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부동산 시장 회복을 노리고 발표한 '8.29 대책' 이후 부동산 시장이 더욱 교란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8.29 대책은 총부채상환비율(DTI) 적용을 내년 3월까지 한시적으로 폐지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예상 이상의 강력한 규제완화 정책이라 건설업계에서는 환영의 뜻을 보였으나 시민사회단체ㆍ야당 등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15일 참여연대와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백재현 민주당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공동 주최한 토론회에서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8.29 대책은 효과가 없을 텐데, 이후 건설업계가 추가 대책을 요구할 때 정부가 이를 그대로 수용할까 우려된다"며 "(8.29 대책) 이후가 더 문제"라고 말했다.
"8.29 대책, 번지수 잘못 짚어"
이와 같은 우려는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이 공통적으로 제기했다. 현재 부동산 시장 상황은 그 동안의 시장 실패(가격 급등)를 스스로 치유해가는 과정으로 봐야 하는데, 정부가 인위적으로 가격을 끌어올리려 하기 때문에 더 문제라는 뜻이다.
조 교수는 "인위적으로 거래를 부추기고 가격을 부양하려는 8.29 대책은 하향 안정화로 가는 시장을 교란시키는 반시장적 정책"이라며 "특히 부동산 시장 침체를 초래한 주요 원인 제공자인 부동산ㆍ건설업계 요구를 정부가 일방적으로 반영한 게 문제"라고 비판했다.
조 교수는 또 "DTI 규제 완화로 주택 거래 활성화를 기대하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볼 때 이미 금융부채를 많이 진 서민들이 DTI 추가대출을 일으켜 집을 매입하려고 하지 않을 것"으로 평가했다.
두성규 건설산업연구원 경제건설연구실장은 "이번 정책은 이미 주택시장이 자생능력을 거의 상실한 상태까지 도래한 이후에 발표돼 단기간 내 효과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대책 발표 이후에도 시장은 냉담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효과 여부와 상관 없이 이번 대책에 따른 부작용이 더 우려된다고 토론 참석자들은 평가했다.
두 실장은 "시장을 정책 의존적으로 만들면 자칫 도덕적 해이 문제나 정부의 부담증가로 인한 경제전반의 부실화를 초래할 수 있다"며 "시장경제원리를 바탕으로 주택시장의 본래적 기능이 회복되도록 기다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의 지속적인 규제완화로 인해 만약 주택구입이 늘어난다면, 그만큼 국가경제에 미칠 부담이 더 커진다고 우려했다.
그는 특히 "DTI 규제 완화가 '가계부채 폭탄'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이번 정책이 주요 타깃으로 삼은 저소득 가계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홍 위원이 제시한 자료를 보면 최근 3년간 주택을 구입한 가구 중 연소득이 1500만 원 미만인 가구의 연소득 대비 대출금액비율(국민은행이 적용하는 DTI) 평균은 무려 360.8%로 전체 가구 평균인 197.7%보다 크게 높았다. 반면 연소득이 7500만 원 이상인 가구의 DTI는 146.0%에 그쳤다.
DTI 완화로 인한 대출부담이 저소득 가구일수록 더 크게 나타난다는 뜻이다. 대출 상환능력이 떨어지는 가구의 빚이 급증한다면 국가경제가 받는 부담도 커진다.
"싼 주택 공급해야"
토론 참석자들은 시장 실패는 시장에 맡기고, 정부는 보다 싼 주택을 공급하는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 교수는 "주택은 고가 상품인 만큼 시장에만 맡기면 구매능력이 없는 계층은 영원히 주택을 매입할 수 없다"며 "정부 주택정책의 역점은 집을 소유하지 못한 무주택 가구의 주거안정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국가와 사회가 공급하고 소유ㆍ관리하는 '소셜하우징(공공주택)'이 정부 주택정책의 유형이 돼야 한다"며 "전체 주택 재고의 20~30%를 소셜하우징이 차지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은 치솟는 전세 가격을 안정시키는데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권정순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변호사)은 "서구 선진국처럼 공공임대주택 비율이 20% 정도가 되도록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며 "임차인들의 계약갱신청구권을 인정해 최소한 4년의 임대차기간을 보장해주고, 갱신할 때도 임대료 인상의 상한규정을 적용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 연구위원은 "월세 세입자가 보증금을 높이고 월세를 줄이려 할 때 정부가 저리로 보증금을 보조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며 "다만 순수 전세 세입자가 전세 주택 규모를 늘리려 할 때 정부가 전세금 대출을 지원해주는 것은 독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일정 시점에서 전세물량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부의 섣부른 전세금 지원은 자칫 전세금만 올려 전세시장을 더 불안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