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데 박사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 과학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막스플랑크 재단의 자연과학·공학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1993년 드레스덴에 '막스플랑크 복잡계 물리학 연구소'를 설립해 불과 10년 만에 세계적 연구소로 성장시켜 세계 과학계를 놀라게 한 인물이기도 하다.
피터 풀데 박사, APCTP 새 소장에 선임
과학기술부는 10일 로버트 러플린 전 소장에 이어 피터 풀데 박사가 APCTP의 신임 소장으로 선임된 사실을 공개했다. 풀데 박사는 앞으로 3년간 포스텍(포항공대)의 석학교수 직을 겸임하면서 국내에 연간 3개월 이상 머물며 APCTP 소장 직무를 수행하게 된다.
APCTP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물리학자들 사이의 국제 협력 증진을 목표로 지난 1996년 9월 설립된 국제기구다. 한국 정부는 오스트레일리아, 중국, 일본 등 아시아·태평양 12개국이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는 이 기관을 유치해, 2001년부터 포스텍에 본부를 두고 있다.
풀데 박사는 9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APCTP 안에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젊은 연구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연구 그룹을 만드는 것이 일차적 목표"라며 "한국은 물론 베트남과 같은 동아시아의 유능한 연구자들이 이 센터를 중심으로 소통하면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막스플랑크 연구소, APCTP에 직접 지원
특히 풀데 박사는 취임과 동시에 한국의 기초과학 육성과 APCTP의 발전을 위해 막스플랑크 연구소와 한국 정부가 50:50으로 이 기관에 투자하는 방안을 제의했다. 유명 연구기관을 국내에 유치하기 위해 오히려 비용을 지불해 왔던 국내 관행을 염두에 둔다면 이런 풀데 박사와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제안은 이례적이다.
풀데 박사는 "이미 막스플랑크 연구소는 한국, 아시아태평양 국가와의 과학 협력을 위해 APCTP에 5년간 연간 25만~30만 유로(약 3억1000만~3억7000만 원)의 투자를 할 계획을 세웠다"며 "한국 정부의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풀데 박사는 "5년간의 성과가 좋다면 그 이후에도 지원은 계속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과학기술부는 APCTP에 연간 15억 원의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김승환 APCTP 사무총장은 "풀데 박사의 제안을 한국 정부가 수용한다면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활발한 연구자 방문 프로그램을 적극 도입하는 등 APCTP가 여러 가지 활동을 전개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레시안>은 9일 입국한 풀데 박사를 만나 국내 언론 최초로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1936년 동독 지역에서 태어난 풀데 박사는 학부를 동베를린에 위치한 홈볼트 대학에서 마친 후 가족과 함께 서독으로 이주해 저명한 물리학자로서 자리를 확고히 했다. 그는 지난 13년간 동·서유럽 과학 교류에 큰 공을 세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유럽은 아시아 각국과의 교류에 관심이 많다" - 유럽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과학자가 이렇게 한국에 소재한 APCTP의 소장으로 오는 결정을 내린 것 자체가 큰 소식이다.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가? "현재 독일을 비롯한 유럽 각국은 아시아와의 협력 증진에 큰 관심을 쏟고 있다. 아시아에는, 한국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가장 역동적으로 과학, 경제가 성장하고 있는 나라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독일, 특히 막스플랑크 연구소는 이미 2004년에 중국에 생명과학 연구소를 설립한 적이 있다. 또 2006년에는 독일의 샤반 교육연구부 장관이 한국을 방문해 독일-한국 간의 과학기술 교류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내가 아시아태평양 이론물리센터 소장으로 오는 것도 이런 독일-한국 또 유럽-아시아 과학기술 교류의 연장선상에 놓인 활동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APCTP가 동독 지역이었던 드레스덴에 위치한 막스플랑크 복잡계 물리학 연구소와 성격이 유사한 점도 결심을 굳히는 데 큰 이유가 됐다. 나는 이 연구소를 1993년 설립해 세계에서 주목받는 연구소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해 왔고 어느 정도 성공했다. 이미 여러 가지 성과를 내고 있는 APCTP가 더 도약할 수 있도록 내가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 풀데 박사는 1년에 3개월은 APCTP에서 상근을 하기로 했다. 아시아 또 한국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한국은 아주 매력적인 국가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오랜 전통에 관심이 많을 뿐만 아니라, 지리적, 역사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독일과 공유할 수 있는 부분도 많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한국에 대한 관심은 수 명의 한국의 연구자와 교류하면서 오래 전부터 길러 왔다. 작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교수가 된 제자 10명과 식사를 같이 했는데 아주 기분이 좋았다." - 이번에 소장으로 선임되자마자 막스플랑크 재단에서는 APCTP를 직접 지원하기로 했다. 어느 정도 지원을 염두에 두고 있나? 또 이런 이례적인 결정을 한 배경은 뭔가? 혹시 미국 중심의 과학기술 교류에 대응하기에 위해서인가? "이미 막스플랑크 재단은 연간 25만~30만 유로를 5년간 지원하기로 결정한 상태다. 5년간의 성과가 좋다면 앞으로도 지원은 계속될 것이다. 막스플랑크 재단은 한국 정부에 50:50의 지원을 제안할 예정이다. 한국 정부가 양국 간의 과학기술 교류를 위해서 이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를 원한다. 지적했듯이 현재 아시아의 과학기술 교류는 주로 미국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아까 언급했듯이 현재 유럽 각국은 지구화의 중요한 파트너로서 아시아 각국을 염두에 두고 있고, 계속 교류를 확대하는 방안을 강구해 왔다. 이번 지원 결정도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과도 교류가 확대되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이공계 기피는 전 세계적 현상…과학을 삶의 문제로 인식하게 해야" - 화제를 좀 바꿔보겠다. 최근 한국에서는 몇 년 새 학생들의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과학기술자는 더 이상 학생에게 비전 있는 직업으로 인식되고 있지 않다. 