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美-파키스탄 동맹의 흥망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美-파키스탄 동맹의 흥망

[월러스틴의 '논평'] 냉전 이후 양국들 흔든 3가지 사건

흔들리는 美-파키스탄 대테러동맹, 양국관계 '역대 최악'
(The U.S.-Pakistan Alliance: Ever More Shaky)


미국과 파키스탄은 1948년 파키스탄 정부 수립 이후 친밀한 지정학적 동맹관계를 유지해 왔다. 과거 그들은 서로를 필요로 했다. 오늘날도 서로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양국의 정책목표와 우선순위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긴밀한 동맹관계가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양국 모두를 두려움에 빠트리겠지만, 실제로 끝날 수도 있다.

미국과 파키스탄의 동맹은 아주 단순하고 간단한 이유로 시작됐다. 영국이 인도에서 물러나면서, 하나가 아닌 두 개의 국가가 출현했다. 파키스탄이 인도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다. 그때부터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는 충돌이 계속됐다. 한쪽의 행동은 상대에게 큰 두려움을 이끌어냈다. 양국 사이에서는 1947~48년과 1965년, 1971년 3차례나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 중 앞의 두 경우는 카슈미르 지방을 둘러싼 것이었고 그 결과 이 지방은 사실상의 분할상태가 됐지만 양국 모두 [상대국 점유의] 합법성을 부인하고 있다. 세 번째 전쟁은 방글라데시가 파키스탄으로부터 분리 독립하려는 가운데 일어났고, 인도는 방글라데시 편을 들었다.

계속되는 충돌의 결과 중 하나는 인도와 파키스탄 양측의 핵확산금지조약(NPT) 거부와 핵무기 개발이었다. 인도가 1967년경 먼저 시작했다. 파키스탄이 1972년경 뒤를 따랐다. 1998년, 양국 모두 핵개발을 완료했고 핵무기를 비축했다. 미국-소련 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양국이 모두 핵무기를 보유한 것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핵전쟁이라는] 결과에 대해 두려움 때문에 군사적 적대행동에 극단적으로 신중해진 것이다.

냉전 시기 인도는 처음부터 비동맹 노선을 추구했다. 미국은 이런 노선을 '소련에 기울어진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들이 정의한 이 '기울어짐'의 영향을 제한하기 위해, 미국은 파키스탄과 힘을 합쳤다. 파키스탄은 미국이 카슈미르 지방의 나머지 절반을 수복하는 데 도움을 주기를 기대했다. 반면 미국은 파키스탄 서쪽으로 펼쳐져 있는 아프가니스탄, 이란, 아랍 등 이슬람 세계에 대한 지정학적 통제를 파키스탄이 지원해 주기를 바랐다. 미국은 파키스탄 내부의 안정이 이를 위한 조건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때문에 미국은 억압적인 군사정권이 지속되는 것을 지지했다. 파키스탄 군부가 1970년대에 미국의 통제로부터 독립적인 민족주의 외교 노선을 추구하려 했던 민간인 출신 지도자 줄피카르 알리 부토 전 총리를 몰아내고 처형했을 때 미국은 전혀 언짢아하지 않았다.

파키스탄과 중국은 같은 해 정부를 수립했다. 중국 또한 파키스탄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정책을 추구했다. 중국의 동기 또한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국은 인도가 소련과 연결돼 있다는 점이 달갑지 않았다. 이는 특히 중국이 과거 (그리고 지금도) 인도를 아시아 지역에서의 정치‧경제적 라이벌로 여기고 있고 1962년 국경 분쟁으로 전쟁을 치른 적도 있기 때문이다. 인도 정부가 달라이 라마에 대해 계속 지지를 보낸 것도 중국 입장에서 반가울 리 없다.

지난 20년 동안 미국과 파키스탄의 긴밀한 관계는 흔들리기 시작한 3가지 사건이 있다. 첫 번째는 소련의 붕괴로 인한 냉전 종식이었다. 이로 인해 [초대 인도 총리 자와할랄] 네루 식의 국가주도형 국내 경제개발 전략이 워싱턴 컨센서스에 의한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으로 대체됐다. 파키스탄과 중국에게는 원통하게도 인도와 미국의 관계가 급진전한 것이다.

두 번째로 이웃인 아프가니스탄의 국내정치적 상황이 급변했다. 1980년대 파키스탄과 미국은 나중에 고르바초프가 중단한 소련의 아프간 개입에 대응해 힘을 모았다. 하지만 그 다음엔? 파키스탄 정보부(ISI)가 탈레반에 의한 아프간 정부의 전복을 강력히 지지했다는 것은 이제 비밀이 아니다. 하지만 탈레반 정권은 심지어 미국이 9.11 테러 이전부터 적으로 여기던 알카에다에게 아프간을 기지로 제공했다.

