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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가 만든 찬핵 홍보기관이 아직도…"

[토론회] 원자력문화재단, 개혁이냐 폐지냐

그간 원자력계의 홍보창구 기능을 해오던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이 지금 상태대로라면 폐지되어야 마땅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안면도 사태'로 크게 곤욕을 치른 노태우 대통령에 의해 1992년 설립된 원자력문화재단은 14년 동안 성장을 거듭해 올해 예산만 120억 원인 정부기관이다.

최근에는 원자력계와 무관한 청와대 이은희 전 제2부속실장이 연봉 9000만 원 상당의 이 재단 이사장에 공모로 선정돼 '보은인사'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박금옥 전 이사장 역시 청와대 비서관 출신으로 3년 가까이 재직하다 지난 7월 임채정 국회의장 비서실장으로 발탁돼 물러났다.

노태우 대통령이 만든 '원자력=행복'

이필렬 에너지전환 대표(방송대 교수)는 20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원자력문화재단은 일상생활 곳곳에서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사람들이 그것을 원자력에 대한 홍보인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교묘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며 "이런 활동공세 앞에서 많은 국민은 결국 '원자력=행복'이라는 이 재단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필렬 대표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원자력에 대해 다양한 방식의 홍보활동이 이뤄지는 것 자체를 반대할 수는 없다"며 "다만 국민의 세금이 이런 홍보활동에 들어가는 것은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태우 정부 때 원자력에 대해 '무지한' 국민을 깨우치기 위해 만든 기관이 지금까지 존재할 필요가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필렬 대표는 "이미 한국수력원자력(주)이 원자력 발전소를 운영하면서 다양한 홍보활동을 벌이고 있다"며 "원자력문화재단이 지금과 같은 '찬핵' 일변도의 활동을 고수한다면 당연히 한국수력원자력에 흡수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원자력 발전을 하는 다른 국가에서도 원자력 홍보는 주로 사업자가 중심이 되어 한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한국수력원자력과 원자력문화재단에 의해 똑같은 홍보활동이 전개되는 것의 문제점은 세금낭비뿐만이 아니다. 이필렬 대표는 "원자력문화재단의 홍보활동에 쓰이는 돈은 원자력 전기의 원가에 반영되지 않아 '원자력 전기가 더 싸다'는 착시현상을 심화시킨다"고 주장했다.

법적 지위 '모호'…언론 포섭 활동도 불순

홍성태 상지대 교수(사회학)는 원자력문화재단의 법적 지위 자체를 문제 삼았다. 홍 교수는 "원자력문화재단은 그 근거가 법적으로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은 일종의 임의기관에 불과하다"며 "1992년 설립부터가 방사성폐기물관리기금을 불법 전용하는 방식이었다는 점이 그 단적인 예"라고 지적했다.

현재 원자력문화재단은 민법 제32조 등에 근거해 산자부 장관의 관리를 받고 있다. 민법 제32조는 비영리법인에 관한 일반적인 설립과 허가를 규정한 조항이다. 홍 교수는 "노태우 정부 때 찬핵 홍보수단으로 급하게 설립된 이 재단이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존속하고 있는 것 자체가 한국 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성태 교수는 더 나아가 "원자력문화재단이 '원자력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에 대해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기는커녕 '원자력=행복'이라는 식의 홍보에 머물고 있어 찬핵 세력의 대변자나 다름 없다"고 설명했다.

홍성태 교수는 "원자력문화재단이 언론홍보비의 절반을 언론인 국외 시찰에 사용한 것은 언론을 장악하기 위한 불순한 시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언론에서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을 지적하거나 주민의 저항을 제대로 설명하는 기사를 보기 어려운 까닭 역시 원자력문화재단의 이런 활동과 무관치 않다"고 덧붙였다.

에너지전환재단 필요하다

이필렬 교수는 결론적으로 "원자력문화재단은 폐지되거나 근본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이 재단이 계속 세금 지원을 받는다면 그 활동내용이 바뀌어야 한다"며 "에너지 전환의 필요성, 기후변화의 위험성, 핵무기의 위험성,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의 중요성을 알리는 등의 중요한 일이 산더미 같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필렬 교수는 "현재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고 그것에 대한 대비의 중요성을 홍보하는 일이나, 핵무기 개발의 위험성을 알리는 일은 정부의 어느 기관에서도 하지 않고 있다"며 "지금 국민의 세금을 들여 해야 할 일은 바로 이런 일을 할 기관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원자력문화재단이 개혁되면 이런 일을 떠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필렬 교수는 "이를 위해 원자력문화재단은 이름, 정관, 운영진 선임방식 등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한다"며 "이름은 '에너지전환재단', '재생가능에너지문화재단' 등이 적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현재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대항해 독일을 중심으로 국제재생가능에너지기구(IRENA)를 만들려는 움직임 등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필렬 교수는 "원자력문화재단이 건재하며 확장되고 있는 것은 한국 정부가 낡은 원자력 에너지에 얼마나 집착하는지를 잘 보여준다"며 "진정으로 핵무기 없는 한반도를 지향하고 석유로부터 해방되려면 원자력문화재단이 아닌 새로운 기구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처럼 활동을 계속하려 한다면 이 재단은 없어져야 마땅하다"고 한 번 더 강조했다.
문화단체-환경단체 연대 움직임 예고?

이날 열린 '원자력문화재단의 민주적 개혁을 위한 토론회'는 에너지전환, 문화연대, 환경운동연합, 청년환경센터 등이 주최하고 민주노동당과 '탈핵과 대안적 전력정책 국회의원 연구모임'이 후원했다. 원자력문화재단의 개혁을 주제로 한 토론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홍성태 교수는 "문화운동을 하는 단체와 환경단체가 함께 토론회를 개최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며 "원자력문화재단의 활동과 같이 기득권 세력이 문화정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할수록 그에 대한 저항의 연대도 활발해져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이런 자리가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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