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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광부들과 양창선 씨, 그리고 파블로 네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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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광부들과 양창선 씨, 그리고 파블로 네루다

[茶山 포럼] 상업주의와 노벨상에 매몰된 한국 언론

지하 7백m 갱 속에 갇혀 있다가 69일만에 구출된 칠레 광부들은 지난주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화제의 인물들이었다. 우주선처럼 생긴 캡슐을 타고 지하에서 구출되는 광부들의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지켜보며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끼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어느 신문의 제목처럼 '60억이 지켜본 감동의 휴먼 드라마'였다.

그러나 '매몰~구조, 3대 관전 포인트', '69일 인내의 결실…돈방석 앉을까?', '소송, 인터뷰, 책 판권…땅 위에 기다리는 노다지', 'TV 나와 달라, 성금 주겠다…33인 영웅, 돈 인기 거머쥐다' 등의 선정적인 제목 밑에, 구출된 광부들이 얼마나 많은 돈과 인기를 얻을 것인가를 중점적으로 보도한 신문들을 보면서 '이건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처음에 느꼈던 감동은 씁쓸한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감동적 휴먼 드라마! 선정적 상업적 보도로 씁쓸

이런 기사와 더불어 어느 신문에서는 1967년 충남 청양의 구봉 광산에서 16일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양창선 씨를 찾아내 인터뷰 한 기사를 실었다. 아, 그 양창선 씨가 아직 살아 있었구나. 1960년대를 겪은 사람치고 그의 구출 장면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스포츠 경기처럼 라디오로 현장 생중계되어 전국민을 가슴 졸이게 하고, 박수와 함성을 터뜨리게 했던 양창선 씨. 인터넷에 누군가 올려놓은 당시의 구조 뉴스에서는 "단결된 인간의 힘 앞에 절망은 없는 것입니다"라는 아나운서의 흥분된 목소리가 되살아난다.

이런 인간 승리의 메시지는 이 사건을 재현한 영화 「생명」(1969)에서도 그대로 되풀이 되었다. 얼마 전 교육방송(EBS)에서 다시 틀어준 영화를 보니, 장민호, 남궁원, 허장강 등 왕년의 스타들의 얼굴도 반갑고 화면 속의 배경도 옛날 사진첩을 보는 것처럼 정겨웠다.

그러나 1974년 10월에 초연된 윤대성의 드라마 「출세기」는 양창선 씨 사건을 모델로 한 작품이지만 매스컴의 선정주의와 상업주의로 구출 광부가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어 출세했다가 인기가 식자 본래의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김기주 연출로 동랑레퍼터리 극단이 공연한 이 드라마에는 이호재, 윤소정, 추송웅, 전무송, 박영규 등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하여 호평을 받았다.

윤대성은 1970~80년대 인기 텔레비전 드라마「수사반장」의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출세기」에서는 텔레비전을 비롯한 매스컴의 선정주의와 상업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텔레비전 드라마를 하다 보니 매스컴의 속성을 더 잘 알게 되어 이런 드라마를 썼다고 한다. 한편 소리꾼이자 연출가인 임진택은 1978년 이 작품을 「마스게임」이라는 제목의 마당극으로 각색하여 이화여대 연극반과 함께 대학 구내에서 횃불을 켜놓고 공연한 바 있다.

거기서 희망을 준 두 시인의 시(詩)! 여기에 웬 노벨상?

그러나 이번 칠레 광부들과 관련된 뉴스 가운데서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것은 그들이 지하 대피소에서 파블로 네루다와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의 시를 낭송하며 희망을 잃지 않고 버텼다는 소식이었다. 그렇지만 두 시인이 칠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는 사실을 강조하여, 마치 노벨상 수상자인 유명시인이었기 때문에 광부들이 두 시인의 시를 낭송한 것처럼 보도한 것은 본말이 바뀐 듯하다. 두 시인이 노벨상 수상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시가 광부들의 처지와 정서에 맞았기 때문에 극한상황에서 광부들이 그들의 시를 낭송했을 테니까 말이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사고가 났다면 광부들이 시를 낭송했을까 하는 가정법적 질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대중이 시를 사랑하지 않는 한국의 척박한 문화 풍토에서는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오기 힘들지 않겠는가, 하고 묻는 것도 뭔가 문학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노벨상 지상주의'적 문제 제기로 보인다. 문제는 시인과 작가를 알량한 문예진흥기금 몇푼으로 옭아매려는 정부의 문화정책과, 공영 방송에서 칠레라는 나라 이름을 '칠래?'로 고쳐 부르며 초등학교 학생들처럼 유치한 말장난이나 하는 우리나라 매스컴의 풍토가 아닐까?

그보다는 두 시인이 왜 칠레 광부들의 사랑을 받았는지, 외교관이자 시인인 네루다가 어떻게 광부들의 지지로 상원의원이 되었는지, 네루다가 왜 태평양을 내다보는 이슬라 네그라 해안의 별장을 광부들에게 유증(遺贈)했는지, 그가 1970년 7만 명 군중 앞에서 시낭송을 한 산티아고 국립경기장에서 1973년 피노체트 장군이 쿠데타 직후 얼마나 많은 시민들을 체포하여 구금하고 고문하고 처형했는지, 네루다의 탄생 1백주년인 2004년 이제는 네루다 박물관이 된 이슬라 네그라 해안 별장에서 벌어진 축하 행사의 감동적인 장면들을 좀 더 심층적으로 전해줄 수는 없었을까?

* 이 글은 다산연구소(www.edasan.org)가 발행하는 <다산 포럼> 19일자에 게재됐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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