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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명박 정부, '낙하산 인사'부터 끊어라"

[밥&돈·23] '이명박-심대평 사연'으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지 1주일이 흘렀다. 새 정부의 탄생을 둘러싼 뒷이야기도 많고, 앞으로의 정국 구상에 관한 이야기도 넘친다. 그런데 이종태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번주 <밥&돈> 칼럼에서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대선 뒷이야기 중 하나에 유난히 "호들갑을 떤다." 바로 대선 과정에서 이명박과 심대평의 단일화 협상이 무산된 사연에 관해서다.

이 연구위원은 국민중심당이 공기업 사장 자리, 즉 '낙하산' 10자리를 요구했다가 한나라당으로부터 '구멍가게 주제에 무슨' 이라며 무안만 당한 사연을 소개하며, 새 정부가 강력히 추진할 예정인 '공기업 민영화' 정책의 원칙이 무엇인지를 따져묻는다. 그는 특히 현행 '공공기업운영법'이 가진 치명적인 약점을 설명하며, 새 정부가 "시장주의의 나쁜 점과 연고주의의 나쁜 점"만 죄다 결합한 최악의 공기업 민영화 정책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이 연구위원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공기업 문제는 무조건 민영화로 해결해야 한다"는 '묻지마 민영화' 원칙을 버리고, "공기업 지배구조가 본질적으로 어려운 문제"라는 겸허한 인식을 바탕으로 해당 공기업과 관련 시장에 대한 '객관적 분석'부터 해줄 것을 당부한다. 이와 함께, 그는 이 당선자가 '시장원칙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살려 '낙하산 인사'부터 과감히 끊어줄 것을 당부한다. <편집자>

지난 17대 대선운동 기간,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었으나 큰 관심을 끌지 못하고 넘어간 사건이 있었다.

<조선일보>의 기사 "'이명박·심대평 연대' 왜 무산됐나 했더니…"(12월 5일자)에 따르면, 당시 단일화 협상에서 국민중심당은 한나라당에 "△충청 전 지역 공천권 △총리 포함 국무위원 5자리 △ 내각제 개헌" 등을 요구했다고 한다.
▲ ⓒ조선일보

그러나 이보다 어떤 의미에서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훨씬 부당한 요구가 있었을 가능성을 <조선일보>는 시사하고 있으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민중심당이 한나라당에) '그동안 쓴 선거비용을 갚아줄 것과 국영기업체 사장 10자리를 요구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내부에선 충청 지역 위원장을 중심으로 '말도 안 된다'는 반발이 나왔고 이방호 총장이 2일 '구멍가게 갖고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른다'고 말한 것도 이런 분위기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후보는 내각제를 뺀 나머지 요구조건을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을 심 후보에게 전달했는데, 하필 이 총장의 발언이 나오면서 판이 깨졌다는 것이 한나라당 쪽 주장이다."

'겨우 이 정도의 이야기를 가지고 호들갑을 떠냐'는 핀잔이 들리는 기분이다. '낙하산 인사'는 역대 정부의 관행이었으니까! 노무현 정부가 가장 혹독한 비판을 받은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필자가 호들갑을 떠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 지난 4월부터 '공공기관운영법'(이하 공운법)이라는 법률이 시행되고 있으며, 이 법의 핵심 내용은 공기업 경영에 대한 정치권, 관료 등의 개입을 차단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공운법은 한나라당과 국민중심당 간에 성사될 뻔한 정치적 거래를 막기 위한 것이다.

더욱이 이명박 당선자는 공기업 개혁 및 민영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고, 무엇보다 "공기업 사장에 대한 코드인사 연결고리를 해체하겠다"고 주장해오지 않았던가.

공기업 내부의 말썽꾸러기들?

지난 4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공운법의 핵심정신은, 공기업 내부인(경영진-노동자)과 이를 통제하는 정부 관료에 대한 불신이다.

