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페루 FTA 체결…"자동차 웃고, 농어민 운다"

대형차·커피 관세 협정 발효 즉시 철폐키로

한국이 페루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합의했다. 페루는 다섯 번의 협상 끝에 한국의 45번째 FTA 체결 국가가 됐다. 자동차가 최대 수혜를 입을 것으로 보이며, 농·수산물 시장에서 일정 수준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31일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 마르틴 페레스 페루 통상관광부장관은 페루 수도 리마에서 가진 통상장관회담에서 양국 간 FTA협상을 타결하고 페루 대통령궁에서 알란 가르시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양국 정부는 앞으로 10년 이내에 현재 교역 중인 품목에 대한 관세를 모두 철폐키로 했다. 상품과 무역구제, 투자, 지적재산권, 정부조달, 경제협력 등 경제·통상분야 25개 부문이 합의 내용에 포함됐다.

자동차 산업이 큰 혜택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관세율 9%가 매겨지는 자동차의 경우 배기량 3000㏄이상 대형차의 관세는 협정 발효 뒤 즉시 철폐되며, 1500∼3000㏄ 중형차의 관세는 5년내, 기타 승용차는 10년 내에 관세가 단계적으로 사라진다. 페루는 지난 2002년 이후 국내 자동차 생산기지가 사라져 자동차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가전제품도 수혜를 입게 됐다. 컬러TV(페루 관세율 9%) 관세는 즉시 철폐키로 했고, 세탁기(17%)는 4년 내, 냉장고(17%)는 10년 내에 철폐하는데 양국이 합의했다.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컬러TV와 세탁기, 냉장고의 대 페루 수출규모는 각각 990만 달러, 25만 달러, 263만 달러다.

▲양국 통상장관이 한-페루FTA에 합의한 후 페루 리마 대통령궁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왼쪽부터 마틴 페레즈(Martin Perez) 페루 통상관광부 장관, 알란 가르시아(Alan Garcia) 페루 대통령,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제공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뒤떨어지는 농·수산물의 경우 쌀과 쇠고기, 고추, 마늘, 양파, 인삼류, 명태 등 107개 품목이 FTA 협정 대상 품목에서 제외됐다. 그 외 202개 농·수산물은 앞으로 10년 이내에 관세가 철폐된다.

페루의 주요 수출품목인 오징어는 냉동·조미·자숙의 경우 10년 내에, 기타 오징어는 5~7년 안에 관세가 사라진다. 페루산 커피의 관세(2%)는 협정발효 즉시 철폐되며, 아사파라거스와 바나나 등은 3~5년 내에 관세가 사라진다.

농·어가의 피해가 커질 것으로 보여, 이를 보완할 국내 지원대책 마련 요구가 커질 전망이다. 양국은 FTA에 따른 관세 인하나 철폐로 국내 산업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경우, 해당 상품의 관세를 '현행 실행관세율(MFN)' 수준으로 인상하는 세이프가드 제도에 합의했다.

이와 별도로 닭고기와 무당연유, 치즈, 천연꿀, 녹두, 팥 등 민감 농산물은 정해진 수입한도를 초과할 경우 관세를 물리는 농산물 세이프가드를 도입키로 했다.

위생·검역협력 강화를 위한 '위생검역위원회(SPS)'가 설치되며, 재적재산권은 사후 50년에서 70년으로 연장했다.

양국 통상장관은 공동선언문에서 "이 협정이 포괄적이고 높은 수준의 FTA라는데 인식을 같이 했다"며 "한-페루 FTA의 발효를 위해 가서명과 서명 및 기타 후속절차를 신속히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국은 이번에 타결한 협정문에 대한 법률검토작업을 통해 최종 협정문을 작성, 금년 11월경에는 협정문에 가서명할 예정이다. 두 나라는 31일부터 내달 3일까지 페루 리마에서 1차 법률 검토회의를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