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한 개발이익이 나리라 판단해 발주자는 사업을 대규모로 키웠고, 건설사들은 무작정 여기에 동참했으며, 금융권도 끝없이 돈을 대줬다. 파국의 규모가 커질 경우, 그 후유증은 큰 생채기를 남길 전망이다.
강남권 재개발도 급제동
부동산 개발사업이 진척 도중 파행 사태를 빚는 경우는 종종 있어왔다. 최근 부동산 시장이 심상치 않은 이유는 △주택경기 하강기에 △수도권의 △대형 사업이 △연달아 좌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기류는 이미 강남권까지 스며들었다.
12일 금융권과 건설업계에 따르면 지난 6일 양재동 프로젝트파이낸싱(PF) 채권단은 경부고속도로 양재나들목 근방에 2조4000억 원 규모의 복합물류센터를 짓기로 했던 시행사 파이랜드와 파이시티를 대상으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파산신청했다. 이 사업은 아직 공사를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채권단이 시행사를 대상으로 파산신청을 낸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통상적으로 사업이 부실해질 경우 지급보증 책임이 있는 시공사를 교체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사업 인·허가권을 가진 시행사를 바꾸진 않기 때문이다.
이 사업이 파행을 빚은 이유는 6년이나 걸린 건축 인허가로 인해 금융비용이 급격히 불어나 시행사가 사업을 더 이상 영위할 능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부동산 경기 침체가 올들어 급속히 진행되면서 추가 자금조달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이와 관련해 채권단은 "시공사인 성우종합건설과 대우자동차판매가 워크아웃에 들어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며 "PF사업 대출금 8720억 원(채권)은 공매를 해도 감정가와 1000억 원 차이밖에 안 나서 계속가치가 더 크다"고 시행사 교체 이유를 설명했다.
채권단의 결정에 따라 앞으로 이 사업은 워크아웃에 들어간 기업을 법정관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법원이 지정한 파산 관재인이 추진하게 된다. 채권단은 사업 중단을 막기 위해 새 시공사에 선순위 담보권을 제공하고 지급보증도 없애는 식의 유인책을 내걸었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후폭풍이 끝난 건 아니다. 사업의 지속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고, 당장 채권단은 투자금액을 날릴 수도 있는 상황에 처했다. 지난 2007년 8월 양재동 사업에 3900억 원을 투자한 하나UBS자산운용은 '하나UBS클래스원특별자산펀드3호'의 만기를 내년 8월 12일까지 1년 연장키로 12일 결정했다. 이 펀드 자금의 30%는 개인 투자자금이고 나머지는 우리은행이 끌어모은 돈이다. 현재 이 펀드는 투자자들에게 약속했던 이자마저 지급하지 못하는 상태다.
만기를 연장하지 못한다면 펀드는 청산 절차를 밟아 공매에 나서 투자자들에게 잔액을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펀드가 담보로 설정한 토지 평가액이 원금의 60%를 밑돌아 원금 회수마저 불가능하다. 도저히 사업을 이어가기 힘든 최악의 상황이 올 경우, 투자자들의 손실 규모는 커질 수밖에 없다.
▲양재동 파이시티 조감도. 이런 장밋빛 미래상이 제대로 그려지지 못할 위기에 처한 사업장이 전국에 약 50여 곳이다. ⓒ뉴시스 |
PF폭탄, 결국 터지나
'PF 대란'을 예고하는 사업은 이 외에도 많다. 31조 원이 투입되는 사상 최대의 도심 재개발 사업인 용산국제업무 사업, 5조 원 규모의 판교 알파돔시티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다.
경기도가 1조7000억 원을 들여 킨텍스 부근에 조성키로 했던 한류우드, 3조5000억 원 규모의 안산사동개발은 이미 취소됐다. 부산북항 재개발, 대전엑스포공원 재개발, 광교지구 택지개발사업은 사업자를 구하지 못해 재공모 중이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진행 중인 공모형 PF사업은 약 50여건이며 사업규모는 120조 원에 달한다.
이들 사업이 난항에 부딪힌 이유는 건설경기 하강으로 인해 기대수익률이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용산 재개발 사업의 경우 약 8조 원에 달하는 토지대금 중 시행사인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FV)가 납부한 금액은 고작 4150억 원에 불과하다. 땅주인인 코레일이 건설사들에 지급보증을 서는 등의 방법으로 자금을 조달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건설사들은 일제히 이를 거절했다. 사업의 성패도 불확실한데 자금을 투입할 수는 없다는 이유다.
도심 내 상업시설을 들이기 위해 시작한 약 5조 원 규모의 판교 알파돔시티는 아예 땅값조차 지불하지 못해 착공이 지연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추진 중인 이 사업은 민관 합동 PF사업으로 대한지방행정공제회 등 16개 컨소시엄이 사업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12일까지 개발사업자 판교알파돔PFV가 LH공사에 지불해야 했던 총 투자비의 절반에 가까운 2조5580억 원의 토지대금 중 5차 중도금 2000억 원을 미납했다. 오는 26일까지 이 금액을 내지 못할 경우 해지가 불가피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1~4차 중도금 4300억 원도 역시 LH공사의 채권을 담보로 조달한 것에 불과해 앞으로 갚아야 할 빚이다. 역시 건설경기가 식으면서 금융기관으로부터 추가 자금조달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다.
▲ ⓒ프레시안 |
해법은?
이처럼 전국에 동시다발적으로 PF사업이 좌초위기에 처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결국 잘못된 수요예측이라는 지적이다.
그간 PF사업은 선분양제도의 혜택과 '지어놓으면 팔린다'는 건설 호황기에 성장세를 이어갔다. '프로젝트 수익에 기반해 대출이 이뤄진다'는 엄격한 의미의 PF사업이 아니라, 시공사의 보증만 믿고 금융권이 '묻지마 대출'을 하던 관행이 부동산 위기를 맞아 터진 셈이다.
변창흠 세종대 교수는 "주택수요를 명확히 파악하지 않은 상황에서 경기 과열기에 지나치게 큰 건설투자가 단행됐다"며 "PF사업의 핵심인 주택분양이 이뤄지지 않다보니 대출자금을 뺄 수 없어 금융권에 위기가 왔고, 추가 대출이 안됨에 따라 건설사도 위기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당장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 이어질 경우, 자칫 큰 위기로 번질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변 교수는 "가장 위험한 부문이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의 대출자금이 묶인 사업장"이라며 "대출금리가 매우 높기 때문에 사업이 지연될수록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사업 자체가 주저앉을 수 있다. 이 경우 금융권은 물론 경제 전반에 걸쳐 후폭풍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변 교수는 "결국 정부가 나서서 사업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고, 사업성이 떨어지는 곳부터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며 "당장 수요 자체가 없는 만큼, 건설업계 등에서 주장하는 공적자금 투입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