포스트>가 지난달 28일부터 31일까지 미국의 성인 100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72%가 이번 채무상한 증액 협상에 부정적 입장을 취했다.
이로 인해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가 떨어졌다는 응답자 비율이 높아졌다(18%)는 응답자의 두 배가 넘는 37%에 달했다. 공화당에 대한 호감도 역시 응답자의 42%가 떨어졌다고 답했다. 이는 민주당(30%)보다 높은 수치다.
미국의 최대 채권국인 중국 역시 미국 경제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뉴욕타임스>는 저우샤오촨 중국 인민은행 행장이 이날 인민은행 웹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우리는 미국 정부와 국회가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이익을 고려해 책임있는 정책을 채택하고 채무문제를 적절하게 처리, 미국 국채투자 안전과 시장의 정상 운영을 보장해주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지난 5월말 현재 미국 국채 1조1598억 달러 어치를 가진 세계 최대의 미국채 보유국이다. 미국 경제가 무너지면 중국 경제 역시 크게 휘청이게 된다. 이는 세계의 소비시장과 생산시장이 모두 위험에 놓임을 뜻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 6월 14일 발표한 '미국의 위상을 위협하는 재정적자' 보고서에서 "1980년대 쌍둥이 적자 해소에 도움이 됐던 국방비 절감이 곤란하다"며 지금이 당시보다 더 심각한 위기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지금의) 쌍둥이 적자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면 달러화 약세가 예상"돼 "결국 위기 회복을 장기화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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