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낙동강 하류 을숙도에서 불과 4㎞ 정도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강변을 따라 삼락 둔치가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부산시 사상구에 속한다. 넓게 펼쳐진 밭 바로 건너편에선 포클레인으로 삼락 둔치의 강변을 잘라내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농지였던 곳은 강바닥에서 퍼올린 흙을 쌓아놓는 준설토 적치장이 됐다. 상전벽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이럴 때 쓰는 말은 아닌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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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이동문 씨의 안내를 받았다. 이 씨는 낙동강 중류 함안보, 달성보, 합천보 등의 공사 현장을 찾아 다니며 사라지는 강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왔다. 우선 지난 여름 환갑이 넘은 늙은 농민들과 환경단체들이 맨 몸으로 건설장비 앞을 막아서며 대치했던 농성장을 찾았다. 현재 농성은 끝났고 농성장이었던 곳은 한산해 보였다.
"아무래도 농성을 하시다가 많이들 지치셨죠, 원래 뭐 그런 걸 해 보신 분들도 아니고."
이 씨는 "공무집행 방해로 고발하겠다, 손해배상 청구하겠다는 그런 얘기 들으면 농민 분들은 겁나잖아요"라며 "공무원인 자식들 통해서 회유·협박 있었다는 소문도 있고"라고 분개했다.
사라지는 것은 비단 강변의 풍경만이 아니다. 물가에 깃들던 철새와 텃새들도 갈 곳을 잃었다. 이 씨가 안타깝다는 듯 말한다.
"저번에 공사 하니까 백로 같은 새들이 있잖습니까, 어찌할 바를 모르고 주변을 맴도는 거에요."
강변에서 하염없이 공사 현장을 지켜보던 농민 장명렬(61) 씨도 무심한 듯 내뱉는다.
"새가 하얳는데… 요즘은 안 보이(보여). 다 어디 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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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저기도 흑두루미(천연기념물 228호) 네 마리가 지나갔는데, 전에는 더 많았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하는 장명렬 씨는 평생 농사만을 지어 왔다고 한다. 지금도 그는 이 강변에 2200평(약 7300㎡)의 밭을 일구고 상추를 재배하고 있다. 상추 출하 가격을 묻자 장 씨는 "요새 한 박스(4㎏)에 1만4000~1만5000원씩 하지"라며 기가 차다는 듯 말을 이었다.
장명렬 씨. ⓒ프레시안(곽재훈) |
장 씨의 2200평 밭은 내년부터는 농사를 짓지 못 한다. 부산시에서 평당 1만2500원의 보상금에 5000원씩을 추가 지급하는 조건으로 올해 12월 말까지만 농사를 짓게 했기 때문이다. 장 씨는 "기분이 참 안 됐지, 좋은 사람이 누가 있노. 비켜 달라고 하니 억지로 비켜 주는 것"이라고 힘없이 말했다.
공사가 시작되기 전 강변의 모습은 아직 장 씨의 기억 속에서는 생생하기만 하다. "자연 보호 구역 같은 걸로 만들면 참 좋을 텐데"라고 되뇌는 장 씨의 어조 속에는 진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공사로 인해 한순간에 뿌리 뽑혀 내동댕이쳐진 처지는 새들이나 농민들이나 마찬가지인 듯 했다.
▲ 공사 구역 안에서 새들이 불안한 듯 두리번거린다. ⓒ프레시안(곽재훈) |
"시에서 350억 들여 만든 농지, 이제는 불법이라고?"
힘없이 '억지로 비켜 준다'던 장 씨와는 달리 부산 농민회 사무처장인 정성철(43) 씨는 억울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애초에 시에서 350억 들여 만들어준 농지인데, 작년 10월 이후로는 토지 사용료를 내려고 해도 받지 않으면서 불법이라고 한다"고 말하며 "작년 7월 31일에 농사를 그만 지으라고 공문이 오고 나서는 토지사용료도 올려 받았다"고 푸념했다.
