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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장밋빛 공약…한미 FTA와 양립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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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장밋빛 공약…한미 FTA와 양립 불가능"

'한미 FTA 시대', 기어이 오는가 <1> 대선과 한미 FTA

불과 1년 전만 해도 온 국민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찬·반 양측으로 나뉘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조사 시점에 따라 차이가 있었지만 대략 30~40% 정도의 국민은 계속해서 '반대' 목소리를 분명히 했다. 그런데 한국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가늠할 이 중요한 사안이 정작 대선 국면에서는 전혀 논의되지 않고 있다.

대선에서 1~4위의 후보가 한미 FTA '찬성' 의사를 떳떳이 밝히는데도 그와 관련해 문제제기하는 국민이 아무도 없다. 한미 FTA '반대' 의사를 일관되게 밝힌 정당의 후보는 당 지지율만큼의 지지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가는 어느 후보가 당선되든지 2008년 2월 임시국회에서 한미 FTA 국회 비준은 현실화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절망감에 빠진 이들은 2년간 누구보다도 앞장서 한미 FTA의 문제점을 알렸던 일군의 지식인, 활동가들이다. 이들은 지금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참담한 심경에 빠져 있다.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무슨 일이라도 하자." 정태인 본부장의 글로 시작해 앞으로 약 10회에 걸쳐 진행될 이번 연재는 이렇게 기획되었다. <편집자>

후보 선택과 정책 선택의 괴리
▲ ⓒ프레시안

참담하다. 곧 실현될 미래의 고통으로 서민이 내지를 비명이 바로 귓가에서 '웅웅'거린다. 누누이 강조한 대로 한미 FTA는 하나의 통상 정책이 아니다. 한미 FTA는 우리의 사회경제 정책의 기조를 결정하며, 일단 발효되면 폐기하지 않는 한 우리 사회를 시장만능 쪽으로만 몰고 가게 되어 있다.

캐나다, 멕시코 어느 나라에서나 미국과 FTA를 추진했던 사람의 정치적 목적이 바로 이것이었다. 설령 정권이 바뀌더라도 현재의 지배집단, 재벌-경제관료-조·중·동의 이익은 털끝만큼도 건드리지 못하게 만든다는, 이 장기 전략은 바야흐로 실현 일보 직전까지 와 있다.

현재 여론조사 결과 상위 1~4위의 후보는 모두 한미 FTA에 찬성한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한나라당의 정책을 이른바 '중도 개혁 세력'이 들고 나왔고 '선한 CEO 출신' 후보도 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천동지의 격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이제 국회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되었다.

지난 8~9월에 걸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30~40%는 한미 FTA에 반대했다. 그러나 이들 중 열 명에 한 명만 한미 FTA와 맞서 싸우는 후보를 지지할 뿐, 나머지는 한미 FTA 찬성 후보를 밀고 있다. 심지어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 집단이라는 '의제27'은 단일화의 조건에서 한미 FTA를 아예 빼 버렸다.

양극화 해소나 복지 확충, 나아가 사회통합 등 그들이 내세우는 '개혁적인' 정책보다 훨씬 크고 근본적인, 뿐만 아니라 그러한 정책의 효과까지도 사실상 결정할 한미 FTA를 이들은 짐짓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위한다는 대다수 국민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우두머리 정책을 빼놓고 도대체 무엇을 위해 단일화를 하자는 것일까?

그들이 몰라서 그랬다고는 믿고 싶지 않다(그렇다면 그들은 학자가 아니다). 유력한 단일화 대상인 두 사람이 모두 반대하기 때문에 아예 군더더기 취급을 해 버린 것이다.

반대 운동의 한계, 그리고 앞으로 할 일

여기까지 한미 FTA의 발효를 막아온 범국본,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한계 역시 여실히 드러났다(나 역시 이들 진영의 책임 있는 위치에 있으니 이 얘기는 곧 자기비판이기도 하다). 시국회의 주도로 국정조사 요구를 걸어 일단 국회 통과에 제동을 걸고 11월 11일 범국민 행동의 날을 비롯한 대중 실천을 통해 일단 금년에 한미 FTA가 비준동의안이 통과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것은 일견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선-총선으로 이어지는 정치의 계절에 한미 FTA를 최대의 이슈로 만들어서 한미 FTA의 진실을 알린다는, 그래서 국민 대다수가 명확하게 반대를 표명하도록 하여 후보를 압박한다는 원래의 계획은 여지없이 어그러졌다. 찬성하는 후보들, 언론들이 한미 FTA를 무시하는 동안 대중동원의 정치만을 힘겹게 추진했을 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것은 훗날 여러 면에서 철저하게 비판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아직 대선은 보름여 남아 있고 총선까지는 넉 달 이상 남아 있다. 청와대가 계획하고 있는 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되는 것을 막아낸다면 다시 한 번 더, 그리고 자신의 계급적 이익이 조금 더 직접적으로 반영되는 지역정치라는 점에서 대선보다는 좋은 조건에서 한미 FTA를 이슈로 만들어낼 수 있다.

