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부터 홍익대학교 청소 노동자들의 본관 점거 농성이 시작돼 각계각층의 응원과 지원이 쏟아지는 동안 이 빌딩 청소 노동자들도 비슷한 고난을 겪었다. 저임금, 고강도 근무에 대응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자 이들이 소속된 용역업체는 계약 해지를 무기로 노조 탈퇴를 종용했다. 대학 청소 노동자보다 인원이 적고 주위에 연대할 학생과 시민도 없었기에 이들의 겨울은 유난히 더 추웠다.
새벽 5시에 출근에 쉴 틈도 없어…월급은 단 75만 원
지난해 2월부터 롯데손해보험빌딩에서 청소 업무를 시작한 박 모(66) 씨는 1년이 넘게 새벽 첫차를 놓쳐본 적이 없다. 서울 은평 북가좌동에서 751번 버스를 타고 서울역 인근의 직장으로 출근하면 오전 5시. 곧바로 자신이 맡은 층으로 올라가 사무실과 화장실을 청소하면 100리터들이 쓰레기봉투가 많게는 4~5개가 찬다. 지상 21층을 17명이서 청소하다보니 비는 층을 다른 동료와 함께 청소하다보면 사무실 직원들이 출근하는 9시를 넘기기 쉽다.
공식적으로는 9시부터 10시30분까지 휴식시간이다. 하지만 청소 노동자들은 2조로 나뉘어 일주일씩 폐지 분리수거 작업도 벌인다. 분리수거에 걸리는 시간은 30분에서 50분. 일이 끝나면 다시 자신이 맡은 층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고가는 이들이 많은 탓에 오전에만 화장실 휴지통을 3~4번씩 비워야 한다. 정오부터 오후 1시30분까지 다시 쉬는 시간이지만 직원들이 식사를 하러 사무실을 비우는 시간이라 청소를 해야 한다. 밥 먹는 시간을 벌기도 빠듯하다.
▲ 박 씨의 휴게공간은 자신이 일하는 층 계단 근처에 있는 전기실이다. 그는 "사측이 지난해 겨울 지하2층에 탈의실을 마련해줬다고 한달 만에 사무실로 바꿔버렸다"며 "이 공간마저도 뺏길까봐 아무 말 못했다"고 했다. ⓒ프레시안(김봉규) |
용역업체가 최저임금을 위반했을 소지가 다분하지만 박 씨는 정작 근로계약서 하나 받지 못해 자신이 어떤 조건에서 일하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게다가 롯데손해보험 측과의 용역 계약 역시 지난해 7월 끝났지만 6개월 연장계약을 맺고 계약서도 노조에 공개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이 지난 1월 말 모여 노동조합을 결성하자 업체 측이 2월부로 일제히 계약 만료를 통보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계약만료 이후에도 이들은 정상적으로 출근해 청소 업무를 이어가고 있다. 용역업체도 실제로 집단해고의 칼을 꺼내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롯데손해보험빌딩 노조의 상급단체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서비스노동조합 서울경인지부 관계자는 "홍대 사태처럼 집단 계약해지 형식의 해고는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을 부를 수 있어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취업규칙 상 노조활동하면 해고할 수 있다고 하더라"
대신에 사측이 노조 탈퇴를 종용하는 과정은 집요하기까지 하다. 노조의 첫 지회장은 사측으로부터 곧 해고당했고 얼마 뒤 사측 편에 붙어 나타났다. 전원 노조에 가입한 23명의 조합원들은 사측 직원이 현장에서 감시하는 통에 서로 모여 이야기도 나누지 못하는 형국이다. 박 씨는 "용역 측이 일대 일로 전화하거나 따로 불러서 노조를 나오면 월급을 올려주겠다고 회유와 협박을 하고 있다"며 "70살이 다 되어가는 노인들이 협박을 받으니 무서워서 밥도 제대로 넘어가지 않는다고 하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프레시안(김봉규) |
노조는 사측에 지난달부터 여섯 번에 걸쳐 교섭을 요청했지만 모두 묵살당하고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조정 신청을 접수했다. 하지만 사측은 노조 간부 1명을 지난 14일 해고하면서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해고당한 이 모(68) 씨는 "회사가 불러서 '취업규칙 상 노조활동을 하면 해고할 수 있다'고 하면서 나오지 말라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다른 조합원은 "어떤 조합원은 불려가서 다른 남성 조합원과 불륜을 저지르지 않았냐며 풍기문란으로 해고하겠다는 위협도 받았다"고 말했다.
해고당한 조합원이 날마다 출근투쟁에 나서고 있지만 용역 직원들에게 가로막히고 노동자 개개인에 대한 압력 수위가 높아지는데도 원청 사용자인 롯데손해보험 측은 개입할 일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공공노조 서경지부 관계자는 "용역업체 측에서 '원청이 노조를 용납하지 않아 노조가 있으면 재계약을 할 수 없다'고 하는데 이게 사실이면 원청이 노사관계에 개입한 것이고, 사실이 아니라면 용역업체에 직접 항의해야 할 일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최저임금 위반과 초과근무, 계단 통로 기계실에서 쉬어야하는 열악한 노동조건까지 익히 알려진 청소 노동자들의 비극이 이 곳에서도 반복되고 있지만 23명이라는 열악한 숫자 때문에 여론에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공동 파업을 진행하고 있는 고려대·연세대·이화여대 청소 노동자들에게 4만 명의 학생들이 지지 서명하며 응원하는 모습도 여기에선 찾아볼 수 없다. 이날 업무가 끝난 오후 4시 빌딩 앞에서 연 투쟁 결의대회에 연대한 대학 청소 노동자들과 학생단체들을 그들이 유난히 반갑게 맞이했던 이유일 게다.
ⓒ프레시안(김봉규)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