공기업은 국민의 이해에 충실하게 운영되어야 한다. 그러나 공운법의 세계관에 따르면, 공기업 내부인과 관료는 서로 담합하여 자신들만의 이익을 추구하며 이에 따라 국민들의 이익을 저해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정치권이나 관료는 '낙하산'을 통해 상당한 보수와 사회적 지위가 약속되는 공기업 간부직을 차지하고, 내부인들(경영진-노동자)은 임금이나 복지를 턱없이 높이는 존재로 가정된다.

이런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공운법의 대안은, '외부인'들을 공기업 지배구조에 대거 포함시켜 '내부의 말썽꾸러기', 즉 정부-경영진-노동자들을 감시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공운법은, 각 공기업들이 자사의 이사회에서 외부인, 즉 비상임이사(사외이사)의 비율을 과반수 이상으로 높이도록 했다. 또한 전체 공기업들의 운영을 총괄하는 사실상의 국가기구인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이하 공운위)에서도 외부인, 즉 민간위원의 수가 과반을 넘겨야 회의가 성립될 수 있도록 했다.

더욱이 개별 공기업의 이사회와 공운위의 운영위원회에서 외부인(비상임이사와 민간위원)의 위상은 매우 높다. 예컨대, 자산규모 2조 원 이상의 시장형 공기업에서 이사회 의장은 비상임이사가 맡도록 되어 있다. 이 법률이 순수하게 관철된다면, 임원 임명, 경영지침 등 공기업의 주요 의사결정 사항들은 정부-공기업의 외부 인물들이 좌지우지하게 되는 셈이다.

이명박 캠프와 일부 보수언론들은 이런 공운법에 대해서도 매우 비판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공운법 그 자체는, '주주 이익에 대한 기업 내부인들의 배신 가능성'을 극단적으로 가정하는 신자유주의 기업지배구조 이론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 법률이다.

또한 공운법에 따르면 정치적 거래에 따라 '국영기업체 사장' 자리를 주고받는 일 따위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공기업 및 정부와 관계없는 외부인들이 과반수인 공기업 추천위원회의 추천과 공운위의 심의, 의결을 거쳐야 사장 자리에 취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는 한나라당과 국민중심당이 '이상한' 거래를 논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외부인들의 거수기 역할과 정부의 자기이익 추구

그 이유는 공운법이 그 취지와 달리 현실 속에서는 정치권과 관료의 공기업 지배를 허용하는 것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어떤 경로로?

위에서 필자는 공운법의 배후에 깔린 세계관은 공기업 내부인(경영진-노동자)과 관료(국가)에 대한 불신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내부인과 관료의 담합을 방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신선하게 느껴지는 시각이다.

그런데 이 세계관엔 치명적인 결점이 있다. '내부인과 관료의 자기이익 추구 방지'에 집착하다 보면, 내부인들이 오랜 세월을 두고 축적해온 해당 기업과 관련 시장에 대한 '지식'과 경영능력을 무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해당 기업과 시장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것은 내부인들이 아닌가.

그리고 내부인을 대체한 외부인들은 -공운법의 취지대로라면 공기업 경영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해당 기업과 관련 시장을 잘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렇게 할 인센티브도 크지 않다. 외부인(비상임이사, 사외이사)들이 공운법의 세계관과 같이, 현실에서도 정말 경영을 잘 감시하고 공기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지는 본고장인 미국 학계에서도 부정적이라고 한다. 또한 외부인들의 의사결정에 따라 경영 결과가 시원찮을 경우에도 이사직 해임 정도 이외에는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법도 마땅치 않다.

그렇다면 외부인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 바로 거수기이다. 그렇다면 누구의 거수기인가. 정치권과 정부의 거수기가 되기 쉽다.

