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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팰리스 vs 쪽방'…한국, 세계 12위 슬럼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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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팰리스 vs 쪽방'…한국, 세계 12위 슬럼대국

[화제의 책] '슬럼, 지구를 뒤덮다'

"21세기 도시는 하늘을 찌를 듯 빛나지 않는다. 손으로 찍어낸 벽돌, 지푸라기, 재활용 플라스틱, 시멘트 덩어리, 나뭇조각으로 지어진 공해, 배설물, 부패가 덕지덕지 들러붙은 '슬럼' 도시이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슬럼에 사는 전 세계 10억 주민은 9000년 전 도시 생활 여명기에 세워진 진흙집 잔해를 부러움이 가득한 눈으로 돌아볼 것이다."

최근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도시 인구가 농촌 인구를 넘어섰다. 대다수 인구가 도시에서 거주하는 세계의 미래는 어떨까? 마이크 데이비스가 <슬럼, 지구를 뒤덮다>(김정아 옮김, 돌베개 펴냄)에서 보이는 미래는 절망적이다. 제3세계의 도시를 둘러본 이라면 누구나 실감하듯이, 도시는 그 자체로 '괴물'이 됐다.
▲ <슬럼, 지구를 뒤덮다>(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김정아 옮김, 돌베개 펴냄). ⓒ프레시안

성장을 멈춘 도시, 계속 확대하는 슬럼

애초 '슬럼(slum)'은 '사기'를 뜻하는 속어였으나 19세기 중반부터 가난한 이들의 거주지를 뜻하는 단어로 변했다. 물론 서울을 비롯한 한국의 도시에서는 제3세계 도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대규모 슬럼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국제연합(UN)의 '국가별 슬럼 인구 순위'를 보면, 한국은 슬럼 거주 인구가 전체 도시 인구의 37%로 페루보다 더 높은 세계 12위의 '슬럼 대국'이다.

이렇게 한국의 슬럼 거주 인구가 높은 것은 국제 기준에 비춰보면 이른바 '쪽방'뿐만 아니라 반지하방, 옥탑방, 고시원 등도 슬럼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슬럼은 1950년대의 '추억 속의 풍경'이 아니라 지금도 끊임없이 확대하고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이 책을 읽는 이들 중 상당수조차도 슬럼에 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의 아시아 대도시에서는 '간이 숙소'의 형태가 남아 있다. 서울을 예로 들면, 전통적인 무단 점유 정착지에서 쫓겨난 사람들이나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이른바 '쪽방'으로 몰려든다. 서울의 쪽방은 5000개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곳에서는 하룻밤 단위로 잠자리를 임대하고 화장실 1개를 15명이 공동으로 사용한다."

많은 사람은 경제 발전에 따른 도시화는 필연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슬럼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언젠가는 없어질" 부산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낭만적인 생각은 현실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아프리카, 동아시아, 서남아시아, 라틴아메리카에서 나타나는 '성장 없는 도시화'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아프리카는 극단적인 예다. 탄자니아, 가봉, 앙골라 등 경제성장률이 매년 2~5%씩 후퇴하는 나라에서 도시 인구가 매년 4~8%씩 증가하고 있다. 산업의 몰락으로 도시가 활기를 잃었는데도 제3세계의 도시는 '미친 듯'이 성장하고 있다. 대도시가 앞장서면 소도시가 인근 농촌을 흡수하면서 뒤를 따른다. 성장 없는 도시화의 결과는 슬럼의 확대로 나타난다.

농촌의 몰락이 '지옥'을 낳다

성장 없는 도시화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농촌의 몰락 탓이다. 자급자족할 수 있었던 제3세계 농업은 전 세계적인 구조 조정의 물결 속에서 급격히 경쟁력을 상실한다. 1970년대 중반부터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은 채무국으로 하여금 농업을 지원하던 정책을 중단하여 달라고 요구했다.

"구조 조정의 결과 제3세계 농업으로 가던 보조금이 끊어졌다. 그 결과, 소규모 자작농은 엄청난 보조금 혜택을 받는 제1세계 농업기업이 지배하는 세계 상품시장의 틈바구니에서 쫄딱 망하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도시의 고용 창출이 중단된 후에도 농촌의 인구가 고향을 탈출해 도시 슬럼으로 몰려가는 대탈출 현상은 멈추지 않았다."