정 씨의 말에 따르면 지난 2008년 1년 동안 농사를 지으며 시에 납부한 토지 사용료는 평당 7~80원 수준이었는데, 2009년 9월부터 10월 말까지는 두 달 동안에만 100원이 넘는 사용료를 물어야 했다. 그나마 그 이후로는 토지 사용료를 받지도 않는다. "이제 돈도 안 내고 하니까 자기들(시청 직원들) 하는 말로는 불법인거죠, 이게"라며 혀를 차는 정 씨는 삼락 둔치에서 1500평(약 5000㎡) 규모의 밭농사를 짓고 있다.
정성철 부산농민회 사무처장 ⓒ프레시안(곽재훈) |
삼락 둔치에서 4대강 공사로 수용된 밭은 현재 준설토 적치장으로 사용할 계획인 15만 평. 아직 농사를 짓고 있는 땅인 67만 평을 합하면 82만 평의 농지가 사라진다. 거의 여의도 면적과 비슷한 채소밭이 없어지는 셈이다. 농림수산식품부는 "4대강 사업으로 줄어드는 채소 농지는 전체의 1.4%에 불과"하다고 발표했지만 야당 측에서는 "정부가 발표한 1.4%는 올해에 4대강으로 감소한 둔치 중 보상이 완료된 수치만을 포함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지난 달 29일 민주노동당 논평에 따르면 공사 전 이 곳에서 재배된 상추와 배추는 부산시 공급물량의 30%를 차지한다.
이 농지에서는 95명 내외의 전업 농민들이 농사를 짓고 있었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해 평당 1만2500원에 농지를 수용한다는 부산시의 방침에 이들은 농성을 벌였지만 지난 8월 부산시가 추가 보상을 약속하고 농민들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농성을 풀었다. 정 씨는 이 과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는 "(농성을 하다가) 8월 31일에 투표를 했는데 찬성이 나왔다"고 말을 이었다. 시에서 내건 조건을 받아들이자는 쪽으로 결론이 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20명 남짓한 농민들은 보상금을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사진가 이 씨가 덧붙였다.
"그 분들은 '내 땅에서 죽겠다'고 하는 분들이에요."
▲ 농성 중 숙소로 쓰인 컨테이너 박스. 이동문 씨가 만든 현수막이 걸려 있다. ⓒ프레시안(곽재훈) |
"보상 안 된 농지에도 준설토 적치"
농민 김상구(56) 씨는 '그런 분들' 중 하나다. 그러나 "보상금 타러 가면 당장 나가라고 할 까봐 가지도 않았다"는 김상구 씨의 밭 한쪽은 이미 준설토 적치장이 돼버렸다. 보상이 이루어지지도 않은 농지에 공사를 강행한 것이다. 그는 원래 4500평의 밭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이 중 2500평은 준설토 적치장으로 수용됐다. 2000평이 남은 밭에서 그는 부추와 당근, 시금치, 얼갈이 배추를 가꾸고 있었다. 농식품부의 통계에서는 내년에는 사라질 2000평 남은 그의 밭도, 이미 사라져 버린 2500평의 밭도 '1.4%'에는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 부추밭 가운데를 자르고 준설토 적치장이 들어섰다. ⓒ프레시안(곽재훈) |
김 씨는 자신의 농토와 작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농부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가 가꾼 부추는 "없어서 못 판다"고 한다. 땅에 대한 애착도 대단하다. '땅이 어떠냐, 기름진 편이냐'고 묻자 그는 "끝내 주지요, 뭐든지 잘 되지요, 안 되는 게 없어요"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린다.
농사를 못 짓게 되자 평상에서 비슷한 처지의 노인들과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던 농민 강호석(65) 씨도 거들었다.
"여기는 (농사가) 대한민국에서 최고 잘 되지, 강에서 거름 성분이 떠내려 와 비료도 필요 없고 병충해도 없고."