총선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면 우리는 미국 대통령 선거의 흐름 속에서 또 하나의 반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장기적인 흐름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우리는 우선 대선에서 한미 FTA 반대의 여론이 실제 그대로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한미 FTA를 유일하게 반대하는 후보에 대한 지지가 형편없다면 청와대는 2월 발효 계획을 자신 있게 밀어붙일 것이기 때문이다.

후보들의 장밋빛 공약과 한미 FTA의 함수
▲ ⓒ프레시안

'경쟁적 자유화'라는 21세기의 새로운 통상전략을 내세운 로버트 죌릭 당시 USTR 대표는 앞으로 미국의 FTA는 상대 나라의 공기업 민영화와 규제완화를 명시적으로 추구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것이야말로 신자유주의의 금과옥조인,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이며 IMF는 이 시장만능의 정책기조를 외환위기 때 우리나라에 요구한 바 있다.

한미 FTA는 이 조건부 요구를 국제협정의 지위에서, 사실은 헌법보다도 더 높은 위치에서 반영구적으로 우리의 사회경제에 명령하는 것이다. 현 정부는 이것을 '선진경제로 향한 제도개선'으로, 또는 글로벌 스탠더드의 도입이라고 해석한다. 저작권과 약품 특허 등 지적 재산권 강화, 투자자국가제소권의 도입 등 외국인 투자자 보호, 스크린 쿼터 폐지 등 문화산업 개방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미국 대기업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선진화의 문턱을 넘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이명박, 이회창은 물론이고 정동영, 문국현 후보 모두 이러한 견해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협정문에서 미래유보로 분류된 네트워크 산업(철도, 전기, 수도, 가스, 우편 등)과 의료, 교육 등 가치재산업에서도 민영화, 또는 민간의 역할 강화에 찬성한다. 즉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이들은 모두 자발적 민영화, 또는 개방에 의한 효율화를 내세우고 있다.

앞으로 연재에서 부문 별로 구체적인 모습을 선 보일 테지만 이러한 정책이 한미 FTA와 만나면 우리는 영원히 되돌아갈 수 없다. 예컨대 현재의 부동산 투기 수요 억제 정책도 완화 쪽, 즉 시장에 맡기는 쪽으로만 갈 수 있지, 결코 되돌아 갈 수 없다. 서비스 현재유보에 적용되는 래칫 조항과, 거의 모든 사안에 적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투자자 국가제소권이 돌아갈 길을 끊어 버렸기 때문이다. 문국현 후보나 정동영 후보는 일부 정책에서 공공성의 강화를 얘기하고 있지만 이러한 정책은 한미 FTA와 양립할 수 없다. 이들은 한미 FTA를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후보의 '747'을 타면 우리는 97년 외환위기에 맞먹거나, 어쩌면 그보다 더한 파국으로 곧장 날아가게 된다. 각종 규제완화에 의한 주식 거품, 한반도 운하 등 토목공사에 의한 부동산 거품이 세계경제의 침체와 만나면 최악의 상황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한미 FTA는 규제완화를 촉진할 뿐 아니라 외부 충격을 흡수할 완충 장치를 모두 해체한다. 이회창 후보의 정책은 '한반도 운하만 뺀 이명박 정책'이라고 보면 된다.

문국현 후보는 출마부터 지금까지 오직 하나, 4조 2교대제 도입 등 노동시간 단축에 의한 중소기업 생산력 향상만 되뇌고 있다. 괜찮은 하나의 정책이지만 그것만으로 우리 사회가 바뀐다고 생각하면 그야말로 오산이다. 한미 FTA가 산업에 주는 충격은 중소기업에 집중된다. 서비스업과 농업은 물론, 제조업 중 화학과 기계 등 우리 산업의 허리에 해당하는 분야가 입는 타격이 과연 4조 2교대로 극복될 수 있을까?

