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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물가보다 환율…"판단력마저 상실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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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물가보다 환율…"판단력마저 상실했나"

기준금리 석달 째 동결… "당분간 금리인상 물건너가"

한국은행이 물가 대신 환율을 택했다. 기준금리를 석달 째 동결했다. 당분간 기준금리 인상은 어려워졌다는 전망이 나온다.

14일 한국은행은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열고 10월 기준금리를 2.25%로 동결했다.

이번 금통위는 어느 때보다 전망이 어려웠던 회의로 꼽힌다. 물가가 빠른 속도로 치솟았으나, 해외 유동성 급증에 따라 원화 가치 역시 강세를 지속했기 때문이다. 기준금리 동결로 한은은 국내요인(물가 상승)보다 해외요인(환율 변동)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 재확인됐다.

한은 "물가 상승압력 이어지겠지만…"

기자간담회에서 김중수 한은 총재는 "과거에도 금통위 의사결정 때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지금은 더 하다"며 "상당히 많은 고민과 분석하에서 의사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최근 논란이 되는 물가상승 문제를 두고 "첫 번째로 보는 것은 물가"라면서도 "'고뇌에 찬 결정'을 했다고 강조한 이유는 현 상태로 볼 때 (기준금리를) 현재 상태로 유지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농수산물 가격의 급등에 따라 전년동월대비 3.6% 상승해 8개월 만에 3%대에 진입했다. 한은의 물가안정 중심목표치(3.0%)를 넘어섰다. 특히 농산물가격 상승률은 지난 5월 이후 꾸준히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두 배가량 웃돌다 지난 달에는 소비자물가 상승률(3.6%)의 열 배에 가까운 32.7%를 기록했다.

김 총재는 '물가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우려한 듯 "(지난달 물가상승률은) 대외적인 충격에 의한, 기후변화에 의한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단기간에 끝날 것"이라며 "채소 효과를 외부충격으로 산정할 경우 지난달 물가상승률은 2.9%"라고 말했다.

김 총재는 "물론 한은이 유일한 정책수단인 기준금리로 물가를 잡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면서도 "정부 정책으로 이런 대외적 충격에 대한 농산물가격 급등 현상이 상당히 빠른 시간 내에 해소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채소가격 급등세는 단기간에 끝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대외변수에 더 무게를 뒀다는 얘기다. 당장 한은의 임무를 원화가치 절상 속도를 늦추기로 설정한 셈이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이번 금통위가 어느 때보다 어려웠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물가관리에 관한 그의 입장은 분명했다. ⓒ뉴시스
당분간 금리인상 기대 말아야

이번 금통위를 앞두고 시장의 전망은 어느 때보다 극단적으로 갈렸다. 최근 한은의 행보로 볼 때 동결할 것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전망도 많았다.

특히 기준금리 인상을 전망한 금융기관들은 한은이 이번 행보로 시장의 신뢰를 완전히 상실했다며 맹비난에 나섰다. 국내에서는 KTB투자증권 등이 기준금리 인상을 전망했고,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ING, HSBC, BNP파리바 등 해외 투자증권사들은 대부분이 기준금리 인상을 예상했다.

금통위 이전 모건스탠리는 "한국의 기준금리 수준이 너무 낮다"며 "한은은 지금부터라도 안정적인 거시경제 지표의 이점을 활용해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골드만삭스도 "최근 인플레이션 부담이 통화당국의 우려를 강화시킬 것"이라며 "인플레이션 부담에 따라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25bp(0.25%포인트) 인상하고 매파적 발언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한은이 이번에도 기준금리를 동결함에 따라, 당분간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은 물건너갔다는 평가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작년 초부터 경기 반등 국면이 왔는데, 이제 반등세가 지나갈 때가 돼서야 금리를 올리겠다고 나섰으니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며 "당분간은 세계 경제 기조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라도 금리 인상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처럼 한은의 실기가 주요 이슈가 됨에 따라 한은이 독립성을 잃은 것은 물론, 판단력마저 상실한 것 아니냐는 맹비난도 나왔다.

한 국내 투자증권사 관계자는 "작년 말에는 올렸어야 할 금리를 정부 압력으로 인해 못 올렸는데, 김 총재는 취임 후 (국내외 경제) 상황이 나빠질 게 예상되는데도 금리 인상 신호를 계속 보냈다"며 "시기와 독립성을 놓친 것은 물론, 이제는 판단력마저 잃어버린 것 같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같은 비판을 의식한 듯 김 총재는 "우리로서는 고민을 많이 했다"며 "지난번에 기조적으로 물가인상 압력이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방향(뿐만 아니라) 타이밍 선택도 중요한 문제"라고 해명했다.

또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소통에 문제가 있지 않느냐'고 볼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대내외 여건이 굉장히 급변하고 있기 때문에 어렵다"며 "소통 자체를 뒤집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시장금리 다시 최저치

한편 금통위 결정이 알려진 후, 채권가격은 크게 올랐다.

오전 시장 상황을 보면 금통위 이전만 해도 시장에서는 기준금리 인상에 무게를 실은 것으로 보인다. 국고채 금리가 전부 전날보다 상승세를 보였다.

이날 오전 장외 채권시장에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날보다 0.03%포인트 오른 3.31%, 5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0.04%포인트 상승한 3.68%에 거래됐다. 그러나 금리동결 소식이 알려진 직후, 곧바로 시장은 요동쳤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곧바로 전일보다 0.15%포인트 떨어져 연 3.125%를 기록, 역사상 최저치에 다다랐다. 5년물도 전날보다 0.06%포인트 이상 하락하고 있다.

채권금리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하락추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연준에 이어 유럽중앙은행(ECB)의 양적완화 기대감 또한 높기 때문이다. 염상훈 SK증권 연구원은 "PIIGS 국가들이 강도 높은 재정긴축을 단행하는 중이라, 유로화 강세는 위협"이라며 "ECB도 양적완화에 동참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채권시장 강세 재료"라고 밝혔다.

증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후 1시 30분 현재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10.58포인트(0.57%) 오른 1886.82, 코스닥 지수는 4.08포인트(0.82%) 오른 503.24를 기록하고 있다. 보험주들이 전반적으로 약세를 보이는 반면, 건설주는 강한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7.7원 내린 1113원을 기록하고 있다. 이날 새벽 공개된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이 추가 양적완화를 강하게 시사한 점이 달러 약세를 이끄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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