강 씨는 40년째 농사를 지어 온 농부다. 그는 삼락 둔치 뿐 아니라 삼천포 등 타 지역에서도 농사를 지어 봤지만 여기만한 데가 없다고 말했다.
그토록 거름지고 또 그렇게 아끼던 땅에서 내년부터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된 심정을 김상구 씨는 한숨을 담아 털어놓았다. 그는 최근의 채솟값 상승을 보면서 느낀 소회를 "눈물이 나지요, 말도 못 하지요"라고 표현했다.
사라지는 '전국 최고의 밭'
"눈물이 난다"는 김상구 씨 ⓒ프레시안(곽재훈) |
"그래, 봄에는 추웠다 치고, 여름에는 비 왔다 치고, 지금 채소값이 그 때랑 어떻게 상관이 있어요? 씨 뿌려 보라고. 배추는 40일, 열무는 25일이면 다 커요. 얼마든지 (수요에)맞출 수 있는데, 문제는 심을 땅이 없어지니까 (물량을) 대지를 못하는 거지."
실제로 정성철 씨가 주말농장으로 만든 밭에는 배추가 자라고 있었다. 9월 중순에 심은 이 배추들은 11월 중순이면 김장이 가능할 정도로 큰다고 한다.
"강변 하우스 전부 밀어 버려"
하원오 부산 농민회 회장(54)은 부산 지역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배춧값 상승의 원인에 대해 "원래 구포·밀양·대저 등 낙동강 강가에서는 주로 (비닐) 하우스에서 잎 채소류를 재배했는데, 작년부터 4대강 사업 한다고 강변의 하우스를 전부 밀어 버려서 다른 채소가 안 나오는 것이 배추 수요를 상승시킨 원인"이라고 말했다.
▲ 주말농장. 배추가 자라고 있다 ⓒ프레시안(곽재훈) |
"생각해 보면 식당에서 묵은지나 익은 김치보다 바로 치댄(무친) 거 많이 주잖아요. 근데 얼갈이, 겨울초 이런 게 다 강변에서 지은 건데 농지가 다 없어졌으니…. 거기(구포 등) 하우스가 싹 없어졌다고. 올 봄부터 거기서는 농사를 전혀 안했고 그나마 여기(삼락 둔치)가 유일하게 남아있는 농경지다. 그래도 다들 채소는 찾고 하다 보니까 채솟값이 올라가 있는데 고랭지 배추가 수확이 안 좋았다 하니까 이렇게 될 수 밖에. 그러니까 배춧값이 배추만의 문제가 아니라 신선채소 자체다. 지금 얼갈이 배추 도매가가 한 단에 8000원도 가는데 그러면 소비자들이 살 때는 더 비싸단 얘기 아닌가. 날씨 탓이라 하는 그거는 빈말이고, 즈그가(저희가) 그냥 하는 소리고 농지가 없어졌으니 그런 거지. 그러면 어느 여름은 안 더웠고, 어느 여름은 비 안 왔능교?"
▲ 하원오 부산농민회 회장 ⓒ프레시안(곽재훈) |
'삼락'이란 지명은 이 곳이 '강상청풍(낙동강 위의 맑은 바람), 노전낙조(갈대밭의 저녁 노을), 누하표전(원두막 아래의 딸기밭)의 세 가지 즐거움(三樂)으로 칭송되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삼락 둔치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즐거움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바로 맞은 편 삼락공원에선 가을 나들이를 나온 시민들이 한가로운 한때를 즐기고 있었다.
'채소대란'을 보는 심정을 물었다. 정성철 씨는 "농사 짓는 입장에서는 배춧값 더 올라야 (사람들이) 이게 4대강 때문이구나 하고 정신 차리지 생각할 때도 있다"고 혀를 찼다. 사진가 이 씨는 "시민들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몰라요"라고 말했다. 하원오 회장은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한숨처럼 내뱉었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미친 짓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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