독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알고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렇다. 이공계 기피 현상은 독일은 물론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늘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드레스덴에서의 내 경험을 하나 들려주겠다. 나는 1993년 드레스덴에 연구소를 설립한 후, 1995년부터는 드레스덴 공과대학교에서 교수를 겸직했다. 그 때 그 대학교의 물리학과에는 50여 명 정도의 신입생만 들어오는 상황이었다. 물리학뿐만 아니라 다른 기초과학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시 분위기에서 이런 상황은 당연했다. 통독 직후 동독 지역이었던 드레스덴의 학생은 돈을 벌고자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과학자 외에 많았기 때문이다. 시민, 학생의 관심을 다시 과학으로 돌리기 위한 방안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과학이 세상살이와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기 위한 여러 가지 활동을 전개했다. 그 때부터 드레스덴의 연구소, 드레스덴 공과대학교는 수차례에 걸친 과학과 관련한 대중 강연을 마련했다. 기후변화와 같은 대중의 관심을 끄는 소재나 우주·천체와 같은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소재를 전면에 적극 배치했다. 강연회의 형식도 다른 식으로 마련했다. 대학 대신 시민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시청을 강연 장소로 활용했다. 또 지역 은행에서 기부를 받아 강연이 끝난 후, 강연자와 시민, 학생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와인을 마시면서 담소를 나눌 수 있도록 했다. 강연자의 질 관리도 철저하게 해 반응이 좋지 않으면 바로 다른 대안을 강구했다. (웃음) 결과는 어땠을까? 10여 년 이상 이런 강연을 지속하면서 과학기술에 대한 드레스덴 시민, 학생의 관심이 놀랄 만큼 제고되었다. 지금 현재 드레스덴 공대의 물리학과에는 매년 180명 정도의 학생이 들어온다. 무려 3배 이상 학생 수가 늘어난 것이다. APCTP에서도 다양한 방식의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전개해볼 생각이다. "연구윤리, 사회적 책임 외면하면 대중에게 신뢰 잃어" - 최근 한국에서는 이른바 '황우석 사태'라고 불리는 과학계의 스캔들이 있었다. 그 이후 과학계에 대한 시민의 신뢰가 크게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는 과학자의 연구윤리에 대한 관심이 크게 확산되고 있다. "황우석 사태는 잘 알고 있다. 독일에서도 유사한 일이 있었고, 물리학계에서는 2000년대 초에 미국의 물리학자 얀 헨드릭 쇤의 스캔들이 큰 충격을 줬었다(☞'쇤 스캔들'이란?). 독일에서는 황우석 사태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막스플랑크 연구소를 중심으로 1997년 12월 연구 진실성에 대한 규정을 만들었다. 또 전국 73곳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부정행위에 대한 의심이 제기될 때,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면서 신속한 조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제도도 마련해놓고 있다. 특히 젊은 연구자들이 논문에 기여를 해놓고도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규정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연구 부정에 대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연구윤리 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특히 독일의 교육연구부는 이런 규정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기관에는 지원을 하지 않음으로써 제도가 확산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독일의 연구윤리 제도는?)" - 과학기술자가 현대 사회에서의 중요한 역할에 비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오늘날 과학자는 두 가지 역할이 있다. 현대 과학 연구는 부의 원천이 되기도 하고, 인류의 삶을 질적으로 전환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도 한다. 과학자가 이런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활동에 종사하기 때문에 과학자는 남다른 사회적 책임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런 사회적 책임은 물리학자, 생물학자의 구분이 없다. 과학자는 자신의 과학 연구를 수행할 때 과연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그것이 과연 공동체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는지를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이렇게 과학자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 결국 대중은 과학자를 외면하는 상황에 처한다." "선택과 집중, 자칫하면 돈 낭비로 이어져" - 한국 정부는 과학기술을 중요한 성장 동력으로 인식하고 투자를 계속 늘려 왔다. 그러나 정작 현장의 연구자들은 정부가 특정 분야, 특정 연구자만 찍어서 지원을 하고 있고, 이런 과학기술 정책이 한국 과학기술 전체의 체질을 강화하는 데 오히려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국의 현장 연구자의 지적에 적극 공감한다. 여기서는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일단 기초과학 분야에서 정부가 특정 분야를 선택해서 지원하는 것은 난센스다. 그런 식의 지원은 대개 돈의 낭비일 뿐이다. 왜냐하면 정부가 어떤 기초과학 분야를 지원해야 할지를 결정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가 특정 기초과학 분야를 선택해 연구비를 몇 푼 주고, 당장 성과를 내라고 닦달하는 것은 기초과학을 죽이는 치명적인 행위다.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기초과학 분야는 각 분야의 연구자들이 열심히 연구를 하면서 상호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으로 족하다. 다만 응용과학의 경우에는 정부가 해당 국가의 경제, 산업 등의 갖가지 변수를 염두에 둔 수요를 고려해서 정부가 선택과 집중을 할 필요가 있다. 이것과 관련해서도 내 경험에 비춰 한 가지 조언을 하자면 정부가 단기적 성과에 급급해서 특정 분야만을 키우는 것은 위험 요소가 많다." - 앞으로 3년간 APCTP의 수장으로서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할 것 같다. 취임과 동시에 무슨 일을 추진할 생각인가? "아시아·태평양에는 잠재력 있는 젊은 연구자들이 아주 많다. 특히 베트남의 경우에는 능력있는 연구자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들이 APCTP를 중심으로 역동적인 연구 그룹을 만들어 한국은 물론 아시아·태평양의 과학 수준을 증진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을 당장 만들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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