세 번째로 2002년 미국 주도의 아프간 침공으로 탈레반 정권이 무너지면서 알카에다는 파키스탄의 안전한 거점으로 후퇴했다. 알카에다의 계획은 자신들이 파키스탄 정부를 직접 넘겨받는 게 아니라 해도 정부가 최소한 미국과의 동맹을 약화시키거나 깨뜨리도록 하는 것이었다. 비록 현재 파키스탄 총리는 민간인 출신이지만 실권은 여전히 군부가 쥐고 있다. 그리고 군부 내에서 ISI는 매우 강력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거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 가지 변화가 누적되면서 미국과 파키스탄은 중요한 사안에 대해 거의 의견 일치를 끌어내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마치 지난 2005년의 경우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국은 결속관계를 유지하려 하며, 여전히 서로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서로의 [동맹에 대한] 동기나 행동에 대한 의심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파키스탄은 탈레반과 직접 총을 맞대고 싸우는 미군(과 나토군)의 가장 주요한 외부 지원세력이다. 이런 지원 중의 하나는 소위 '파키스탄 탈레반'이라고 불리는, 알카에다와 구분하기 어려운 세력들로부터 온다. 또 다른 지원은 ISI와, 아마도 파키스탄군 내의 더 폭넓은 탈레반 지지 세력들로부터 온다.

미국은 파키스탄군이 파키스탄 탈레반이나 알카에다를 억제하기 위한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점을 점점 명확히 느끼고 있다. 심지어 파키스탄군 일부는 그들과 은밀히 결탁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두 가지 경로를 통해 파키스탄에 직접 개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첫째, 무인정찰기를 동원해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목표물을 직접 타격하는 것이다. 물론 무인정착기는 조정하기 어렵기로 악명이 높아 [민간인에게] 막대한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를 입혀 파키스탄 정부의 지속적인 항의를 낳았다. 둘째, 파키스탄 당국에 알리지 않고 독자적으로 오사마 빈 라덴을 추적해 마침내 성공한 것이다. 미국은 파키스탄 당국이 예정된 공격에 대한 정보를 누설하지 않을 것이라고 신뢰하지 않았다.

▲ 파키스탄인들이 4일 파키스탄 카라치에서 미군 무인기의 공격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뉴시스

만약 미국이 더 이상 파키스탄 당국을 믿지 않는다면, 다른 방면에서의 의심은 더 깊어질 것이다. 파키스탄이 자국의 안보를 가장 크게 보장한다고 여기는 핵무기 말이다. 파키스탄은 그들이 핵을 가지고 있는 한 인도나 다른 누구로부터도 안전하다고 느끼고 있다. 그들은 확실히 미국이 자신들의 핵무기를 가져가려 한다고 믿는다. 이는 완전히 비이성적인 믿음이 아니다. 실제로 미국은 알카에다 또는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어떤 세력이 파키스탄 핵무기에 접근할 가능성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으며 파키스탄 정부는 이런 시도를 막을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미국이 비축한 핵무기를 통제하려 한다고 추정되는 시도는 실제 제안과는 많은 거리가 있다. 하지만 미 정부가 이런 점을 고려하고 있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제 양국은 상대방과 카드 게임을 하고 있다. 미국은 파키스탄에 대한 금융 및 군사 원조를 삭감하거나 과감하게 줄여나가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파키스탄과의 동맹관계에 적대적인 미 의회가 정부를 부추기고 있다.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 국경에 주둔한 군대를 철수시켜 파키스탄 탈레반이 아프간 탈레반에 군사 원조를 더 쉽게 보낼 수 있게 함으로써 보복하고 있다. 파키스탄은 또 미국을 향해 중국이라는 또 다른 강력한 동맹국이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리고 중국은 파키스탄 지원을 이어가는 게 꽤 기쁘다.

파키스탄 정권의 취약점은 내부에 있다. 심화되고 있는 무질서 상태를 계속 통제할 수 있을까? 미국의 취약점은 파키스탄에 실제로 취할 수 있는 아무런 선택권이 없다는 것이다. 파키스탄 정권와 사이가 틀어지는 건 아프간(과 이라크, 리비아)에서 최소한의 피해만 입고 철군하려는 노력을 수포로 돌릴 것이다.

* <월러스틴의 '논평'>은 세계체제론의 석학 이매뉴얼 월러스틴 예일대 석좌교수가 매달 1일과 15일 발표하는 국제문제 칼럼을 전문번역한 것입니다. <프레시안>은 세계적인 학자들의 글을 배급하는 <에이전스글로벌>과 협약을 맺고 월러스틴 교수의 칼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7월 15일 논평 원문보기)

* 저작권 관련 알림: 이 글의 저작권은 이매뉴얼 월러스틴에게 있으며, 배포권은 <에이전스 글로벌>에 있습니다. 번역과 비영리사이트 게재 등에 필요한 권리와 승인을 받으려면 rights@agenceglobal.com으로 연락하십시오. 승인을 받으면 다운로드하거나 전자 문서로 전달하거나 이메일로 보낼 수 있습니다. 단 글을 수정해서는 안 되며 저작권 표시를 해야 합니다. 저자의 연락처는 immanuel.wallerstein@yale.edu입니다. 월러스틴은 매월 2회 발행되는 논평을 통해 당대의 국제 문제를 단기적인 시각이 아닌 장기적인 관점에서 조망하고자 합니다.

* ( )는 원저자의 표기이며, [ ]는 옮긴이가 추가한 내용입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