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대만의 유력 금메달 후보로 꼽히던 양쉬춘(楊淑君)이 여자 49㎏급 예선 1회전에서 베트남의 부티하우를 9대 0으로 앞서다, 종료 12초를 남기고 실격패했기 때문이다.
석연찮은 이유로 자국의 태권도 영웅이 패하자, 엉뚱하게도 대만 사람들의 분노는 한국으로 향하고 있다.
이번 오심에 한국계 심판이 관여했다는 소문이 나돌더니, 급기야 아시아태권도연맹 홈페이지(http://www.asiantaekwondounion.org)가 해킹당하기까지 했다. 범인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정황상 대만의 누리꾼일 것으로 추정된다. 해커들은 홈페이지에 "우리에게 금메달을 돌려달라"는 내용의 글을 무더기로 올렸다. 주요 비난의 대상은 같은 체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중국과 태권도 종주국인 한국이다.
심지어 마잉주 대만 총통까지 나서 태권도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할 정도다. 언론과 정치권까지 나서 국민들의 정서를 자극하고 지지를 얻으려는 모양새다.
▲태권도 판정시비 이후 대만 내에서는 온라인을 타고 한국산 제품 불매운동이 퍼지고, 태극기를 찢는 사람들의 모습이 방송에 중계되고 있다. |
하필 대만인들을 자극한 종목이 대만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태권도라는 점도 문제를 일으켰다. 대만에서 태권도는 야구와 함께 국민적 위상을 가진 종목이다. 대만의 올림픽 첫 금메달이 바로 2004 아테네 올림픽 여자 49㎏급과 남자 58㎏급에서 나왔다. 당시 금메달 수상자이던 천스신과 주무옌은 오륜기를 보며 눈물을 흘려 화제를 모았다. 대만(Chinese Taipei)이 국제 사회에서 독립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후 태권도는 대만에서 스포츠 붐을 일으켰다. 인기 스타들이 각종 오락 프로그램에 태권도복을 입고 나와 바람몰이를 했고, 이 결과 타이페이 시내에는 1000여 곳이 넘는 태권도장이 생겨났다. 태권도를 소재로 한 드라마, 영화 등의 제작도 활황을 이룰 정도였다. 한국에서 김연아, 박태환의 성공신화 이후 피겨스케이팅과 수영을 배우는 아이들이 늘어난 것과 비슷한 셈이다.
한국은 1992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 단교했다. 한국과 대만은 IT 분야에서 라이벌 관계이기도 하다. 대만의 한국에 대한 묘한 라이벌 의식과 피해정서가 애국 정서를 강하게 자극하는 스포츠 경기를 매개로 폭발한 셈이다.
이 때문에 19일 오후 7시 열릴 한국과 대만의 광저우 아시안게임 결승전은 이래저래 더 치열한 경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공교롭게 대만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두 종목에서 한국은 아시아 최강을 자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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