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방문 중인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7일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에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였다. 지난 5월 방중에 이어 3개월 만의 이례적 재방문인데다가, 후계자로 지목한 3남 김정은을 대동하였고, 25일 미국인 사면을 위해 방북했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외면한 전격적 방중이다. 왜 이 시기에 중국을 방문했는지, 정상회담에서 어떤 얘기가 오고갔는지, 그리고 이번 방중이 한반도 정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 파장이 매우 주목된다.
이번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과 북중 정상회담의 배경은 크게 다음 몇 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북한의 후계구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3남 김정은을 후계자로 지정해 권력 승계 작업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공식적이나마 중국 지도자들에게 상견례를 시켜야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분명히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3대 세습을 한다고 해서 중국이 이를 말릴 수는 없다. 더욱이 북한 후계자 문제는 전통 관례상 중국에 설명을 할 필요는 있지만 '승인'을 받아야 하는 사항은 아니다. 중국의 입장에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 사회의 안정이다. 북한의 권력 세습이 북한의 급변 사태를 가져오지 않는다면 이 대목에서 굳이 반대를 할 필요가 없다. 지난 5월 북중 정상회담에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양국 간 전통적 우의관계가 세대교체로 인해 변화가 생겨서는 안 된다며 김정은 후계체제를 염두에 둔 발언을 한 바도 있다. 이는 북한의 차기 지도자가 누가 되든지 간에 이 지도자는 최소한 중국과 친구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며, 현재 중국의 입장에서 북중 간의 연대는 폐단보다 이익이 더 크다.
둘째, 김정일의 입장에서 경제난과 자연재해가 심각한 이 상황에서 북한 내 군부와 정계, 국민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즉 북한 내부 단속용으로 중국과의 우호 관계를 과시하고 김정은을 대동하여 미래 중국과의 관계도 문제가 없을 것임을 과시하려는 의도도 있다. 북한은 9월 초 44년 만에 열리는 조선노동당 대표자회의에서 김정은을 조직담당 비서 등 요직에 앉혀 권력 승계 작업에 본격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 상황에서 김정은의 정통성 확보와 어려운 국가적 경제위기 극복을 통해 권력 승계 과정의 불협화음을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번 방문에서 소위 '김일성 주석의 항일활동지역'을 돌며 김일성-김정일-셋째 아들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의 정통성을 확보하는 행보를 했다. 또 이를 공고화하는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이번에도 다양한 산업 시설들을 시찰하면서 대규모 경제지원을 요청하기 위해서이다. 중국도 창춘에서 지린, 두만강 유역을 2020년까지 경제벨트로 개발하는 소위 '창ㆍ지ㆍ투(長吉圖) 개발 계획'에서 중요한 '동해 출항권' 확보에 북한의 도움이 필요하다.
셋째는 천안함 사건 이후의 한반도 정세에 대한 북중 양국의 공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26일 천안함 사태 발생 후 원인규명을 놓고 '한국-미국-일본 대 북한-중국' 대립구도가 5개월여 진행돼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천안함 사태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에 이어 미국의 추가 제재를 앞두고 양국은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위기 상황에 봉착해 있다. 특히 6자 회담 의장국인 중국은 북·미 간 협의를 거쳐 6자 비공식 예비회의를 열고 공식협의로 간다는 3단계 6자회담 재개 방안을 내놓고 있으나 한미 양국은 회담을 위한 회담은 반대하며 북한의 영변 핵시설 불능화 조치 등 의미 있는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중국과 북한은 '한미 간의 외교·국방장관 회담 이후 전개되고 있는 일련의 한·미 군사합동훈련에 대해 공통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6자회담의 방향은 물론이고 정치적·군사적 동맹을 강화하자는 북·중 정상 간 공감대 형성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이번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은 권력 세습을 위한 내부 단속과 중국 지도부와의 상견례, 경제난 타개를 위한 실질적 경제 지원 확보 그리고 천안함 국면에서의 공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방문으로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이번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은 중국이 확실한 우방이라는 사실을 한·미에 과시하면서 북한이 대미 관계의 개선보다는 당분간 북중 관계 강화에 치중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번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과 북중 정상회담은 향후 한반도 정국에 일정한 영향이 불가피하다.
우선, 한국과 미국이 주도하는 천안함 국면에서 6자회담 재개 국면으로 전환된 가능성이 있다. 이미 한국 측은 중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인 우따웨이(武大偉) 한반도 사무 특별 대표에게 북한의 태도 변화에 따라 반드시 천안함과 연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언급하였다. 따라서 이번 북중 정상회담은 6자회담 재개의 새로운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 또 천안함 사태 이후 노골화하는 '한ㆍ미ㆍ일 대 북ㆍ중' 대립구도, 즉 편 가르기를 당분간 고착화할 수 있다. 이는 한·미가 주도하는 대북제재 흐름에 제동을 거는 작용을 하게 될 것이다. 북한에 실질적 영향력을 가진 중국이 동참하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대북제재가 실효를 거두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과 중국 양측이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최근 '한미 대 북중' 구도의 출현이나 한미 군사 훈련 등 대응 조치의 출현은 북한이 중국에 의존해 천안함 책임을 모면하려 한데서 발생한 일이라는 점이다. 물론 중국도 나름대로 북한에게 여러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보인다. 후진타오 주석이 김정일 위원장을 찾아오고, 산업 시찰 등을 동행했다는 점은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예우도 있지만 중국이 북한의 개혁과 개방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또 중국 측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국면에서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이 북한에 6자회담 재개 및 북핵문제에 대한 전략 변화를 주문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이 결정적인 순간 중국을 찾는 상황에서 중국은 북한의 안정과 유지라는 전략적 고려로 북한을 계속 감싸고 있다. 과연 무엇이 장기적으로 한반도 나아가서 동북아 평화와 안정에 유리한지를 중국은 다시 한 번 곱씹어 봐야 한다.
분명 중국은 정치 경제적으로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지금은 경색되어 있지만 북한과의 관계도 개선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한미 대 북중' 구도의 고착은 전략적으로 우리에게 유리하지 않다. 경색 국면을 푸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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