일단 슬럼이 도시를 덮기 시작하자 아무도 그것을 막을 수 없었다. 특히 1980년대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국가의 미덕"이라는 이른바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유행을 국가들이 좇기 시작하자 이런 슬럼의 확대는 더욱 가속화했다. 그 결과 슬럼은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21세기 지옥'이 됐다.

강제 퇴거의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2~3㎡의 땅을 얻는 대가로 고향을 등진 가난한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대가는 바로 생명을 잃을지 모르는 온갖 위협이다. 이 책이 6장에서 생생하게 묘사하는 '슬럼의 생태학'은, 슬럼을 그냥 내버려둘 경우 전 지구적 재앙의 진원지가 바로 도시가 될 수 있음을 설명한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방치된 쓰레기로 뒤덮인 도시의 공터는 들쥐나 모기 같은 해충의 천국이다. (…) 다르에스살람에서 평균 쓰레기 수거율은 25%에 미치지 못하며, 카라치는 40%, 자카르타는 60%에 불과하다. (…) 아크라에서 끝없이 쌓여가는 쓰레기더미는 검은 비닐봉지로 가득한데, 이 속에는 아크라의 가난한 여성의 자궁에서 낙태된 태아들이 담겨 있다."

"가장 극심한 의료 격차는 이제는 도시와 시골 사이가 아니라 도시 안에서 발생한다. (…) 케이프타운에서 가난한 흑인들이 결핵에 걸리는 비율은 부유한 백인에 비해서 50배 높다. (…) 대체로 농촌 지역에서만 제한적으로 나타나던 전염성 질병이 도시에서 나타나고 있다. (…) 오늘날의 거대 슬럼은 신종 질병이나 옛날 질병을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로 키워서 전 세계로 확산시킬 인큐베이터다."

슬럼, 21세기 판 '아마겟돈'의 무대?

굳이 전 지구적 전염병과 같은 재앙이 아니더라도 이미 슬럼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노동 과정에 편입되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이 영원한 잉여 대중으로 찍혀 현재에도 미래에도 경제와 사회에 편입될 수 없는 쓸모없는 짐으로 여겨지면서" '도시의 묵시록'을 넘어 '세계의 묵시록'을 예고한다.

이런 파국의 징후 앞에서 이른바 '주류'의 대응은 사태를 더 악화하는 쪽으로 치닫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교외의 폐쇄형 주택 단지나 무장한 '안전 마을'이 등장하고 있는 것은 한 예다. 한국의 '타워팰리스'와 같은 맥락에 놓인 이런 새로운 공간에 거주하면서 '주류'는 "자기네가 뒤에 남긴 도시의 암흑가에 대한 도덕적·문화적 통찰을 잃게 된다."

이런 비판적 성찰의 부재를 뒤따르는 것은 바로 21세기 판 '아마겟돈'이다. 미국의 전략가들은 이미 '황폐화된 국내 도시'야말로 미래 전쟁을 대비하는 최적의 훈련 장소라고 제안한다. 그들에게 슬럼은 "디트로이트와 로스앤젤레스의 슬럼에서 훈련받은 미래의 군인"들이 활약할 새로운 전장이다.

그렇다고 슬럼의 가난한 사람들이 새로운 저항의 주체로 거듭나리라고 낙관할 수도 없다. 그들은 오히려 "얼마 되지 않는 비공식 경제의 찌꺼기를 놓고 경쟁하는 상황"에서 약육강식의 야만 상태를 가져올 수도 있다. '유목민'과 같은 낭만적인 저항의 주체는 '먹물'의 머릿속에는 있을지언정 슬럼에는 없다.

이 책을 쓴 마이크 데이비스의 대안은 무엇일까? 이미 "1988년 72만 명이라는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로 가난한 주택 소유자, 세입자에 대한 공권력의 폭력적 진압"을 통해 세계 슬럼 퇴거의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한국 독자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가 언급한 서울의 역사를 우리는 벌써 망각한 게 아닐까?

"이 책의 많은 주제가 특히 한국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사실, 근대 도시 가운데 서울만큼 극적인 변화를 겪은 도시는 없습니다. 전쟁의 폐허만 남았던 도시가 이제 뉴욕에 버금갈 비참함과 화려함이 공존하는 거대 자본주의 메트로폴리스로 변모했으니까요.

국가와 기업이 사적 이윤을 위해 민중의 공간을 불도저로 밀어내고 부유층 문화를 확산시킬 때, 서울의 주민은 도시에 대한 권리를 지키고자 학생운동, 노동운동과 연대해 국가와 기업의 철거 책략에 맞섰던 영웅적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는 서울의 역사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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