또 경쟁력 강화(?)를 이유로 의료와 교육의 개방(적어도 외국 학교와 병원의 도입)을 적극 찬성하고 있다. 이것이 애초에 그가 한미 FTA를 적극 찬성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경실련의 정책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이는 부동산 정책도 다음 시리즈에서 보듯이 한미 FTA가 발효되면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정동영 후보의 정책은 상대적으로 현실적이다. 현 정부의 정책을 거의 그대로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난 5년, 아니 10년이 계속되는 것이다. 한미 FTA의 충격을 '사회투자국가'로 막아내겠다는 것은 그저 하는 말에 불과하다. 참여정부 역시 초기에는 복지 지향의 사회정책을 시행하려고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복지 확충을 위한 증세라는 당연한 정책도 말만 꺼냈다가 슬그머니 거둬들였다. 한미 FTA라는 훨씬 더 나빠진 환경 속에서 그러한 정책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더구나 정 후보는 각종 감세를 약속하고 있다. 당연히 양극화의 물길은 지금보다 훨씬 더 거세지고 노동자, 농민은 절망의 지진해일 속으로 휩쓸리게 될 것이다.

대안은 어디에?
▲ ⓒ프레시안

한미 FTA를 저지하지 못하면 대안은 없다. 현재 정부가 유포한 "(한미 FTA의) 대안이 뭐냐"는 질문은 유치하기 짝이 없다. 미국과 FTA를 맺은 나라는 극소수이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는 미국과 바로 붙어 있는 캐나다와 멕시코를 제외하면 호주 정도가 전부이다.

그러나 대안 문제는 우리 스스로 제기해야 한다. 한미 FTA가 앞으로 우리나라의 사회경제정책의 기조를 시장만능으로 이끌어 갈 것이라면 그 대안 역시 단순히 무역정책이 아니라 우리 사회경제 전반에 관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대통령선거나 총선에서 한미 FTA를 최대의 이슈로 만들어 낸다면 일반 국민들도 사회경제 전반에 걸친 청사진을 요구할 것이다(공정한 무역 질서의 수립, 국제금융의 규제, 지역공동체의 재건 등의 주제는 이미 다른 글에서 언급한 바 있으므로 생략하고 여기에서는 앞으로의 연재에서 집중할 공공 서비스 분야에 관해서만 대략의 방향을 제시한다).

전 세계의 수준에 비춰 볼 때 우리나라의 공공 서비스는 결코 평균 이하라고 말할 수 없지만 공기업 일반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팽배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개방-민영화의 논리에 맞서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각 산업의 기술적 특성 때문에 대안의 구체적인 모습은 다르겠지만 몇 가지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첫째, 공급의 효율적 확대를 말하기 전에 소비부터 줄여야 한다. 물, 에너지 등이 특히 그러한데 예컨대 필수 소비량까지는 무상에 가까운 가격으로 공급하고 그 이상의 소비에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요금을 매겨야 할 것이다. 여기서 오는 수입은 필수 소비량의 질을 높이는 데 써야 한다. 이것은 교육이나 주거, 의료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원리이다.

둘째, 어떤 형태의 거버넌스를 취하든 지역의 주체들이 의사결정에 훨씬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사실상 대기업을 의미하는 민간(private)의 참여가 아니라 민중(people)이 참여하는 PPP(People Public Partnership)가 되어야 한다. 우선 공기업을 평가할 때 지난 20년간 점점 더 강화해서 적용한 효율성 지표를 공공성 지표로 바꾸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규제기구 자체의 민주화도 필수적이다.

셋째, 환경 친화적인 공급원을 확대해야 한다. 예컨대 물의 경우 빗물을 최대한 이용한다든가, 재생 가능 에너지의 공급을 획기적으로 증가시키는 것이다.

넷째, 공공서비스의 전달은 지역공동체가 담당해야 한다. 공공서비스 각각의 특성에 따라 구체적인 형태나 전국 차원의 네트워크 구조는 서로 다르겠지만 최종 서비스 공급과 수요는 지역공동체가 다양한 형태로 담당해야 한다. 물, 에너지, 주거, 의료, 교육, 요양 서비스가 모두 그러하다. 지역공동체의 복원은 정책의 결과 뿐 아니라 정책 수립과 시행의 주체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도 중요하고 또 중요하다.

이런 원칙 하에서 각 산업마다 구체적인 정책을 만들어 해당 노동자와 소비자, 지역민의 동의를 얻는 것이 한미 FTA 저지 투쟁과 함께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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