예컨대 공운법의 경우, 공기업의 비상임이사 임명, 직무수행 실적 평가, 해임 및 해임건의 권한 등은 기획예산처 장관에 집중되어 있다. 기획예산처 장관은 공운위 의장이기도 하며 시장형 공기업의 이사장을 비상임이사 중에서 선정해 임명할 수도 있다. 그리고 공기업 이사 자리는, 대통령 당선자가 '가신'들에게 포상 수단으로 제공할 만큼, 사회적 지위와 만만찮은 보수, 어떤 경우엔 '편함'까지 겸비한 직책이라고 한다. 비상임이사의 입장이라면, 괜히 정치권이나 관료의 '자기이익 추구'를 막다가 불이익을 당하기보다 거수기 역할을 하는 쪽이 훨씬 인센티브가 크다.

어떻게 보면 공운법은 법률 취지 그 자체인 '내부인과 관료의 담합 및 자기이익 추구 방지와 현실적으로 발생시키는 효과가 너무나 상반된 법률이다. 이명박 당선자가 지적한 바대로, "공공기관운영법 시행 이후 비상임이사로 임명된 95명 가운데 37명이 정치권 또는 관료 출신"이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묻지마 민영화'의 위험성

이명박 당선자는 공기업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으며 그래서 강력한 민영화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좋은 일이다. 비효율적인 공기업을 효율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명제엔 반박할 여지가 없다. 그의 말마따나 "시장이 잘 하는 것은 시장에, 국민생활에 필수적인 기반시설은 정부가 운영하도록" 하면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주로 보수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우려되는 바가 크다. 우선 <조선일보> 기사에 등장한, '국영기업체 사장' 자리에 대한 한나라당의 마인드와 당선자 주변의 시장원칙주의자들이 잘못 엮이면, 시장주의의 나쁜 점과 연고주의의 나쁜 점이 결합되는 최악의 조합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공기업 민영화의 일차적 목표가 될 것으로 보이는 산업·기업은행 민영화 방안의 경우, 이 정책의 충격을 완화시킬 만한 보완책이나 대안이 분명하지 않아 매우 허술해 보인다.

또한 자산 규모가 적게는 수천 억 원, 많게는 수조 원에 이르는 공기업 매각의 경우, 해당 정부의 독직 의혹이 발생할 소지가 큰데 사실 이명박 정부는 이에 매우 취약하다.

어느 나라에서나 공기업 지배구조의 설계는 매우 골치 아픈 과제이다. 사적이익 추구가 전제인 자본주의 사회의 한 가운데서, 이와 어긋나는 '국민에 대한 책임성', 즉 '공공성'을 기업에 따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기업 지배구조 문제에 정답은 없다. 정부가 공기업 경영에 개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 과정엔 항상 관료-공기업 담합의 가능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 반대로 담합 가능성을 원천봉쇄하다보면 해당 기업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외부인에게 경영권을 부여하거나 민주주의 원칙(공기업은 국민의 이익에 봉사해야 한다는 것)을 위배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명박 정부가 '공기업 문제는 무조건 민영화로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들어서는 안 된다. 어떤 공기업은 민영화를 해야겠지만, 다른 공기업은 지배구조를 새로 짜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며, 어떤 경우엔 사장 등 간부진만 교체해도 소기의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필요한 것은 '공기업 지배구조가 본질적으로 어려운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고, 해당 기업과 관련 시장에 대한 구체적 분석 하에서 끊임없이 맞춤식 해결방안을 모색해 나가는 것이다. '묻지마 민영화'는 대안이 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이명박 정부가 정말 '국민에 대한 책임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공기업 개혁을 단행해 나가겠다면 강력하게 당부하고 싶은 사안이 있다.

신정부 출범 이후 가장 먼저 수행할 공기업 인사에서 다른 역대 정부와 다른 모습을 확실히 보여주기 바란다. 정말 쉽지 않겠지만 '낙하산 인사'부터 끊어라. 시장주의 개혁을 하겠다면 그 주체로서 시장원칙주의자의 모습부터 확실히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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