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석유 증산 합의에 실패한 석유수출국기구(OPEC) 정례회의의 최대 승자는 현재 반군과의 갈등으로 석유를 거의 생산하지 못하고 있는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리비아는 최근 유가 폭등의 요인 중 하나지만 이번 회의에서 이 문제는 거론되지도 않았다. 오히려 리비아는 이란 등과 함께 OPEC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에 반기를 들어 증산 합의를 무산시키기도 했다.
<파이낸셜타임즈>는 9일 "리비아 카다피 체제는 석유를 거의 생산하지 못하는 상황임에도 OPEC 회의에 참석함으로써 보기 드문 외교적 성과를 거뒀다"라고 평가했다.
리비아의 쇼크리 가넴 전 석유장관이 지난 달 반군 편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카다피 측 옴만 아부크라 전 리비아 전력청장은 회의가 열리는 오스트리아 빈으로의 여행을 승인받았다. 아부크라 전 청장의 참석은 OPEC에서 리비아의 지위를 빼앗을 기회를 노린 반군 세력에겐 패배나 다름 없다.
게다가 회원국 중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은 리비아 반군을 법적 정부로 인정하고 나토(NATO)군의 공습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아부크라 전 청장은 다른 이보다 조금 늦게 도착해 취재진의 눈을 피해 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다.
최대 쟁점 '리비아 석유 할당량 조정' 거론 안 돼
회의에서도 리비아의 회원국 지위에 대한 재검토는 이뤄지지 않았다. <FT>에 따르면 회의 참석자들은 애초 리비아 문제가 가장 큰 의제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술레만 아데몰라 라지 나이지리아 대표는 회의 전 "사실 (리비아 문제가) 오늘 핵심 논의의 전부"라며 "우린 리비아가 소요사태로 석유 생산량이 내려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고 이 문제가 어떻게 결정될지 기다릴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OPEC이 리비아에 부여한 할당량은 하루 147만 배럴이지만 현재 생산량은 '제로'에 가깝다. 이는 국제 석유시장에 충격을 줘 4월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최고 125달러까지 치솟게 한 원인이 됐다. 리비아는 카다피가 점령하고 있는 구역에서조차 필요한 석유를 공급하고 있지 못하는 상태다.
따라서 이번 회의에서 리비아의 할당량을 현 상황에 맞춰 '0'으로 낮추고 다른 회원국의 할당량을 늘리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었다. 이는 이라크 전쟁 당시 이라크 석유 생산에 대해 내렸던 결정과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정작 회의에서 이 문제는 거론되지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아부크라 전 청장은 사우디의 증산 제안을 이란 등과 힘을 합쳐 부결시켰다. 그는 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에게 리비아의 공급 차질을 솔직히 인정했다.
아부크라 전 청장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리비아를 빠져나가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며 "게다가 누구도 리비아 석유를 사는데 관심을 보이지 않아 석유를 생산한다 해도 팔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라고 말했다.
카다피, 리비아 내에선 궁지 몰려…탈출구 모색?
한편, 카다피 측은 OPEC에서 거둔 성과와 반대로 리비아 내에서는 점점 궁지에 몰리고 있다. 나토군은 9일에도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와 주변 군사시설, 카다피 관저 내 주요 건물을 공습했다.
반군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조도 이어지고 있다. 이탈리아와 쿠웨이트 등 30여 개 국가가 반군에 11억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나섰고, 미국과 호주는 반군 측 국가위원회를 대화상태로 승인했다. 알둘라예 와드 세네갈 대통령은 국가 정상으론 처음으로 반군 거점인 벵가지를 방문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도 9일 UAE 수도 아부다비에서 열린 회의에서 "카다피와 가까운 측근들이 많은 다른 경로를 통해 권력이양 가능성을 놓고 지속적인 접촉을 해오고 있다"며 버티던 카다피가 탈출구를 찾고 있음을 암시했다. <블룸버그>는 카다피의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이 아버지의 퇴진 문제를 협상하기 위해 찾아왔다는 반군 측 주장을 보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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