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석유수출국기구(OPEC) 정례회의가 8일 석유 증산 문제를 놓고 합의에 실패했다. 중동에 불고 있는 민주화 시위와 미국과의 관계 등을 놓고 회원국 간 정치적 입장차가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합의 결렬에도 불구하고 석유 생산량을 늘리겠다는 회원국이 나오면서 석유 카르텔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회의에서 석유 증산을 제안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알리 알-나이미 석유장관은 결렬 이후 "사상 최악의 회의"였다고 밝혔다. OPEC의 실질적 리더인 사우디는 석유 증산 여력이 가장 많아 미국 등으로부터 모종의 요청을 받아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우디의 제안은 12개 회원국 중 단 3국가만이 지지했을 뿐 이란, 베네수엘라, 리비아, 앙골라, 알제리, 에콰도르는 반대의 뜻을 밝혔다.
여기에는 산유국 사이에 얽힌 지정학적 상황의 변화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란은 미국과 핵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여기에 사우디가 민주화 시위가 일어난 바레인에 군대를 보내는 것도 못마땅한 처지다. 시아파 무슬림 국가인 이란은 바레인의 수니파 왕정과 대립 관계에 있다. 베네수엘라는 이란과 함께 미국과 대립 관계에 있다. 반면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은 리비아 반군을 지원하며 서방의 뜻을 따르고 있다. 에너지 컨설턴트 기업 이넨코의 엠마 피노크 애널리스트는 <파이낸셜 타임즈>(FT)에 "그들은 더 이상 함께 행동할 수 없기 때문에 (OPEC의) 신뢰도는 약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OPEC의 증산 여력은 하루에 약 400만 배럴이지만 대부분 사우디와 쿠웨이트, UAE에 집중돼 있다. 미국의 사정을 봐줄 리 없는 증산 반대국 입장에서는 현재의 고유가가 자국 경제에는 더 이득이다. <FT>는 이를 두고 "(유가) 배럴당 100달러를 상한선이 아닌 하한선으로 여기고 있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FT> "협상 실패가 사우디의 패배는 아니다"
하지만 <FT>는 "이번 회의 결과를 사우디의 패배로 해석하는 건 오해일 수 있다"라고 평했다. OPEC은 알-나이미 장관의 지도력 밑에서 석유 시장과 국내 정치를 분리해 성공적으로 석유 수급을 조절해 오면서 전세계 석유 생산량의 40%를 좌우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알-나이미는 이번 회의 결과 지도력에 흠이 가진 했지만 오히려 다른 카드를 쥐게 됐다는 얘기다.
<FT>는 "(회담 결렬은) 사우디에 원하는 만큼 많은 석유를 생산할 수 있는 '그린 라이트(green light)'를 켜줬다"며 "사우디의 생산량이 늘면 가격도 상당히 낮아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장 분석가들은 사우디가 현재 900만 배럴인 하루 생산량을 3분기까지 최대 1000만 배럴까지 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각각의 회원국이 할당량을 늘리는 애초 안을 승인했을 때보다 오히려 더 많은 석유가 시장에 공급될 수 있다.
증산 합의 실패가 발표된 후 두바이유 현물 가격은 전날보다 배럴당 1.19달러(1.09%) 오른 109.41달러를 기록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도 서부 텍사스산 원유 가격이 1.65달러 상승한 배럴당 100.74달러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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